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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51화 (351/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51화>

민성은 눈을 뜨자마자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입 밖으로 거친 숨이 흘러나왔고, 민성의 눈에서는 한기가 풀풀 흘렀으며, 몸에서 은연중에 흘러나온 살기가 방 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불이 찢어지고 침대 매트리스가 찢겨져 나갔으며, 고가의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가 떨어져 나가고 창문이 깨졌다.

탁상 위의 물건들도 어지럽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민성은 그런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살기가 흐르는 눈으로 허공을 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뒤늦게 주변을 훑어보고서, 민성은 자신이 지독히도 생생한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민성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 생생했던 사실이 꿈이라고?

민성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 뒤이어 마계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었다.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민성이 시선을 돌리자 문 앞에 장웅 셰프가 서 있었다.

장웅 셰프는 방 안을 보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민성을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민성은 손등으로 이마에 배인 땀을 닦아 냈다.

“별일 아니야.”

“별일이 아니라니요. 땀을 흘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민성은 침대에서 내려오며.

“끔찍한 악몽을 꾸었을 뿐이다.”

하고 짧게 일축했다.

“그렇군요. 차 한 잔 드릴까요?”

민성은 우뚝 멈추어 서서 먼 곳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밥부터 먹어야겠다.”

민성이 그렇게 말하고 거실로 나갔다.

장웅은 걱정이 담긴 눈길로 민성을 보다가 서둘러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 소파에 앉은 민성은 생생한 마계의 꿈을 떠올리고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꿈이 단순한 악몽으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장웅은 짧은 고민을 한 후에, 곧장 요리를 시작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손을 씻은 다음 교차 오염을 막기 위한 수건을 어깨에 걸고, 즉시 요리에 시동을 걸었다.

우선 미리 만들어 둔 육수를 뚝배기 그릇에 넣고, 엄청난 속도로 찌개 재료를 준비하여 넣은 다음, 바로 뚝배기를 가스 위로 올려 불을 켜고 다음 요리로 넘어갔다.

장웅 셰프는 눈에서 집중력이라는 불에 화력을 키우며 두꺼운 팔로 섬세하게 수건을 이용하여 냄비를 잡은 다음, 찜 요리를 시작했다.

이어서 완벽하게 보관되어 있는 생고기를 꺼내고 냉채 요리와 무침을 동시에 진행했다.

요리를 하고 있는 속도는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해서, 이호성이 봤다면 박탈감을 느꼈을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기본을 잃지 않았으며, 기본 안에서도 화려한 능력이 분출되었다.

순식간에 대부분의 요리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전복을 손질한 후, 오래 걸리지 않아 준비된 모든 음식이 식탁 위로 올라갔다.

장웅 셰프는 자신이 준비한 요리를 보기 좋게 정렬하여 각을 맞춘 뒤, 준비가 끝났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흉흉한 꿈을 꾸었다고 하니, 제대로 된 음식으로 그의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요리였다.

장웅 셰프는 숨을 고르며, 이마에 맺힌 한 방울의 땀을 수건으로 닦아 낸 뒤에 거실로 나갔다.

* * *

마계에 대한 생각이 길어진 사이, 어느새 음식이 완성되었다.

“식사하시죠, 헌터님.”

장웅의 부름에 민성은 주방으로 이동했다.

식탁 위로는 화려한 한식이 펼쳐져 있었다.

민성은 그러한 식탁 위의 음식을 물끄러미 보다가 자리에 앉아 수저를 챙겨 들었다.

생생한 마계의 꿈을 꿔서일까.

오늘따라 음식이 훨씬 더 다른 의미로 가슴에 와닿았다.

메뉴는 한정식이다.

수라상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화려한 음식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이 많은 음식들을 만든 것을 보면 역시 장웅 셰프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갈비찜, 골뱅이 무침, 전복회, 육회, 해파리 냉채, 냉이 된장찌개까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맛있다는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빛냈다.

민성은 밥 뚜껑을 내려놓고서, 현미밥을 한술 뜨고 곧장 갈비찜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 뜯었다.

갈비찜은 질기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딱 알맞은 양념이 입안에 가득한 풍미를 선사해 주었다.

또한 전복회는 깔끔함의 극치를 맛볼 수 있었으며, 탱탱하고 오독한 식감이 어금니로부터 전해지는 쾌감은 전복의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싱그러운 향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부드럽게 입안으로 들어와 새콤하게 혀를 자극하고, 콧속으로 스며드는 해파리냉채는 가히 시중에서 결코 맛보기 쉽지 않은, 장웅 셰프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신선하고 아주 차가운 육회는 기분 좋게 입안에서 녹아들었으며, 몰캉하게 씹히는 골뱅이와 아삭한 배와 무의 조합된 양념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체 어디서 구해 온 냉이인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된장찌개에서는 냉이의 향이 아주 강해서, 구수한 냉이의 냄새를 즐길 수 있었다.

두부와 파, 그리고 양파가 섞인 된장찌개의 맛은 순식간에 민성의 밥그릇을 가볍게 해치우고 말았다.

실로 끝내주는 맛이다.

민성은 장웅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으면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장웅은 안도한 듯이 한숨을 삼키며 미소와 함께 목례했다.

“디저트나 커피 준비할까요?”

잠시 사색에 잠겼다가 민성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술 한잔만 부탁하지. 독한 걸로.”

“알겠습니다.”

민성이 거실을 나간 후, 장웅은 고급 위스키 하나를 꺼내 놓은 후, 안주를 만들었다.

방금 식사를 끝냈으니, 가볍게 먹을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준비해야 했다.

* * *

민성은 맨발로 마당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 앙상하게 마른 나무를 보고 있었다.

장웅은 술과 안주를 들고 민성을 보고 섰다.

이 차가운 날씨가 민성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 장웅은 민성이 혹여나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색을 방해할 생각도 없었다.

장웅은 조용히 술과 안주를 벤치 앞 테이블에 두고 물러갔다.

장웅이 마당을 떠나고,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민성은 가라앉은 눈으로 술병을 들어 마개를 열고 입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마셨다.

독한 위스키라 그런지 마치 화끈한 감각이 목을 지지며 지나가는 듯했다.

알코올에 의해 머리가 핑 돌았다.

마기를 운용하면 이러한 어지러움이야 가시겠지만, 그럴 거라면 애초에 술을 마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성은 연거푸 술병을 들어 위스키를 마셨다.

뜨거운 술기운을 느끼며 민성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째서 그따위 꿈이 그토록이나 현실적으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깊은 생각 끝에 민성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그 더러운 꿈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대주신에 대한 역한 감정은 자신의 가슴 안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대주신이 자신에게 힘을 주고, 마계를 멸망 직전에 이르게 해 준 것은 사실이나, 거기까지다.

균형이라는 이유로 마계의 멸망을 막은 이 또한 대주신이었다.

그것은 결국 마계는 멸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계가 새롭게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꿈에서 나타난 9마리의 새끼 마인이 주는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마인이 늘어나고, 마신이 생겨날 것이며 마계에는 다시 악마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돌아오리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완전한 멸(滅)을 보지 못했다는 한(恨)이 가슴 안에 남은 게 꿈으로 나타난 듯했다.

끝을 내야만 한다.

아니, 끝을 낼 수 없더라도 끝을 향해 가야 한다.

만약 대주신이 자신을, 마계에 대한 청소부로 쓰고자 했었던 거라면…… 그 선택은 틀렸다.

민성은 대주신에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계의 끝이 대주신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갈지는 모르나,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생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었던 마계를, 민성은 자신의 손으로 완벽한 끝을 보고 싶었다.

설령 대주신이 그 끝을 막는다 할지라도, 민성은 그 끝을 반드시 봐야만 했다.

민성은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 병을 벤치 앞 테이블에 놓고 마기를 운용했다.

그러자 머릿속을 무겁게 만들었던 취기는 순식간에 증발하여 날아갔다.

그리고 민성은 곧장 집 안으로 돌아가 샤워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틀고 샤워를 시작했다.

가장 정순한 상태에서, 마계의 멸을 향해 가고자 함이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 일이 짧은 시간 안에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지루하고도 지루한, 학살의 연속일 것이다.

마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멸하고, 마계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린다 할지라도 반드시 그 끝을 보고야 말 것이다.

민성은 샤워실을 나와 활동하기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신발을 신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물기 젖은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털었다.

민성의 감정을 바가지와 쏠, 그리고 레폰이 모를 리가 없었다.

바가지는 잽싸게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고, 바가지는 황금 주머니를 챙겨 어깨에 걸고서 민성의 옆에 섰다.

레폰은 쏠의 어깨에 앉았다.

그때, 장웅이 민성에게 다가왔다.

“어디 나가십니까?”

민성은 장웅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오래 걸릴 거다. 얼마나 걸릴 수는 알 수 없지만.”

민성이 주방 쪽을 돌아보며 옅게 웃었다.

“1회 차이기도 하고,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장웅은 민성이 아주 먼 곳으로 떠난다는 것을 직감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장웅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짧게 인사를 전했다.

민성은 그런 그가 마음에 든다는 듯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민성은 바가지와 쏠, 그리고 레폰을 데리고 마당 밖으로 나갔다.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허공이 마치 칼에 베이듯 깔끔하게 잘려지면서, 그 공간이 점점 벌어지며 이내 블랙홀과도 같은 검은 묵빛의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장웅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민성은 그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그 검은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내 빛이 잠깐 번쩍인다 싶더니, 공간이 닫힘과 동시에 민성도 사라졌다.

장웅이 아쉬운 듯 민성이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는 가운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장웅은 인터폰을 확인하고 탄식을 흘렸다.

그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였다.

“민성 씨는요? 안에 있죠?”

김지유가 품에 서류를 한가득 품은 채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웅은 그런 김지유를 보며 난처한 듯 웃었다.

“조금만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습니다.”

장웅의 말에 김지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웅이 민성이 떠났다는 것을 설명해 주면서 떠나기 전에 한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자 김지유는 품에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트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좌절하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장웅이 토닥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 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시고…….”

김지유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서류를 주워, 장웅에게 정중하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장웅은 떠나는 김지유를 보며 한숨 쉬었다.

“헌터님은 어찌 이리도 여심(女心)을 모르실고.”

이내 장웅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이 없으신 거겠지만……. 차차 나아지시겠지.”

장웅은 민성이 분명 몸 성히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까이서 지켜본 강민성이라는 남자는 그 누구에게도 약한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장웅은 현관 앞에서 한 발자국 나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다시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장웅은 김지유가 나간 방향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헌터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부디 힘이 되기를 멀리서 바라겠습니다.”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던 장웅이 진중한 얼굴로 조용히 예를 다하듯 현관문을 닫았다.

한겨울의 햇살 좋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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