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31화>
일반적인 순대가 아니다.
어렸을 적 먹었던, 싸고 단순한 그런 순대가 아니었다.
지금 민성의 눈앞에 있는 순대는 보통 당면만 들어 있던 옛날의 순대와는 전혀 달랐다.
“이게 뭐지?”
민성이 순대를 보며 물었고.
“피순대입니다.”
장웅이 간단히 대답했다.
피순대.
고기와 두부 그리고 달걀을 버무린 순대였다.
겉보기에는 조금 별로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민성은 단순히 당면 순대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호기심과 설렘이 가슴에 물드는 걸 느꼈다.
민성은 피순대를 향해 젓가락을 움직였다.
순대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민성은 찌르르 하고 몸을 얇게 떨었다.
동공이 커질 정도의 새로운 맛에 민성은 깜짝 놀랐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은 기본이고, 쌉싸름한 고기 맛에 고소한 향이 기분 좋게 올라왔다.
게다가 순대 안에 들어 있는 고기가 혀를 긁어 주는 듯한 느낌은 실로 엄청났다.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엄청난 맛.
민성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장웅을 보았다.
“다음엔 순댓국을 먹어 봐야겠어. 엄청 맛있군, 이 순대.”
“다음에 준비해 보겠습니다.”
장웅이 미소 지으며 함께 식사했다.
고개를 끄덕인 민성은 여전히 놀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순대를 간장에 톡 찍어 입에 넣었고, 이내 다시 기분 좋은 얼굴이 되었다.
* * *
이호성은 눈을 떴다.
차 안에서 등받이를 눕혀 누워 있던 이호성은 등받이를 다시 세우며 부운 눈으로 창밖을 살폈다.
도착한 시간이 새벽이라, 목적지 부근에서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던 것이다.
잠시 후 적당히 휴식을 취한 이호성은 다시 시동을 걸고, 500미리 생수 한 통을 마시며 차를 출발시켰다.
이 주변에는 ‘X-HIT’라는 지역이 있다.
그곳은 헌터들만이 입성할 수 있는 지역이었고, 새로운 헌터의 유입을 반기는 지역이기도 했으며 그런 만큼 아주 거친 동네이기도 했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철창으로 되어 있는 건물 입구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서부터가 X-HIT인 듯했다.
“이름이 X-HIT가 뭐냐 X-HIT가. 무슨 레슬링 팀 이름도 아니고.”
이호성이 담배를 피우며 중얼거리고 있던 중, 앞을 보자 철창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무기를 들고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이호성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품 안에서 헌터증을 꺼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헌터가 이호성의 헌터증을 확인 했다.
두 헌터는 헌터증에 나와 있는 사진과 이호성의 얼굴을 대조한 뒤,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호성은 윙크를 하며, 철창 안 X-HIT 지역 안으로 입성 했다.
도로를 달리면서 이호성은 낮은 집들과 거리를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약상과 헌터들이 섞여 드는 곳이었지만,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마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헌터들의 가족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헌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 지역에 사는 경우는 드물었다.
치안 자체가 결코 좋지 못할 테니까.
마약 조직의 헌터들도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파벌이 나뉘게 되어 있다.
그건 인간이 모이는 조직의 습성이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린 끝에, 미리 그림자 길드를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이호성은 목적 건물로 향했다.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선 그들의 단체에 구성원으로 가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가장 확실하게 분위기를 살필 수 있을 테니까.
이호성은 목표 건물에 가까워지면서 들고 있던 담배를 창밖으로 던졌다.
끼이익!
이호성은 차를 대충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건물은 온통 하얗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고, 벽 이곳저곳이 금이 가 있었다.
다소 불안해 보이는 허름한 이 건물이 범죄 단체로 입성하는 첫걸음 중 하나였다.
이호성은 숨을 길게 한 번 내쉬고서 걸음을 옮겼다.
들키지 말고, 잘 하자.
이호성은 속으로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건물이었으며, 1층엔 로비랄 것도 없는 복도식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에 지하로 가는 계단이 하나 보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보였다.
그 지하로 가는 계단의 중심에, 20대 초반가량의 한 흑인이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호성이 지하로 가는 계단 쪽으로 이동하자, 그림자가 생기는 걸 보고 흑인이 머리를 들어 이호성을 올려다보았다.
이호성이 빤히 내려다보자 흑인은 이호성을 주시하면서 귀에 꼽았던 이어폰을 뺐다.
이호성은 어떠한 나라의 대화든 가능하게 해 주는 랭귀지 워치를 달칵- 소리 나게 눌렀다.
“구성원이 되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
이호성이 흑인을 보며 물었다.
흑인은 이호성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에 내려오라는 신호로 턱짓했다.
흑인이 귀에 다시 이어폰을 꼽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이호성은 코트에 손을 넣으며 그가 열어 준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호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문 안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화려한 펍의 내부를 보는 듯했다.
빨강색과 파랑색, 그리고 주황색이 섞인 인테리어에 금빛 조명.
다트를 던지는 헌터들이 보이고, 한 쪽에서는 마약을 즐기는 헌터들도 보였으며, 도박을 즐기고 있는 헌터들도 보였다.
또한 대체로 맥주나 위스키 같은 술을 먹고 있었다.
다소 삭막한 느낌일 거라 생각했던 이호성의 단순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공간이었다.
다소 놀란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은빛의 단발머리 미녀가 커다란 눈망울로, 아주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며 큰 입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안녕? 낯선 사람.”
허스키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니트 나시를 입고 있었는데, 이호성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 쪽으로 갔다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뇌쇄적인 매력이 넘치는 외국인이었다.
“제니스.”
이호성이 자신의 가짜 이름을 밝히며 악수를 청하자, 그녀는 부드럽게 이호성의 손을 맞잡았다.
“에나라고 해요.”
그리고 그녀는 이호성을 빤히 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 있어요?”
에나가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이호성은 라이터를 꺼냈고, 그녀는 불을 붙여 달라는 듯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호성은 불을 붙여 주었고, 에나는 담배를 빨면서도 이호성에게 빤히 보내는 시선을 끊지 않았다.
그리고.
“따라와요.”
에나가 연기를 뿜으며 그렇게 말하고서 돌아섰다.
이호성은 주변을 한 차례 훑어본 후, 그녀를 뒤따랐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지나, 이호성은 그녀를 따라 게스트라고 적혀 있는 문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고, 이호성도 게스트 룸 안으로 들어갔다.
게스트 룸 안에는 웃통을 벗고 있는 근육질의 사내가 이제 막 약을 한 듯 헤롱거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상체에 빈틈없이 새겨진 특이한 문신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는 느슨한 눈으로 룸 안으로 들어온 이호성을 보며 코에 하얗게 묻은 것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X-HIT에 온 걸 환영해, 친구.”
근육질의 문신 사내가 말했다.
이호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눈으로 룸을 훑었다.
룸 안에는 이 근육질의 문신 사내와 에나뿐이었고, 룸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다.
이호성은 자신을 룸으로 데려온 에나라는 은발의 단발머리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위스키를 마시며 다시금 유혹적인 미소를 보내왔다.
“헌터증.”
문신 사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호성은 조작된 헌터증을 꺼내 내밀었다. 그걸 넘기면서 이호성은 꽤 긴장했다.
목숨에 대한 위협 같은 건 없었다.
자신은 이 인간계에서 무력으로는 2인자였으니까. 다만 정체를 발각당할 경우, 강민성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 다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강압적인 조사는 빈틈을 놓치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근육질의 문신 사내가 헌터증을 자세히 내다보고 있는 걸 보며 이호성은 꽤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는 조작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앉아, 친구.”
소파에 등을 묻은 채로, 그는 신분증을 든 손으로 자리를 콕콕 가리켰다.
이호성은 얌전히 그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근육질의 문신 사내가 나무 테이블 위로 이호성의 신분증을 내려놓았다.
이호성이 그 신분증을 집었을 때.
“이봐.”
근육질의 문신 사내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결코 우호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이호성은 신분증을 집은 채로, 그 사내와 눈을 맞받았다.
사내가 이호성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서 웃었다.
“두려움이 없군. 욕심도 없고.”
이호성은 대답 없이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속으로는 긴장감에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얼굴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강민성과 함께했던 고난에 비하면, 이건 사실 긴장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단지 임무에 대한 책임으로 경직되었을 뿐.
나름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었던 이호성이었다.
“X-HIT에는 왜 왔나?”
사내가 이호성의 눈 안을 내다보듯 하며 물었다.
“단지 돈. 그뿐이다.”
이호성이 말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이호성에게는 길게 느껴졌지만, 사실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내가 이호성의 눈을 보며 피식 웃었다.
“레벨은 낮은데 배짱이 있군. 아주 훌륭한 가족이 될 수 있겠어.”
사내가 다시 소파 쪽으로 몸을 묻으며 히쭉 웃었다.
이호성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레벨 정도 역시 조작된 것이었다.
아이템을 쓰면 실제 레벨을 밝혀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내줘.”
사내가 이호성을 보며 입에 담배를 물었을 때, 이곳으로 안내해 준 에나가 목걸이 하나를 가져와 이호성에게 건넸다.
“X-HIT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증표예요.”
그 증표는 금이 간 해골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다.
이호성이 그것을 받아 목걸이에 걸기 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조직에 들어왔다가, 만약 다른 조직으로 넘어가거나 정보를 넘긴다면…….”
사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죽을 때까지 뒤쫓는다. 그게 우리의 규칙이다.”
이호성은 그를 빤히 보며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사내는 이호성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누런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지?”
이호성이 물었다.
사내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끄면서 콧물을 들이켰다.
“일단 좀 놀면서 X-HIT에 적응해. 저 친구가 도와줄 거야.”
사내가 턱짓으로 에나를 가리켜 보인 후, 소파에서 일어나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호성은 에나를 보았다.
에나가 매력적인 미소를 보내왔고, 이호성은 그런 그녀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이아몬드 클랜 시절의 자신이었다면, 송장이 되는 데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을 거라고.
X-HIT.
시작부터 어쩐지 위험한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