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99화>
* * *
서울은 물론 전국의 시민들은 이미 타국으로 건너가 있는 상황이었다.
방송 매체가 해당 사안에 대해 접근했으나 그들은 레드 드래곤 래폰이 친 결계를 넘지 못해, 공중에서 헬기를 타거나 드론으로 촬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민성은 식사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오늘의 요리는 조개 전골입니다.”
이호성이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 있는, 납작한 은냄비 위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메인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환상적이다.
은냄비는 마치 커다란 솥뚜껑만큼이나 컸고, 가스버너 위에서 뜨거운 온도를 잃지 않고 보글보글 끓고 있었는데, 그 은냄비 안에 들어 있는 비주얼이 가히 폭력적이다.
갖가지 종류의 조개와 새우, 어묵, 오징어,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낙지까지.
깊이를 잔뜩 품은 조개 전골의 국물이 가진 뽀얀 색감은 실로 뱃속과 머릿속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마계의 게이트에 대한 긴장으로 아주 잠깐의 기간이지만 그사이 식욕이 없었는데, 마계고 뭐고 이걸 보는 순간 잠들어 있던 식욕이 폭발하는 것을 민성은 느낄 수 있었다.
먹어 보자.
우선 시작은 가리비부터였다.
조개가 잘 익어 있어서 껍질과 쉽게 분리가 되어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와사비를 푼 간장에 아주 살짝 찍어 입으로 홉! 가져갔다.
우물우물-
예상했던 맛이긴 하지만 막상 입에 넣어서 먹자 그 예상을 뛰어넘는 맛이다.
신선함이 가진 힘이었다.
“살아 있는 조개로 만들어서 꽤 괜찮을 겁니다.”
이호성의 말로 인해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극도의 신선함을 가진 재료였기 때문에 그 맛은 가히 일품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익힘의 정도와 국물이 만들어 낸 향이 더해졌으니 가히 최고의 조개 전골 요리라 할 수 있었다.
가리비 몇 개를 먹은 후,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어 보았다.
민성은 참지 못하고 미간을 확 찌푸렸다.
너무 맛있으면 마치 화난 것처럼 인상을 쓰게 되는 법이다.
그게 바로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표현법!
조개 전골의 국물이 정말 최고다.
뽀얀 국물을 마시면 매콤함이 화악 입안과 코끝을 스치는데, 그 뽀얀 국물이 가진 칼칼한 시원함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었다.
청양고추로 우려낸 국물이 가진 매운 맛은 한순간에 몸의 열기를 끌어 올려 준다.
불쾌하지 않게,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매우며 국물은 조개의 향을 품고 있어 대단히 깊은 맛을 만들어 냈다.
“초장에도 한번 찍어 드셔 보시죠.”
민성은 이호성의 말대로 새조개를 초장에 푹 찍어 먹자 쫄깃쫄깃한 조개 맛과 초장 맛이 입안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었다.
민성은 정신없이 조개를 먹어 나가다가 아차 하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빨갛게 익은 낙지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지는 오래 익히면 맛이 없어지고 질겨지기 때문에 빨리 먹어 줘야 했다.
민성은 조개에서 시선을 지우고 낙지부터 먹는 데 집중했다.
와사비를 푼 간장에 낙지를 살짝 찍어 먹으면 탱탱하고 쫄깃한 맛과 더불어 단맛을 입은 낙지의 활력 넘치는 맛이 마치 전신에 퍼지며 스태미나를 확 채워 주는 느낌이 났다.
순식간에 낙지를 클리어한 민성은 가리비, 키조개, 전복, 바지락 등 빠른 속도로 조개를 클리어해 나갔다.
꽤 많다고 생각했는데 집중해서 먹다 보니 어느새 조개가 거의 동이 나고 있었다.
이호성은 딱 먹기 좋을 만큼의 양의 조개만을 넣기는 했지만 민성이 보기에 약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것은 이호성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칼국수 들어갑니다.”
민성은 무거운 얼굴로 조개 전골의 국물에 투하되는 밀가루 면을 쏘아보았다.
타악! 하고 국물을 튀기며 투하된 밀가루가 가열되는 불의 열기에 의해 끓기 시작했다.
밀가루가 조개 전골 국물에 익어 가는 광경은 가히 유명한 예술가의 예술 작품처럼 보일 정도였다.
쏟아지는 빗물 소리.
그리고 쌀쌀한 바람이 만들어 낸 냉기의 온도를 느끼며 조개 전골을 먹고 난 민성은 마무리로 칼국수가 익기를 기다렸다.
이 시간은 행복이란 결코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주는 순간이었다.
“이제 다 익었습니다. 드시죠.”
이호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성은 즉시 세팅되어 있는 앞 접시에 잘 익은 칼국수를 일부 옮기고 국자로 국물을 살짝 펐다.
그리고 앞 접시를 들어 젓가락으로 면발을 입안으로 흡입시켰다.
“후루루루룩!”
입안으로 세차게 빨려 들어오는 뜨거운 면발!
푹신푹신하게, 아주 부드럽게 씹히는 칼국수의 식감과 조개 전골이 섞인 풍미의 향이 콧속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칼국수를 먹고 양손으로 소중하게 잡은 그릇을 입가로 가져가 국물을 마시는 민성을 보며 바가지와 쏠, 그리고 레폰은 넋이 나간 채 민성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정도로 민성은 조개 전골을 완벽하게 즐겨 주고 있었다.
* * *
하루가 훌쩍 지나 새벽이 되었다.
민성은 자고 있었고, 바가지와 쏠, 그리고 레폰도 마찬가지였다.
자고 있지 않은 건 이호성뿐이었다.
새벽 시간.
홀로 깨어 있는 이호성은 천막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투명한 텐트 창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더럽게도 무섭게 생겼네.”
이호성은 투명한 텐트 창 너머로 타오르는 거대한 게이트를 보며 혀를 찼다.
저기서 상향된 마인들이 쏟아져 나온다니.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파충류의 눈을 닮은, 타오르는 게이트를 응시하기를 잠시.
이호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게이트를 향해 고개를 조금 더 내밀었다가, 우비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오며 들고 있던 담배를 버렸다.
게이트가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호성은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던 끔찍한 재앙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는 듯했다.
그리고 언제나 나쁜 예상은 적중하는 법이었다.
불에 타오르는 듯한 게이트에서 그 붉은 불이 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은 현상이 눈에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열기가 더해진 것 같지는 않다.
온도의 변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변화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게이트가 나타난 후로 처음 보여 주는 외적 변화였으니까.
그리고 그 변화가 전쟁의 시작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없을 일이었지만, 그냥 넘어갈 만한 일도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헌터님……. 헌터님!”
이호성이 게이트를 보며 소리쳤다.
그 외침에 민성이 천천히 눈을 떴고, 뒤이어 바가지와 쏠, 그리고 레폰도 눈을 떴다.
민성이 누워 있던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이호성의 옆에 섰다.
그리고 게이트의 변화를 눈에 담았다.
“뭔가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호성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워. 마지막 담배가 될지도 모를 테니까. 담배 피우는 김에 나가서 주변에 남아 있는 인원 없는지 확인하고.”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세요.”
이호성은 너무한다는 듯 민성을 보다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칙 붙임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이호성이 나가는 걸 흘깃 돌아본 민성은 바가지를 향해 손짓했다.
바가지가 민성에게 뛰어가 발밑에 서서 자신의 주인을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민성이 바가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바가지.”
“네, 주인님.”
“이호성은 죽을 거다.”
“…….”
바가지는 대답 없이 민성을 지켜보았다.
민성이 말을 이었다.
“죽고 나면 네가 시신을 챙겨라. 언데드로 만들지 말고, 시신만 챙기는 거다.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고말고요. 걱정 마세요, 주인님! 똥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내 등 뒤에서, 마인의 시신을 언데드화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마라. 절대로. 이건 명령이다.”
바가지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주인님.”
민성은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다시 게이트를 보았다.
게이트의 붉은 불이 점점 하늘을 향해 올라가더니, 그 불이 검은 먹구름의 하늘을 뒤덮어 나가기 시작했다.
촬영을 위해 떠다니던 드론과, 헬리콥터가 깜짝 놀란 듯 급격히 방향을 선회했다.
변화가 시작됐다고 해도, 당장 마인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민성은 빨리 마인들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긴 했지만 그런 급한 마음을 비우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계속했다.
욕심이 생기고, 초조함을 버려 내지 못하면 실수가 생긴다.
실수는 곧 죽음과 직결된다.
마계에서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절대로 그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어쩌면 마계를 피해 왔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여기까지다.
더 이상 지저분하게 얽혀 들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다.
목숨이라는 리스크를 걸고서라도, 민성은 이번에 마계를 끝장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와라.
하늘에 불을 붙이는 게이트를 응시하며 민성이 눈매를 굳혔다.
* * *
이호성은 김지유와의 통화를 통해 현재 게이트 부근에 중앙 헌터 기관 병력이 남아 있는지를 체크했고, 인원 파악이 끝났으니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전해 들었다.
또한 현장을 떠나기 전 수색을 끝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민성의 일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확답을 들었다.
중앙 헌터 기관의 병력이 떠난 시점부터, 레폰의 결계가 둘러져 있는 이곳은 철저히 제한된 영역이었다.
이호성은 피우던 담배를 흙바닥에 버려 발로 비벼 끈 뒤, 민성이 있는 텐트로 돌아갔다.
“문제없다고 합니다.”
이호성의 보고에 민성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르-!
게이트가 굉음을 냈다.
이내.
콰아아아아아앙!
게이트가 마치 별이 폭발하는 듯 화려한 폭발을 터트렸다.
엄청난 힘이 주변을 덮치는 듯했으나 폭발만 있었을 뿐, 뜨거운 공기가 느껴지는 것 외에는 별달리 영향은 없었다.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호성이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그가 말했던 대로 거대한 게이트의 통로 입구에서 수백에 달하는 숫자의 마인이 동시에 끈끈한 점액을 뚫듯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툭, 툭, 툭, 투둑! 툭! 투투툭!
바닥으로 마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뿔을 달고, 검은 피부에 날개마저 달고 있는 마인들이 빨간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일제히 먹잇감을 찾으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와중에서 게이트에서는 계속해서 마인을 쏟아 내고 있었다.
마인들이 땅에 쌓이듯이 떨어지는 건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