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36화>
* * *
이호성은 중앙 기관의 도움으로 다행히 기자들의 눈을 피해, 기절한 레이트를 데리고 중앙 기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뒤늦게 도착한 김지유가 빌런 감옥소 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레이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호성은 그가 두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김지유는 잠깐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금세 본래의 무거운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24시간 감시원을 붙여야겠네요.”
김지유가 레이트를 보며 말했다.
“헌터님이 아마 저녁쯤에 이 녀석을 만날 겁니다. 그럼…… 모를 일이죠. 어떻게 될지.”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람이니까.”
이호성은 레이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겁니다.”
“네?”
김지유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여전히 레이트를 보는 채로 입을 열었다.
“헌터님을 마주했을 때, 죽는다는 건 어쩌면 은혜로운 일일지도 모르죠. 그 정도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헌터님은.”
“하지만 무차별적인 폭력을 쓰시는 분은 아니니까요.”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 심판인거죠.”
마치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으로 레이트를 본 채 이호성이 작은 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레이트가 눈을 천천히 떴고, 이내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댔다.
하지만 레이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온몸은 결박되어 있었고, 혀를 깨물 수 없도록 재갈을 물려 놓은 상태였다.
레이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김지유가 신호를 주었고, 헌터들이 몸을 뒤흔드는 레이트를 꽉 잡고, 대기 중이던 의사 한 명이 주사를 놓아 주었다.
진정제 약물이었다.
격렬하게 몸을 흔들던 레이트가 점점 그 몸짓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커다랗게 뜬 눈으로 천장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저는 그럼 저녁에 헌터님과 함께 올 것 같습니다.”
그를 지켜보던 이호성이 말했고, 김지유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 * *
언론 발표를 통해, 범죄 조직은 강민성에 의해 박멸된 것이란 사실이 널리 퍼졌다.
뿐만 아니라 마약 범죄 조직 중 X-HIT의 수장이 한국의 중앙 기관으로 끌려 들어갔다는 사실까지도 소문이 쫙 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브라질 등 마약으로 유명한 거리에는 마약상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런 소식을 민성은 자신의 자택 소파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전 세계 각 헌터장과 정부의 기술력 등을 통해 그 모든 정보를 전해 받고 있었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다.
단지, 번거로운 수고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다소 거슬릴 뿐이었다.
“헌터님, 저 왔습니다.”
이호성이 소파에 앉아 있는 민성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즉시 중앙 기관에서 레이트에 대해 한 조치와 자살 시도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살아 있지?”
“물론입니다.”
민성은 그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노트북을 탁 닫고서 일어섰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저녁 먹고 중앙 기관으로 간다. 저녁 메뉴는 돼지고기 맛집으로.”
“알겠습니다. 언제 출발하시겠습니까?”
“5분 후에.”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이호성이 차 키를 챙기고 먼저 나갔다.
민성은 느긋하게 외출 준비를 했다. 은은한 냄새의 향수를 손목과 목에 뿌리고 멋스러운 무스탕을 걸쳐 입었다.
외출 준비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다 멈칫한 민성은 깜빡한 랭귀지 워치를 찾아 손목에 채웠다.
오늘은 X-HIT라는 꼴사나운 이름을 가진 조직의 수장인 레이트라는 놈을 만나야 했다.
때문에 언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랭귀지 워치는 필수였다.
명품 스니커즈를 신고 밖으로 나서자 이호성이 시동을 걸어 놓은 차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호성이 뒷문을 열어 주었다.
고깃집에 가면 몸에 고기 냄새가 배면, 향수 냄새가 약해지지 않을까?
민성이 차에 타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호성은 이미 정해진 맛집을 향해 액셀을 밟고 있었다.
* * *
고깃집에 도착했다.
작은 규모의 고깃집이었다.
작은 가게인 만큼 이호성은 당연히 민성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통째로 빌려 놓았다.
민성이 자리에 앉았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가게 주인과 종업원들이 물티슈와 생수를 발 빠르게 가져다주었다.
반찬 세팅은 시간에 맞춰 이미 끝나 있었다. 또한 숯불 역시 들어가 있다.
그 위로 고기 팬이 곧이어 올라왔고, 곧바로 주인장이 준비된 고기를 가져다주었다.
오늘 민성이 먹고자 한 것은 돼지고기였는데 삼겹살이나 목살 같은 것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오늘의 메뉴는 그렇지 않았다.
더불어 국내산도 아니었다.
이호성이 맞은편에 앉았을 때.
“이 고기는 뭐지?”
민성이 물었다.
“이베리코 흑돼지입니다.”
“이베리코 흑돼지?”
“네. 스페인의 흑돼지 품종입니다. 스페인 청정 지역에서 방목되며 도토리를 먹고 자라, 풍부한 지방의 농후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주문한 건 이베리코 흑돼지의 고기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황제살입니다.”
민성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호성이 곧장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호성의 고기 굽는 실력은 가히 일품이다.
육즙을 잃지 않고, 절대 타지 않으며 가장 완벽한 수준으로 구워 낸다.
같은 고기도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다고 볼 때, 이호성과 함께 고깃집에 온다면 그 고깃집에서 최고의 밸런스를 갖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다.
치이이이익!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는 소리가 명쾌하게 울려 퍼졌다.
연기는 환기구를 통해 올라가지만, 냄새만큼은 확실하게 맡아졌다.
민성은 얼른 고기가 확실하게 익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호성이 다 익은 고기를 한 쪽으로 밀었을 때 민성은 곧바로 마치 먹이를 잡는 맹수처럼 젓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즉시 그것을 기름장에 아주 살짝 찍고, 얇게 채 썬 파와 함께 먹었다.
말도 안 되게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 그리고 아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육즙의 향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놀라우리만큼 진한 맛이지만, 결코 부담스럽지는 않다.
물론 이 황제살은 다소 진한 맛이기 때문에 많은 양을 먹기에는 어려울 수는 있어도, 2인분 정도를 먹을 때 아주 굉장한 만족도를 느낄 수 있는 듯했다.
민성은 순식간에 구워진, 황제살을 먹었고, 이호성도 자신이 구운 황제살을 먹으며 감탄했다.
“제가 추천하는 맛집이지만 정말 맛있네요.”
이호성이 휴지로 입가에 묻은 기름을 닦으며 말했다.
“국내산 고기만 좋은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군.”
“최근 아주 유행하고 있는 고기입니다. 미식가들도 즐기는 고기죠.”
“충분히 그럴 만해.”
“또한 매력적인 건 가격입니다. 일반 국내산 고기와 가격이 같아 보이지만 보통 100그람을 파는 국내산 고기와 달리 여기 메뉴판에 보시면 130그람으로 되어 있죠.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메리트가 있습니다.”
“그렇군.”
민성은 그렇게 동의하며 한쪽 벽면을 보았는데, 벽에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 액자 안에는 이베리코 고기에 대한 인증서가 들어 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정품이라는 뜻.
그 인증서를 보고 있는 사이.
치이이이익!
이베리코 흑돼지의 또 다른 부위가 불판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 올라간 것은 치맛살과 갈빗살이다.
“여기서 파는 이베리코 흑돼지의 꽃목살보다는, 다음 기회에 목살로 유명한 곳을 가는 것이 나으므로 목살은 빼도록 하겠습니다.”
이호성이 그렇게 말하며 치마살과 갈비살을 구웠다.
목살 같은 경우에는, 이호성의 경우 다소 까다롭게 판별했다.
보통 음식점에 파는 목살이 맛있는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베리코 흑돼지의 목살로 제대로 된 목살의 맛을 살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 먹어야 할 것은 치마살과 갈비살이었음으로 민성은 불판 위에 있는 고기에 집중했다.
불판이 확실하게 달궈져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굽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민성은 가장 먼저 갈비살을 입으로 쏙 가져갔다.
우물우물!
아주 쫄깃하게 씹히고 이베리코 흑돼지의 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소고기의 갈비살이 유명한데, 돼지고기의 갈비살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치마살은 살짝 동그랗게 말리는데,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것이 안 먹을 수 없는 자세를 잡고 있었다.
민성은 갈비살 다음으로 치마살을 먹었다.
항정살과 비슷한 사각거리는 식감이 특징이며, 아주 부드러웠다.
민성은 즐거운 얼굴로, 풍부한 이베리코 흑돼지의 풍미를 즐겼다.
* * *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재갈이 물려져 있는 상태의 레이트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자살을 실패했다.
X-HIT의 수장으로서 가족을 미끼로 휘둘리게 되는 건 끔찍한 일이었으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동시에 파고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된 마법 장비인지, 오러를 쓸 수가 없었다.
오러를 쓰려고 하면, 그 오러는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결국 몸을 포박하고 있는 마법 장비를 풀어낼 수 없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버둥거리는 것뿐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경비를 서고 있는 헌터가 혀를 찼다.
“애쓰지 마. 포기하는 게 편해. 그 마법 장비는 특수 제작된 것이고, 아주 큰돈을 들인 만큼 헌터장급 되지 않으면 풀 수가 없는 마법 장치지.”
레이트가 살기를 담은 눈으로 경비 헌터를 노려보았다.
경비헌터는 그런 레이트의 눈빛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곧 강민성 헌터님을 만나게 될 거다. 고분고분하게 굴어. 그렇지 않으면 아주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될 테니까.”
레이트는 콧방귀를 꼈다.
죽음 따위가 두려웠다면 자살 같은 건 시도하지도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절대 꺾이지 않는다.
가족을 빌미로 협박을 해 온다면, 강민성을 자극해서라도 죽음을 선택한다.
그건 X-HIT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자존심이자 긍지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레이트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두꺼운 철로 된 문이 열리고, 민성이 들어왔다.
경비 헌터가 민성을 향해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민성이 경비 헌터에게 손을 까딱였다.
경비 헌터는 재차 경례를 올린 뒤, 조용히 수용소의 감금실을 나갔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레이트가 누워 있는 감금실을 커다랗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