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298화 (298/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98화>

* * *

마계의 주인 벨드는 허공에 떠 있는 마치 태양과도 같은 불덩어리의 구체를 마치 사랑에 빠진 것만 같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벨드가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 가진 권능과 마기를 쏟아부어 만든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이 구체가 가진 힘은 가히 위대하다고 볼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태어나라, 나의 아이들이여.”

벨드가 광기에 물든 눈으로 구체를 보며 입을 찢으며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구체가 변화를 일으켰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구체에서 꾸물꾸물하며 뭔가가 끈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용암 속에서 나오듯 소마인이 새빨간 온도의 붉은 액체를 뒤집어쓰며 한두 마리씩 천천히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벨드는 그 광경을 입을 길게 늘이며 웃는 얼굴로 지켜보았다.

마치 한계가 없는 것처럼 소마인은 그 구체에서 계속해서 태어나고 또 태어났다.

무한 번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점점 구체가 사방으로 소마인을 쏟아냈다.

척박한 마계의 땅에 떨어진 소마인들은 이제 갓 태어났기 때문에 바닥을 엉금엉금 기면서 괴이한 소리들을 냈다.

벨드는 살며시 점프했고, 벨드의 몸은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공중에서, 타오르는 구체가 잉태하여 쏟아내는 마인들을 내려다보았다.

마계의 검은 땅을 뒤덮는, 붉은 액체를 뒤집어쓴 소마인들이 사방으로 기어 나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크흐흐흐하하하하하!”

벨드는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가 고개를 치켜들며 마계의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벨드의 눈에는 자신이 원하는 세계의 그림이 명화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 * *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굵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쿠그그그그그긍긍!

게이트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변화를 시작했다.

민성이 텐트의 천막을 쳐 내며 밖으로 나왔고, 그 뒤를 따라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과 레폰이 마치 새끼오리처럼 줄줄 따라 나왔다.

민성의 일행 전부 타오르는 게이트를 보았다.

게이트는 점점 더 그 덩치가 커지고 있었다.

멈출 생각이 없는 듯, 2층 높이 정도에 불과했던 게이트는 점차 그 크기가 순식간에 5층 높이는 될 법한 높이로 변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이트는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이제는 목을 꺾어서 턱을 바짝 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변하고 말았다.

“……엄청나네요.”

이호성이 게이트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완전히 게이트의 존재감 자체에 압도당한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저기서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겠지.”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은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곧 시작되는 걸까요?”

“그건 모르지.”

예정된 재앙이라는 것만큼은 틀림없었고, 그 사실은 공포를 유발시킨다.

이호성은 그 압도되는 공포에 짓눌리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사실 민성에게 잘난 척하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끝을 보겠다고 허세와 너스레를 떨었지만, 게이트를 보고 있는 이 순간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아주 잠깐,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게이트는 웅장했고, 살벌했다.

활활 타오르는 원형의 게이트, 그리고 파충류의 눈을 담은 검은 홀이 세워져 있는 저 통로는 마치 지옥과 연결된 문처럼 보였다.

아니, 그 통로는 실상 마계와 연결된 것이니 말 그대로 지옥과 연결된 통로인 게 사실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니 지금 민성의 일행은 지옥의 입구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의 입구가 서서히 그 본체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슬슬 테스트를 해 봐야겠어.”

민성이 게이트를 보며 말했고,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이 바가지를 불러, 레폰에게 결계를 쳐 달라고 말했다.

민성의 명령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가지는 곧장 게이트를 넋이 나간 듯이 보고 있는 레폰에게 탁탁 뛰어갔다.

그리고 자신만의 마법 언어로 레폰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바가지에게 마법 언어를 통해 마법 결계를 쳐 달라는 것을 이해한 레폰이 마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레폰의 주변으로 오러의 입자가 모여들고, 이내 레폰의 발아래 번쩍! 하고 섬광과도 같은 빛을 뿜어내는 마법진이 그려졌다.

“오……!”

이호성이 감탄하며 그런 레폰을 응시했고, 놀란 것은 민성을 제외한 바가지와 쏠 역시 마찬가지였다.

휘이이잉-!

쏟아지는 굵은 빗물이 레폰을 중심으로 그 주변으로 마치 토네이도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레폰은 레드 드래곤으로서 몸체 자체는 아주 작았지만, 그가 뿜어내는 마력의 힘이 보여 주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인간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영역의 서클 마법이 힘을 쓰기 시작했다.

번-쩍!

레폰이 가진 힘에 의해 결계의 마법이 시행되었다.

주변 산 지형의 땅바닥이 마치 형광등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그 순간은 아주 잠시였고, 빛은 금세 사라졌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바가지의 설명에 의하면 현 위치를 기준으로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 결계가 생성되었다.

민성은 즉각 결계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땅을 차고 뛰자 민성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대지를 가로 질렀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5킬로미터 지점을 이동했고, 민성은 바가지의 설명대로 결계가 생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한 푸른빛의 벽이 생성되어 있다.

손을 가져다 대자 딱딱한 벽면이 만져졌다.

만약 강도가 약하다면 벽을 세운 의미가 없다.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민성은 마기를 끌어 올렸다.

민성의 오른쪽 주먹에 마기의 빛이 어른거렸다.

상당한 양의 마기였고, 이 정도 힘이라면 성장된 마인이라고 해도 직격타를 맞을 경우 그 일부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의 힘을 가진 수준이었다.

그 정도 마기의 힘이라면 테스트를 해 보기에 충분했다.

민성이 천천히 왼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축을 디딘 다음 허리를 비틀면서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어어어어어어엉-!

귀를 찢을 듯한 폭음.

하지만 소리만 강렬할 뿐이었다.

민성의 주먹이 레폰이 만든 결계의 벽을 맞고 그대로 튕겨져 나왔기 때문이다.

민성은 얼얼한 주먹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레폰이 만든 푸른빛의 반투명한 결계의 벽을 응시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결계였다.

마인들의 힘이 닿는다고 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놀라운 방어력.

이 정도면 충분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렸다.

* * *

태양과도 같은 불구덩이 구체에서 태어나 마계의 땅에 떨어진 소마인들의 성장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마계의 주인 벨드의 힘에 의해서였다.

성장 속도가 빨라진 소마인들은 급격히 키가 자라고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벨드는 소멸되지 않고 떠돌아다니던 마인들의 영혼을 불러 모았다.

그 영혼은 하나하나 소마인에게 심어지듯 옮겨졌고, 이제 막 태어났음에 불과하지만 영혼을 받아들인 소마인들은 전투 경험을 그대로 흡수하였다.

전투 능력이 상향되어, 출발 지점 자체가 다른 마인들은 전투 본능에 의해 마치 괴성과도 같은 고함을 사방에서 질러 댔다.

마계의 땅에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한 마인들은 마계의 땅을 뒤덮을 듯이 늘어나고 있었다.

서서히 결착을 지을 시기가 왔음을 느낀 벨드는 이제 결정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게이트의 문을 열면, 인간계를 향한 2차 마인 공습이 시작된다.

지난번의 1차 공습은 처참히 실패했지만, 지금의 전력은 그때와 비교해 보면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큰 차이를 갖고 있었다.

검은 학살자라는 명칭은 이제 벨드 자신의 결정을 기점으로 하여 사라지게 될 것이다.

벨드는 좀처럼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검은 학살자는 아주 오래전 마계에 있을 때부터 늘 골치가 아팠던 인물이었다.

질기고 질긴 생명을 겨우 처치했더니, 인간계에서 다시 기어 올라오다니.

이제는 정말 끝이다.

벨드는 지긋지긋한 그놈을 드디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주신들의 토사구팽에 대한 문제 또한 그 대비를 끝마쳐 놓았다.

천계와 마계는 엄연히 구분된 세계.

마계의 주인은 자신이니, 마계와 천계의 문을 닫을 수 있는 권한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워낙 천계의 수발을 들어주느라 잊고 살아서 그렇지, 마계에도 마계의 규칙이 있고 마계의 권한은 늘 존재했다.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천계를 버린다.

힘을 가졌으니, 더 이상 머리를 숙이고 천계의 개로 살아갈 필요 따위는 없었다.

물론 천계가 자신이 틀어막은 마계의 문을 부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천계와 마계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계의 주신들은 마계로 넘어오면 자신들이 가진 힘의 절반도 채 쓰지 못한다.

마계가 가진 어둠의 근간이 그들의 빛을 가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전쟁을 하려면 그들도 큰 피해를 피할 수 없을 터.

약아빠진 주신들이 그런 리스크까지 감수하며 마계를 건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따지는 것이 많으니, 하는 짓이라고 해 봐야 천계에서 자신의 뒷담화나 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크흐흐하하하하하!”

벨드는 마계 전부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게 광소를 터트렸다.

이제 곧 자신의 시대가 열릴 것임을 벨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헌터님, 식사하셔야죠.”

이호성이 커피를 들고 텐트 입구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보고 있던 민성에게 말했다.

민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뭐가 좋을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기가 막힌 걸로 준비해 드리죠.”

이호성이 요리 준비에 나섰다.

민성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콰르릉!

하늘에서 자신의 궁니르S에서 나올 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들리며 이호성이 준비하고 있는 음식 냄새가 맡아졌고, 게이트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하나로 정리했다.

레폰에 의해 결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남은 것은 전쟁뿐이며, 마인의 박멸과 마계를 멸망시키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만약 마계로 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고 한다면, 자신은 그 마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호성에게는 끝을 맺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마계는 민성에게 있어 가장 악독한 트라우마였다.

마계를 벗어날 수 없어, 버틸 자신이 없어 마계에서 스스로를 버렸던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다시…… 마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민성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지구로 돌아와 음식을 원 없이 먹었다.

그것만으로 됐다.

미련은 남지만, 그 정도는 끌어안고 가야겠지.

이 지긋지긋한 악연은 반드시 끝을 내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