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12화>
민성은 루키페르가 아주 낮이 익은 느낌이 강했는데 뒤늦게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꿈에 나타나 자신을 자극했던, 바로 그 금발의 미소년이었다.
“천계의 주신이 어째서 마기를 뿌리는 거지?”
민성이 루키페르를 똑바로 보면서 물었다.
“천계를 버리고 마계를 선택했으니까.”
루키페르의 대답은 간단했다.
민성은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마계의 주인이자 마왕은 바로 민성 자신이었다.
그런데 루키페르가 천계를 버리고 마계를 선택했다? 거기다 마기를 뿌리며 대치하고 있는 지금의 이 분위기는 적대적 성향이 아주 강했다.
민성이 느끼기에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유가 궁금한데.”
별로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지만, 루키페르는 이 뜻밖에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전대 마계의 주인인 헬카드를 봉인에서 풀어냈다. 그를 마계의 주인으로 세워, 새로운 역사를 세울 생각이다.”
“새로운 역사?”
“마계가 천계를 지배하는 것이지. 아, 인간계 역시 물론이고.”
루키페르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계에서 마계로 넘어온 건, 단순히 헬카드라는 악마의 힘이 강해서인가? 아니면, 천계에서 버려진 건가?”
민성의 그 말은 정말로 궁금한 질문이기도 했고, 도발이기도 했다.
루키페르가 손바닥을 펼치자 콰르릉! 하고 민성과 같은 천둥 벼락이 치면서 그의 손에 빛의 창이 생성되었다.
루키페르가 쥔 창에서 영롱한 마력을 품은 강대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신에게도 운명은 존재하지. 나 루키페르에게도 운명이 있다. 그것은 대주신을 넘어, 우주의 차원을 지배하는 것. 난 그 운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
루키페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민성을 보며 웃음 지었다.
야망을 꿈꾸는, 징그러운 웃음이었다.
민성은 그런 루키페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이라는 것들이 인간보다도 추악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루키페르는 민성을 보며 한숨 쉬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진실을 말해 주지 않을 수가 없군.”
진실이라는 말에 민성이 굳은 얼굴로 루키페르를 응시했다.
루키페르는 민성을 보며 즐겁다는 듯 미소 지었다.
“네가 왜 마계에 가게 되었는지. 왜 마계에서 그 긴 시간을 흘려보냈는지. 그리고 왜 인간계로 돌아왔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민성의 눈이 커졌다.
확장된 동공이 루키페르를 담았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분노가 담긴 민성의 목소리가 긁듯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루키페르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느낌으로, 쿡쿡거리며 웃었다.
“정말 모르겠어?”
휘어지는 듯한 눈웃음과 입꼬리.
그의 웃음이 역겹게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민성의 몸에서 거대한 마기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말해라.”
민성이 협박하듯 말했다.
큭큭거리며 웃던 루키페르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모두 내 계획이야. 하지만 사실 너도 그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지?”
민성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루키페르가 말을 이었다.
“네가 마계에 온 것도. 그리고 네가 인간계로 되돌아오게 된 것도. 모두 내 계획이었어. 다만 내 도움 없이 벨드를 죽인 것은 계획 밖의 일이었지만 뭐, 그것도 칭찬해 줄 만한 일이야. 덕분에 헬카드를 봉인에서 깨울 명분이 아주 쉽게 나왔거든.”
루키페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대주신으로부터 벗어나, 차원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기 위한 과정에 적당한 인물 하나가 필요했는데. 너라는 인간은 생각보다도 꽤 활용도가 높더군.”
“…….”
“덕분에 대주신의 눈을 피하면서, 신뢰를 받고 차근차근 준비할 수가 있었지. 네가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 준 덕분이야. 이 모든 것은.”
루키페르가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고, 민성은 그 낯짝을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100년이라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모두 루키페르의 손에 놀아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민성은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제 슬슬 전쟁을 준비할 때가 왔어. 넌 쓸모가 없어졌고…… 그건 곧 이제 네가 사라질 때가 됐다는 뜻이야.”
민성이 살기를 담은 시선으로 루키페르를 노려보았다.
루키페르는 그런 민성의 시선을 받으며 키득 웃었다.
“못 들었어? 넌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고. 이제 내가 너라는 카드를 버리는 거야. 그런데, 설마 내가 쓰는 물건 주제에, 감히 내게 저항할 생각은 아니겠지? 넌 날 이길 수 없어. 그저 내게 이용당한 한낱 물건이자 피조물일 뿐이야.”
민성은 루키페르를 노려보며 비틀린 듯한 웃음을 지었다.
“한낱 하급 악마 새끼가 폼은 더럽게 잡네.”
민성의 그 말에 루키페르의 웃고 있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애용하던 물건이라 그런지 이제 그만 갖다 버리자니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루키페르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제 그만 보낼 때가 된 거지.”
쿠르르르르-!
민성과 루키페르가 대치하는 가운데 마계의 땅이 진동하듯 떨렸다.
민성은 루키페르를 직시하며, 궁니르S에 강대한 마기를 불어넣었다.
민성의 궁니르S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이 꿈틀거렸다.
“인간인 주제에 감히 신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내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그리고 그 것을 내가 직접 거두어들이는 것은 당연한 섭리이니…….”
“더럽게 말 많네.”
민성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손에서 궁니르S를 놓았다.
궁니른S는 검은 마기를 흩뿌리며, 이기어검술로 루키페르를 향해 날아갔다.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간 궁니르S를 보고 루키페르는 비웃음을 지었다.
루키페르는 직접 자신의 빛의 창을 쓰지도 않았다.
창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이기어검술로 날아온 민성의 궁니르S를 움켜잡았다.
콰지지지지지직!
검은 뇌전의 마기가 루키페르의 왼팔을 타고 소용돌이 쳤지만, 타격이 없는 듯 루키페르는 입가에 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인 것이냐? 이 능력은 너의 비기로 알고 있는데.”
민성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마기를 조종하였다.
궁니르S가 추진력을 받아 힘을 내기 시작했으나, 단단하게 움켜잡은 루키페르의 손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이곳은 꿈이 아닌 현세의 마계다. 여기서 물질로 이루어진 나를 감히 그깟 능력으로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루키페르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으나, 민성은 움츠러들지 않고 외려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런 다음 주먹을 내뻗었다.
마기가 실린 파동이 루키페르를 향해 날아갔다.
퍼퍼퍼퍼퍼-엉!
공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루키페르가 살짝 뒤로 밀려났으나 그뿐이었다.
루키페르는 쿡쿡 웃으며 순식간에 민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민성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루키페르가 양손에 쥐고 있는 빛의 창과 궁니르S를 민성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민성은 침착하게 반응했다.
루키페르의 공격을 피하고, 자신의 궁니르S의 창대를 잡으며 루키페르의 몸을 밀어 찼다.
루키페르가 빼앗아 들고 있던 궁니르S를 다시 민성에게 돌려주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마치 민성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의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여기까지가 너의 한계다. 고통스럽겠지만 더 이상은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루키페르가 빛의 창을 휘둘렀다.
번쩍!
콰르릉!
민성의 벼락보다도 더 강렬한 빛을 가진 뇌전의 힘이 민성을 향해 휘몰아쳤다.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모여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민성은 즉각 카운터 배리어를 사용했다.
반사된 힘이 루키페르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루키페르는 예상했다는 듯 공간 이동으로 민성의 등 뒤로 돌아갔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루키페르가 빛의 창으로 민성의 등을 찔렀다.
“흡…….”
민성의 입 밖으로 피가 튀어 나왔다.
절망이 머리를 묵직하게 눌렀고, 민성은 자신의 몸이 급격히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파아악!
루키페르가 민성의 등을 찔렀던 빛의 창을 뽑아냈다.
민성은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철퍽 무릎을 꿇었다.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좀처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민성은 궁니르S로 바닥을 찍으며 루키페르를 향해 돌아섰다.
루키페르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민성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보며 미소 지었다.
“덕분에 그동안 아주 재밌었어. 네가 마계에서 고통스럽게 살아남는 모습도 재밌었고, 마인을 죽이며 살아남는 것도, 인간계로 돌아가 기뻐하는 모습도 내겐 다 즐거운 유희 거리였지. 난 늘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루키페르가 진하게 웃음 지었다.
민성은 연거푸 피를 뿜으면서도 붉어진 눈으로 루키페르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루키페르는 민성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어때? 늘 승승장구 하던 때와 달리, 지금처럼 굴복해야만 하는 기분이 어떠하냐? 지금까지 거둔 너의 그 모든 성공이 모두 나로 인해 조작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지지?”
민성이 이를 악물며 루키페르를 향해 달려들면서 궁니르S를 휘둘렀다.
검은 마기가 땅을 터트리고 가르며, 루키페르를 향해 거대한 에너지의 파동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그것을 보고 루키페르는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루키페르가 빛의 창을 횡으로 휘둘러 민성이 발출한 마기를 간단하게 쳐 내면서 소멸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발출된 마기는 흔적도 없이 안개처럼 부서지며 사라졌다.
그것을 뚫고 정면으로 찔러 들어오는 궁니르S.
루키페르는 가볍게 목을 틀었다.
궁니르S는 아슬아슬하게 루키페르의 얼굴을 스치지 못하고 지나갔다.
루키페르의 빛의 창이 민성의 가슴을 꿰뚫었다.
퍼억!
민성은 입을 크게 벌렸고, 그의 입에서 굵은 핏덩이가 뿜어져 나왔다.
루키페르는 킥킥 웃으며 빛의 창에서 손을 놓았다.
빛의 창이 가슴에 박힌 채로, 민성은 뒷걸음질 치다가 철퍽! 엉덩방아를 찧었다.
벌어진 민성의 입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루키페르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마인드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 차이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었다.
“넌 감히 내게 이용당한 것만으로도 그 사실을 영광으로 알아야 해. 억울해할 것 없다. 인간인 주제에 그 누구보다 높은 영역에 이르렀으니. 그것으로도 너는 여한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루키페르가 걸음을 옮겨 민성을 내려다보며 상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민성의 눈이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루키페르가 빛의 창을 뽑았다.
이에 민성의 몸이 들썩거리며 흔들렸다.
루키페르는 민성을 내려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그동안 즐거웠다, 나의 유희여.”
루키페르가 빛의 창을 내려찍기 직전―
마계의 검은 하늘이 새하얀 빛으로 번쩍였다.
루키페르는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