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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22화 (32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22화>

이호성은 그를 지나쳐 회의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이호성의 옆으로 김지유가 섰다.

둘은 말없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문이 열린 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다시 문이 닫히고.

이호성은 참았던 숨을 푸우 내뱉었다.

“아……. 왠지 사고를 친 것 같은 느낌이.”

이호성이 벽을 붙잡고 머리를 숙인 채로 좌절한 듯 우울한 기운을 마구마구 뿜어냈다.

김지유는 이호성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보통의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들이 말을 듣지 않았을 테니까.”

“정말 잘한 거겠죠?”

이호성이 기대가 잔뜩 담긴 눈으로 김지유를 보며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김지유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사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이호성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를 지나 지상 주차장으로 나왔고, 그 옆을 김지유가 따랐다.

“잘한 건지 모르겠네요, 정말.”

이호성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도저히 제 능력 밖이네요. 근본이 이런 거라, 하하.”

여전히 걱정이 되는 듯, 이호성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잘한 거라니까요. 어차피 헌터장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화가 될 사람들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최정상의 위치에서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었으니까.”

이호성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앞으로 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겠네요. 그런데 만약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말을 안 듣고 강하게 나온다면…….”

김지유는 말을 아꼈다.

이호성은 눈을 낮게 가라앉혔다.

“그때까지 헌터님이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김지유가 싱긋 웃음 지었다.

“우리 밥 먹으러 갈까요?”

이호성은 김지유를 빤히 보았다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치 너무 부담 갖지 말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꽤 위로가 되었다.

“밥 먹으러 가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호성이 주차된 차량으로 가며 말했다.

김지유는 무거운 표정으로 헌터장들이 있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생각이 많은 눈을 하던 그녀는 이내 조용히 이호성의 차에 올라탔다.

“중화요리 어떠세요?”

“좋죠.”

이호성의 메뉴 제안에 김지유가 흔쾌히 수락했다.

이호성은 내비게이션도 찍지 않고 곧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 * *

이호성이 떠난 뒤, 테이블의 잔해가 흩어져 있는 회의장 안에는 각국의 헌터장들이 나라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정적 속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가, 헌터장들의 원망이 담긴 시선이 하나둘 에단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을 밀어붙인 건 누가 뭐래도 미국 헌터장인 에단이었다.

물론 동조한 자신들도 한심한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 이 공간 안에서 헌터장들의 안 좋은 감정은 에단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한 그들로서는 당장 누구든 탓할 상대가 필요했던 탓이다.

에단은 얼굴이 부어오른 채로, 헌터장들의 시선을 받다가 터진 입술을 열었다.

“우선 돌아가서 차후 대책을…….”

에단의 말이 촉발제가 됐다.

“차후 대책은 무슨 차후 대책입니까?! 여기서 일을 더 벌였다간 정말로 저자가 말한 대로 싹 다 개죽음이라고!”

러시아 헌터장의 호통에 미국 헌터장 에단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자존심만 내세워서 될 일이 아닌 듯합니다. 더욱이 우리끼리 싸워서 좋을 것도 없죠.”

“맞습니다.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우리 세계 헌터 협회는 모두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될 겁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야겠죠.”

다혈질 성격의 러시아 헌터장은 자신이랑 똑같은 감정이었으면서, 뒤로 숨어드는 듯한 헌터장들을 보며 열이 확 차올랐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러시아 헌터장이 회의장을 나갔고, 줄줄이 회의장을 나갔다.

회의장에 홀로 남게 된 에단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초점 없이 허공을 보았다.

* * *

주문한 메뉴가 식탁 위로 올라왔다.

볶음밥과 칠리새우, 그리고 양장피다.

시킨 수로만 보면 둘이서 먹기에는 다소 많은 양일 것 같지만, 워낙 퀄리티가 높고 대신 양이 적은 식당이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많이 드세요.”

“호성 씨도요.”

식사를 시작했다.

볶음밥은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칠리새우 역시 튀김에서 반들반들한 윤기가 마치 광처럼 나고 있었다.

또한 양장피는 엄청난 비주얼이라 두 사람은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다.

양장피는 마치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일 정도였다.

볶음밥은 전혀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기름기의 맛이 입 안에 감도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으며, 칠리 새우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새우의 맛과 칠리소스의 맛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특히 양장피는 너무 화려해서 눈으로 먹고, 입으로 먹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양장피는 통통한 칵테일 새우와 돼지고기, 그리고 각종 야채가 소스와 어우러져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집어 한 번에 먹으니 그야말로 입안에서 굉장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환상적인 양장피와 칠리새우 그리고 볶음밥이 만들어 내는 맛의 향연에 김지유 역시 취한 듯이 식사를 했다.

둘은 거의 대화도 하지 않고, 중화요리에 푹 빠져 식사를 마쳤다.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니, 그제야 음식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맛있네요. 비주얼도 엄청나고요.”

김지유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정말로 만족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민성 씨가 왜 호성 씨의 맛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요?”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김지유가 맛있는 식사에 여전히 기분 좋은 듯 어깨를 으쓱이며 웃을 때, 전화가 울렸다.

김지유는 찻잔을 내려놓고 전화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중앙 기관이었다.

“본관에서 걸려온 전화네요. 잠시만요.”

김지유가 눈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사이 이호성은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상당히 차가운 바깥바람이 뺨을 스쳐가는 게 느껴졌다.

이제 초겨울을 지나 완연히 겨울이다.

이호성은 지금쯤 강민성이 어떤 싸움을 하고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시간이 꽤 걸리는 것 같지만, 마계와 인간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이호성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좀처럼 상상이 가질 않았다.

늘 상상 그 이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호성은 아주 먼 곳을 보는 눈으로 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 * *

“기대 이하인데?”

민성이 헬카드를 보며 말했고, 헬카드는 약이 바짝 오른 얼굴로, 총공세를 펼쳤다.

무시무시한 공격력이 민성에게 쏟아졌으나, 민성은 전혀 표정의 변화 없이 그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 냈다.

육안으로 결코 쫓을 수 없는 물리적 공격과, 예측하기 힘든 마법 공격.

더욱이 그 마법 공격에는 엄청난 마기가 실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헬카드의 공격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민성은 씩씩거리며 서 있는 헬 카드를 보며 핏 하고 웃었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름 이 마계라는 지옥의 제왕으로서 역사를 품은 전대 마왕이라는 자는, 민성의 시야 안에서 참으로 볼품없이 서 있었다.

“너무 긴장감이 없잖아. 마계의 끝을 보기 위해 올라왔는데,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약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민성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 누구보다 마계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게 자신이기도 했지만, 인간이란 신기하게도, 모진 과정을 거쳐 끝을 앞에 두게 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련 같은 것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너무 지독했기 때문에, 어쩌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주 크고, 거대한 벽이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마계의 멸망이 바로 지금 자신의 손끝 앞에 있었다.

그냥 끝내 버리면, 굉장한 허무감이 명치끝으로 파고들 것 같은 불안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헬카드를 보는 민성의 심정은 아주 복잡했다.

물론 풀 수 없는 복잡함은 아니다.

데리고 놀다가 지겨워지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편해질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이렇듯 헬카드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헬카드가 마계의 끝이라니.

뭔가 장대한 클라이맥스를 기대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현실감이 없다는 것은 외려 슬플 정도였다.

왜 슬프냐고 묻는다면, 그동안 자신이 겪어 온 처절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감히 나를 모욕하려 들어? 이 헬카드를?”

마치 귀신불같이 타오르는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헬카드를 보면서 민성은 이제야 자신의 감정에 불씨가 말라 탁한 연기만을 피워 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이 끝도 서서히 지겨워져 가고 있었다.

본래, 인간은 인내력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헬카드라는 마계의 끝이 이제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민성은 이제야말로 끝을 낼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것은 민성뿐만이 아니라 헬카드도 느낀 듯했다.

헬카드의 눈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긴장과 불안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헬카드의 모습은, 서글플 정도로 나약했다.

아주 강대한 힘이지만, 대주신의 힘을 이어받은 자신 앞에서 헬카드는 그저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는 범죄자일 뿐이었다.

“이제 그만 가라.”

민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헬카드는 잠시 분노를 지울 정도로 멍해진 표정을 지었다가, 곧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끌어 올렸다.

그래 봐야 민성의 눈에는 죽기 전에 발악하는 처절하고, 추악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키아아아아악!”

헬카드가 소름 끼치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마기를 쏟아 냈다.

마치 고슴도치처럼 수백 다발의 마기가 헬카드의 몸에서 가시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도 헬카드의 힘에 의한 권능의 마기가 빈틈없이 날아들었다.

민성은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빛은 검은빛의 마기를 한순간에 증발시켰고, 그 하얀빛은 헬카드가 발출한 마기뿐 아니라, 헬카드까지도 집어삼켰다.

번-쩍!

새하얀 빛에 의해 헬카드의 전신이 쨍 하고 빛을 머금었다.

“고작해야 인간 놈이, 어째서 나 헬카드를……!”

헬카드는 거창한 유언 같은 건 남기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악인들이 내뱉는 흔한 마지막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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