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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10화 (310/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10화>

주신들은 입을 쩍 벌린 채 멍한 얼굴이 되었다.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실감하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침묵이 이어지다가 한 주신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금발의 신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마계로 넘어가자고 한 말, 진심입니까?”

“농담을 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금발의 신은 담담하게 그를 보며 대답했다.

주신들은 대혼란 속에서 침묵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주신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깊게 생각해 보면, 금발의 신은 사실 상 가장 현실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천계는 아주 강한 규율이 있으며, 그 규율을 어기는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는 아주 오랜 고통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책임이 따랐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전대 마왕 헬카드를 깨운 데다 그를 자유로이 마계에 풀어 두기까지 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때문에 주신들은 현재 선택을 해야 했다.

힘과 권능마저 잃은 상태에서 실수에 대한 책임을 천계에서 짊어질 것인지, 마계로 넘어가 헬카드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주신들을 보며 금발의 신은 설득을 이었다.

“이번 사안에 대한 책임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어쩌면 영원히 천계에 발을 못 들이고, 마계에도 발을 못 들이는 구금의 천벌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죠.”

금발의 신이 말한 것은 주신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유혹은 천계의 주신들에게도 찾아온다.

그리고 그 유혹에 굴복하면 타락 천사가 된다.

간단한 과정인 것이다.

금발의 신은 주신들이 충분히 생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신들의 마음은, 점점 공포와 두려움에 잠식되어 살길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었다.

불씨만 만들어 주면,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이니까.

금발의 신은 주신들을 보며 몰래 웃음 지었다.

* * *

2주가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이제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다.

대격변의 시대가 끝이 났다고 사람들은 믿게 된 것이다.

던전은 사라졌고,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으며, 인류를 위협했던 마계 역시 강민성에 의해 물러갔다.

물론 몬스터나 마계의 재공습에 대한 트라우마와 두려움은 남아 있었지만, 다시 평화가 도래한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마인들의 이번 2차 공습은 단 한 명의 시민도 다치지 않고 막아 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그런 만큼 민성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중했으며, 그러한 점은 민성을 신격화하고 추앙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 주게 되었다.

“대박이네. 저게 다 몇 명이야?”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옥상에서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계를 물리치고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의 집과 일정 거리 밖에는 엄청난 인원의 인파들이 민성의 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숭배의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호성은 그런 풍경을 보다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밑으로 내려온 이호성은 손을 씻고 가글을 한 다음 거실로 갔다.

민성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물었다.

“오랜만에 나가서 먹으려고.”

민성이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창밖 쪽을 한 번 보았다가 다시 민성을 보았다.

“꽤 피곤하실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왜?”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바깥 분위기가 장난 아니에요. 거의 신, 아니, 신 맞구나 이제. 어쨌든 헌터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을 겁니다. 꽤 불편하실 거예요.”

민성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다시 옷매무새를 마저 다듬었다.

“그게 밥을 못 사먹을 이유는 못 된다.”

이호성은 웃음을 흘렸다.

“그건 맞죠. 아니면 제가 중앙 헌터 기관에게 전화를 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호성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김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집에만 있으면 조금 갑갑했기 때문에 민성은 밖에서 먹자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마침 나가기 전에 바가지와 레폰이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가지는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고, 레폰은 민성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자유로운 영혼의 쏠만이 정원에서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바가지와 레폰을 달고, 이호성과 함께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거리로 나가자 중앙 헌터 기관의 도움으로, 그 많던 인원은 놀랍게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행이네요. 시민들이 잘 협조해 주는 것 같습니다.”

민성은 말없이 창밖만을 보았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을 흘깃 보았다가 운전을 계속했다.

지금 가고 있는 식당은 출발 전에 결정되었다.

민성이 점심으로 장어를 먹고 싶다고 얘기했고, 이호성이 그 음식의 맛집에 대한 정보를 정리한 후에, 지금, 결정된 맛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이호성이 주차를 마치고 민성이 차에서 내렸다.

민성이 도착한 식당은 장어 전문점이었다.

민성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매니저와 종업원이 잔뜩 긴장한 채로, 존경심을 담으며 민성을 맞이했다.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하고 그들은 몸가짐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민성의 자리를 챙겨 주었다.

그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민성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민성의 관심은 오직 메뉴판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떤 것으로 할지 고민하는 민성을 향해 종업원이 다가왔다.

오직 민성만을 위한 다양한 메뉴를 준비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화려한 식탁은 점심으로 결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민성은 간단히 점심 특선으로 되어 있는 장어 덮밥으로 먹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민성의 의사를 존중하여 직원들은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그사이 민성은 가게 안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고급스럽고 깨끗하며, 일본의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였다.

그러다 민성은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있지 말고 와서 앉아. 같이 먹지.”

“감사합니다.”

이호성은 곧바로 목례 후, 자신 역시 덮밥 하나를 추가로 주문하고, 민성의 반대편에 앉았다.

이호성은 이제 민성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이제 누구보다 민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자연스러움이었다.

종업원이 반찬을 가져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장어 덮밥 두 그릇이 나왔다.

민성은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정갈하게 잘라져 있는 장어 하나와 밥을 퍼서 입 안으로 홉 넣었다.

우물우물.

장어의 부드러움과, 장어가 가진 특유의 고급스러운 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었으며 달달한 밥이 아주 맛있게 입안에서 씹혔다.

장어는 그야말로 씹자마자 녹아 사라지듯 없어진다.

덮밥이라 그런지 반찬은 굳이 많을 필요가 없었다.

입안을 깔끔하게 만들어 주는 단무지와 오이면 충분 했고, 따뜻한 장국 국물이면 그것으로 오케이였다.

한없이 부드러운 고소한 장어 맛을 음미하며, 민성은 깔끔하게 점심 식사를 마쳤다.

티슈를 입을 닦을 때, 종업원이 홍차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어두운 빨간빛이 감도는 홍차를 마셔 보자 따뜻하고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찮네.”

민성이 홍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헌터님.”

이호성의 부름에 민성은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를 비롯해서, 내국 정치인들은 기본이고 전 세계에서 헌터님에게 줄을 대려고 자리를 마련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민성이 홍차를 마시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호성을 보았다.

“일단 헌터님께서 별로 탐탁지 않아 하실 것 같아, 제 선에서 다 끊어 내고 있습니다만 헌터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유가 뭐야?”

“누군가에게 개인의 이득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국력이나 야망을 위한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계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는 해도, 그런 부분을 민성이 이해 못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알고 싶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염려를 담아, 이호성이 의견을 꺼냈다.

“어느 정도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귀찮아도 그들을 컨트롤하시는 게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그렇지 않으면 헌터님을 조종하려 들 겁니다.”

민성이 웃었다.

“감히 나를?”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떻게?”

“오해죠.”

“오해?”

“정의처럼 보이지만, 실은 악이었다. 그러니까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들고, 거기에 헌터님이 가담하게끔 만들 겁니다. 결국 더 귀찮은 일들이 생길 수 있고, 헌터님의 명예에도 흠집이 갈 수 있으며, 두려움으로 인해 혼란은 가중되어 갈 겁니다.”

민성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호성은 주춤대지 않고 강력히 의견을 어필했다.

“헌터님이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 주지 않으면, 세계는 혼란에 빠질 겁니다.”

민성은 귀찮음에 질려 하는 듯한 눈빛으로 허공을 보며 홍차를 마셨다.

민성은 찻잔을 내려놓은 다음 숨을 깊게 내쉬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

이호성이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며 되물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계의 주인인 벨드가 만약 이번처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난번 마인들을 데리고 인간계를 침공했을 때, 물러날 이유는 없었다. 결국 추정컨대, 주신들의 개입이 있었을 테지.”

이호성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실수를 책망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민성은 짧게 혀를 찼다.

“주신이라는 것들이 인간보다도 뒤끝이 길어. 놀라울 정도로 치사하고 비겁하다는 거지.”

이호성은 동의한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 뒤끝 있는 놈들이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것 같다.”

“헌터님 말을 듣고 보니 저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까 네가 해 일단.”

“예? 뭐를요?”

“네가 관리하라고. 날 대신해서 대리인으로.”

“그 말씀은, 헌터님은…….”

“끝을 낸다고 했지 않나?”

이호성이 넋이 나간 얼굴로 민성을 보았다.

“대화를 하든 협박을 하든 박살을 내든…… 끝을 내야지. 질질 끌려다닐 수는 없다.”

“그럼 저도…….”

“네가 말했잖아. 중심을 잡지 않으면 혼란이 올 거라고.”

“……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게 최우선이다. 그뿐이야.”

이호성이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민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민성이 홍차를 다시 마시려다 손을 멈췄다.

“식었네.”

민성이 바닥을 보일 듯 낮게 깔린 홍차의 붉은빛을 여러 생각이 담긴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찻잔을 내려놓고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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