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16화>
한국 다음으로 미국의 취재진이 질문을 이었다.
“강민성 씨가 전혀 외부로 노출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인데, 신변의 문제가 있거나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닌지 의혹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호성은 헛기침을 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이것 역시 예상한 질문이었다.
단지 가볍게 대답하는 것보다는 무게감을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잠깐 시간을 가졌을 뿐이다.
“저희 헌터님께서는 그동안 세계를 지키기 위한 전투를 이어 오셨습니다. 피로도가 상당히 높은 상태이며 휴식을 필요로 하는 바, 외부적 요인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것이니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취재진들은 모두 납득한 표정이었다.
전 세계에서 민성이 홀로 얼마나 엄청난 전투를 해 왔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호성은 그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꽤 압박감이 있거나 부담스러운 자리가 될 것 같았으나 민성이 현재 마계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인지 분위기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꽤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가 잠시 이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공식 석상의 자리가 아니라, 이 자리가 끝난 후 갖게 될 헌터장들과의 회의였다.
공식 석상의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대기실 앞쪽으로 돌아온 이호성은 1차 관문이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깊게 뱉으며 초조한 얼굴로 담배를 물었다.
“아…… 건물 내에서 흡연하시면 안 되는데…….”
꽤 어려 보이는 여자 스텝 한 명이 그렇게 말했고, 선배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꼬집었다.
“피우셔도 괜찮습니다.”
여자 스텝의 선배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제가 나가서 피고 오죠. 혼내지 마세요. 제가 잘못한 거니까. 어디서 피우면 되죠?”
“정말 괜찮습니다. 대기실에서 피우셔도 돼요.”
이호성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제가 바깥 공기 좀 맡고 싶어서 그래요. 이분에게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호성이 여자 스텝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실수하지 말고 잘 모시라고 말했다.
이호성은 여자 스텝과 함께 외부 흡연실을 향해 이동했다.
이호성은 담배 귓가에 꼽고 여자 스텝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잘못한 거 없으니까. 오히려 잘한 거예요.”
여자 스텝은 거의 새파랗게 질려 있다가 이호성의 말에 겨우 편안함을 조금 되찾았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잠시 걸어, 바깥쪽으로 나왔다.
흡연 시설 앞에 도착하자 여자 스텝은 꾸벅 인사를 했다.
이호성은 그런 그녀에게 눈인사를 해 준 후, 귓가에 꼽았던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
이호성의 입 밖으로 하얀 연기가 흘러 나왔다.
담배를 피우면서 이따가 갖게 될 헌터장과의 자리를 생각하자 가슴이 더 갑갑해져 왔다.
중앙 헌터기관의 총군주 김지유가 말했다. 분명 욕망이 강하고, 민성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라고.
이호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을 만큼 강대한 힘을 갖고 있는 민성을 상대로 집요하게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일이었다.
그들로서도 손 놓고 나라를 빼앗기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강민성은 미국과 같은 나라를 차지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겠지만, 미국 측에서는 나라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강민성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지배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은 일일 테니까.
이호성은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을 괜히 그들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문제를 크게 만드는 게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그런 만큼 그들을 중재하는 일이 바로 자신의 역할이라고 이호성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총군주 김지유의 말대로 너무 약한 모습을 보여 주어서도 안 된다.
중심을 지키는 것은 힘을 가진 자들의 선의다.
그 선의를 위하는 길이 이호성은 상당히 버겁게 느껴졌지만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며, 민성의 명령이기도 했기에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길이었다.
이호성은 무거운 마음을 담배 연기에 담아 흘려보냈다.
부르르!
진동이 울려서, 이호성은 담배를 끄고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총군주 김지유였다.
“네 총군주님.”
- 어디 계세요? 저 지금 대기실인데, 안 보이셔서.
“아. 금방 들어가겠습니다.”
이호성은 전화를 끊고 걸음을 옮겨, 안내를 해 준 스텝과 함께 대기실 앞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김지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시죠.”
이호성이 대기실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김지유가 따라 들어오고, 이호성은 문을 닫은 후, 곧바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한 20분 정도 남았네요. 헌터장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김지유가 먼저 소파에 앉았고, 이호성이 맞은편에 앉으면서 물었다.
“아직은 조용해요. 회의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총군주님도 함께하시는 거죠?”
김지유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금은 안심이 되네요. 혼자였으면…… 어후.”
이호성은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엄청 잘 하시던데요? 전혀 긴장도 안 한 것 같았고.”
“아니에요, 엄청 떨렸어요. 그나저나.”
이호성이 창밖을 보며 짧게 한숨 쉬었다.
“빨리 헌터님이 돌아오셔야 할 텐데. 괜히 또 조급해지네요, 하하.”
“호성 씨가 얘기했잖아요. 분명 잘 끝마치고 돌아올 거라고.”
이호성은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웃었다.
“네, 그럴 겁니다. 분명.”
* * *
민성은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짜증이 스며든 눈길로 황폐한 마계의 땅을 눈으로 훑었다.
헬카드라는 놈을 만나 본 적도 없는 데다, 쥐 죽은 듯 자신을 피해 다니고 있어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마계를 떠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대주신에게 권능과 힘을 받았지만, 그 힘으로도 작정하고 숨어든 헬카드를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렇게 맥 빠진다고 늘어져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민성은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 당장 맞붙으면 승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분명 뭔가를 찾거나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전에 놈을 찾아야 마계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고민은 길게 이어졌고, 민성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직위였다.
마계의 땅에서 현재 마왕은 바로 본인 강민성이었다.
마계의 주인인 만큼 이 점을 잘 활용하면 헬카드를 쉽게 찾을 수 있지도 않을까?
막막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의 열쇠를 찾은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다.
민성은 마왕으로서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 * *
이호성은 짧게 숨을 가다듬은 뒤, 대기실을 나섰다.
총군주 김지유는 잠시 준비할 게 있어 조금 이따가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호성은 혼자 먼저 출발해야 했다.
대기실을 나오자 흡연실로 안내했던 여자 스텝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경험이 많아 보이는 스텝이 이호성의 안내를 맡았다.
이호성은 그 스텝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카이라운지로 향했다.
헌터장과의 회의는 그곳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따앙!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다.
문이 열리고, 고급스러운 VVIP 라운지가 이호성의 눈 안에 들어왔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되어 있는 라운지였다.
중앙 룸에 회의를 할 수 있는 아주 넓은 원목 테이블이 있었고, 안내원은 그곳으로 이호성을 안내했다.
그런 다음 상석 자리를 가리켰고, 이호성은 그 자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곳에 앉아도 되나 싶었지만, 자신은 민성의 대리인이었다.
결코 그의 가치를 떨어트려서는 안 된다.
이호성은 조용히 상석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전 세계의 헌터장들이 이곳에 앉을 거라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민성을 위해서 중심을 딱 잡고, 무게감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에 계속 머릿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이었다.
대리인인 만큼 자신의 실수는 곧, 강민성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것과 같았다.
이호성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계를 보자 약속 시간까지는 약 10분여 정도가 남았다.
시계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을 때 구두 소리가 들렸다.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였다.
그녀는 손에 자료를 한가득 가져와 이호성의 앞에 놓아 주었다.
“헌터장들의 회의 자료예요. 자료가 있으면 회의 진행이 한 결 편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일전에 총군주인 김지유가 넘겨주었던 자료다.
“회의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이호성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일종의 결제라고 생각하면 돼요. 호성 씨가 봤을 때 승인하고 싶다면 승인을, 거절하고 싶다면 거절을. 확실히 결정을 내려 주시면 됩니다. 물론 회의라는 과정을 통한 후에요.”
김지유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험이 적은 탓에 엄청나게 긴장되었지만, 그녀가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마음이 가볍고 편했다.
“만약 승인 거절에 그들이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자신을 가지세요. 사실상, 전권은 모두 호성 씨에게 있으니까요.”
사실상이라는 건 결국, 힘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강하게 나가면 결국 그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뜻.
엄청 중요한 자리였기에 이호성은 시작 전부터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그런 감각을 느낄 새도 없이 하나둘 회의장으로 헌터장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호성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설 뻔했으나, 민성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하고 최대한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들을 대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다잡았다.
대신 천천히 일어서서 들어오는 헌터장들과 악수를 나눴다.
잠시 후, 헌터장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했다.
회의는 일급 보안 정보였기 때문에, 누가 들어서는 안 되는 회의이므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부들은 모두 회의실 밖으로 줄줄이 나갔다.
침묵 속에서 총군주 김지유를 포함해 헌터장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호성은 헛기침을 했다.
“반갑습니다. 다들 잘 지내셨죠?”
이호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가, 헌터장들이 허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뭔가 분위기가 공식 석상 때랑은 전혀 달랐다.
헌터장들로부터 비롯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압박감 같은 것이 이호성 자신에게로 쪼아 오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 순간 이호성은 불현듯 뭔가 이 회의가 쉽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