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30화>
“어쩔 수가 없죠.”
김지유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민성은 결코 그런 김지유의 생각을 동의하거나 넘겨받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난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야.”
김지유가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잔에 남은 와인을 입에 잔뜩 머금고 꿀-꺽 삼켰다.
“구체적으로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김지유가 긴장한 눈으로 민성을 지켜보았다.
“우선…….”
민성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리는 듯하더니 차가운 눈으로 김지유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통령과 헌터장들을 한자리에 모아야겠어.”
“그리고요?”
“자리만 만들어. 그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한다.”
민성이 의자를 밀며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훌륭한 스테이크와 와인이었다.”
그 감상평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을 돌아보며 긴 한숨을 쭉 내뱉었다.
그러다 김지유를 보았는데, 이호성은 조금 민망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군이긴 하지만 참 냉정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듯 이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호성이 김지유를 보았고, 생각이 많아 보이던 김지유는 싱긋 웃으며.
“한 잔 더 할까요?”하고 제안해 왔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이호성이 보기엔 분명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김지유는 숙취에 꽤 머리가 아팠다. 술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탓에, 어제는 과음을 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리만 만들어. 그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한다.’ 라는 강민성의 말은 꽤, 아니, 상당히…… 아니, 매우 마음 아프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유는 그를 이해했다.
아니, 이해해야만 했다.
그가 존재하기에, 이 세상은 이렇듯 멸망으로부터 평화를 찾았다.
더군다나 여전히 그는 세계 최강의 인간이기에 그의 모든 말은, 곧 법이고 뜻이다.
비인류적 행태를 저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뜻대로 하겠다는 건데 거기에 태클을 걸 주제는 못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로서 강민성의 전진은 다소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섣부른 판단은 걷잡을 수 없는 산불처럼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귀를 완전히 닫는 사람은 아니다.
걸러 들을 줄 아는 사람.
그를 믿어야 해.
김지유는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기력 없이 한숨을 뱉었다.
“까칠한 사람이라니까 정말.”
김지유는 힘없이 핏 하고 웃었다.
“일하자.”
김지유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준비했다.
계속 걱정만 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김지유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김지유는 메일을 다 작성하고 나서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서 긴장된 숨을 후우- 하고 뱉었다.
한국은 강대국에 비해 오랫동안 영향력이 작은 나라였다.
그런 한국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적응이 잘 되지도 않았으며 지금이 현실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글을 자신이 쓰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런 메일을 쓰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김지유는 메일을 쓰면서 연신 쓴웃음을 지었다.
* * *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부터 발송된 메일은 각국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대통령과 헌터장을 한자리에 모으겠다는 한국의 뜻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 정부와 헌터 협회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필요로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일에는 모이는 날짜가 정해져 있었고,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그만한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여져 있었다.
“한국 따위가 감히…….”
“정부와 헌터장이 한자리에 앉는다니.”
“격 떨어지게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군.”
대통령과 헌터장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곳은 어느 한 사람도 없었다.
일자는 정확히 3일 후였다.
그들의 스케줄 같은 건 전혀 안중에도 없는 강압적인 소환이었다.
* * *
반신욕을 마치고 잠옷 차림으로 거실로 나온 민성이 목에 수건을 건 채로, 소파에 앉아 “얼음물.” 하고 말했다.
근처에 있던 이호성이 곧바로 주방으로 가서 얼음물을 가져와 한 잔 대령했다.
“앉아.”
민성이 말하고서 얼음물을 마시며 소파를 가리켰다.
이호성이 조금 떨어진 곳에, 민성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해 줘야 할 게 있어.”
민성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는데, 드디어 제가 할 일이 생겼나 보네요. 말씀하세요.”
이호성이 준비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각국에 가서 범죄에 연루된 헌터들과 접촉해서 분위기를 좀 살펴봐.”
“거기까집니까?”
“분위기만 살펴라. 그리고.”
민성이 손으로 얼굴 쪽을 가리켜 보였다.
“변장, 되나?”
“물론입니다.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어떤 생각들인 건지도 좀 알아오고.”
“호출하면 올까요? 아니면 기일을 주시는 겁니까.”
“호출하면 올라와.”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쯤에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장웅 셰프한테 얘기해 둘게요. 헌터님 식사는 당분간 셰프님이 하셔야 할 테니까요.”
“그렇게 해.”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이호성이 물러가고 민성은 얼음물을 한 잔 더 마셨다.
아주 차갑고 시원한 물이 맑은 느낌을 확 전해 주며 목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민성은 소파에 깊숙이 등을 묻고 기댄 채로, 대통령과 헌터장들을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좀처럼 생각은 뚜렷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애초에 늘 혼자였던 삶이다.
마계에서 홀로 몬스터와 마인만 죽였었으니, 이런 쪽으로 머리를 쓰는 건 골치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해결을 해야 한다.
거기에 자신에게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게 있다면 개입하는 게 맞다.
앞으로 약속된 기일까지는 3일이 남았다.
민성에게도 꽤 부담스러운 자리였고, 그런 만큼 3일이라는 시간은 사실 자신에게도 무거운 시간임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확한 기준 정도는 있다.
어차피 쓰지도 않던 머리를 억지로 쓴다고 좋은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머리를 쓸 거면 그건 중앙 헌터 기관에 맡기면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수동적이고 다소 방어적인 측면을 띠게 마련이고, 그건 민성이 가장 싫어하는 시간 낭비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문제는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게 민성의 마인드였다.
민성은 먼 곳을 보며 잔을 입가로 기울였다.
얼음이 잔에 부딪치는 차락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 * *
투투투투투투투!
워프 게이트를 타고, 헬기를 타고 이동을 해서, 브라질에 도착해 착륙 지점에 가까워졌다.
이내 헬기가 지상에 착륙했고, 프로펠러에 의한 강력한 바람을 맞으며 이호성은 헬기에서 내렸다.
헬기에서 내린 이호성은 분장으로 인해 이미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이미 신분증 조작도 끝이 난 상태고, 헌터증도 조작하여 만들어 두었다.
헬기에서 내린 이호성은 겉으로 볼 때 결코 이호성이라고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뒷문으로 나오자 시장통으로 된 거리가 나왔다.
그곳을 걸으면서 이호성은 주변을 한 차례 살펴본 후,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에는 그림자 길드에서 받은 정보가 들어 있었다.
범죄에 연루된 헌터들의 단체로 추정되는 지도를 한 번 확인한 뒤, 휴대폰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이호성은 빠른 걸음을 걸었다.
이내 시장 바깥쪽으로 나온 이호성은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 중,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벤츠의 SUV 차량 쪽으로 이동하며 미리 전해 받은 스마트키 버튼을 눌렀다.
이호성은 차량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곧바로 주차된 차를 빼서 액셀을 밟았다.
범죄 헌터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하는 만큼 꽤 긴장되기도 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재밌기도 했다.
이호성은 과거의 다이아몬드 클랜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과거의 자신이나 여기 브라질의 헌터 놈들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일 것이다.
“익숙한 냄새가 나는군.”
이호성은 창문을 내리며, 길게 미소 지으면서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이호성은 마치 여행을 온 사람처럼, 창밖의 풍경을 보며 연기를 뿜었다.
* * *
“헌터님, 저녁 준비됐습니다.”
장웅 셰프가 말했다.
민성은 리모컨으로 TV를 끄고 주방으로 이동했다.
식탁 위로 멋들어진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민성은 자리에 앉으며 옅게 웃었다.
“장웅 셰프의 요리는 오랜만에 먹는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누구 요리인데 입에 안 맞겠어. 같이 먹지.”
민성이 자리를 가리켰다.
“그럴까요?”
장웅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릇과 수저를 챙기고 앉았다.
식탁 위로 차려진 음식들 중 메인은 ‘설렁탕’이다.
오늘의 저녁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한식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웅의 저녁이니까 믿을 수 있다.
다만 장웅이 화려한 식사가 아니라 설렁탕을 만들었다는 것은 꽤 의외였다.
물론 실망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의외였다는 것뿐이었다.
화려하고 보기 좋은 반찬들도 많이 있지만 민성은 ‘설렁탕’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항상 민성의 관심을 가장 크게 받는 것은 늘 메인 음식이었다.
반찬은 입맛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보조적인 메뉴일 뿐이니까.
민성은 설렁탕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묘하다.
설렁탕의 국물은 아주 뽀얀 우유 같았다.
거기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이 전달하는 냄새는 아주 부드럽고 달콤했다.
그 옆에 위치한 아주 새빨간 깍두기를 보니 식욕이 폭발적으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또한 식탁 위의 반찬 중, 하얗고 두꺼우며 넓은 그릇 위에는 두툼한 순대가 있다.
설렁탕과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장웅이 준비한 듯했다.
민성은 조급함을 느꼈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떠먹었다.
아주 깊은 국물의 맛이 황홀하리만큼 맛있다.
이미 간은 맞춰져 있었고, 그 간이 자신에게 딱 맞았기 때문에 딱히 소금을 더 넣을 필요는 없었다.
민성은 빨간 깍두기를 쌀밥 위에 올리고, 그것을 먼저 입안으로 가져갔다.
아삭아삭하게 씹고, 국물을 뜨자 얇은 고기와 새하얀 소면이 건져졌다.
국물과 함께 입으로 후루룩!
아주 뜨겁고 맛있는 고기의 맛과 부드러운 소면이 씹히는 맛은 가히 천상이었다.
빨간 깍두기와 고기의 향이 섞이고 뜨거운 국물은 가슴을 시원하게 두드려 주는 듯한 깊이가 있다.
이 설렁탕을 해치우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거기에 화룡정점은 바로 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