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46화>
이호성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대통령들과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민성을 보면서 마음이 초조했다.
바깥에는 기자들이 쫙 깔려 있었다.
아무리 강민성이라고 해도, 나라 정부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원성을 살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물론 그는 주변에서 뭐라 떠들어 대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를 보좌하고 있는 이호성 자신의 입장으로서는 이렇게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다.
그의 이미지를 지키는 것도 자신의 역할 중 하나라고 이호성은 생각했다.
“헌터님, 몸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교육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걱정 마. 나도 그 정도 생각은 있으니까.”
민성의 대답을 듣고서 이호성은 그제야 한결 마음이 놓인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민성이 개구리처럼 엎드려 있는 대통령들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원형으로 엎드려 있는 그들의 중심에 섰다.
“난 조용히, 그리고 편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별로 나랏일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하지만 적어도 내겐 내 기준 안에서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게 있다.”
민성이 입가에 웃음기를 지우고 아주 차갑고도 냉정한 표정으로 그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나로 인해 발생된 문제에 대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런데 말이야. 내가 짜증이 나는 건, 자꾸 내가 그어 놓은 선을 넘어서는 새끼들이 있다는 거야. 바로 너희들처럼.”
민성을 중심으로 원형의 형태로 엎드려 있던 통치자들이 오들오들 떨었다.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 갑작스레 온도가 확 내려간 것 같은 감각이 강하게 몸을 휘어 감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말이야. 말을 안 들어도 너무 안 듣는다는 거지.”
분위기가 점점 무서운 상황으로 끌려가는 것 같자, 통치자들이 하나둘 머리를 들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오해는……!”
민성이 러시아 국가 원수를 보며 웃었다.
“오해?”
실수했다는 걸 직감한 러시아 국가 원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민성이 그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사람의 본성은 잘 바뀌지가 않아. 난 그걸 알고 있지. 하지만 더 잘 알고 있는 게 있어. 방법이 없는 것만은 아니란 얘기지.”
국가원수들의 눈이 커지고 그 눈에서 두려움이 뿜어져 나왔다.
민성이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주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 헌터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의 생에 꽤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거다.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될 거야.”
-츠츠츠츠츳!
민성의 손에서 새하얀 연기가 흘러 나왔다.
그것은 마치 벼락을 머금은 먹구름 같기도 했으며, 새하얀 안개 같기도 했고 시시때때로 변형되기도 해서 아주 기괴했다.
국가 원수들은 입을 벌리고 덜덜 떨었다.
민성의 손에서 흘러나온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류는 유령보다도 무서웠다.
“으으으…… 으어어, 으아아악!”
민성의 손에서 흘러나온 기괴한 기류가 마치 뱀처럼 국가 원수들의 팔이나 다리를 타고 올라가 몸 전체를 휘어 감았다.
그리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이 찢어지고 터지는 고통과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악몽이 펼쳐졌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기 때문에, 민성은 그 강도를 조절했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까지.
딱 거기까지 민성은 기가 막히게 조절했다.
100년간 마인을 상대한 덕분에 고문하는 기술은 사실상 거의 장인 수준인 민성이었다.
평범한 인간 하나를 고문하는 건 일도 아니다.
“제, 제발…….”
“흐으으!”
“흐흐흐흑!”
울고 애원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빗발쳤다.
봐주지 않고 민성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민성의 손에서 흘러나온 기류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살을 파먹고 다시 재생시켰다.
또한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악몽은 마치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지옥 속에 머무는 느낌이기 때문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민성이 가하는 형벌이었다.
민성은 머릿속으로 시간을 세면서 적당한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 기괴하고 새하얀 기류를 다시 거두어들였다.
국가 원수들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기침하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아이들이 우는 것처럼, 울음바다였다.
“입 닫아.”
민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들은 양손으로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앞으로 나와 관계된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찾아가는 건 오직 두 부류다. 현 정부의 대통령, 그리고 헌터장. 내가 찾아가는 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뿐이야.”
민성의 눈에서 한기가 풀풀 날렸다.
“그러니까. 확실히 교육해 두는 것뿐이다. 죽지는 않을 거니까. 병원들 다니면서, 정신 치료 정도만 가볍게 하라고. 다시 간다.”
국가 원수들이 민성을 돌아보면서 손을 뻗었다.
“제발 그만해 주십시오.”
“뭐든 시키는 대로…….”
“제발 용서를…….”
“앞으로 두 번 다시.”
민성의 손에서 다시 기괴한 기류가 흘러나오자.
“흐히이익!”
모두 도망가기 위해 벌떡 일어서려 했으나, 그들의 움직임이 민성의 손에서 흘러나온 기류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정부의 존재 가치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다. 기득권이 가진 개인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아아아악!”
비명이 빗발친다.
민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먼 곳을 보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늘 내가 정답일 수는 없어. 하지만 명확한 잘못에 대해서는 따져야지. 이래 봬도 내가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건 있는 사람이거든.”
마치 죽어 가고 있는 듯한 국가 원수들이 널브러져 눈을 뒤집으면서 꿈틀거리고 있는 가운데에도 웃으며 말하는 민성을 보면서 이호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히 기억해라. 난 다른 애들은 안 건드려. 너희만 잡는다, 난.”
민성이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보며 못을 박듯 말했다.
* * *
민성이 국가 원수들과 헌터장만 잡는 건, 그게 가장 손이 덜 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놈만 확실하게 잡고 있으면, 나머지는 그 밑으로 알아서 정리되게 되어 있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의 판단력에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십니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이호성이 운전대를 잡은 채로 말했다.
“뭐가?”
민성이 창밖을 보면서 되물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상황을 정리하시는 걸 보면요.”
민성은 픽 하고 웃었다.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중앙 헌터 기관이 있고. 네가 있으니까. 정보를 가질 수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호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겸손이십니다.”
“…….”
“식사하셔야죠?”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음, 가면서 제가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민성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 * *
미국에 온 만큼 미국 맛집을 가려 했으나, 정보도 많지 않고 딱히 미국식 음식이 별로 당기지 않아서, 민성은 이호성과 함께 워프 게이트에 도착해 곧바로 일본으로 넘어갔다.
민성이 이호성이 추천한 일본 가정식 맛집에 대한 추천에 콜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으로 넘어가자, 민성의 인기가 실로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민성에 대한 추종심이 굉장해서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열렬한 환호를 보내왔다.
차를 타고 이동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였지만, 일본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굉장한 맛집으로 유명한 곳들이 꽤 있어 다행이었다.
산길을 타고 들어가 한 식당 앞에 도착했다.
료칸과 더불어 운영하는 곳이어서, 눈이 오면 마치 영화같은 느낌이 물씬 날 것 같은 멋진 장소였다.
기본적으로는 온천 숙박 시설인 료칸이지만, 식당은 옆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민성을 알아본 주인과 점원들이 극도로 공손히 민성을 맞이했다.
가게 내부는 깔끔했고, 일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로 가득했다.
작고 깔끔한 소품부터, 액자까지.
아주 정갈한 느낌이었으며, 어두운 나무색으로 된 인테리어는 추운 겨울을, 왠지 따듯하게 만들어 주는 듯했고, 오래되어 보이는 난로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고 아주 훈훈하고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음에 든다.”
민성이 가게 내부를 훑어보며 말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네가 추천한 곳은 언제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여긴 특별히 더 마음에 드는군. 좋은 타이밍에 좋은 장소다.”
민성이 평소와는 다른 눈빛으로 가게를 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민서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옆에서 말없이 잠자코 기다렸다.
“어디로 앉으면 좋겠나?”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여기로 가시죠.”
이호성이 좌식으로 된 창가 자리를 가리켰다.
창밖의 넓은 터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을 듯했다.
민성은 곧바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 방석 위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때마침 어려 보이는 여점원이 따뜻한 차 한 잔과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이호성이 먼저 메뉴판을 체크한 후 민성을 보았다.
“나가사키 짬뽕이랑 돈데끼로 하시죠.”
“나가사키는 알겠는데, 돈데끼는 뭐지?”
“데리야끼 소스랑 비슷한 소스가 올라간 돼지고기 항정살이고요, 덮밥으로 먹을 수가 있네요.”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하지.”
이호성이 곧바로 점원을 불러 메뉴를 주문했고, 주인장은 곧바로 주방으로 가서 주방장에게 메뉴를 말해 주었다.
“술은 안 하십니까?”
“가볍게 한잔하면 괜찮겠어.”
민성이 창밖의 차가운 풍경을 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알아서 시키겠습니다.”
이호성이 좌식에서 일어나 곧바로 술을 고르러 갔다가 오래 걸리지 않아 돌아왔다.
어린 여점원이 술병과 술잔을 세팅해 주었다.
이호성이 가져온 술은 사케였다.
“원래 파는 술은 아닌데, 헌터님에게 특별히 드리겠다고 매입가에 파신답니다.”
이호성이 싱긋 웃으며 병을 놓으면서 앉았다.
민성은 주방 쪽을 보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민성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민성은 그런 그녀에게 짧은 목례를 했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 위로 놓인 술병을 보았다.
비싼 술이라 그런지 화려하고 멋지며 고급스러워 보인다.
최고급 사케라…….
어떤 맛일지 궁금하군.
민성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이호성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술병을 따서 잔을 채워 주었다.
“쌀알의 77%를 도정해서 남은 23% 쌀로 만든 사케입니다. 그중에서도 원심 분리입니다. 아마 입에 괜찮으실 겁니다.”
민성은 일단 한 잔 마셔 보았다.
목을 넘어간 첫 감상은, 단연 깨끗함이었다.
너무 깨끗해서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조금 더 먹어 보자 과일향의 단맛이 느껴졌지만, 그 단맛은 끝에 이르러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완벽한 마무리를 선사했다.
놀라운 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