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327화 (32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27화>

“방금 뭐라고 말씀을……?”

은행 지점장은 분명이 똑똑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금액이 큰 탓에 말을 버벅거리며 되물어 왔다.

“1,000억이라고.”

“아……. 그러시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서류 작성하실 게 조금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자동 이체로 주당 천만 원씩.”

“아, 알겠습니다.”

은행 지점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섰다.

엄청난 스케일의 고액 이체를 하게 된 그는 혀를 내두르며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기 위해 움직였다.

그사이 여직원 한 명이 다가와 민성에게 어떤 음료를 마실지 물어봤다.

민성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 쳐 보이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하얀 사탕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박하사탕이었다.

달달한 단맛과 박하향이 시원하게 콧속을 자유롭게 휘돌았다.

사탕을 오물오물 먹으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던 민성의 앞으로 은행 지점장이 다시 돌아왔다.

“저, 고객님.”

민성이 의아한 눈으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지점장을 보았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개인으로 이체하시는 겁니까?”

“문제 있습니까?”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그럴 경우…….”

지점장이 큰 금액을 이체할 경우에 발생되는 걱정이나 문제들을 얘기했지만, 결국 어떻게든 큰 액수가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는 영업 정도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런 건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합시다.”

민성이 다소 차가운 어조로 말했고, 지점장은 혼비백산하며 연신 사과하고서 다시 서류를 가지러 돌아갔다.

* * *

이호성은 저녁을 예약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괜찮은 레스토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꽤 고민한 끝에 한 가게를 찾아냈고,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민성과 총군주가 갈 것이니 신경 써서 준비해 달라는 말을 한 이호성은 레스토랑 측으로부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레스토랑 예약을 끝낸 이호성은 기지개를 펴며 컴퓨터를 끄고 휴대폰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

그때였다.

띠링!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들렸다.

자연스럽게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으나 메시지를 읽고 난 이호성은 결코 자연스러운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자 메시지에는 믿을 수 없는 글자와 숫자가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천억……?!”

휴대폰을 보는 이호성은 눈알은 곧 빠질 듯했다.

몇 번이나 손으로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휴대폰 문자에 나타나 있는 숫자는 무려 100,000,000,000원으로 천억이 확실했다.

“천억이라니…….”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월급을 달라 했더니 천억을 주는 민성의 스케일에 이호성은 팬티에 뭘 지린 건 아닌가 확인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믿어지지 않아서 잠시 멍했다가, 피식피식 입 밖으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 이제 부자네?”

하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던 이호성은 이내 허공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쁘지가 않지.”

이호성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얼굴로 안구가 건조한 것처럼 눈을 자꾸만 연신 깜빡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처럼 상식 안에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천억이라는 돈이 너무 큰 돈이라 그런 걸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신은 늘 강민성을 보좌하며 그가 시킨 일을 해 왔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 왔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의 가치가 그 정도는 되는 게 아닐까? 싶다가 결론은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또다시 허망함에 이른다.

이 같은 과정이 지금처럼 허무한 마음을 만드는 것일까?

천억.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이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우선 밀린 임대료를 내는 게 아니라 집을 살 수 있다.

그것도 강남에 멋들어진 아파트 같은 것 말이다.

좋군. 아니, 좋은 건가? 집이야 잠만 자면 되지.

어차피 강민성의 수중을 들기 위해 거의 5분 대기조처럼 그의 명을 받아야 하는데 집이 좋아 봐야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뭐 투자 의미로?

하지만 자신은 투자자가 아니다. 그럼 아파트를 사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자, 그럼 다음으로. 만약 가게를 차린다면?

아니, 차릴 수가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강민성이 내치기 전까지는 가게를 차릴 수가 없다.

가게를 차리면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강민성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니까.

거기에 딱히 불만은 없다.

마약상과 연계된 헌터들부터 시작해, 각국 정상들과 헌터장들을 만나며 세계적인 일을 하게 될 테니 그게 식당 운영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 뭘 할 수 있나?

사치?

그래, 시계를 사고 명품 옷을 입고 슈퍼 카 정도는 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강민성도 꾸미고 다니지 않는데 자신이 몸에 사치품을 두르면 좀 얼간이처럼 보이지 않을까?

사실상 가장 전면에 나서는 건 강민성이 아니라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자신이 뉴스에 수시로 잡히게 될 터.

그런 자신이 몇 억짜리 시계를 차고 몇 십 억 자리 차를 타고, 몇 백 짜리 옷들을 몸에 두르면…… 왠지 엄청난 악플들이 올라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뭐 능력에 맞게 돈 쓰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이호성이라는 이호성은 별로 사치에 애당초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먹고살기가 팍팍해 뒷골목 파락호 생활을 했을 뿐이고, 그때도, 그저 세 보이려고 쓸데없이 기름을 많이 먹는 미국 차를 탔을 뿐이다.

아니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긴 했다. 하지만 그건 빈곤한 삶에 꿈꾸는 달콤한 망상일 뿐이다.

시간을 거쳐, 그저 강민성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여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그 보상으로 입금된 금액이 천억.

성취감?

그런 건 느낄 수도 없었고, 이제 와 큰돈이 생겼다고 사치를 부리는 것이 별달리 달콤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너무 큰일을 겪은 탓인지, 철이 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꿈꿔 왔던 부자의 삶은 그다지 흥분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또다시 허무함이 밀려온다.

만약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효도라도 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현관문이 열렸다.

장웅 셰프와 장시아가 들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호성 군.”

“안녕-.”

한층 밝아진 얼굴의 장시아와 부드럽게 웃고 있는 장웅이 보였다.

이호성이 울상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자 장웅은 의아한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고, 장시아는 이호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나? 무슨 일 있는 건가?”

장웅이 걱정이 담긴 눈으로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별일이긴 한데. 뭐 안 좋은 일은 아니구요.”

“왜? 왜? 무슨 일인데?”

장시아가 약간 긴장과 불안이 섞인 눈으로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기본적으로 장시아는 약간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민성, 그리고 이호성과 가까운 만큼 끔찍한 소식을 자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또다시 마인들이 인간계를 침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일 것이다.

이호성은 민성에게 월급을 달라 했고 문자로 1,000억을 입금받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장웅이 놀란 듯 입을 쩍 벌리며 축하한다는 듯 이호성의 어깨를 토닥였고, 장시아는 눈이 뒤집어져서는 명품 가방 하나만 사 달라고 매미처럼 이호성의 팔에 달라붙었다.

이호성은 장시아를 무시하고 장웅에게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장웅은 껄껄 웃었다.

“우리 호성 군이 이제 나이를 먹은 게지.”

“그런 겁니까? 엉망진창으로 살았던 게 사실 1년도 안 된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가만히 있는 방법도 있고. 다른 방법은 기부도 있지.”

“기부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걸세.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야. 사실 기부라는 건 그들을 돕는 것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돕는 것이기도 하거든. 마음의 치유. 뭐 가치관에 따라 괴변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장웅이 허허 웃으며 말했고, 이호성은 망치를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장시아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제발 가방 하나만. 제발, 제발-.”

장웅이 손녀딸을 보며 한숨을 쉬었지만 차마 꾸짖지는 못하겠는 듯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볼 뿐이었다.

“기부. 좋은 생각이네요. 하지만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이 돈을 전부 기부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면 헌터님은 금전 감각이 없잖아요. 아무리 조 단위로 돈을 갖고 있어도 금전 감각이 없으면…… 아시죠?”

장웅이 허허 웃었다.

“알다마다. 그래서?”

장웅이 흥미로운 눈길로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음……. 나중에 헌터님 돈 없다고 폭동 부리면 안 되니까 한 500억? 정도만 기부하면 되겠네요.”

“음, 호성 군. 굳이 단체에 맡기지 말고 자네가 재단을 설립하는 게 어떤가?”

“제가요?”

이호성이 목을 북북 긁으며 눈을 깜빡였다.

“재단을 운영하면, 단순히 자네의 돈뿐만이 아니라 더 큰 돈을 지원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아주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거지.”

“제 이름으로 하는 재단 설립이라.”

이호성은 옅게 웃었다.

“좀 부담스럽지만 생각만 해도 어쩐지 좀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하하. 그런데 제까짓 게 그런 걸 해도 되려나 모르겠네요.”

“호성 군.”

“네?”

“호성 군을 보면서 느낀 게 있어. 이 얘기가 어쩌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자네의 과거를 굳이 비하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게. 자네는 그저 힘들었던 거야. 상황이 힘들어서 잘못된 길을 간 거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니 과거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낮추거나 스스로를 부정하지 말았으면 해.”

이호성은 먼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장웅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아주 위대한 일을 했어.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네를 지켜보고 있어. 자네를 응원하고, 존경하고 있다는 거지. 과거로 현재의 자신을 덧칠하지 말게. 자네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야.”

이호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부끄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위로가 됐어요. 힘도 됐고요.”

이호성은 매달려 있는 장시아를 털어 냈다.

장시아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이호성을 보았다.

“사 줄게.”

사 준다는 말에, 장시아가 만세를 하며 날아갈 듯이 펄쩍펄쩍 뛰었다.

“장시아.”

이호성의 진지하고 무거운 말에 장시아가 숨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순전히 장웅 셰프님 때문에 사 주는 거야. 알겠어?”

“알지, 알지.”

“셰프님, 그럼 시아랑 잠깐 나갔다 올게요. 헌터님은 저녁에 총군주님이랑 약속이 있어서요. 집에 들어왔다가 가실지 밖에서 바로 레스토랑으로 이동할지 잘 모르겠어요.”

“알겠네. 그보다 아니, 호성 군. 굳이 안 사 줘도…….”

“셰프님 선물도 사 올 거니까 기대하시고요.”

더 이상 말릴 새도 없이 이호성이 웃으며 앞장서서 나갔고, 장시아가 뒤쫓았다.

장웅은 그런 둘을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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