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23화>
헬카드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아주 작은 흔적도 없었다.
그저 멸망한 세계와 같은 마계의 땅이 보여 주는 광경만이, 그가 잠시 전까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휘이이!
마계의 땅 위로, 불씨를 머금은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그 불쾌한 바람을 맞으며 민성은 고요한 마계의 땅 위에 서서 침묵을 맞이했다.
모든 게 끝났다.
벨드를 소멸시켜 민성 자신이 마왕이 되었고, 주신들이 봉인에서 풀어낸 전대 마왕 헬카드까지도 소멸시켰다.
민성은 마계의 땅을 메마른 눈으로 훑어보았다.
마계의 땅은 더 이상 생물체가 살지 않는 곳 같았다.
모든 게 끝난 지금, 민성은 딱히 기대했던 감정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더 쓸쓸한 감각만이 공허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어쩌면 이토록이나 치열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마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마계가 없었다면, 자신은 아마 훨씬 더 일찍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기 위한 긴장과 자극이 지금 이렇듯 자신을 살아 있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끔찍한 기억이었다.
가능하다면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마계의 그림자는 늘 자신의 등 뒤로 마치 질병처럼 따라 붙었다.
질병이라는 건, 원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적인 문제일 테니까.
민성은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모든 게 끝났다.
이윽고 눈을 천천히 떴을 때, 민성의 시야에 뭔가가 보였다.
마치 지렁이와 같은 것이 깨진 땅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민성은 그것을 보고 깨달았다.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완전한 끝을 위해서는, 마계라는 별을 없애야만 한다.
이 별을 제거하고, 인간계로 돌아간다.
그렇게 마음먹은 민성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새하얀 빛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창의 형태를 만들었다.
민성이 무정한 눈으로, 저 벌레와 함께 이 마계를 끝장내기 위해 손끝에 만들어 낸 빛의 창을 내려찍었다.
민성의 손끝에서 대주신의 힘과 권능이 깃든 마기의 힘이 폭발적으로 용솟음쳤다.
그리고 빛의 창이 땅을 내려찍기 직전.
“……?”
민성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빛의 창은 사라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힘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손끝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민성은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 마계의 검은 하늘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대주신의 힘은 사라져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진 않았으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주신은 마계를 멸하는 것을 원치 않는 듯했다.
어째서?
그 의문이 아주 오랫동안 꼬리를 물고 민성의 머릿속에 남았다.
하지만 민성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마계라는 지옥은 굳이 필요 없는 악의 땅이 아닌가?
대주신은 이 악의 땅에서도 희망을 갖고 있다는 건가?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언제 느꼈을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분노라는 감정이 민성의 가슴 안에서 열화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대주신이라는 존재는 닿을 수 없는 존재였으며 아득하고도 먼 존재였다.
민성은 불쾌감이 번진 얼굴로 마계를 훑어보았다.
악마들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척박한 땅.
왜 이 세계가 필요한 것인가?
마계를 멸함으로써 인간계에도 영향이 미치는 건가?
이 마계가 존재하기에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주신이 마계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른 것인가?
알 수 없었다.
직접 대주신을 만나 물어보지 않는 이상, 대답을 듣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 일이었다.
민성은 시선을 내리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 * *
이른 아침, 이호성은 토스트와 커피를 준비해서 소파에 앉았다.
일어나서 보니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통유리에 빗물이 묻어나는 걸 보며 토스트와 커피를 먹었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던전도 사라졌고, 몬스터도 사라졌다.
만약 강민성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인간계는 어떻게 될까?
멸망하는 건가?
강민성.
그가 없으면 인간계는 멸망한다.
이것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단순한 결괏값.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호성은 민성이 반드시 돌아온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오랫동안 그와 함께 살았던 이호성이었다.
같은 헌터로서 지켜본 강민성은 이미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던 사내가 아닌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돌아온다면, 헌터라는 직업은 어떻게 될까?
사장되는 걸까?
그럼 자신은 뭘 해야 하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요리.
이호성은 토스트를 물면서 피식 웃었다.
요리라니.
자신의 인생에 있어 전혀 접점이 없는 직업일 거라 생각했는데 헌터를 은퇴하고 요리사를 하게 된다라.
이호성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딱히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이호성은 눈을 번쩍 떴다.
강민성이 돌아온 게 아닐까?
이호성은 황급히 토스트와 커피를 내려놓고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바깥에는 우비를 입고 있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미국의 헌터장 에단이었다.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겠소?”
얼굴이 부어올라 있는 에단이 늑대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호성은 너무 뜻밖이라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제 집이 아니라 함부로 누구를 들이기는 그렇지만…….”
이호성은 비가 쏟아지는 바깥을 보고 한쪽 눈살을 구겼다.
“우선 들어오세요.”
에단이 신발장에서 우비를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이호성이 물었고, 에단은 고개를 저었다.
“아침 식사 중이어서. 먹으면서 듣죠.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여기까지.”
이호성이 질문을 던지고 토스트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에단을 보는 이호성의 눈빛은 당연히 호의적일 리 없었다.
“미리 말하지만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니오.”
“그럼?”
이호성이 본론을 얘기하라는 듯 날카로운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묻고 싶소.”
에단이 시선을 들어 이호성의 눈을 정면으로 보았다.
“정말로 전 세계의 헌터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 보는 거요?”
이호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확히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뭡니까?”
“던전은 사라졌고, 몬스터도 사라졌지. 하지만 헌터들은 남아 있소. 전 세계에.”
“그래서?”
“그들이 앞으로 뭘 할 거라 생각하는 거요?”
“…….”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몬스터를 잡는 것. 그게 그들의 직업이었지. 하지만 몬스터가 사라졌으니. 세상은 훨씬 더 혼탁해질 거요.”
“그 말은, 그들이 범죄에 가담하게 될 거다?”
“물론이오. 마약상들이 판을 치겠지.”
“그들을 잡는 게 헌터장들 당신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에단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비웃음에 가까웠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지. 돈을 벌기 위해서는 헌터의 부패는 끝이 없을 거요.”
“나라에서 재정적으로 헌터들에게 지원을…….”
“그런 합리적인 판단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에단이 이호성을 진지하고 무거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이호성이 침묵을 지키자 에단이 말을 이었다.
“설령 범죄를 저지르는 헌터들을 닥치는 대로 잡는다고 칩시다. 그럼 얼마 되지 않는 헌터들이 줄줄이 죽어 나갈 텐데. 그럼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그래서 이렇게 물으러 온 겁니다. 대책을 가지고서, 우리를 압박하는 것인지.”
‘우리’라는 것이 전 세계 헌터장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호성은 머리가 무거워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저 통제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세상은 그렇게 간단히 돌아가지 않는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
이호성은 골치가 아파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느 덧 커피는 식었고, 입맛은 뚝 떨어졌다.
토스트는 쳐다도 보기 싫었다.
생각해 보면, 몬스터나 던전이 있을 때도 헌터들의 범죄는 있었다.
자신의 다이아몬드 클랜이 그랬듯이.
그런데 던전과 몬스터가 사라진 마당에, 이 세계에 남은 헌터들이 할 일이란?
당연히 범죄에 악용되고,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지금 듣게 된 에단의 말은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현 위치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 때문에 당장의 헌터장들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스트레스가 머릿속을 쨍쨍 울려 댔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중앙 기관의 헌터장과 얘기를 나눠 보고 답변하겠습니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약속을 잡지 않고 불쑥 찾아온 점, 사과드리겠소.”
에단은 목례를 하고 돌아갔다.
그가 나간 후, 이호성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파에 몸을 묻으면서 긴 한숨을 뱉어 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이호성은 힘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 *
다음 날, 이호성은 중앙 헌터 기관을 찾아갔다.
김지유에게 에단이 찾아온 사실과 그와 나눈 대화에 대해 얘기했다.
김지유는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부터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항도 아니며, 그렇기에 중기적으로 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그래도 이호성은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런 쪽으로 경험이 없다 보니 당장 해결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있었는데, 중기적으로 추이를 지켜보며 신중히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김지유의 말은 꽤 심리적으로 도움이 됐다.
집 앞으로 돌아온 이호성은 담배를 뻑뻑 피우며 10년은 훌쩍 늙어 버린 것 같은 얼굴로 연거푸 땅이 꺼질 듯이 한숨 쉬었다.
동네 뒷골목 파락호 생활이나 하다가 강민성을 따라다닌 게 전부였다.
그랬던 자신이 이렇듯 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단순히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호성을 괴롭히기에 아주 충분한 조건이었다.
“하……. 도망치고 싶다.”
이호성은 그렇게 말하며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순간,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엄청 빠른 속도로 쨍쨍한 햇빛이 뜨더니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습관처럼 땅이 꺼질 듯 한숨 쉬며, 우산을 접었을 때였다.
“밥 먹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땅을 보며 한숨을 뱉었던 이호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옆을 보았다.
강민성이 이호성을 지나쳐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허, 헌터님.”
민성이 걸음을 멈추고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밥 먹자고.”
민성이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