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20화>
* * *
미국의 헌터장 에단은 헛웃음이 나왔다.
한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든 헌터장은 한국에 모이라고 강민성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호성이라는 작자가 명령한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처음 회의장에 모였을 때 할 것이지 이제 와서 불러 모으는 건 대체 뭐 하자는 건가?
“대리인 새끼가 천지 모르고 설쳐 대기는.”
에단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것은 연락을 받은 다른 헌터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이호성이 강민성의 대리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이호성을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낱 일개 다이아몬드 클랜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클랜의 클랜장이었던 헌터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불경으로 여기고 목을 베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그런 한심한 작자인 것이다.
그런 작자의 명령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역겹기도 했고, 강민성의 생사마저도 불명확한 상태에서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이 상황이 그들은 몹시 불쾌했다.
때문에 화상 통화를 통해, 헌터장들은 강민성의 신상을 확인하고 움직여도 늦지 않다며, 대부분 한국으로 가는 것을 반대했다.
굳이 이호성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생각이 달랐다.
“한국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스크린에 떠 있는 헌터장들을 향해 에단이 부드럽게 말했다.
헌터장들이 왜 굳이 그 명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에단의 표정은 단호했다.
“명분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상황 아닙니까?”
한국으로 가서 강민성이 실종된 것에 대해 따지고, 이호성을 밀어붙이면,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만약 저쪽에서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이쪽에서도 그 기회를 잃지 않고 강하게 나가면 그만이다.
강민성 쪽에서는 가진 바를 잃을 위험이 큰 반면에 세계 헌터 협회는 그렇지가 않았다.
예컨대 이미지다.
만약 강민성이 살아 있고, 잠시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던 거라면 그가 나타나더라도, 명분이 세계 헌터 협회에 있다면 그는 섣불리 힘으로 압박할 수가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한국 협회는 무력 단체라는 이미지 프레임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시민들은 그 힘에 의해 지배당하고 피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충분히 협상이 가능하리라고 에단은 판단했다.
이쪽이 단체라면, 강민성은 사실상 개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중앙 헌터 기관은 유령에 불과하다.
실제적 힘은 오직 강민성이라는 개인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강민성이 무력 단체라는 이미지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나온다면? 그의 성격상 그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러시아 헌터장의 의견은 그럴듯했다.
만약 러시아 헌터장의 말대로 강민성이 모든 걸 무시하고 무력을 앞세운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럼 그의 뜻대로 휘둘리자는 겁니까?”
에단의 한마디는 육중했다.
죽음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국가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
그 가치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보다는 투쟁하는 것이 훨씬 낫다.
헌터장들은 두려움을 버렸다.
“개인은 결코 세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강민성의 신상 또한 확실하지 않은 바. 한국으로 가서 콧대를 꺾어 놓고 오죠.”
에단의 말에 헌터장들이 동의했다.
그들의 한국으로 갈 준비를 앞두었다.
* * *
김지유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이호성은 그녀가 어떤 의미로 그런 눈빛을 보내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무력에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외려 그 명분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해 오겠죠.”
김지유가 현실을 말했다.
하나 이호성은 피식 웃었다.
“전 강민성 헌터님의 대리인입니다. 헌터님을 모욕하려 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려 줄 뿐입니다.”
이호성은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상태였고, 김지유는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 그저 일이 복잡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 역시 이호성을 응원했다.
부딪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장애물을 넘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호성처럼 행동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결국은 지금 주도권이라는 중심을 두고 싸우는 격이었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세계 헌터 협회에 대한 반감의 이미지가 역으로 강민성 쪽으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뿐이었다.
“도착했네요.”
차가 건물 앞에서 멈춰 서고, 이호성은 김지유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이호성과 김지유는 촬영 세례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호성은 긴장감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화가 나는 만큼 긴장감도 비례해서 올라갔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은 늘 가장 강력한 의지와 전투력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정만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호성은 계속해서 마인드 컨트롤 했다.
이것은 기세 싸움이다.
강민성이 돌아왔을 때, 해야 할 일이 많다면 그건 결국 자신의 무능함과도 직결된다.
그가 돌아왔을 때 처리해야 할 일이 적어야만 한다.
그게 곧 자신의 역할이다.
이호성은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예약해 둔 건물 회의실로 올라가면서 이호성과 김지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김지유 역시 온전히 이번 일을 이호성에게 맡긴다는 뜻이었으니까.
이호성에게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무거운 책임감이 얼굴과 눈에 배여 들어 있었다.
따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호성은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큰 룸의 긴 테이블의 상석으로 걸어가 이호성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단순히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다.
강민성의 가치를 지키는 데 집중할 뿐이다.
이호성은 날카로운 눈으로, 헌터장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예전이라면 쳐다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강민성의 대리인의 자격을 갖춘 이상 그들은 모두 자신의 발아래에 위치한 자들이며, 강민성을 대신해 전 세계 헌터를 장악할 수 있는 최고의 헌터여야만 한다.
“따뜻한 차 한 잔 드릴까요?”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이호성은 그녀에게 가볍게 미소 지었다.
“차가운 냉수 한 잔 부탁드립니다.”
직원이 목례를 하고 곧바로 냉수 한 잔을 내왔다.
이호성은 직원이 가져다준 냉수를 마시며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 했다.
딱 정시에 맞춰 왔는데, 그들은 약속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호성이 냉수를 마시고, 5분, 그리고 10분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15분이 지났을 때야 한두 명씩 헌터장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못마땅한 표정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착석했다.
이호성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자리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약 40분이 흘렀을 때가 되어서야 마지막으로 에단이 나타났다.
그때까지 헌터장들은 이호성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시시한 잡담들을 떠들어 댔다.
에단이 도착하고 나서야 헌터장들은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이호성은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으면서 헌터장들을 훑어보았다.
그렇게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호전적인 성격의 러시아 헌터장이 이호성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바쁜 사람들을 여기 한국까지 불렀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겠습니다.”
어서 본론을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면서 러시아 헌터장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헌터장들은 그런 이호성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미간을 구부리고 혹은 눈빛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호성은 그런 헌터장들을 보며 웃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답변할 수 있는 분들은 답변해 주시길 바랍니다.”
“…….”
헌터장들이 여전히 불쾌감을 드러내는 얼굴로 이호성을 지켜보았다.
“뭘 믿고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겁니까?”
이호성의 물음에 헌터장들이 피식거리거나 쿡쿡 웃음을 흘렸다.
러시아 헌터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이호성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강민성 헌터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뉴스를 통해 들어 보셨을 거고. 이쪽에서 물어봅시다. 강민성 헌터는 어디로 사라진 겁니까? 그리고 반대로 당신은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설쳐 대는 건지 묻고 싶군요.”
러시아 헌터장의 말을 들은 이호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민성 헌터님에 대한 정보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극비니까. 그보다 여기 헌터장님들이 착각하고 있는데. 알고는 계십니까?”
헌터장들이 이호성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묻는 것 같은 눈빛을 보냈다.
“당신들 다 합쳐도 나한테 안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호성이 턱짓하며 말했다.
헌터장들이 잠시 동요한 듯하다가 이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넘어갈 듯이 웃어 대는 헌터장들을 이호성은 빤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어요. 하나는 함부로 강민성 헌터님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려 했다는 점. 그리고 감히 강민성 헌터님을 경계하고 건드리려 했다는 점.”
이호성의 눈빛이 낮게 내려앉았다.
“헌터님의 대리인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은데.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어차피 당신들은 너무 약해서 이 세계에 별로 필요가 없잖아?”
웃어대던 헌터장들이 굳은 얼굴로 일제히 이호성을 쏘아 보았다.
이호성은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인의 탑이 나타났을 때도, 마인들이 침공했을 때도. 당신들이 한 일이 뭐가 있죠?”
이호성이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장 사라져도 별로 아쉬울 것 같지가 않은데…….”
김지유가 불안한 표정으로 이호성을 보았고, 에단은 비웃었다.
“같잖은 협박이로군. 강민성이 없어도 우리를 죽일 수 있다고 협박하는 건가?”
에단이 이호성에게 살기를 담은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이호성은 에단의 시선을 맞받으며 웃었다.
“죽이는 건 일도 아닌데, 혹시나 나중에 쓸모가 있을까봐 고민이 되는 것뿐.”
“설령 힘이 있다 하더라도, 방금의 그 말은 전 세계 시민들에게 반인류적인 공분을 살 만한 일이라는 걸 모르는 거요?”
에단이 물었다.
이호성은 여전히 에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왜 모르겠습니까? 근데 그거야 내가 그냥 뒤집어쓰면 되는 거지.”
이호성의 그 말에 헌터장들의 얼굴이 일제히 하얗게 굳었다.
이호성이 테이블을 타앙! 내려치며 천천히 일어섰다.
“중요한 건…….”
이호성에게서 지금까지 축적된, 자신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해 버린 압도적인 포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호성이 파랗게 일렁이는 눈으로 헌터장들을 보며 씹듯이 말했다.
“감히 당신들이 강민성 헌터님을 건드렸다는 사실……. 내겐 오직 그게 중요할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