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34화>
이호성은 마치 흑인 랩퍼와도 같은 스타일의 수장을 보고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걸 보고 이호성의 뒤에 서 있던 헌터들이 따가운 살기를 쏟아 냈으나, X-HIT의 수장 레이트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살기는 사라졌고, 레이트는 이호성을 보며 시가를 물었다.
“꺼, 이 새끼야.”
이호성이 레이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레이트는 시가를 들어 흘깃 내려다보았다가 히쭉 웃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설마 그거, 나한테 하는 말?”
“그럼 너한테 하지 누구한테 하겠냐?”
채채채챙!
무기를 꺼낸 헌터들이 일시에 이호성을 향해 그 무기를 겨누었으나 이호성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걸 보고 레이트가 흥미롭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이봐, 친구. 사태 파악을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자네가 아무리 출중한 실력을 갖췄다고 해도, 여기에 레벨이 없는 자는 찾기가 힘들 정도야.”
레이트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날 만나려고 했고, 네가 무슨 정보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트의 전신에서 강력한 오러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그 힘이 워낙 강력한 탓에 이호성의 뒤에서 무기를 겨누고 있던 부하들이 움찔 몸을 떨 정도였다.
하지만 이호성은 짧게 한숨 쉬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레이트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그런 이호성을 보았다.
열이 제대로 뻗친 표정이었다.
“이 친구, 배포가 큰 게 아니라. 정신이 나간 놈이었군, 그냥.”
이호성이 지친 표정으로 레이트를 보며 눈살을 구겼다가 걸음을 옮겼다.
모두의 시선이 이호성에게로 쏠려 있는 가운데, 이호성은 고급스러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앉아.”
이호성이 손으로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레이트가 피식 웃었고, 그의 부하들이 커다랗게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으나, 이호성은 신경 쓰지 않고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부부부부북!
얼굴에 쓰고 있던 변장 가면을 뜯어냈다.
X-HIT의 수장 레이트는 물론 부하 헌터들의 웃음이 뚝 그쳤다.
그들은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이호성을 응시했다.
“나 누군지 알아? 알아도 앉고 몰라도 앉아.”
이호성이 찝찝한 듯 얼굴에 붙은 변장의 흔적을 뜯어내고 문지르며 얼굴을 구겼다.
“앉으라고.”
이호성이 레이트를 보며 낮게 말했다.
레이트는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채로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원시 부족 헌터가 아닌 다음에야 사실상 전 세계에서 이호성을 모르는 헌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레이트가 이호성의 얼굴을 모를 리 없다.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레이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급 정보라고 했잖아. 들을 생각 없어?”
이호성이 레이트를 빤히 보며 물었다.
레이트는 느릿하게 걸어 이호성을 응시하며 소파에 앉았다.
“알지?”
이호성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레이트를 돌아보았다.
“강민성, 그가 누군지?”
이호성의 말에 레이트는 연신 침을 삼켰다.
“헌터와 정부에 대한 통제를 시작할 거다. 저항하는 세력들이 있겠지. 아마 너희들 같은.”
이호성이 레이트와 헌터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헌터들은 넋이 나간 얼굴들이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저항하면 죽는다. 강민성이 단순히 헌터장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자각하고 있겠지?”
X-HIT의 수장 레이트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강민성 헌터님이 널 만나고 싶어 하신다.”
레이트의 눈이 커졌다.
“어째서 나를……?”
그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보가 필요하니까. 이 바닥에 대한 정보를 넘기면 너희들의 돈과 목숨은 건드리지 않는다.”
“…….”
레이트가 커다랗게 뜬 눈으로 바닥을 보며 극심한 고민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이호성은 조용히 담배를 태우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레이트가 고개를 들어 이호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이호성은 먼 곳을 보며 쓰게 웃었다.
“내가 널 반병신을 만들어서 끌고 가게 될 테고. 네 목숨은 장담할 수가 없다.”
“혼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당신이 강민성의 최측근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듣지 못했어.”
이호성이 레이트를 보며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미국 헌터장도 줘 터지는 마당에, 마약쟁이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이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이호성이 위압적인 시선으로 레이트를 빤히 보며 말했다. 하지만 레이트는 이호성의 기세에도 주눅 들지 않고 이호성의 시선을 똑바로 맞받았다.
이호성은 길게 한숨을 쭉 뱉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말로 될 녀석들이었다면 이러고 살지도 않겠지.”
이호성은 높은 천장과 고급스러운 저택의 거실을 훑어보며 일어섰다.
“그럼 제안은 거절한 걸로 알면 되는 거겠지?”
이호성이 레이트를 보며 물었다.
레이트는 대답 없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이호성을 노골적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X-HIT의 1군 헌터들이 이호성에게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이호성은 자신에게 오고 있는 헌터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빈틈을 노리고 헌터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이호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호성의 동체 시력에 비해 헌터들이 휘두르는 무기의 속도는 너무 느렸다.
강민성과 함께 다녀 티가 나지 않아 그렇지, 엄청난 고성장을 이룩한 이호성이었다.
헌터장도 아닌 일반 헌터들의 움직임은 당연히 둔하고 미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광역 스킬이라도 썼다면, 스치기라도 했을 테지만.’
이호성은 핏- 하고 혀를 차며 찌르고 베어 들어오는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다.
그리고 10시 방향, 가장 가까이에 있는 헌터의 쭉 뻗어 들어온 팔의 손목을 잡고, 팔꿈치로 상대의 팔꿈치를 올려쳤다.
빠각-!
팔이 부러지면서 뼈가 튀어나오고 피가 솟았다.
한 명이 쓰러졌고, 이호성은 곧이어 허리를 틀어 2시 방향에 위치한 헌터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헌터들의 4개의 칼이 이호성이 잡아당긴 헌터의 몸에 찔러 들어갔다.
푸부부북!
대리석 바닥에 피가 쏟아져 나왔고, 이호성은 방패 삼아 썼던 헌터를 옆으로 버리듯이 치우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당황한 헌터 무리들이 뒷걸음질 치다가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려들었다.
수준 차이를 모르는 것은 단순히 머리가 나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실력을 믿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명령 때문일까?
스킬이 쏟아진다.
이호성은 양팔에 오러를 둘러 그것들을 가볍게 쳐 냈다.
그 쳐 내는 것만으로도 반사된 스킬 공격에 의해 몇몇 헌터들이 휘청거렸다.
이호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헌터 무리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오러가 둘러진 주먹이 헌터 하나의 명치에 꽂혀 들어갔다.
피거품을 토하며 훅! 하고 무릎을 꿇고 쓰러지고, 이호성이 그를 지나 다시 공격하려고 할 때, 헌터들이 질린 얼굴로 재차 뒷걸음질 쳤다.
“뭐 해? 들어와.”
이호성이 앞을 보며 손을 까딱였다.
그 순간,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이호성은 곧바로 뒤로 돌아섰다.
X-HIT의 수장 레이트가 강력한 오러가 실린 검을 휘둘렀다.
이호성은 가볍게 바닥을 차며 팔을 들었다.
레이트의 검과 이호성의 팔이 부딪쳤다.
보통 칼을 휘두르면 팔이 잘려 나가야 정상이지만, 이호성이 팔에 두른 오러는 튼튼했고, 조금도 손상이 가지 않았다.
이호성의 눈에서 냉정한 빛이 흘렀다.
그걸 본 레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와 동시에, 이호성의 주먹이 레이트의 가슴에 3번 연타로 들어갔다.
가슴에 주먹을 맞고, 중심이 흐트러진 레이트의 목을 움켜잡으며 다시 달려들려던 후방의 헌터들을 돌아보았다.
헌터들이 달려들려던 걸 우뚝 멈추고 얼굴을 굳혔다.
이호성은 레이트의 검을 빼앗아 겨드랑이를 위로 끌어 올리듯이 베어 내고 허벅지를 긁듯이 베었다.
허공에 핏줄기를 뿌리며, 레이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호성은 검을 들고 헌터들에게 걸어갔다.
헌터들이 두려움에 질려, 반사적으로 공격해 왔다.
이호성의 검이 마치 별을 그리는 듯한 궤적을 만들어 냈다.
5명의 헌터들이 일시에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입을 쩍 벌리며 쓰러졌다.
대리석 바닥에 피가 번져 나갔다.
이호성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헌터들과 X-HIT의 수장인 레이트를 시야에 담았다.
‘이런 느낌인 건가?’
그동안 강함, 압도적 우위와 같은 이러한 경험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어느새 자신이 엄청나게 커 버렸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이호성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절대 자신의 힘에 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다.
그저 강민성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힘이다. 노력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성취감 따위도 느낄 수 없다.
성취감 같은 건 강민성처럼, 그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싸워 경지를 이룩해 낸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자신이 가진 힘은 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군인 강민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힘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뿌리내리며, 이호성은 굳은 얼굴로 쓰러져 있는 헌터들을 보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흡입하면서 나름 감정 조절을 잘했다는 것에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방패막이로 썼던, 헌터가 조금 치명상을 입은 것 같기는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헌터이다 보니, 체력이 받쳐 주기 때문에 저 정도 부상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터였다.
다른 헌터들도 고통과 후유증으로 꽤 힘들어하긴 했지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호성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X-HIT의 수장인 레이트에게 걸어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그동안 구한 정보에 의하면 네 녀석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수많은 헌터들을 죽인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애가 상당하더군.”
가족이라는 말에 분노가 새겨져 있던 레이트의 눈에 두려움이 덧칠되었다.
“자살과 같은 죽음을 선택하지 마라. 네겐 그럴 자격도, 여유도 없을 것이니까.”
이호성이 레이트를 내려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는 듯, 레이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호성은 그런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손에 묻은 피를 바지에 대충 닦아 낸 뒤,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헬기 한 대 부탁합니다. 네? 주소요?”
이호성이 레이트의 허벅지 위로 휴대폰을 던졌다.
“주소나 좌표. 뭐든 불러.”
이호성의 명령에, 레이트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그것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포기한 듯, 체념한 얼굴로 휴대폰을 귀에 붙였다.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쥐어 짜내듯이 자신의 저택의 위치를 읊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이호성은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화려한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