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324화 (32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24화>

이호성은 눈으로 민성을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돌아오다니.

물론 마계로 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만, 어쨌든 이렇듯 여러 가지 감정이 밀어닥치는 걸 보면 아마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드디어 이 무겁고도 무거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등에 날개가 돋아난 것처럼이나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우냐?”

민성이 짜증 난다는 듯이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솔직히 좀 힘들었거든요.”

“징징대지 마라. 죽여 버리기 전에.”

민성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호성의 눈에서 흐르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예.”

“밥 먹자.”

민성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가지와 레폰이 자신의 주인이 왔음을 알아챘다.

바가지가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리를 흔들어 대며 달려왔고, 레폰도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왔으며, 정원에서 살다시피 하던 쏠도 풀잎을 묻힌 채로 뛰어왔다.

바가지와 레폰, 그리고 쏠 이렇게 셋이 민성에게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민성은 그 셋을 몸에 붙인 채로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물통을 꺼냈다.

벌컥! 벌컥! 벌컥!

목울대가 세차게 움직이도록 물을 마셨다.

마계에서 돌아와 먹는 맑은 물은 놀라우리만큼 시원하고 맛있었다.

마치 몸 안에 쌓인 먼지가 싹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개운함이었다.

“후우.”

민성이 감탄이 섞인 숨을 짧게 뱉었을 때 이호성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특별히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이호성이 한층 밝아진 얼굴로 물었다.

“한식으로 아무거나.”

민성은 물통을 내려놓고, 바가지와 레폰 그리고 쏠을 몸에 달고서 거실로 갔다.

이호성이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민성은 소파에 몸을 묻고서 눈을 감았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바가지와 레폰 그리고 쏠도 안정된 상태로 민성의 옆에 낮잠을 즐겼다.

* * *

“헌터님 식사 준비됐습니다.”

이호성의 말에 민성은 눈을 뜨고 일어났다.

마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뱃속에서는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흥분하지는 않는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곧 열매를 맺은 과실처럼 아름다운 결과를 선물할 것이니까.

마계에 다녀온 만큼 굶주림은 상당했다. 먹다가 안 먹게 됐으니, 그 배고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민성은 기대감을 품고서 식탁 앞에 앉았다.

이호성이 준비한 한식은 굉장히 화려했다.

더덕구이 양념이 메인이었고, 그 옆으로는 떡갈비와 각종 반찬들이 있었는데 그 종이 꽤 많았다.

언제 이걸 다 만들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민성은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밥을 먼저 한 술 뜯고, 곧장 젓가락은 메인 메뉴인 양념된 더덕구이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양념 더덕구이를 씹었다.

더덕구이를 먹자마자 민성은 굉장히 훌륭한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더덕 그 자체로도 아주 향긋했으며 양념도 아주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더덕구이가 가진 정갈함은 한식의 위대함을 알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민성의 젓가락은 쉴 수 없었다.

워낙 반찬이 많았기 때문이다.

민성의 젓가락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가오리찜이다.

아주 부드럽게 떠졌고, 그 식감 또한 보기만 해도 한 없이 부드러울 것 같았는데 역시나였다.

입안에 넣자마자 가볍게 씹혔고, 가오리는 이내 그대로 사라졌다.

다음으로는 갓 만들어진 듯한 빨간 겉절이 김치를 쌀밥 위에 올렸다.

민성은 그것을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일종의 아주 커다란 감동이 물밀듯이 가슴 속으로 밀려들었다.

사실 마계로 갈 때, 어느 정도 각오는 했다.

어쩌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각오.

하지만 정말 돌아오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쌀밥 위에 올린 김치가 전해 주는 감동은 대단했다.

김치로 쌀밥을 싸서 재빨리 입으로 쏙 가져왔다.

우물우물, 아삭아삭.

향긋한 배추 향과 양념된 고춧가루가 주는 매콤한 냄새는 한국이 가진 극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파와 양파를 같이 집어, 다시 빨간 더덕구이를 먹는다.

아작아작 씹히는 더덕구이는 먹어도 먹어도 그 향긋함이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고사리와 고추 장아찌.

그리고 진한 미역국까지.

한식의 깊이 있는 그 맛에, 민성은 한 그릇을 더 먹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오랜만에 먹는 이호성의 음식은 최고였다.

완숙미가 붙었다고 해야 할까?

이호성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좋아진 듯했다.

* * *

식사를 마치고 티타임을 가지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을 때, 조용히 이호성이 따라붙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던 민성은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이호성을 보고 입을 열었다.

“보고해.”

민성이 말했다.

그리고 이호성은 민성이 마계로 떠나 있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보고를 올렸다.

사실 이호성은 그동안 언제든 보고를 올릴 수 있도록 매일 밤 일기를 쓰는 것처럼 강민성이 돌아왔을 경우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때문에 막힘없이 보고를 올릴 수 있었다.

간단한 내용이라도 준비를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만큼 이호성의 보고는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했다.

모든 보고를 전해 듣고,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긴장을 놓는 한숨을 몰래 뱉었다.

“저, 헌터님.”

민성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호로록 마시며 벤치에 앉았다.

“앉아.”

민성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민성은 딱히 더 권하지 않았다.

“마계에 대해서 묻고 싶은 거지?”

이호성이 눈을 반짝였다.

민성은 이호성에게 별 달리 거창할 것도 없는, 루키페르와 헬카드를 쓰러트린 것에 대해 설명했다.

다만 받아들이는 이호성의 반응은 꽤 격렬했다.

“대, 대, 대, 대주신의 힘을 받았다고요?”

“그래. 지금은 없지만.”

민성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 그렇군요.”

이호성의 동공이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민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마치 고대의 신화나 다름없는 얘기 같았으니까.

그게 실제였으니, 놀라울 수밖에.

“장웅은?”

“아, 헌터님 돌아오셨다고 연락 드렸으니까 늦은 오후쯤에는 들어올 겁니다.”

“알았어.”

“그런데, 에단이 말했던 것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범죄에 가담하게 될 헌터들이 많아질 거란 얘기요.”

“그게 왜?”

“뭔가 바로 잡을 방법이 있으십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예?”

“너. 그리고 세계 헌터장들이 할 일이지.”

이호성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제가요?”

“그럼 내가?”

“그……렇죠. 뭐, 제가 하긴 해야 하는데. 그래도 결정은 헌터님이 내려 주시는 거죠?”

“어떤 결정?”

“사안에 대한 결정이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성을 보고 이호성의 얼굴이 노래졌다.

“당연히 해 주셔야 합니다. 사실 헌터님이 없는 동안, 큰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웠는데요. 그 정도 책임은 헌터님이 맡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요.”

“그게 그렇게 되나? 귀찮은데.”

민성이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무조건 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말을 듣죠. 대리인이고 나발이고 제 말은 잘 안 들어요. 그리고 차라리 무식한 저보다는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가 훨씬…….”

“걘 안 돼.”

“어째서요?”

이호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민성을 보며 되물었다.

“똑똑하지만 행동력이 없는 인물보다는, 무식하지만 행동력이 있는 네가 났다는 게 내 판단이다.”

“뭐 좋게 봐주셔서 고맙…… 좋게 봐준 건가? 아니, 어쨌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던전도 사라졌고 몬스터도 없으니 일자리를 잃은 헌터들이 범죄에 가담하게 될 텐데요.”

“고민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네가 하는 거지. 네가 말했다시피 난 결정을 내릴 뿐이다.”

“그걸 굳이 제가요? 중앙 헌터 기관 있잖아요. 헌터님 말씀 하나면 걔네들이 알아서 잘 하지 않을까요?”

“중앙 기관은 믿을 수 없다. 거기라고 부패가 없을까. 그러니까 네가 잘 알아서 해.”

“저, 그럼 헌터님. 돈도 많으신데 사람 좀 붙여 주세요. 저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똑똑한 사람들 좀 있는 게 낫잖아요.”

“그건 알아서 하고 내 주변을 시끄럽게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 단, 사람은 똑바로 뽑아라.”

“감사합니다.”

“할 말 더 남았나?”

“……아닙니다.”

“좀 쉬어야겠다.”

이호성은 꾸벅 인사를 하고 거실로 돌아왔다.

소파에 철퍽 앉은 이호성은 양손으로 얼굴을 주무르듯이 움켜잡았다.

강민성이 돌아왔으니 이제 편하게 음식점이나 차려 볼까 했던 자신의 기대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가 돌아왔으니, 이제 자신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골치 아픈 건 똑똑한 사람들을 고용해서 그들에게 시키면 된다.

그래.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앙 헌터기관의 총군주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 * *

“믿을 만한 똑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요?”

“네. 헌터들이 범죄에 가담될 경우, 이에 대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만한 아이들로.”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그건 민성 씨의 생각인가요?”

“아니요. 총군주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중앙 기관은 믿을 수가 없으시대요. 그래서 저 보고 알아서 하라고. 후…….”

이호성이 머리를 아래로 축 늘어트리며 땅이 꺼질 듯 한숨 쉬었다.

김지유는 그런 이호성을 보며 작게 웃었다.

“호성 씨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그렇지 않아요?”

“하하, 전혀 위로가 되질 않네요.”

이호성이 숙였던 얼굴을 들자 김지유는 깜짝 놀랐다.

이호성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아주 진하게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흡연실 좀 갔다 올게요.”

이호성이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대며 천천히 일어났을 때, 김지유의 전화가 울렸다.

김지유가 전화를 받았고,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이호성은 그런 김지유를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김지유가 전화를 끊은 후, 그녀는 이호성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에단의 말이 맞았네요.”

“……헌터들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던가요?”

김지유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은 이 순간 불현듯 에단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력한 적’보다 무서운 것은, 사라지지 않는 악(惡)이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