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37화>
* * *
이호성은 뒷문 쪽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지금쯤이면 강민성이 레이트를 만났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과 헌터장들에게 범죄에 가담 중인 무력 단체들을 싸그리 박멸시킬 것이라고 선포했다.
강민성이 선포를 했다면, 이미 끝난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분명한 해답인지는 알 수 없다.
중앙 기관의 총군주, 그리고 에단은 또 다른 곳에서 부패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신의 능력을 갖춘 강민성이라면 그게 가능하지도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언제나 이러한 자만은 늘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져 오곤 했다.
그것은 역사가 반증한 사실이었다.
인간은 결코 돈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후우우.”
이호성은 입 밖으로 담배 연기를 뿜으며 레이트를 떠올렸다.
“버티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이호성은 걱정된다는 듯 짧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민성이 누워 있는 레이트를 보았다. 레이트도 눈을 부릅뜨고 민성의 눈을 마주 보았다.
지지 않겠다는 듯 아주 도전적인 시선이었다.
민성은 그런 레이트를 물끄러미 보다가 두꺼운 철로 되어 있는 문을 쿵쿵 두드렸다.
그러자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두 명의 경비 헌터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한 경비 헌터의 물음에 민성이 턱짓으로 꽁꽁 묶인 채 누워 있는 레이트를 가리켰다.
“풀어.”
“재갈까지 전부 다 풀까요?”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경비 헌터가 레이트에게 다가가 몸을 묶고 있는 마법 장비를 해제하고 재갈도 풀었다.
“나가도 된다.”
민성이 말했다.
두 명의 경비 헌터가 경례를 착! 올리고 곧바로 감금실을 나갔다.
레이트는 긴장을 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거칠게 뜬 눈으로 민성을 흘깃 보면서 굳은 몸을 풀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요?”
레이트가 마치 말라비틀어진 빵 같은 눈빛으로 민성을 보며 물었다.
“협조할 생각이 없군.”
민성이 감정이 배제된, 철저하게 분리되고, 차가운 시선으로 레이트를 보며 말했다.
그 눈빛에 레이트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딱히 민성이 살기를 표출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민성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애당초 마음을 먹었던 의지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듯했다.
때문에 레이트는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민성의 눈 안에 담긴 냉정함은 레이트가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 냉정함 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함이 서려 있었다.
수많은 전 세계의 시민들이 강민성을 추앙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추앙하는 영웅의 뒷면을 모르고 있다.
레이트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 영웅의 뒷면을 보고 말았다.
그 뒷면은 지독한 어둠이었으나, 그 어둠 안에서 지옥이 있었다.
그 지옥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엿보는 것만으로도 레이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레이트는 죽음이 얼마나 안락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걸 깨닫게 되는 이유는, 강민성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 죽을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죽음은 특권이다.
적어도 그의 앞에서는.
그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레이트는 그러한 감정을 분명하게 느꼈다.
레이트의 눈에 강민성은 마치 지옥에서 걸어나온 남자 같았다.
그리고 레이트가 한 가지 모르는 점은, 그게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죽음을 선택하는 건 쉬운 길이겠지만,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레이트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민성을 빤히 보았다.
민성이 말을 이었다.
“네가 죽으면 네 육신을 언데드로 만들 것이고, 그 언데드로 변한 육신에 네 영혼을 붙잡아 가둘 것이다.”
레이트가 충격을 먹은 얼굴이 되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민성이 말을 이었다.
“그럼 그때부터, 네 영혼이 찢겨져 나갈 때까지 고문할 것이다. 아마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고문이겠지.”
민성이 덤덤하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당연히 그 말을 전해 받은 당사자인 레이트는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레이트는 지옥의 사신을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아니, 지옥의 사신마저 그를 만난다면 꽁지 빠지게 도망을 칠 것이다.
사실 죽은 이후에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해 본 적 없었다. 그런 그에게 민성은 죽음 이후를 말하고 있었다.
마계에서 온 마인과 싸웠던 남자다.
그가 하는 말은 허풍이 아닌 진실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높은 만큼 두려움은 순식간에 온몸을 장악했다.
덜덜덜!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제 레이트는 감히 그를 올려다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계획은 현실로 결코 이어질 수 없었다.
그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해 X-HIT의 수장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끝까지 저항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두려움만이 머릿속을 아주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는 홀로 마계의 침공을 막아 낸 유일무이한 헌터다.
그런 그를 상대로 이런 안일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한심스러운 일이다.
“제가 뭘 어찌하면 됩니까……?”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것도 겨우 한 것이었다.
민성의 앞에서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다.
그는 던전 안에서 만난 그 어떠한 괴물보다도 무서웠다.
“간단한 일이다.”
민성이 말했다.
레이트는 용기를 내서 그를 다시 올려다보았다가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냉엄한 눈을 보고 다시 시선을 아래로 훅 내렸다.
“헌터가 개입된 마약 조직에 대한 정보를 넘겨라. 기억에서 사라진 것까지 찾아내야 할 거야.”
민성이 걸음을 옮겨 레이트의 가까이에 섰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나?”
민성이 레이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레이트는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레이트가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태어난 것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을 저주하게 될 테지.”
이보다 더한 협박이 존재할 수 있을까?
레이트가 볼 때 그는 협상 같은 걸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저, 약속을 잘 지키는 남자였다. 그것이 레이트는 그 무엇보다도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 * *
“어떻게 됐어요?”
중앙 헌터 기관의 로비 쪽으로 올라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총군주 김지유가 바짝 다가서면서 물어왔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민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협조하겠다고 했군요.”
김지유가 생글거리는 얼굴로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거다.”
민성이 빠르게 걸으며 말했고, 김지유는 그와 속도를 같이 하기 위해 뛰어야만 했다.
“식사하셨어요?”
김지유가 미소를 띤 얼굴로 민성의 걷는 속도에 맞추며 물었다.
“먹고 왔다.”
민성이 앞을 보며 말했다.
“그럼 디저트는 어때요? 커피든.”
민성이 우뚝 멈춰 섰다.
“굳이?”
“네. 굳이. 물어보고 싶은 얘기도 있고요.”
민성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내가 사지. 어디로 가나?”
“정말요? 제가 아는 곳으로 모실게요.”
김지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 * *
김지유와 도착한 곳은 디저트 카페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전혀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오픈한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곳이지만, 곧 유명해질 거예요. 디저트가 엄청 맛있거든요.”
김지유의 말에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
밝게 인사를 하려던 젊은 여사장이 민성을 보고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김지유를 보고 긴장된 얼굴이 풀어졌다.
“언니.”
여사장이 밝게 인사했다.
말에 김지유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너무 바빠서 너무 오랜만에 오지?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자주 올게.”
“저야 영광이죠.”
가게 내부를 훑어보고 있던 민성은 느껴지는 시선에 앞을 보자, 여사장이 꾸벅 인사하는 게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현아라고 해요. 지유 언니랑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예요.”
“계산부터 합시다.”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는 듯, 딱딱하게 끊어 내는 민성의 말에 여사장은 잠시 당황했다가, 김지유의 미소 섞인 눈짓에 금세 다시 안정을 찾았다.
그녀가 카운터 쪽으로 돌아가고, 김지유가 민성을 돌아보았다.
“아메리카노 괜찮으시죠? 디저트랑 먹기엔 아메리카노가 가장 좋아요.”
“그렇게 하지.”
그녀가 디저트 이름을 대고, 주문을 마쳤을 때, 민성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웬일이에요? 제가 먹자고 했는데 디저트를 다 쏘시고?”
김지유가 애교 섞인 웃음을 지으며 묻자, 민성은 앞만 본 채 계산을 기다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돈이 많으니까.”
김지유는 재밌다는 듯 웃었고, 카운터에서 카드를 긁고 있는 여사장도 간신히 웃음을 참는 얼굴이 되었다.
민성은 그런 여자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보다가 김지유를 빤히 보았다.
총군주이지만 아직 어린 나이다.
이럴 때 보면,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라는 직책과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20대의 여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힘든 가운데 밝은 성격을 잃지 않았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겠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로서 성격이 어두워지지 않는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다.
“어?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김지유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거울을 꺼내며 말했다.
“아니. 여전히 총군주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김지유는 양쪽 입고리를 아래로 내렸다.
“너무해.”
민성은 무시하고, 카드를 받고 먼저 편한 자리를 찾아갔다.
창가 쪽에 앉아 바깥 풍경을 응시했다.
차가운 겨울 풍경으로 꽤 괜찮다.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데, 꽤 멋들어지게 휘었다.
민성이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가운데, 여사장과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던 김지유가 디저트와 음료를 가지고 자리로 와서 앉았다.
“맛있겠다.”
김지유가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환한 얼굴로 디저트와 아메리카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쁘군.”
민성의 말에 디저트와 음료를 보던 김지유가 깜짝 놀라며 얼굴을 들었다.
민성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김지유도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았다가 피식 웃었다.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난 또 나보고 예쁘다고 한 줄 알았네.”
민성은 김지유를 보았다.
그녀는 미소 지은 얼굴로 창밖의 쏟아지는 함박눈을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민성은 처음으로 음식보다 무엇인가를 먼저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낯선 감정이었고, 그것은 불편할 정도로 적응되지 않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