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48화>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 아니요, 그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이호성은 긴장을 숨기며 말했다.
긴장이 안 될 수는 없다.
그로서는 뭔가 엄청난 일이 터진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당연히 들 수밖에 없었다.
총군주의 전화이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었으니까.
- 그러니까, 저기 그게…… 부탁이 뭐냐면…….
“하하, 괜찮습니다. 부담 없이 말씀 하세요.”
- 민성 씨에 대해서 좀 알아봐 주실 수 있나 해서요.
“헌터님을 알아봐 달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그러니까 저기, 그게…….
뭐야? 왜 이렇게 뜸을 들여?
- 제가 이번에 한국으로 귀국하거든요.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내일 날짜로 오시는 거죠?
- 네. 저기 그래서 말인데. 민성 씨는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나 해서. 호성 씨는 민성 씨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잖아요.
이호성은 일순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해져서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
이호성은 겨우 핸들을 바로 잡았다.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전화를 한 거란 말이야?
와, 총군주 완전 적극적인 스타일이네.
“하하, 네. 알겠습니다. 다른 궁금한 사항은 없으시고요?
- 그리고……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쭈뼛대며 말하는 총군주는 총군주가 아니라 그저 그 나이대에 딱 맞는 여자였다.
민성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주 평범한 여자 같았고, 이호성은 입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꽉 틀어막아야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파악해서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 내일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귀국 시간에 제가 맞춰서 가겠습니다.”
-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아니요. 저도 딱히 스케줄이 없어서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네,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난 다음 이호성은 입에 담배를 물고, 차량 창문을 아래로 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휴, 부럽다. 아니 근데 총군주는 대체 그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이해가 안 되네, 이해가 안 돼.”
이호성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뻑뻑 피웠다.
“하다 하다 이젠 강민성의 연애 사업도 도와주는구나. 어휴, 이놈의 노비 인생.”
담배를 피우며 중얼거리던 이호성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제 이 노예 생활도 끝이다.
강민성과 함께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다. 미련이 조금 남기는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며 살 정도는 아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제2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강민성을 보좌하면서 솔직히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얼마나 처참한 삶이었던가?
이제 자신만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이제 딱 그러한 시기가 되었다.
처음에 강민성이 이제 자유라고 했을 때 뭔가 적응이 되지 않기도 했고, 체감이 잘 되지 않았던 이호성이었다.
하지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이제 정말 눈앞에 자유로운 자신의 새로운 삶이 명확히 보이는 것 같아 설렘이 가슴을 파랗게 물들이는 듯했다.
이호성의 얼굴에 싱글벙글한 웃음을 연신 걸면서 그림자 길드로 향했다.
그림자 길드에 들러 재단을 맡아 줄 인재를 찾아보고 그다음에 민성을 찾아가 총군주의 부탁을 들어줘야겠다.
그 후에는 슬슬 가게도 알아봐야 할 것이고, 인테리어며 요리며 여러 가지로 준비할 사항과 진행할 사항이 많을 것이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렇게 할 일이 많다는 게 이호성은 전혀 싫지 않았다.
* * *
가까운 대형 마트에 가서 간단히 장을 보고 돌아왔다.
장을 봐 온 것들을 주방에 올려 두고 커피 한 잔을 타서 거실로 나오자 바가지와 쏠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 게 통유리 너머로 보였다.
민성은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긴 후 소매를 걷고 주방으로 갔다.
마당에서 놀고 있던 바가지와 쏠이 안으로 들어와 민성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민성이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있을 때, 민성의 다리 밑에서 바가지와 쏠이 티격태격하며 몸으로 엉키며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싸워 댔다.
민성은 본 채도 하지 않고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을 이어나갔다.
먼저 식칼을 꺼내 들고 화려하게 칼질을 했다.
다투며 장난치던 바가지와 쏠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박수를 짝짝 쳤다.
민성은 재료 손질을 마치고, 저울에 무게를 정확히 잰 다음, 육수를 끓였다.
“주인님, 불을 더 세게 해 드릴까요?”
바가지가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됐어. 그럴 경우 시간을 잴 수 없게 된다.”
민성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이 켜 둔 타임워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된 시간이 되면 타임워치가 울리게 된다.
그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군.
그사이 다른 음식을 준비해 보면 되겠어.
민성은 다시 재료들을 확인했다.
장웅이 주방을 흘깃 내다보고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소리 나지 않게 돌아갔다.
민성이 각종 버섯과 야채들을 꺼내는 사이,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호성이었다.
바가지와 쏠이 반갑다는 듯이 달려가서 이호성의 양 쪽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호성은 무시하고, 민성의 앞으로 걸어가 인사했다.
“저 왔습니다, 헌터님. 뭐 하세요?”
이호성이 꾸벅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의아하다는 듯 민성을 빤히 보며 물었다.
“보면 몰라?”
민성이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아니, 장웅 셰프님 봤었는데. 왜 헌터님이 요리를 준비하고 계세요?”
민성은 야채를 씻은 다음, 길쭉한 그릇에 물기가 묻어난 야채를 보기 좋게 놓으며 입을 열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누가 시켜서 하겠냐?”
이호성은 목을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건 그러시겠죠.”
“이따가 만들면 먹어라.”
목을 긁던 이호성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하, 하하……. 어쩌죠? 저 밥 먹고 왔는데.”
민성이 숨을 천천히 삼키며 시선을 들어 이호성을 보았다.
“먹겠습니다.”
이호성이 표정을 잃은 새하얀 얼굴로 민성을 보며 말했다.
“거짓말이지?”
“뭐, 뭐가요?”
“밥 먹었다는 얘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헌터님. 무서워요.”
“…….”
“예전에 요리학원에서 헌터님이 만든 음식 먹고 죽을 뻔했습니다.”
“안 죽잖아.”
“죽고 안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굉장한 고통이라고요.”
“그래서 먹기 싫다는 거지?”
“아니요, 먹는다니까요. 헌터님을 존경하는 의미로다가.”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 섬뜩한 모습을 보고 이호성은 온 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
뭔가 변명을 하고 싶은데, 백지처럼 변한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민성은 이호성을 보며 가볍게 코웃음 쳤다.
“이따가 먹고 깜짝 놀라지나 마라.”
민성이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름 꽤 도전적으로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너무 맛이 없어서 깜짝 놀랄 일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만이 강하게 드는 이호성이었다.
* * *
“먹자.”
민성이 식탁 위로 한 끼 식사 세팅을 모두 마치고 먼저 자리에 앉았다.
이호성은 딱딱하게 굳은 채, 목석처럼 자리에 앉았다.
긴장감이 이호성의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민성은 그런 이호성의 상태 같은 것은 전혀 관심에 두지 않고, 오로지 식사에만 관심을 두고 수저를 들었다.
밥을 한술 뜨려다가 민성이 수저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이호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먹어 봐라.”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은 크게 한숨 쉬면서 밥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식사를 ‘강민성’이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의심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이호성은 식사를 내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왜 웃나?”
민성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호성은 수저를 들었다.
강민성이 만든 음식에 기대를 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체념을 하고, 각오를 마친 다음 먹는 것이 낫다.
까짓 거, 먹자마자 병원 가서 바로 힐 치료 하면 좀 낫겠지.
이호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식사를 보았다.
메뉴는 하얀 쌀밥과 김치찌개, 그리고 소시지였다.
이호성은 밥을 한술 떠먹고, 김치찌개 국물도 먹었다.
그리고 이호성의 눈이 번쩍 크게 뜨였다.
“음……?!”
이호성의 반응을 보고서.
“어때?”
민성이 기대를 담아 물었다.
“맛없습니다.”
이호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맛없는데 뭘 웃고 있어?”
“맛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죠!”
이호성이 흥분하여 소리치듯이 말했다.
민성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호성을 보며 팔짱을 꼈다.
“무슨 말이야, 그게?”
“독극물이 아닌 게 어디에요?! 실로 엄청난 발전이십니다.”
“왜 맛이 없다고 생각하나?”
“네? 그야 밥은 질어서 떡 같고 김치찌개는 소태처럼 짜니까 그렇지요.”
민성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내려다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분명 육수도 만들었고, 저울까지 써 가면서 정량대로 넣었는데 어째서 이럴까?”
민성이 요리에 대한 불가사의에 고민하고 있는 걸 보며 이호성은 한숨 쉬었다.
언제나 완전무결한 것만 같은,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는 이 사내는 요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약해진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몇 가지 아주 중요한 과정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지?”
민성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이호성을 보았다.
“우선 밥을 지을 때는, 물의 양이 아주 중요합니다. 손을 펴서 넣은 다음, 물이 손등에 찰랑 거릴 정도로 하는 것이 보통의 방법이죠.”
“김치찌개는?”
“육수의 맛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김치가 김치찌개에 쓰기에는 별로 좋은 김치가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밥과는 반대로 육수의 양이 너무 적었습니다. 그러니 끓이면서 훨씬 더 짜게 변한 거죠.”
“그렇군.”
민성이 심각해진 얼굴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장족의 발전입니다. 이대로라면 꽤 맛있는 음식을 곧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호성은 기대 이상의 음식에 기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
하지만 이호성은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다시 만들어야겠어.”
“네?”
민성이 일어서서 음식을 들고 그대로 싱크대에 던졌다.
민성이 말없이 싸늘한 공기를 만들어 내며 다시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손질을 시작했다.
이호성은 잔뜩 예민해져 있는 민성을 보며 입을 살짝 벌린 채 침을 꼴깍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