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26화>
- 음……. 그건 민성 씨가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신 제가 평균 집값이랑 차량 가격, 물가에 대해서 보기 쉽게 데이터를 만들어 보내 드릴게요. 아마 은행 도착하기 전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민성은 전화를 끊고 짜증이 담긴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앞쪽으로는 차가 꽉 막혀 있었다.
최고급 스포츠카라는 수식어도 부족한 라페라리를 끌고 나왔기 때문에 운전석도 불편하고 운전도 불편했다.
도심을 다닐 때는 차라리 SUV 같은 것을 타는 게 훨씬 편할 듯했다.
민성은 앞으로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불편함도 참아야 한다고 속으로 뇌까렸다.
단순히 귀찮다고 사회를 등질 수는 없다.
세상엔 아름답고 맛있는 것이 많다.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에 자신을 녹여 낼 필요가 있었다.
정체된 구간을 지나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들고 차를 찍어 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은행이 어디인지 물어볼까 싶을 때,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들렸다.
민성은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에는 중앙 기관에서 보낸 집값과 자동차 그리고 일반 물가에 대한 데이터가 나와 있었다.
민성이 그것을 확인하던 중.
빵- 빵!
클랙슨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정체되어 있던 앞차가 어느 덧 꽤 앞으로 멀어져 있었다.
액셀을 밟았지만, 금세 다시 이어지는 정체 구간을 경험해야 했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 끝에 은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성은 은행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이쪽이 정문인가?
정문이라 생각되는 곳을 향해 민성이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오랜만에 오는 은행이었지만 시스템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던전이 생기고 기술력이 모든 마법 쪽으로 치우쳐지게 되면서 경제라든지 일반 기술 발전은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기표를 뽑기 위해 기계 앞에 섰다.
이체가 표기되어 있는 글자를 보고 민성은 그것을 터치했다.
그러자 지이잉! 하고 대기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자신 앞으로 15명 정도 남아 있었다. 그다음이 민성의 차례였다.
사람이 많아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민성은 잠자코 기다리기 위해서 걸음을 옮겨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행에 있는 사람들은 민성이, 그 유명한 강민성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서 은행에 앉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했다.
민성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역시 귀찮네…….’
민성은 미간을 구부렸다.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막상 은행을 찾아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자니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이호성에게 시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은행까지 온 이상 그런 한심한 생각은 그만하기로 하고 민성은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민성의 앞으로 할머니 한 명이 느릿하게 지나갔다.
습관처럼 내뱉는 앓는 소리를 하며 할머니가 민성을 지나쳐 창구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녀가 상담을 하고 현금을 받아 가방에 챙겨 넣고 있을 때 입구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청원 경찰이 두 손을 들고 있었다.
민성이 의아한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복면을 쓴 두 사내가 총기를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꺄악-!”
사방에서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울렸으나 그건 잠시였다.
“전부 입 닥치고 돈 꺼내!”
복면을 한 강도가 크게 소리쳤다.
민성은 한숨 쉬며 그 강도를 보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민성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 가지는 던전을 잃고서 일자리를 잃게 된 헌터에 대한 생각이었다.
일자리를 잃게 됨으로써, 돈이 필요한 헌터가 범죄를 저지른다는 아주 단순한 과정이 민성의 머릿속을 파고 들어왔고, 다른 한 가지는 하필이면 자신이 은행에 왔을 때 이 은행에 그들이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헌터들에게 무기 소지는 합법화되어 있던 상황인 만큼 무기를 구하기 쉬운 것이 헌터였으니, 그들로써는 총기로 은행을 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 은행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는 건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겠지.
미국 헌터장인 에단에게서부터 시작된 김지유의 말이 보다 강하게 피부로 와닿는다.
던전이 사라지고 난 후, 헌터들이 돈의 흐름을 찾아가게 될 것이란 얘기.
이건 단순한 범죄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헌터라는 직업의 약화가 만들어 낸 헌터계 불황.
하지만 범죄는 범죄다.
민성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강도들이 총기를 드러내며 협박하자 은행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돈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강도들은 흥분한 채로, 가방에 돈을 넣으며 눈을 벌겋게 부라리며 욕설을 쏟아 냈다.
그러다 강도들은 가방을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그녀의 가방까지 뺏어 들었다.
할머니가 돈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려 했지만, 젊은 헌터들의 힘을 이겨 내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할머니가 비참한 모양새로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그걸 보고 민성은 강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돈을 열심히 쓸어 담고 있던 강도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민성을 보고 도끼눈을 떴다.
당장이라도 발사할 듯 총기를 들이댔다가 강도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민성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얼어붙은 강도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석고상처럼 굳어서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오직 움직이고 있는 것은 흔들리고 있는 동공뿐이었다.
민성은 귀찮음이 가득한 눈길로 강도들을 보며 턱짓으로 그들의 가방을 가리켰다.
“다시 꺼내.”
민성이 짧게 말했다.
두 명의 복면강도들이 굵은 침을 꿀떡 삼켰다.
“꺼내.”
민성이 조금 더 낮게 말했다.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기 때문에 강도들은 민성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강도들은 손을 벌벌 떨면서,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돈을 모두 꺼내고 차렷 자세로 떨고 있는 그들을 보며 민성이 입을 열었다.
“강도짓을 하는 건 그래도 이해가 가긴 하는데 말이야.”
민성이 할머니를 한 번 돌아보았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민성이 강도들에게 턱짓을 하며 물었다.
강도들이 벌벌 떨면서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마치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민성은 할머니를 밀쳤던 강도에게 주먹을 들어 가볍게 입을 때렸다.
퍽 소리가 나면서 피가 터졌다.
몇 번 더 때리자 강도가 휘청휘청하면서 이내 피를 토하듯이 뱉어 냈다.
그 옆에 서 있던 강도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로 눈알도 움직이지 않았다.
완벽히 공포에 사로잡힌 탓이었다.
결국 강도 하나가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철퍽 꿇었을 때, 민성은 템창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무정한 눈으로 무릎 꿇은 강도를 보며 그를 죽이려고 할 때, 누군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게 느껴졌다.
바지 쪽을 내려다보자 강도에게 밀침을 당해 쓰러졌던 할머니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고개를 가로저어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너무 오래되어, 얼굴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지만, 친할머니의 이미지만큼은 분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민성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할머니를 빤히 보다가 무기를 템창에 던져 넣었다.
그때, 은행 안으로 중앙 헌터 기관의 병력들이 들이 닥쳤다.
중앙 기관의 헌터들은 일종의 특공대와 가까운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서, 은행 안으로 들어와 민성을 포함해 강도들을 에워쌌다.
그러다 민성의 얼굴을 확인하고, 일제히 차렷 자세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민성은 짧게 한숨 쉬고는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고, 그들은 강도들을 데리고 은행을 나갔다.
민성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대기표를 꺼낸 다음,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가 착석했다.
폭풍이 지나간 듯 조용한 가운데, 은행 내에서 직원들의 수습이 시작되었다.
강도들이 훔쳤던 돈을 다시 세고, 넣고, 강도가 바닥에 흘렸던 피를 치웠다.
그사이, 할머니가 민성의 앞으로 다가왔다.
민성은 할머니를 빤히 보았다.
“고마워요, 총각.”
할머니는 웃음 지으며 그저 그 말만을 남기고서 가방을 품 안에 꼭 안고 은행을 나가기 위해 절뚝이며 걸었다.
민성은 그녀가 은행을 완전히 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살짝 굽어 있는 등을 보자 놀랍게도 어릴 적 기억이 겹쳐졌다.
물론 친할머니의 뒷모습이었다.
민성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공허감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마계에서 인간계로 돌아왔고, 통장에는 조 단위가 넘는 돈이 있어 부는 차고 넘칠 정도이며, 전 세계에서 어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존재였으나 그런 건 전혀 민성의 가슴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100년이 만들어 낸 결과 같은 것이었다.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창구에서 나는 알림 소리가 현실을 일깨웠다.
민성은 자신의 대기표에 적혀 있는 대기 번호가 창구의 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해 봤으나 아직 자신의 차례가 되려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강민성 헌터님?”
옆을 보자 정장 차림의 은행 지점장이 서 있었다.
민성이 의문의 시선을 던지자.
“VVIP실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은행 지점장이 VVIP라고 적혀 있는 룸 쪽을 가리켰다.
민성은 일어서서 그의 안내를 받으며 VVIP실로 들어갔다.
돈이 많은 만큼 VVIP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안락하게 꾸며져 있는 VVIP룸 안으로 들어가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았다.
지점장은 아주 극진한 태도로 민성을 모셨다.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지점장이 소파에 앉지도 않고 민성의 옆에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며 물었다.
“편하게 앉아요.”
민성이 소파를 가리켰다.
“네, 알겠습니다.”
지점장은 토를 달지 않고 곧장 민성을 마주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앉았다.
“이쪽으로 이체를 하려고 하는데.”
민성이 품 안에서 이호성이 적은 계좌 번호가 들어 있는 종이를 툭 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체 좀 부탁합니다.”
지점장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얼마나 이체하실 생각이신지요?”
지점장의 물음에 민성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1,000억.”
민성의 덤덤한 말에, 지점장은 일순 표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