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42화>
에단은 이호성을 보면서 인상을 팍 썼다.
“무슨 소리야? 임무 완료라니?”
이호성이 고개를 들어 에단을 올려다 보았다.
“넌 이제 X 됐다는 뜻이다.”
“뭐?”
잠시 멍하니 있던 에단은 웃음을 터트렸다.
“곧 죽을 자식이 허세를 너무 잘 부려서…….”
에단은 말을 잇다 말고 등 뒤가 서늘한 것을 느꼈다.
마치 귀신이 훑고 지나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에단은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폐공장 건물 입구 쪽에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자신의 목을 조르는 듯했다.
에단은 긴장으로 인해 커진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 헌터장이 물었고, 다른 헌터장들 역시 의아한 눈으로 에단을 보았다.
“느낌이 좀 이상해.”
에단은 극도로 불안한 심리적 상태를 내보였다.
다른 헌터장들은 그런 에단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보다가 이내 하나둘 서서히 그 감정에 물들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차가운 이 감각은 마치 저승에 발을 디딘 것만 같은 기분을 전달해 주고 있었다.
헌터장들은 이 기묘한 감각에 의해 얼어붙은 얼굴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눈치만을 살폈다.
어쩐지 움직이는 순간 온몸이 갈갈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아주 이상하고도 이상한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의 근원이 곧 밝혀졌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울렸다.
에단을 포함한 헌터장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입구 쪽에서 나타나서는 안 될 사람이 나타났다.
강민성이었다.
헌터장들의 얼굴은 마치 저승사자를 보는 듯 충격 속에 빠졌다.
민성은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터덜터덜 걸었다.
그리고 헌터장들을 지나 주저앉아 있는 이호성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맞고 다니냐?”
민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임무를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했을 뿐입니다.”
민성은 뻔뻔스럽게 말하는 이호성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촬영된 영상 파일을 템창에 던져 넣으며 헌터장들을 돌아보았다.
“어,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에단이 커다랗게 뜬 눈으로 민성을 보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왔냐고? 얘가 그러더라고. 분위기가 어쩐지 한 큐에 헌터장들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될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민성이 이호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에단이 굵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알을 돌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고, 그건 에단뿐만이 아니라 다른 헌터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 같은 거 할 필요 없어.”
민성이 에단의 다리를 걷어찼다.
에단이 한 바퀴 반을 돌아 머리부터 바닥에 퍽 떨어졌다.
민성이 여전히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로 에단의 목을 발로 콱 밟았다.
“컥!”
에단은 감히 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목을 눌러 오는 민성의 발을 견딜 뿐이었다.
“크, 크윽!”
민성은 에단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그를 보던 눈길을 위로 올려 헌터장들을 보며 엷게 웃었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디어 있으면 한 번 말해 봐. 혹시 알아? 살길 생길지.”
헌터장들 모두 얼굴에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민성은 그런 헌터장들을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구경했다.
하지만 민성의 시선을 받는 헌터장들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아니, 죽음이 이미 목전에 와 있음을 직감했다.
민성은 가볍게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의 의미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헌터장은 없었다.
지금도 미국의 헌터장 에단이 민성의 발밑에 깔려 있었다.
그들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준비되어 있는 마법진으로 그를 쳐야 할지, 아니면 머리를 숙여야 할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결정은 결국 후자로 이어졌다.
이호성이라면 몰라도 강민성이라면, 애초에 계산이 안 서는 인물이었다.
“……살려 주십시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핑계나 변명은 죽음을 앞당기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헌터장들이 모두 축 처진 모습을 내보였다.
민성은 에단의 목을 밟고 있던 발을 치웠다.
“일어나.”
민성이 말했다.
에단은 기침을 하며 일어서서 민성의 앞에서 어정쩡하게 어깨를 구부리고 섰다.
“내가 널 죽일 수 있을까? 없을까?”
민성이 물었다.
“강민성 헌터님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저희는 이호성이라는 헌터를…….”
“묻는 질문에 답을 해라.”
민성에게서 살기가 흘러 나왔다.
“흐…… 흐으윽!”
에단은 마치 압축기에 몸이 찌그러지듯이 뼈와 살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양 무릎이 퍽 하고 부서지면서 무릎을 꿇고 쓰러진 에단의 팔다리의 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민성은 그 모습을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에단은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망가졌던 몸이 놀랍게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마치 재생된 영상을 거꾸로 돌린 것 같은 기괴한 현상이었다.
“쿨럭! 헉! 허어억! 허억!”
에단은 핏물을 뱉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일어서.”
에단은 정신을 못 차리겠는 듯 커다랗게 뜬 눈으로 거친 호흡을 하며 정신없이 다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며 헌터장들은 마치 냉동된 것처럼 얼어 버렸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끔찍한 대화 방식에 헌터장들은 몸을 덜덜 떨었다.
“자, 다시. 내가 널 죽일 수 있을까? 없을까?”
민성이 에단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죽일 수 있습니다. 제 까짓게 뭐라고. 모든 것은 강민성 헌터님의 뜻대로…….”
“그런데 이따위 짓을 해? 날 호구 취급하려고 한 거잖아. 이호성 죽이고, 날 꼭두각시 삼아 권력판에서 춤추려고 했던 걸 모를 줄 알았나?”
“죄송합니다!”
에단이 군기가 바짝 든 채로 대답했다.
“내가 널 살려 줄 수 있을 만한 조건을 말해 봐.”
에단의 눈앞으로 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희 미국의 세금 10퍼센트와 헌터들 수입의 30퍼센트를 헌터님에게 지급하겠습니다.”
민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인가?”
“물론입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돈의 유혹은 강렬하다.
그 강렬함이, 지금처럼 헌터장들이 자신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돈으로 날 사겠다? 하하, 좋긴 한데……. 돈은 이미 충분히 쓸 만큼 있어서 어쩌지. 그럼 죽어야 하나?”
“명령하시는 모든 것을 수행하겠습니다!”
어차피 막다른 길이었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때문에 에단으로서는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영혼까지도 내다 팔 수 있다는 각오를 내보였다.
“뒤통수를 밥 먹듯이 치는 널 뭘 믿고?”
콰드드드드드득!
에단의 양다리가 다시 부서져 나갔다.
“아아아아악!”
에단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넘어갈 때, 그의 양팔이 칼에 난도질을 당하듯이 찢겨져 나갔다.
에단이 참혹한 모습으로 바닥에 대(大)자로 누웠다.
에단은 눈물을 흘리며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몸과 입술을 떨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강민성 헌터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에단이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벌벌 떨면서 말했다.
망가졌던 에단의 몸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회복에도 고통이 따른다.
손상된 신경 조직과 뼈와 살을 다시 복구되는 건, 보통의 힐러들이 하는 치료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손상시키고 복구되는 일종의 스킬일 뿐.
타인에 의해 망가진 것은 복구할 수 없었다.
이건 마인들을 고문할 때 주로 썼던 기술인데, 현재에 이르면서 꽤 발전했다.
이제는 손을 쓰지 않고도 가능한 수준이 된 것이다.
가장 편한 고문법 중 하나였다.
“이호성, 짧은 칼 하나 던져 봐.”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이 템창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민성에게 던졌다.
휘리릭! 하고 날아온 단검을 민성이 낚아챈 후, 에단의 머리맡으로 걸어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날 만만하게 본 네 눈을 파내야 할까, 아니면 함부로 선동질을 하면서 쓴 네 혀를 잘라 내야 할까, 틀어막힌 네 귀를 막아야 할까.”
민성이 에단에게 짧은 단검을 흔들어 보였다.
“이런 건 또 직접 칼을 써야 제맛이거든. 이 차가운 금속이 닿는 감각이 또 꽤 매력적이니까.”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에단이 울면서 애원하듯이 말했다.
민성은 에단을 보며 웃었다.
“내가 널 그렇게까지 신경 써 줘야 할 이유가 있나? 자살 한 번 해 봐. 난 널 살려 낼 수 있다.”
민성이 무정한 눈으로 에단을 내려다보며 말했고, 에단은 거의 미치기 직전 상태가 되었다.
“정신 꽉 잡아.”
민성이 검은 눈으로 에단의 푸른 눈을 보며 말했다.
그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배여 있었다.
방금 내뱉은 민성의 말은 지금까지 민성이 한 말 중에 가장 무섭게 느껴졌다.
에단은 어떻게든 자신의 용서를 받기 위해, 의지를 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민성이 단검을 에단의 입안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차갑지?”
민성이 에단을 보며 물었다.
에단이 눈을 질끈 감았다.
“수술하냐?”
민성이 단검을 슥 그어 혀와 뺨을 찢어 내고, 그대로 그의 눈에 단검을 던졌다.
단검이 훅 떨어지며 눈에 꽂혔다.
에단이 몸을 살짝 뒤척였다.
고통을 참으려 했으나 그의 입술 밖으로는 울음 섞인 신음이 섞여 나왔다.
“입 닫아.”
민성이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에단은 바들바들 떨면서 고통을 견뎠다.
민성이 에단을 물끄러미 보다가 몸을 일으켜 헌터장들을 보았다.
헌터장들의 얼굴은 모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들은 거의 넋이 나간 채로,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민성이 누워서 꿈틀거리고 있는 에단을 밟으며,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헌터장들에게 걸어갔다.
민성이 한 발 한 발 가까워 올 때마다 헌터장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더욱 수그렸다.
“떨지 마라. 그러면 꼭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민성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헌터장들은 몸의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 러시아 헌터장이랑 아프리카 헌터장은 죽은 건가?”
민성이 바닥에 누워 있는 시체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헌터장들이 마치 맞춘 듯이 동시에 대답했다.
민성은 그런 헌터장들이 웃기다는 듯이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러시아 헌터장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부활’ 권능을 사용하자, 죽었던 러시아 헌터장이 놀랍게도 눈을 떴다.
죽었다가 살아난 러시아 헌터장은 민성을 올려다보고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혹시나 했는데, 아직 잘되네.”
민성이 러시아 헌터장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