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25화>
* * *
김지유는 각국의 헌터들이 헌터 협회를 탈퇴하고 이내 흩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 줬다.
그뿐 아니라 그 헌터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각종 범죄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 왔다.
이미 세계 헌터 협회의 헌터장들은 예견했던 일인 듯 담담했다고 김지유는 말했다.
이호성은 곧장 민성을 찾았다.
그리고 해당 사안에 대해서 보고를 올렸다.
루왁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던 민성은.
“눈 온다.” 하고 말했다.
민성은 마치 눈을 처음 보는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마계에 오래 있었으니 민성은 눈을 보는 건 아주 오랜만에 일일 것이다.
이호성은 조급히 묻지 않고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
민성은 루왁 커피를 마시며 오랫동안 눈을 감상했다.
그리고 이후, 민성이 입을 열었다.
“총군주 불러.”
민성의 짧은 말에 이호성이 목례를 하고 곧장 전화기를 들고 물러갔다.
민성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호성이 현관문을 열었고, 김지유가 거실로 들어왔다.
민성은 김지유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냐는 물음이었다.
김지유는 그를 알아채고 곧장 대답했다.
“근처에 있었어요.”
“앉아.”
민성이 자리를 눈짓하며 말했다.
김지유는 다소 사무적인 태도로 착석했다.
민성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김지유를 응시하다 물었다.
“분위기는?”
김지유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좋아요.”
“정확하게 말해 봐.”
“마약상들이 헌터들과 손을 잡았다는 얘기는 들었죠?”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더 마약상과 연계된 헌터들의 세력이 커지고 있어요. 그만큼 헌터 협회에서 은퇴한 헌터들이 많고요.”
“뭐든지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해. 정부에서, 그리고 헌터 협회에서 그들을 잡지 않는 이유는 뭐지?”
“우선 헌터장들도 고민하고 있을 거예요.”
“고민이라니?”
김지유는 미소 지었다.
그건 비판과 자조가 섞인 미소였다.
“던전이 사라졌고, 몬스터가 사라졌어요. 헌터의 존재 가치는?”
“하락하겠지. 하지만 앞으로 던전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 않나?”
“그것도 맞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강민성 씨에요.”
“내가 왜?”
“민성 씨가 있으니까. 앞으로 나타날 던전에 대한 두려움이 희석되는 거죠.”
민성은 이해했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헌터장들이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그거예요. 던전에서 나오는 수익금이 없으니 정부에서는 헌터들이 짐 덩어리로 전락되어 버리는 거죠.”
“그게 헌터장들이 고민하는 이유라면 그들도…….”
김지유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돈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거겠죠.”
“납득했다. 하지만 정부에서, 헌터들의 무력 단체 세력이 점점 더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이 클 텐데.”
“정부 역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겠죠. 그사이 헌터들은 돈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고. 결국 정부 입장에서도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 거예요.”
“한국은 어때?”
“한국은 비교적 괜찮아요. 땅이 작은 만큼 치안이 강하니까요. 물론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런 범죄 세력은 던전이 있을 때도 존재했으니까.”
어느새 뒤에 서 있던 이호성에게로 민성의 시선이 향했다.
이호성은 헛기침을 하며 민성의 시선을 피했다.
“이래저래 골치 아픈 상황인 거네.”
김지유는 말없이 쓰게 웃었다.
“그럼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나?”
민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에게서는 귀찮다는 기색이 만연했다.
“한국도 자유롭지 못해요.”
“무슨 뜻이야?”
“한국의 헌터들도 곧 정부의 지원이 약해지게 되면, 외국으로 떠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무력 헌터 단체가 굳건해지면 그때부터는 정부와의 싸움이 시작되겠죠. 정부를 장악하려 들 겁니다. 피할 수 없는 과정일 거예요.”
민성은 턱을 괴고서 짧은 숨을 뱉었다.
김지유가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일반 현대 기술의 화력으로는 헌터들을 잡을 수가 없어요.”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헌터도 그렇다고?”
“네. 그들의 취약점은 ‘오러’에 의한 피해예요.”
“그럼 정부 무력 헌터 단체와 싸움이 안 되잖아?”
“정부가 그들과의 싸우기 위해서는 마법 전투 장비를 갖춰야 할 테고, 던전이 사라졌으니, 그에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일 겁니다. 마법 장비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세계적인 반란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네.”
“내가 있음에도?”
김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겐 돈이 필요하니까요.”
민성은 답답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야?”
민성이 짜증이 배여 든 눈으로 김지유를 보며 물었다.
“그건 제 주관적인 생각이에요. 앞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래도 괜찮아요?”
“결정은 내가 한다. 의견만 내 봐.”
김지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시선을 들어 민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보는 해답은, 민성 씨가 헌터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거예요.”
“어떻게?”
“각국의 정상을 불러서, 그들에게 헌터들의 일자리를 창출시키도록 하고 그 의견에 반하는 자는 압박해야겠죠. 민성 씨의 능력으로.”
민성은 웃었다.
“생각보다 꽤 거친데.”
“칭찬인가요?”
민성은 김지유를 빤히 보았다.
처음 탑이 나타났을 때, 김지유가 세계 각국의 헌터들에게 휘둘릴 때만 해도 그저 겁 많은 여자아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리더의 자질을 갖고 있다.
그가 어째서, 어린나이에 총군주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지, 이제 와 조금은 납득이 갔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미 돈 맛을 본 헌터들이 끝까지 저항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인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저항할 겁니다. 하지만 바로 잡아야죠. 민성 씨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아직 저녁 전인가?”
민성의 물음에 김지유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미소 지었다.
“네, 아직이요.”
“이따가 같이 저녁이나 먹지. 그때까지 세계 대통령과 헌터장들에 대한 데이터 좀 가지고 와. 식사하면서 브리핑 좀 들어야겠어. 가능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이따 보는 걸로.”
민성이 커피 잔을 들었다가 이호성을 보았다.
“이게 최고의 루왁 커피인가?”
“나쁘진 않습니다만 최고라고는 할 수가 없는 게, 아무래도 현지에서 건너오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인도네시아였지?”
“그렇습니다.”
“워프 게이트는 여전히 정상 작동하고 있나?”
민성이 김지유를 보며 물었다.
“그럼요.”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이호성에게로 넘겼다.
“그럼 저녁에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해.”
김지유가 목례를 올리고 물러갔다.
총군주인 김지유가 나가고, 이호성이 주방에서 잔을 씻은 민성에게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로는 뭐가 좋겠어?”
“한식은 드셨고, 저녁이기도 하니까 스테이크 코스에 와인은 어떠십니까? 아무래도 총군주와의 자리이다 보니 분위기도 괜찮을 것 같고요.”
“좋네. 예약해 둬.”
“가게를 통으로 빌릴까요? 중요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잖아요.”
“그럴 필요 없어. 타인의 식사를 방해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누가 그 얘기를 듣는다고 해도 누구라도 내 결정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알지 않나?”
이호성이 위를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네요. 그럼 예약해 두겠습니다. 저, 그런데 헌터님.”
“왜?”
민성이 최고급 오디오를 켜고, 노래 목록을 보면서 되물었다.
“그…… 이런 얘기 드리기가 좀 뭐하긴 한데요.”
“본론을 얘기해. 질질 끌지 말고.”
“음……. 제가 사실 헌터님 보좌 하면서 월급이 없잖아요. 그래서 생활이 좀 힘들고 해서.”
“아, 그랬지 참.”
민성이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돈 필요해?”
“필요하죠. 저도 뭐 사 먹고 사 입고 그렇게 생활은 해야죠. 사실 이미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이호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차피 내 계좌 네가 관리하고 있지 않나?”
“네. 뭐 그렇죠.”
“안 빼 썼어?”
이호성이 진짜 짜증 난다는 듯이 얼굴을 오만상 찌푸렸다.
“제가 그걸 어떻게 써요.”
“계좌 적어서 가져와.”
“그럼 오늘부터 월급 주시는 겁니까?”
“계좌 번호 적어서 가져오라고.”
“지금이요?”
“그래.”
이호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겠습니다.”
방에 들어갔던 이호성이 종이에 계좌를 적어서 가져다주었다.
민성은 그걸 들고 일어섰다.
“내 통장에 얼마 있냐?”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조 단위로 있죠.”
민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호성을 보았다.
“뭐 따로 하고 싶은 거 있어? 식당을 열고 싶다든지.”
“그렇긴 한데요. 일단은 헌터님이 시키실 일 많잖아요? 할 일 없어지면, 그때 제가 돈 벌어서 차리든 해야죠 뭐.”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나갔다 온다. 지갑 좀 줘 봐. 차키랑.”
이호성이 재빨리 지갑과 차키를 내와서 넘겼다.
민성은 그것을 들고서 집을 나섰다.
바가지와 레폰과 쏠이 민성을 뒤따랐다.
이호성은 집을 나서는 민성을 보며 연이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조수석에 지갑과 차키를 던지고, 시동을 걸었다.
바가지와 쏠 그리고 레폰이 오랜만에 하는 외출에 신이 난 듯 뒷좌석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놀았다.
바가지는 마계어로 레폰과 대화를 나누었고, 쏠은 연신 와아? 와아? 하고 엉겨 붙었다.
와르르르릉!
최고급 슈퍼 카가 강력한 배기음을 냈다.
그러자 뒷좌석의 바가지와 레폰과 쏠이 재밌다는 듯 자지러듯이 웃었다.
민성은 곧장 차를 출발시키면서 총군주인 김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민성 씨.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 뭐든지 말씀하세요.
“이호성 말이야.”
- 호성 씨요?
“그동안 돈을 안 받고 일을 했거든. 생활이 좀 힘든가봐.”
- 아, 정말요?
웃음소리가 들렸다.
민성은 뒷좌석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바가지와 레폰 그리고 쏠을 한 번 노려보았다.
바가지와 레폰 그리고 쏠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민성은 다시 통화를 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월급으로 얼마 정도가 적당해?”
- 음…… 글쎄요. 일단 당장 급하신 거예요?”
“지금 은행 가는 중이야. 대충 얘기해 봐.”
- 직접이요?
김지유가 못 믿겠다는 듯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민성은 살짝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꽤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내가 해 주는 게 맞지 않나. 뭐 그런…….”
- 와아! 호성 씨 아마 엄청 감동받을 거예요! 민성 씨도 많이 변했네요. 예전엔 그렇게 차가우셨는데.
또다시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조금 크게 웃는다.
민성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시끄럽고, 얼마가 적당할지나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