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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05화 (30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05화>

* * *

결과적으로 벨드는 본인의 꾀에 본인이 넘어가 버린 것이다.

멍청한 결정을 한 셈이다.

만약 조금만 냉정하고 침착했더라면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인간계로 내려온 것부터, 다시 마계로 도망친 것까지.

거기에 자신이 사냥을 하기 위해 마계로 뒤쫓아 온 상황이었으니 이미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벨드는 이렇듯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다.

카운터 배리어를 처음 획득하게 되었을 때, 주신들이 경악했던 것을 민성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카운터 배리어가 가진 힘이 강력하다.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적어도 한 번은 같은 힘으로 힘들이지 않고 받아칠 수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능력이었다.

때문에 보통 전력을 실은 비기를 쓸 수 없게 되고 작은 차이로 인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투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는 강점을 갖게 된다.

그래서 민성은 벨드가 힘을 아끼며 전투를 길게 가져간다면 상황이 어렵게 흘러갈 수도 있겠다고 각오한 상태였다.

한데 벨드가 이렇듯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바람에 승기를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인간이든 악마든, 악마의 신이든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 실수에 의해 이렇듯 벨드는 궁니르S를 등에 꽂은 채, 소멸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벨드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의 몸은 마치 서서히 증발하듯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소멸해 가고 있는 벨드는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민성은 덤덤한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그런 벨드를 내려다보았다.

악의가 가득했던 벨드의 시선에는 서서히 그 기운을 잃어 감에 따라 그가 가진 그 유일한 빛이 가라앉았다.

이내 생명의 빛이 사라진 그 시점, 벨드는 소멸되어 그 자리에 어떠한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남아 있는 건 벨드의 등을 뚫고 땅에 꽂혔던 금빛의 궁니르S만이 그곳에 벨드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다.

“허, 헌터님.”

떨리는 이호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이호성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벨드를 소멸시킨 건가요?”

이호성이 물었고,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는 지구로 어떻게 돌아가죠?”

“…….”

고요한 정적이 척박한 마계의 땅 위, 두 남자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 * *

바가지는 그림자 보드를 타고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인들을 피해 다녔다.

마인들의 손길이 아슬아슬하게 바가지를 잡지 못하고 땅을 때렸다.

그럴 때마다 마치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땅이 터지며 흙먼지가 하늘로 솟구쳤다.

마인들을 언데드화시켰지만, 언데드 마인보다 살아 있는 마인의 개체 수가 워낙 많은 데다가, 기본적으로 언데드 마인은 살아 있는 정상적인 마인보다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민성이 마계로 넘어간 이후부터 상황은 열악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언데드 마인은 이미 모두 소모된 이후였고, 레폰만이 혼자 남아 마인들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레폰의 공격력이 엄청났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마인들의 개체 수가 많은 탓에 레폰의 마나 소모 역시도 빨랐다.

마나 소모가 심해지는 만큼 마인들이 외부로 나갈 수 없도록 쳐 놓은 마법 결계 역시 그 힘이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마법 결계는 무너질 것이다.

바가지는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마법 결계가 깨지고, 마인들이 바깥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한다면 자신의 주인이 실망할 것이 틀림없었다.

바가지는 어떻게든 이 흐름을 끊어 내고 싶었지만, 도망을 다니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방법이 없었다.

바가지는 마법 결계를 보았다.

이제는 눈에 띄게 그 결계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게 보였다.

레드 드래곤 레폰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마인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좌절과 절망이 바가지의 뇌리를 꾹꾹 눌렀다.

바가지는 주인의 기대를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도 답답하였다.

도망만 다녀서는 안 된다.

싸워야 한다.

주인을 위해서.

그들을 막아 내기 위해서.

곧 꺼질 듯이 위태위태한 촛불 같았던 바가지의 검은 안광이 기름을 부은 듯 다시 활활 불타올랐다.

주인을 위한 충성이자 긍지가 잠재된 힘을 끌어 올렸다.

아주 깊고 깊은 심연의 흑마법이 눈을 떴다.

바가지는 도망치던 것을 멈추고 돌아섰다.

마인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바가지는 입을 크게 벌렸고, 그의 두 눈에서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가지의 몸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과거, 리치였던 본체의 모습으로 변한 바가지가 자신이 가진 공격성의 흑마법을 펼쳐 냈다.

바닥에서 뼈가 올라와 마인들을 옭아매었고, 검은 연기가 마인들의 피부를 부패시켰으며, 바가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기가 바람처럼 마인을 스칠 때마다 마인들은 종이처럼 잘려 나갔다.

갑작스레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바가지를 보며 레폰이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째서 바가지가 이토록 강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레폰은 당연히 알 수 없었고, 바가지 자신 역시 알지 못했다.

단순히 각성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큰 힘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그 의문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키에에에에에엑!”

마인들이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를 동시에 터트리기 시작했다.

마인들은 공격을 멈추고 자신들의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했다.

마치 고장 난 것처럼 마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거나 바닥을 기어 다녔다.

그런 가운데 주인의 명을 수행하는 것에 온전히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 있던 바가지는 용서 없이 흑마법을 휘갈겼다.

저항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마인들은 강력한 바가지의 흑마법에 의해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마인들의 살덩어리와 피가 비산했다.

절망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이 뒤바뀌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레드 드래곤 레폰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반짝이며 브레스를 뿜었다.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는 듯했으나, 그건 잠시였다.

고통스러워하던 마인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마인은 게이트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그들의 공격력은 일순간 외려 점차 더 강력해지기 시작했다.

레폰의 브레스는 마인들의 접근을 잠깐 동안 저지시키는 것에 불과할 정도로 마인들의 방어력이 훨씬 크게 올라가 있었다.

레폰이 당황하여 뒤로 물러서며 날갯짓을 했을 때, 바가지가 허공에 떠오른 채 레폰 쪽으로 이동하며 흑마법을 사용했다.

강대한 힘을 얻은 바가지였으나, 점차 마인의 군대가 다시금 바가지와 레폰을 거세게 압박하는 형태를 갖춰 갔다.

이어지는 전투 끝에, 바가지는 가진 마기를 모두 소모하였고 본체에서 다시 자그마한 해골로 변하였다.

힘을 잃은 바가지와 오러와 기력을 잃은 레폰을 향해 마인들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에게서는 이미 이 싸움이 드디어 끝에 다다랐음을 직감한 듯한 감정이 출렁이고 있었다.

* * *

“어쩌죠? 돌아갈 길이 없지 않습니까……?”

이호성이 완전히 넋이 나갔다.

어쩌면 앞으로 마계에 영원히 머무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찾아온 패닉인 듯했다.

“알고 따라온 거 아니야?”

민성이 물었다.

“어느 정도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라는 게요. 생각했던 것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고요…… 하하.”

이호성은 마치 새하얗게 불태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내가 딱히 도움 될 것도 없으니 얌전히 있으라 그랬잖아.”

이호성이 피식 웃었다.

“헌터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오기가 생겨서 그렇죠. 뭐, 이놈의 성격 때문이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이호성이 찌푸린 얼굴로 마계의 땅을 훑었다.

앞으로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한 이호성이었다.

“아 참!”

이호성이 눈을 크게 뜨며 민성을 돌아보았다.

“마인…… 마인이요. 아직 지구에 마인들이 있을 거잖아요. 거기에 바가지랑 레폰이 있고. 괜찮을까요? 헌터님이 돌아가지 못하시면…….”

이호성이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이호성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돌아가지 못하면 상황은 어려워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계에 온 것은 이번에 반드시 벨드를 소멸시킬 각오를 굳혔기 때문이고, 인간계로 돌아가는 것 역시 민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봐야지.”

민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계의 어두운 땅을 보면서 말했다.

그 순간-.

민성이 뭔가에 반응했다.

“……?”

민성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았다.

이호성이 그런 민성을 의아하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이호성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왜 그러세요?”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물었다.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민성이 낮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을 찾았다고요?!”

이호성의 얼굴이 순간 아주 밝아졌으나 그의 표정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민성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였다.

“방법을 찾으셨는데, 왜 그렇게 표정이 굳으셨어요?”

민성이 허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보고 벨드의 자리를 이으라는군.”

“……예?”

이호성이 충격에 의해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벨드가 소멸했으니 마계의 지배자 자리가 공석이 된 바. 그 자리를 앉게 되면 마계의 힘을 이어받는 것은 물론 차원계에도 관여할 수 있게 될 테고.”

“그럼 인간계로 가는 게이트 통로를 열 수 있겠군요.”

멍하게 중얼거리던 이호성이 눈살을 구기며 민성을 보았다.

“하지만 마왕의 자리라니……. 안 됩니다. 제가 헌터님이 이 마계라는 곳을 얼마나 징그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제가 가장 잘 압니다. 그 끔찍한 기억이 존재하는 곳의 주인이 되라니요.”

이호성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곤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이호성이 먼 곳을 보고 있는 민성을 설득했다.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바가지와 레폰이 기다릴 거야.”

“하지만……!”

민성의 침묵에 이호성은 그늘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밥 먹으러 가자.”

민성이 그 말과 동시에 허공을 터치했다.

그 순간, 마계를 떠돌던 마치 영혼과도 같은 검은 마기가 민성에게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그 강대한 마기의 흐름에 의해 뒤로 밀려나 바닥을 굴렀다.

엄청난 마기의 소용돌이가 민성을 중심으로 휘몰아쳤고, 잠시 후, 민성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민성에게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위엄이 흘러넘쳤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을 넋 나간 표정으로 보았다.

비록 마계이나 인간을 초월하여 진정한 신의 단계에 이르렀음에, 이호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민성이 엷게 웃으며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돌아가자.”

민성이 눈을 번쩍이며 손을 한 번 휘젓자.

콰지지지지지직!

공간이 찢어지며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인간계로 가는 차원 문이 열린 것이다.

이호성은 쏠을 데리고, 고통을 삼키는 얼굴로 게이트를 넘어서는 민성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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