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311화 (311/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11화>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런 말씀 마세요, 좀. 진짜.”

이호성이 진심으로 짜증 난다는 듯 얼굴을 오만상 찌푸렸다.

“설마 헌터님, 무슨 이순신도 아니고 내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마라. 뭐 이런 얘기 하시려고 하는 거 아니시죠?”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민성이 쓰게 웃었다.

이호성은 땅이 꺼질 듯 한숨 쉬었다.

“저기, 헌터님. 도대체 무슨 이유로 헌터님이 다시 인간계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주신? 주신들 때문에 그래요?”

“뭐, 그런 것도 있고. 앞일이라는 건 알 수 없는 거니까.”

“헌터님 원래 이렇게 부정적인 분이셨어요?”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가정한다. 너처럼 머릿속이 꽃밭은 아니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겠지.”

이호성은 할 말이 없어서 무안한 얼굴로 코를 슥 닦았다.

“근데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민성이 한심하다는 시선을 이호성에게 보냈다.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말씀 안 하셔도 그 눈빛이 뭐라 하는지 잘 알겠다고요.”

“내 눈빛이 뭔데?”

“당연히 잘하라는 말씀이시겠죠.”

“아니, 조금 달라. 그것도 못하면 그냥 죽어라. 부활 안 시킬 거니까. 그냥 죽어 버려.”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호성이 허리를 세우고 예를 담아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지 말고, 잘해라, 잘.”

“예, 헌터님.”

이호성이 찔끔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 * *

헬카드는 자신이 봉인에서 깨어나기 전,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려고 노력했다.

헬카드 본인의 권능으로, 그 정보를 취합하여 파악하였고, 이제 얼추 머릿속에서 정리가 대충 끝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헬카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흘렸다.

벨드도 그렇고 주신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멍청한 것들투성이었다.

뭐 그 덕분에, 가만히 있다가 어부지리로 가장 유리한 포지션에 안착하게 되었으니 그건 나쁘지 않았다.

이제 문제는 그 유리한 포지션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헬카드는 앞으로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마계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느끼고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익숙한 기척이었다.

헬카드는 존재감을 숨기지 않았고, 잠시 후, 헬카드의 앞에 주신들이 찾아왔다.

얼마 전, 도망쳤던 그 얼간이들이었다.

헬카드는 그런 주신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소멸하고 싶어 환장이라도 한 건가?”

헬카드가 비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주신들은 치욕스러운 얼굴들이었으나, 금발의 신이 그런 주신들이 반응하기 전에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우린 타락 천사가 될 마음으로 그대를 찾은 것입니다. 마계에 종속될 마음을 갖고 온 것이니 부디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헬카드는 금발의 신을 보며 쿡쿡 웃었다.

“타락 천사라……. 아주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이름이로군.”

금발의 신은 헬카드의 답이 내려오기 전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그사이 헬카드는 머릿속으로 그들의 제안에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있었다.

생각을 길게 할 것까지는 없어 보였다.

마계가 거의 멸망하다시피 한 마당에 하나라도 수족이 있다면 편할 것이고, 꽤 유용한 자원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배신할 만한 거리가 없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저 약한 놈들이 배반이라는 걸 해 봤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우선은 부족한 손을 매우는 것이 좋을 듯했다.

“좋아. 받아 주지.”

예상보다 쉽게 일이 풀린 것 같자 주신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금발의 신은 예상했다는 듯 표정에 별달리 변화가 없었다.

헬카드는 금발의 신이 가진 그러한 여유가 싫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어서였다.

유일하게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자는 금발의 신.

“이봐, 너.”

헬카드가 검지로 금발의 신을 쿡쿡 가리켰다.

그러자 금발의 신이 마계의 예법에 맞게, 한쪽 손을 가슴에 올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름이 뭐지?”

헬카드가 물었다.

“마왕께서 새로이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금발의 신이 차분하게 말했다.

헬카드는 그를 빤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루키페르(Rucifer). 네 이름은 앞으로 루키페르다.”

헬카드가 말했다.

루키페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금발의 신은 더욱 더 큰 예를 표하는 의미로 걸음을 옮겨 헬카드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마계의 예법을 아주 잘 아는구나.”

“헬카드 님을 모실 마음을 오래 전부터 먹어 왔기 때문입니다.”

말 하나하나가 달변이라, 헬카드는 자신이 루키페르라 이름을 지어 준 그가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천계를 버리고 날 섬기려는 의도는 천계에 버림받을 것이 두려운 것으로 보이는데. 날 모실 마음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지옥불에 던져지기 싫다면, 거짓을 고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헬카드가 살기가 둥둥 뜬 목소리로 음산하게 말했다.

주신들은 그 목소리만으로도 몸을 벌벌 떨었다.

헬카드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키페르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진심입니다. 믿어 주시든 아니든, 저는 제 방식대로 마계의 주인을 섬길 것이며, 그것이 늘 옳은 길임을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헬카드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마계의 꼴이 말이 아니군.”

헬카드의 말은 주신들과 루키페르를 모욕하는 언사이기도 했으나, 주신들은 감히 분노를 느끼지 않았고, 루키페르는 그저 헬카드의 옆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루키페르.”

“예, 전대 마왕이시여.”

헬카드는 전대라는 글자가 거슬렸다.

때문에 본래 할 말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헬카드의 입에서 나왔다.

“인간계 놈이 마왕의 자리와 벨드의 힘을 가져갔다지?”

“그렇습니다.”

“그 인간 놈…….”

헬카드는 검지로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잠시 생각했다가 루키페르를 가느다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천계.”

“…….”

루키페르는 대답 없이 머리를 조아린 채 미동이 없었다.

“어이, 루키페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헬카드가 물었다.

루키페르가 머리를 더욱 깊게 조아렸다.

“우선 감히 마왕의 자리에 앉은 인간을 처치하여, 피폐해진 마계를 일으켜 세움이 마땅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렇지. 마계가 이리 약해진 것도 다 그 인간 놈이 마계의 주인 자리를 차지한 탓이지.”

헬카드가 혀를 차다가 눈을 차갑게 빛냈다.

“그럼 그 인간 놈부터 처치를 해야겠군. 차근차근 부러트려 나가면 되겠어. 아주 간단하군?”

헬카드가 킬킬 웃었다.

“그런데.”

헬카드가 웃음을 멈추고 루키페르를 응시했다.

“난 너의 충성심을 확신할 수가 없군.”

“어떻게 하면 저의 충성심을 믿어 주시겠습니까?”

“천계는 인간계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이 규율이지.”

“…….”

“그러니 네가 죽여라. 그 인간을.”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신들은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금발의 신, 아니, 헬카드에게 루키페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그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기꺼이 받들겠습니다.”

고분고분하게 굴고 있는 루키페르를 보며 헬카드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쿠궁!

강렬한 감각이 헬카드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그 감각은 루키페르는 물론, 주신들도 느꼈다.

마계에 새로운 존재가 입성했음을 알리는 감각이었다.

헬카드는 이내 그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고 큭큭 웃었다.

“굳이 인간계로 내려갈 필요도 없군. 충성을 증명할 때가 왔다, 루키페르.”

루키페르는 서쪽 방향을 보며 옅게 웃음 지었다.

“곧 다시 마계의 주인이 되실 겁니다, 전대 마왕이시여.”

“그래. 날 실망시키지 말도록.”

루키페르의 몸에서 번쩍! 하고 빛이 솟았고, 그는 이미 서쪽으로 사라진 후였다.

그 뒤 주신들은 쭈뼛거리며 선 채로, 헬카드의 눈치를 살폈다.

헬카드는 그런 주신들을 보며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명색에 천계의 주신이라는 것들이 이토록이나 가벼워서야.”

“…….”

헬카드가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 새가슴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겠구나.”

주신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헬카드를 보았다.

헬카드의 손가락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왔고, 그것은 마치 액체처럼 바닥에 떨어져 먹물이 사방으로 퍼지듯 마계의 붉은 땅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검은 바닥은 이내 마치 늪처럼 주신들을 빨아당겼다.

“헉……?!”

“허억!”

“헙!”

주신들이 대경실색하며 허우적거렸으나, 그들은 그 검은 늪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헬카드는 주신들을 보며 큭큭 웃었다.

“누가 잡아먹는 줄 아느냐? 너희들의 그 새가슴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려는 것이니. 저항하지 말고, 나의 힘을 받아들여라. 진정한 마군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헬카드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끄아아아아악!”

주신들이 검은 액체와 같은 것에 빨려 들어가듯 하며 고통이 섞인, 참혹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내 새하얗던 주신들의 몸이 서서히 시커멓게 변하며, 눈도 빨갛게 변해 갔다.

천계의 주신들은 헬카드에 의해 괴물 같은 외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대 마왕 헬카드의 최상급 고유 권능 중 하나였다.

* * *

민성은 마계의 땅을 밟으며, 템창에서 궁니르S를 꺼냈다.

차가운 궁니르S의 창대를 잡고서 민성은 동쪽 방향을 보았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예전이라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 감각이었으나, 마계의 주인이자 주신들의 권능이 스며들었던 벨드의 힘을 그대로 전해 받게 된 지금은 지난 때보다 훨씬 강해진 스스로의 존재를 민성은 자각할 수 있었다.

또한 다가오고 있는 그 존재는 결코 그 힘이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상당한 능력을 갖춘 존재.

누구지?

벨드는 죽었다.

마인들은 단 한 마리도 마계로 가는 게이트의 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 마계에 이렇듯 강한 존재감을 뿌릴 수 있는 건 단 하나로 추려질 수밖에 없었다.

주신.

만약 주신이 아니라면, 숨겨진 생명체가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었으나, 민성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파아아앗!

바람을 일으키며 민성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새하얀 광명을 몸에서 빛내는 자, 루키페르였다.

민성은 그 루키페르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외양은 천계의 주신으로 보였으나 루시페르로부터 아주 강하고 검은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