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33화>
“X-HIT의 수장이 반드시 알아야만 할 엄청난 정보를 내가 들고 있다면?”
이호성의 말에는 엄청난 파급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에나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졌다.
이호성을 보는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가움으로 가득했다.
“아아. 그렇게 너무 무섭게 볼 것 없어. 싸우자는 게 아니라, 내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것뿐이니까.”
이호성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에나를 보며 말했다.
에나는 이호성을 빤히 지켜보다가 어깨를 살짝 틀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그녀는 돌아서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사이 이호성은 바텐더에게 맥주 한 병을 달라고 했다.
바텐더가 맥주병을 따 주었고, 이호성은 병을 들어 그것을 마시면서 숨을 천천히 골랐다.
그러던 차, 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주변에 가득하던 사람들이 물러나면서 길을 터 주었고, 그 사이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이호성은 여전히 맥주를 마시면서 험악하게 등장한 그들을 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타깃이 나야?”
이호성이 불을 붙이며 물었고, 그들 사이로 에나가 나타났다.
이호성은 코로 연기를 뿜으면서 그녀를 응시하며 맥주를 마셨다.
“어설픈 연기였다면 죽을 거야. 하지만 만약 정말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죽이지는 않을 거니까. 지금이라도 말해.”
에나가 냉정한 눈으로 이호성을 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맥주 한 병을 원샷으로 다 마시고 바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긴 한숨을 뱉었다.
이호성이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뱉고 있는 가운데, 철그럭거리는 무기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이호성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현재의 분위기상 어렵다.
수장을 빠르게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놈들을 쓰러트린다면 수장이 의심을 품고 숨어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그를 완전히 놓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가운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에나를 포함한 무기를 들고 있는 헌터들이 이호성을 가까이 둘러쌌다.
언제라도 무기를 휘두를 것 같은 눈이었다.
“시간을 오래 줄 수 없어. 머리 쓰지 말고,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날 수장에게 안내해. 그렇지 않으면 수장에게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 아주 고급 정보거든.”
이호성이 에나를 보면서 담배 연기를 뿜으며 웃었다.
에나는 안타깝다는 듯 이호성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이면 안 돼.”
그녀의 손짓에, 이호성을 반원으로 둘러싸고 있던 헌터들이 일시에 이호성을 향해 손을 주먹과 발을 날렸다.
그 순간.
이호성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오러의 충격파에 의해 주먹과 발을 휘두르려던 헌터들이 한 번에 뒤로 나동그라지며 엉덩방아를 찧거나 엎어졌다.
이호성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바 위에 지져 끄며 옷에 묻은 재를 탁탁 털었다.
“다시 말하지만, 엄청난 고급 정보니까. 지금이라도 보고를 올리는 게 좋을 거다.”
이호성이 에나를 보며 말했다.
에나는 굳은 얼굴로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보았다가 다시 이호성을 보았다.
“조작된 레벨이군요.”
에나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건 넘어져 있는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무슨 일이야?”
이호성을 게스트룸에서 조직원으로 받아들였던, 근육질의 사내가 인상을 쓰며 나타났다.
에나가 귓속말을 했고,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이호성은 그 사내를 보며, 손으로 쓰러져 있는 헌터들이 주춤거리며 일어서는 것을 가리켰다.
“보고 있으면 감이 안 와?”
그제야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사내가 혼란스러움에 빠진 얼굴로 헌터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수장에게 연락해라. 그가 꼭 필요로 하는 정보를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정체가 뭐야, 당신?”
근육질의 문신 사내가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이호성을 노려보며 물었다.
“얘기했잖아. 돈 벌러 왔다고. 그뿐이야.”
이호성은 덤덤하게 말했다.
* * *
민성을 회의장으로 모셔 가기 위해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인 김지유가 직접 운전기사와 함께 차를 타고 민성의 집 앞에서 대기했다.
민성이 집 밖으로 나왔고,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차에 타자 옆 자리에 있는 정장 차림의 총군주가 보였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
민성의 말에 김지유는 빙긋 웃었다.
“그냥요.”
“부담스러우니까 치워.”
민성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민성 씨.”
민성이 미간을 구기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오늘의 자리가 얼마나 큰 파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민성은 쓰게 웃었다.
“글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믿고 있을게요.”
김지유가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민성은 그런 그녀를 흘깃 보았다가 관심을 거두고 창밖을 응시했다.
구름 한 점 없는 겨울이었다.
* * *
X-HIT의 수장이자 흑인인 레이트는 거대하고 새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저택 안에서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하고 있는 ‘레이트’의 얼굴은 불편하다는 뜻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 있었다.
“뭐 하는 놈이야, 도대체?”
레이트가 짜증을 섞어 물었다.
- 정체가 불분명한 놈입니다. 레벨은 낮은데, 오러의 수위가 꽤 수준급인 듯합니다. 여기서 처리할까요?
잠시 고민하던 레이트는 쯧 하고 혀를 차고서는.
“아니, 그냥 데려와. A팀 붙이고.”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기밀 정보를 가지고 돈을 벌러 왔다라…….”
레이트는 시가를 입에 물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레벨을 조작해?”
레이트는 생각이 깊은 표정으로 먼 곳을 보며 시가를 깊게 빨아 당겼다.
* * *
운전대는 ‘에나’가 잡았다.
이호성은 조수석에 앉았고, 에나와 이호성이 탄 차량 뒤로, X-HIT의 조직원들이 탄 승합 차량이 줄줄이 뒤따르고 있었다.
만에 하나 있을 상황에 대비한 인원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에나는 이호성을 흘깃 보며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
에나의 물음에 이호성은 피식 웃었다.
“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해. 돈 벌러 왔을 뿐이라고 했잖아.”
“레벨을 조작하는 건 굉장한 작업이라 큰돈이 들었을 텐데. 본래 레벨은 몇인 거죠? 아니.”
에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레벨이 없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기타능력자를 의미하는 거였고, 이호성은 딱히 거기에 대고 반론하지 않았다.
“무슨 뜻으로 우리 X-HIT를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대적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 개인의 헌터로서도,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도.”
“어째서?”
이호성이 에나를 보며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X-HIT의 전력은 강력하다는 건 확실히 알아 둬요.”
이호성은 작게 웃었다.
“기억하지.”
“정부는 헌터를 보호해 주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입지를 줄이려고 하겠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해요. 헌터 협회가 아닌, 제대로 된 조직이 있어야 하죠. 그리고 그 조직이 헌터들을 보호할 거예요.”
“헌터들과의 싸움은 헌터의 숫자를 줄이게 되는 거고, 결론적으로 헌터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외려 정부가 반기는 일일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선,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죠.”
“그런가?”
“네.”
별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X-HIT의 수장을 만날 때까지 굳이 마약 헌터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차를 타고 30분가량을 달린 끝에, 저택 앞에 도착했다.
철창으로 된 문이 열리고, 넓은 마당으로 진입했다.
뒤따라오던 승합차들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따라 들어왔다.
저택의 마당은 놀라우리만큼 넓었지만,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호성은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X-HIT의 수장이라는 작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차가 멈추고, 에나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이호성은 조수석에 내려 뒤를 돌아보았다.
승합차에서, 레벨이 보이지 않는 헌터들과 고레벨의 헌터들이 보였다.
꽤 수준 높은 떨거지들이 따라왔군.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기타능력자이지만, X-HIT에서 기타능력자는 꽤 흔한 헌터인 듯했다.
이호성은 현재 높은 수준의 헌터들이 어느 정도의 무력을 갖고 있는지 거기에 대한 자세한 데이터는 알지 못했다.
아, 몰라. 괜찮겠지.
이미 저지른 일이었다.
이제 와 무를 수도 없는 일이고, 싸움이 벌어진다면 끝까지 가야 했다.
순순히 따라오지는 않을 테니 싸움은 아마 불가피할 것이다.
죽이지 않고 데려가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
이호성이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에나가 다가왔다.
“템창을 확인할 거예요. 무기는 여기서 모두 내려놓고 가야 합니다.”
이호성은 순순히 템창을 열었다.
에나는 다른 헌터의 템창을 확인하는 아주 비싼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템창 안에 들어 있는 무기를 꺼내 넘기라고 말했다.
“꿀꺽하면 안 돼? 아주 소중한 거니까.”
에나는 대답 없이 이호성이 넘긴 아이템을 받았다.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검이었기 때문에, 이호성에게 무기를 받은 에나는 얼굴에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가진 장비라고는 이게 전분데. 이제 된 건가? 들어가서 만나면 되나?”
이호성이 물었다.
에나는 자신의 템창에 이호성의 무기를 넣은 뒤.
“따라와요.”
그녀가 먼저 앞장섰다.
이호성은 걸치고 있던 가벼운 코트를 벗어 템창에 던져 넣었다. 추운 겨울과 달리 여기 브라질은 날씨가 꽤 무더웠다.
아주 고급스러운 대저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이 보였고.
“컹! 컹! 크헝! 크르르!”
목줄에 묶여 있는 ‘하운드’를 보고 이호성은 깜짝 놀랐다.
하운드는 개와 닮았지만, 기본적으로 몬스터였다.
몬스터를 기르는 취미라니.
악취미군.
이호성은 눈살을 구기며, 계속 앞서 걸어가고 있는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런 이호성의 뒤로도, A팀의 X-HIT 헌터들이 줄줄이 뒤따랐다.
워낙 저택이 넓은 탓에, 긴 복도를 걸은 후에야 그들은 엄청나게 넓은 거실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 거실에 통유리 너머를 보며 코냑을 먹고 있는 흑인 사내가 보였다.
명품 티셔츠에 금목걸이와 금팔찌, 그리고 금반지를 주렁주렁 차고 금빛 용문양이 그려진 가운을 걸쳤다.
화려한 차림의 사내.
이호성이 보기에 그가 아마도 X-HIT의 수장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