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344화 (34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44화>

화려한 해물찜은 환상적인 색감을 자랑했다. 어떠한 전문 포토그래퍼도 이러한 색감을 사진으로 담아 낼 수 없을 것이다.

실물의 힘이란 그토록이나 강력한 것이다.

비주얼뿐만이 아니라 하얀 김이 올라오는 해물찜의 냄새는 놀라우리만큼 깊은 향을 갖고 있었다.

민성은 비주얼과 향을 음미한 다음 곧바로 젓가락을 놀렸다.

가장 먼저 젓가락이 향한 것은 단연 낙지다.

낙지부터 젓가락이 가는 이유는 뜨겁고 부드러울 때 먹어야 최고의 식감과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낙지가 분홍빛을 띠기 전의 상태인, 기가 막힐 정도로 알맞게 익은 낙지를 입으로 쏙 가져갔다.

우물우물!

민성은 어금니로 낙지를 씹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낙지는 부드럽다 못해 입에서 녹아내렸다. 보통 맛집이라고 해도 낙지를 익히는 정도를 잘 못하는 곳이 있을 수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낙지를 완벽하게 익혔다.

익힘의 정도를 구분해 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굉장하다.

또한 양념이 아주 맛있게 배어 있어, 젓가락이 탱탱해 보이는 콩나물 쪽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민성은 싱싱하고 아삭한 콩나물을 씹으면서 해물찜의 양념이 과하지도 짜지도 않게, 아주 맛있게 입안을 채워 주는 느낌을 기분 좋게 즐겼다.

뒤이어 4등분으로 잘린 꽃게 하나를 씹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게살이 입안으로 밀려오는데 이건 실로 감동 그 자체였다.

민성은 후! 하고 감탄이 섞인 뜨거운 숨을 뱉어 냈다.

탱글탱글하여 신선도를 느낄 수 있는 전복의 맛.

그리고 해물찜에 있어서 화룡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해가 지나기 전의 새우다.

철을 맞이한 새우를 아주 잘 익히게 되면 이게 새우인지 새로운 해산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보통 새우의 껍질과 대가리는 딱딱하며, 대가리의 수염은 뾰족해서 입안에 찔리기 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새우 제철을 맞이했을 때 아주 잘 익히게 되면 놀라운 맛을 맛볼 수 있다.

새우 대가리를 씹으면 딱딱하다고 기억되어 있는 새우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버린다.

대체 어떻게 딱딱한 새우 대가리 껍질이 이렇게 입안에서 쉽게 녹아내릴 수가 있지?

또한 그래서 그런지 충격적일 정도로 맛있다.

새우 대가리가 이 정도이니 몸통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 번 씹으면, 몸통 맛을 즐길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해물찜으로 인해 육즙이 쏟아지듯 나오며 새우가 이에 씹히는 느낌은 감동이 쓰나미처럼 몸을 덮쳐 오는 것만 같은 황홀함이 있었다.

거기에 매운맛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든다.

의식을 놓고 음식에 집중하게 하는 마력.

이곳이 바로 이호성이 추천한 해물찜의 맛집이었다.

만족?

아니, 단순히 그 두 글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벽 그 이상의 해물찜이었다.

* * *

다음 날 오전 10시 쯤 일어난 민성은 물 한 잔을 마시고 거실로 나와 마당 쪽 문을 열어 놓고 소파에 앉았다.

찬 바람이 들어오지만 민성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마당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민성은 휴대폰을 꺼냈다.

메일을 보냈다는 이호성의 문자가 있어, 메일을 확인해 보자 이호성이 헌터장들의 범죄 조직 소탕 과정에 대한 보고서 파일이 와 있었다.

보고서의 내용에는 헌터장들이 순식간에 브라질 범죄 조직을 소탕하고, 타국으로 이제 막 넘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협박이 꽤 제대로 먹혔던 모양이다.

이렇듯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걸 보면.

민성은 휴대폰을 소파에 던져 두고, 맨발로 마당으로 나가 차가운 흙을 밟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파란 하늘이 보였다.

민성은 앞마당의 흙을 밟는 감촉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했다.

* * *

헌터장과 이호성이 직접 선두에 서서 마약 조직을 박멸하겠다고 나서자 그에 대한 뉴스가 퍼지며, 조직원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하면서 진행은 더뎌지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은 몸을 사리다가, 헌터장들의 관심이 옅어지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움직일 생각이었다.

헌터장들 쪽에서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강민성이 원하는 결과가 이런 것은 아닐 테니까.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헌터장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수면 위로 노출된 것이 문제였다.

“아주 꽁꽁 숨었습니다.”

민성의 집으로 돌아온 이호성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거실에 앉아 루왁 커피를 즐기면서 민성은 나른한 얼굴로 TV 속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상자는 얼마나 되나?”

민성이 물었다.

“47명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각국에서 구속 했습니다.”

“풀어 줘, 전부.”

“……예?”

이호성이 잘못 들은 게 아니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다 풀어 주라고.”

“왜요?”

“풀어 주고 언론에 발표한다.”

“어떤 내용을 말씀이십니까?”

“지금부터 구속은 없다. 정부에서 헌터 보조금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약을 판매하거나 그러한 범죄 조직에 가담한 증거가 있을 경우, 즉각 사살한다고.”

이호성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세게 나가는 거 아닐까요?”

“언제까지 뒤꽁무니만 쫓아다닐 생각인가?”

민성이 힐난하는 눈초리를 보내자,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대로 이행하겠습니다.”

“헌터장들, 그리고 헌터장 팀 쪽 헌터들 감시하는 거 잊지 말고.”

“네, 잘 처리하겠습니다.”

용건이 끝나자 민성은 손을 휘휘 저었다.

이호성이 꾸벅 인사를 하고 곧장 민성의 집을 나섰다.

* * *

이호성이 화상 통화로 민성의 말을 헌터장들에게 전달하자 헌터장들은 일단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알이 빠질 정도로 수색해서 죽이고, 구속했더니 이제 와 잡았던 것들을 풀어 주라니. 아무리 꼭두각시라지만,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구속 없이 즉각 사살이라니. 정부에서 춤을 추겠군, 아주.”

러시아 헌터장이 얼굴에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렸다. 그러한 감정은 러시아 헌터장뿐만이 아니라 다른 헌터장들의 얼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던전이 사라진 가운데, 강민성이 헌터의 정점에 서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헌터의 숫자가 줄어드는 건 정부가 두 팔 벌려 반길 일이었다.

정부의 권력은, 헌터장들의 무력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헌터의 숫자가 줄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무력이 곧 권력이었던 시대가 저문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차피 강민성이라는 헌터는, 정부에게도 논외의 대상이었다.

그가 정부에 크게 개입하지도 않는 성격이다 보니, 정부에서는 헌터들의 몰락을 누구보다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가장 껄끄러운 것이 헌터장들이었다.

입지가 좁아지는 걸 반길 헌터장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헌터장님들, 지금 다 녹화되고 있어요. 헌터님 보시면 어쩌려고들 그럽니까?”

이호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스크린에 비쳐지는 헌터장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헌터장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얼굴이 해쓱해졌다.

‘강민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만 나와도 초조함과 마치 공황 장애라도 온 것처럼 덜덜 떨었다.

사실 한 국가의 헌터장은 시민들의 눈에 영웅을 넘어선 신화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인의 탑이 나타나고 강민성이라는 존재가 세간에 드러나면서 모두의 관심은 강민성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관심이 오로지 강민성으로만 고정되어 쏟아지면서, 그 슈퍼 스타에 의해 헌터장들은 그저 돈과 권력만 밝히는 퇴물로밖에 취급되지 않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입지도 좁아지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억울할 만도 했지만, 상대가 강민성이니만큼 수그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정신들 똑바로 차리세요. 강민성이 누군지 잊으면 안 됩니다. 전달 사항은 이걸로 끝이고. 결과는 빠르고 정확해야 할 겁니다.”

이호성은 화상 통화를 뚝 끊고 담배를 물었다.

“뭐지, 이 찜찜하고 이상한 기분은.”

이호성은 콧김으로 담배 연기를 훙 뿜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 몰라. 일단 좀 쉬자.”

이호성은 의자에 늘어지는 자세로 담배를 뻑뻑 피웠다.

“졸라 피곤해.”

헌터장들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낸 이호성이었다.

* * *

이호성이 헌터장들과 화상 통화를 마친 시각, 미국의 대통령 역시 ‘프레지’는 뉴욕의 건물 펜트하우스 층에서 화상통화로 긴급 비밀 회담을 진행 중이었다.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미국 대통령 프레지가 번뜩이는 눈으로 말했다.

그의 앞으로는 화상 스크린이 펼쳐져 있었고, 그 스크린 안에는 각국의 대통령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 대통령들을 보는 프레지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감춰 왔던, 아니, 억눌러 왔던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었다.

그리고 프레지가 말한 ‘우리의 기회’가 의미하는 것을 그들 역시 모르지 않았다.

개중 가장 크게 반기는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대통령 그리고 중국의 국가주석이었다.

지금까지 헌터에 의해 늘 눈치를 보고 헌터에게 휘둘리는 정치를 해 왔던 그들로서는, 작금의 상황이 가장 완벽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작전만 잘 짜면, 강민성만 남기고 거의 대부분의 헌터들을 쓸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프레지가 미소가 잔뜩 번진 얼굴로 말했다.

대부분의 헌터가 죽어 없어지고, 강민성과 이호성. 그리고 헌터장 정도만 남는다면 헌터라는 존재는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점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헌터의 숫자가 적으면 더 이상 그들은 정치적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영향력이 급감하다 못해 결국은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최고의 이점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이었고, 때문에 이간질을 하기 위한 그들의 마음이 이번 화상 통화에서 확고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헌터장들 꼴이 날 수도 있습니다. 헌터장들이 작전을 피우다 강민성에게 들켜, 어떻게 됐는지는 알고 계시지요?”

미국의 대통령 프레지의 말에 대통령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으나, 그것은 아주 작은 그늘에 불과했다.

눈엣가시였던 헌터들을 치울 수 있는 이 기회를 이렇게 날려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잘 준비해야지요.”

한 대통령이 말했고, 이에 대한 입장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 무식하게 힘만 센 머저리들을 하나하나 치워 보자고요.”

프레지의 말에, 스크린에 비춰지는 대통령들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헌터들이 세계를 지배한 구조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대통령들의 마음이 한곳으로 모이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