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19화>
아직 완전히 준비가 끝난 건 아니지만, 지금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놈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헬카드는 생각 했다.
다소 이른 감은 있지만, 그렇게 죽기를 자처한다면 그 뜻을 이뤄 주지.
가부좌를 틀고 있던 헬카드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지하에서 땅을 뚫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지상 위로 올라와 허공에 떠오른 헬카드는 북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기를 개방했다.
그러자 마계를 파괴하고 있던 행위가 중단되고 끊이지 않던 땅의 울림이 멎었다.
헬카드의 손바닥에서 검은 검이 생성되어 나왔다.
북서쪽을 보는 헬카드의 눈에서 전투적인 열기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헬카드의 살기가 마계의 땅 전체를 삼킬 듯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 *
이호성은 김지유의 도움을 받아 언론사의 사장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전 세계에 뉴스를 뿌렸다.
국가적 외교 정치에 개입할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세계의 헌터장들이 민성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뉴스가 퍼지자 전 세계의 시민들은 각국 헌터 협회에 대한 분노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민성을 향한 세계인들의 마음은 거의 신앙에 가까웠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이 강민성 쪽으로 확실하게 치우치고, 그에 반해 협회에 대한 감정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자 헌터 협회의 헌터장들 사이에서는 거의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 * *
이호성과 김지유는 함께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TV 뉴스에서는 시민들이 헌터 협회에 대한 반감과, 시위 활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던전이 사라지자, 놀랍게도, 정부에서는 헌터 협회에 대한 이미지를 더 이상 보호해 주지 않았고, 정치적 보호 또한 해 주지 않았다.
“정부 측에서도, 이참에 헌터 협회의 힘을 완전히 가라앉히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호성이 TV를 보며 말했고, 김지유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성 씨가 돌아오게 된다면, 그리고 마계로부터 인간계가 더 이상 위험에 처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은 이상 정부는 헌터 협회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하겠죠.”
“그건 그거대로 좀 문제이지 않을까요?”
김지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역시 헌터 협회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몬스터가 없는 이상, 그건 결국 무력 단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요.”
“흠…….”
이호성은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턱을 괴고서 TV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답은 헌터님에게 있겠네요.”
김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듯 움직이고 있는 거구요.”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이호성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계속 긴장하면서 주시해야 해요.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그래도 분위기가 풀리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방향이니까. 좋게 생각해야죠.”
“그렇네요.”
김지유도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이제 저쪽에서는 어떻게 나올까요?”
이호성이 물었다.
“아마 꽤 머리가 아플 거예요. 언론 쪽을 건드리기도 쉽지 않겠죠. 전 세계 시민들의 반감이 큰 상태이니만큼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도 불안할 테고.”
“결국 액션을 취하기는 할 텐데.”
“일단은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이호성이 TV에 나오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완전히 망했습니다.”
미국의 헌터 협회 회의장에 모여든 각국의 헌터장들이 탄식을 흘렸다.
“이런 식으로 선수를 치고 나올 줄이야.”
“중앙 헌터 기관의 김지유. 분명 그년 수작입니다.”
“중앙 기관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상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었을 리가 없겠죠.”
“그저 호구인 줄 알았는데, 기회가 생기니까 하이에나가 따로 없군!”
헌터장들이 동요했고, 미국 헌터장 에단은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회의장 내부가 시끄럽게 술렁이는 가운데 에단이 돌아섰다.
그리고 그는 상석에 와서 앉아 침묵을 지켰다.
“우리가 먼저 언론을 움직였어야 했는데…….”
러시아 헌터장이 책망이 담긴 시선을 에단에게 던졌다.
언론을 먼저 건드리지 않고 시간을 두자고 제안한 건 에단이었다.
급할 게 없다는 것이 이유였고, 섣부른 움직임은 외려 화를 부른다는 것 역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선수를 치지 못한 관계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불리해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힘을 써서라도 뉴스를 완전히 틀어막고…….”
“그건 안 됩니다. 한국 측에 무력 시위에 대한 명분을 줄 수도 있는 데다가 분명 헌터 협회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가파르게 추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답답한 상황에 대한 헌터장들의 쳇바퀴 도는 얘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에단이 껌 하나를 꺼내 씹으며 테이블을 터치했다.
그러자 테이블에 스크린이 나타났다.
에단이 한 번 더 터치했고, 테이블 스크린에 정보가 기입되어 있는 페이지들이 나타났다.
각국의 헌터장들이 스크린에 떠 있는 정보를 보고 점점 표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이럴 수가.”
“그래서였군.”
“역시 에단 님입니다!”
스크린에 나타난 정보들을 보고 헌터장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스크린에 나타난 정보는 강민성이 실종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료였다.
최근 들어 강민성의 노출이 완전히 차단되었고, 그에 의혹을 품은 에단은 최첨단 첨단 장비를 사용해 민성을 찾았으나 세계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자료는 아주 분명했고, 이는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하게 만들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강민성이 실종되었고, 한국 측은 사라진 강민성을 대신해 이호성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연 이 사실이 세간에 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에단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각 헌터장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아주 볼 만하겠군요.”
“인간의 마음에 불이 번지는 것도 빠르지만, 식는 것도 순식간이죠.”
“이거라면 가장 완벽한 언론 플레이가 될 겁니다.”
헌터장들이 마치 파티장에 온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 헌터장이 에단을 직시했다.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러시아 헌터장이 물었다.
“그대들의 동의를 얻는다면, 언제든지.”
에단이 손을 들어 보이며 거만하게 웃었다.
“동의는 거수로 결정하죠.”
러시아 헌터장이 먼저 손을 들면서 말했다.
다른 헌터장들이 즉시 손을 따라 들었다.
에단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블을 한 번 더 터치하자, 명령이 떨어졌다는 글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이 정보가 각 언론사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민성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무너지게 될 겁니다.”
헌터장들이 근심이 싹 사라진 표정으로 웃으며 스크린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한 헌터장이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입을 열었고, 에단을 포함한 헌터장들의 시선이 한 헌터장에게로 향했다.
“강민성이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가 그 자리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최고의 상황 아닙니까?”
“그리고 이미 흐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요.”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라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프리카 헌터장이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가 돌아온다면?”
그 물음에 웃고 떠들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변했다.
이에 에단이 입을 열었다.
“지나친 언론 공작은 좋지 않을 거요. 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계산하고 움직여야 할 테니. 불만 지펴 놓고 빠져 있는 것만으로도.”
에단이 옅게 미소 지었다.
“충분할 겁니다.”
에단의 그러한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전 세계 언론에서 강민성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했고, 이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건 당연히 빠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쓰나미에 휩쓸려 가듯 강민성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좌절했으며,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그러한 혼란이 시작되자마자 전 세계 헌터 협회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 * *
- 호성 씨! 큰일이에요.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로부터 받은 전화에서 가장 먼저 들은 소리였다.
이호성은 가슴에서 불안감이 솟구쳤다.
“무슨 일이에요?”
잠시 후 대답을 듣게 된 이호성은 일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전 세계 헌터 협회 측에서 강민성의 실종에 대한 얘기를 흘렸고, 그 사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으며, 시민들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붉어지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었으며, 앞으로의 활동에도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호성은 잊지 않았다.
자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강민성의 대리인의 자격을 부여받았음을.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절대 대리인의 가치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되는 하나는 만약 헌터님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호성은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과연 헌터님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정리하셨을까?
아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까?
아니면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것일까?
생각에 생각을 더해 본 결과, 결정이 내려졌다.
헌터님이라면 분명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 명령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언제나 자신은 명령 앞에 역할을 다하려 노력했다.
이번 역시 다르지 않다.
이호성은 눈을 떴다.
“총군주님.”
- 네.
“전 세계 헌터장들 지금 당장 한국으로 모이라고 전해주세요. 만약 이 과정에서 엉뚱한 짓을 벌인다면.”
이호성의 눈에서 한기가 흘러 나왔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도 전해 주셔야 합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알겠어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전화는 끊어졌다.
이호성은 숨을 짧게 뱉으며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감히 누구를 상대로 설쳐 대는 거야.”
이호성은 감정을 담아 주먹을 콰득 움켜쥐었다.
“생각을 잘못해도 한참 잘못했다는 걸 알려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