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97화>
* * *
마인을 쓰러트린 민성은 레폰이 쏘아 올린 불기둥을 돌아보았다.
레폰에게 뭔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민성은 템창에 궁니르S를 던져 놓고 레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레폰을 빤히 응시했다.
이호성 역시 긴장한 눈으로 레폰을 지켜보았다.
불기둥을 쏘아 올린 이후로, 레폰은 제자리에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레폰.”
이호성의 부름에 하늘을 보던 레폰이 돌아섰다.
“텐트 안으로 들어갈까?”
이호성이 손으로 텐트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레폰은 이호성의 앞으로 걸어가서 이호성을 올려다보았다.
이호성이 텐트 쪽으로 이동하자 레폰이 따라 움직였다.
이호성은 민성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바가지를 손짓하여 불러 레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호성은 언어에 대한 희망을 갖고 다시 교육을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는 동안 게이트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고, 또한 마인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 의자에 앉아 게이트를 보는 민성의 눈은 어두웠다.
그의 눈에는 혼란과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해가 밝은 대낮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컴컴하게만 느껴졌다.
민성은 천천히 허리를 세워 등 뒤에 위치해 있는 텐트 쪽을 돌아보았다.
이호성이 여전히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레폰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게 들렸다.
민성은 다시 타오르는 붉은 게이트를 응시했다.
두 가지의 가정이 자꾸만 민성의 머릿속을 떠다녔다.
하나는 레폰이 마법 방어 결계를 만들지 못했을 경우였다.
만약 전투 능력이 상향된 마인들이 쏟아져 나올 경우 펼쳐질 그림에 대한 상상은 민성의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쏟아져 나온 마인들이 일제히 민성 자신만을 노릴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마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분명 새어 나가는 마인의 숫자 또한 엄청날 것이다.
게이트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다행인 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인의 전투 능력이 상향된 이상, 쏟아지는 숫자 전부를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외부로 유출된 마인이 국내 도시부터 시작해 전 세계로 번져 나가기 시작한다면 지구는 빠른 속도로 멸망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고위급 헌터라고 해도, 그들은 절대로 마인을 막아 낼 수 없다.
상향되기 전의 마인조차 막아 내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전투 능력이 몇 배나 강력해진 마인들이라면 인류를 지배하는 데 걸리는 기일은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때문에 레폰의 마법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반대로 만약 레폰의 대마법으로 결계를 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국내 피해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 영역 안에서 싸울 수 있다.
조금은 초조한 표정으로 턱 끝을 문지르던 민성은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허리에 손을 얹고 레폰을 보고 있던 이호성이 민성의 기척에 돌아보았다.
“어떻게 돼 가?”
이호성이 싱긋 미소 지었다.
“진척이 있습니다.”
민성은 살짝 눈을 반짝이며 레폰의 앞으로 걸어갔다.
레폰은 지친 듯 잠들어 있었다.
“진행 정도는?”
“아직은 간단히 단어를 주고받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드래곤인 만큼 그 습득 속도는 상당히 기대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식사 준비해 드릴까요?”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따가 아침 겸 점심으로 하지.”
이호성의 눈에 의외라는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건 잠시였다.
“알겠습니다.”
민성은 잠시 레폰을 지켜보다가 바가지에게 가볍게 손짓하며 걸음을 옮겼다.
바가지가 뒤를 곧바로 탁탁 뒤쫓아 따라갔다.
여전히 먹구름이 떠 있었지만, 비는 부슬비 정도만 내리고 있었다.
민성은 텐트 밖 의자에 앉았고, 바가지는 민성의 바지를 타고 올라가 민성의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자신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민성은 그런 바가지의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마석을 먹으면서 바가지는 이미 엄청난 성장이 진행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번 마인과의 전쟁에서 바가지의 역할은 중요 했다.
마인과 붙을 수 있는 전력이 자신과 드래곤인 레폰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한 상황인 만큼 바가지의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시스템 능력을 통해 바가지의 스탯을 확인했고, 바가지를 보는 민성의 고민은 한층 더 그 무게를 더했다.
왜냐하면 바가지가 성장을 하긴 했지만 바가지의 능력으로는 마인들의 공습을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번에 마계는 아주 작정을 하고 준비했다.
인간계에 마계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중요한 건 시기다.
마계에서 공습을 마음 먹기 이전에 준비를 마쳐야 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준비라고 해 봐야 레폰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져 결계를 치는 것만이 전부인 상황.
민성은 굳은 얼굴로 게이트를 돌아보았다.
* * *
마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채로 며칠이 흘렀다.
그 며칠 간의 시간은 민성에게 있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희소식이 들려왔다.
“헌터님!”
텐트 밖에서 모닥불에 꼬지를 구워 먹고 있던 민성은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의사 소통이 가능해졌어요!”
이호성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민성은 꼬지를 은그릇 위에 놓고 곧장 텐트 안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바가지와 레폰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직접적인 대화는 어렵지만, 바가지가 마법 언어로 서로 교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레폰이 바가지를 받아들여 준 것이죠.”
“마법 결계는?”
바가지가 벌떡 일어나 민성의 앞으로 뛰어와 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민성은 바가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잘했다.”
흔하지 않은 민성의 귀한 칭찬에 바가지는 기분이 좋은 듯 바닥을 뒹굴뒹굴 굴러 다녔다.
레폰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와, 친해진 바가지를 이상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잠깐 얘기 좀 하지.”
민성이 그렇게 말하고서 텐트 밖으로 나갔다.
민성이 다시 모닥불 앞에 앉았고, 이호성도 민성의 옆자리인 모닥불 앞에 앉았다.
바가지의 흑마법으로 피운 불은 부슬비 정도에는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민성은 가라앉은 시선으로 불꽃을 응시했다.
이호성은 조금은 긴장한 채로 민성이 할 말을 기다렸다.
“머지않았다. 마인들이 들이닥칠 날이.”
민성이 말했다.
“그렇겠죠. 아마도.”
이호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일에서는 빠져라.”
민성이 먼 곳을 보며 말했다.
별달리 그를 걱정해서 말한 어투는 아니었다.
그저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이호성에게는 아프게 다가왔다.
이호성은 조금 어깨가 처졌다.
레폰에게 언어를 가르친 건 분명 아주 중요하고 큰일을 해낸 것만큼은 틀림없지만, 사실 그건 바가지의 능력이 훨씬 컸다.
사실상 자신이 한 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돌이켜 보면 강민성과 함께 다니면서 자신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민성이 말했고, 이호성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민성이 말을 이었다.
“넌 네가 가진 능력으로 최대치를 보여 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내가 내린 명령의 대부분을 완수했다. 그건 절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이호성은 쓰게 웃었다.
“별로 위로가 안 되는데요?”
“이 지구라는 별에서, 마인을 막아 낼 수 있는 건 나 뿐이야.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마라.”
민성은 이어 말했다.
“난 마계에서 왔고, 마계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마무리를 지을 뿐인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죠. 저한테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거든요. 이 마지막 끝맺음이라는 게.”
이호성이 게이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약하고, 겁 많고, 늘 부족했던 제가, 헌터님과 함께 해온 길의 종착지 같은 겁니다. 저 마계의 게이트는요.”
“…….”
“물론 이 마계라는 곳이 종착지인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끝을 보는 건 헌터님만이 아니라 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왔잖아요. 그럼 그 끝에도 제가 있어야죠.”
“네가 죽으면 바로 부활을 쓸 수가 없어. 다시 죽을 가능성이 높기 떄문이고 아무리 부활이라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권능에 빈틈이 있을 수도 있다. 즉 너를 부활시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호성이 찌푸린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헌터님, 부활 권능을 가지고 마인들과 싸우는 지금의 이 상황보다 말이죠. 지금까지가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 많았습니다. 그때 헌터님은 부활 권능도 없었잖아요.”
이호성이 핀잔을 주듯 말했고 민성은 그 농담 섞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말이죠. 사실 별로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이호성 하면 구사일생 아닙니까? 하하.”
이호성이 너털 웃음을 흘리며 말했지만, 민성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그래도 이번 일에서만큼은…….”
“그럴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목숨을 거는 건 헌터님뿐만이 아닙니다. 저 그리고 바가지. 그리고 쏠과 레폰까지. 모두가 함께할 겁니다. 헌터님은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죠. 든든하지 않습니까?”
“퍽이나.”
이호성은 큭큭 웃었다.
“비겁하게 살아남겠다는 이유 하나로 이곳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살아남는 데 비겁이라는 글자 따위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민성이 무겁게 말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헌터님과 함께해 온 길을 외면할 수 없죠. 두렵고 많이 힘들었지만, 사실 꿈만 같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헌터님 덕분에, 인류의 최정상을 경험했으니까.”
“죽으면 모든 게 끝이야.”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적어도 저는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민성은 코웃음을 쳤다.
“의미부여 해 봐야 개죽음이다.”
“그 개죽음을 숱하게 뛰어넘어 왔습니다. 제 걱정은 마시죠. 그리고 제가 아니면 누가 이 전장에서 헌터님 식사를 챙겨 드리겠습니까? 그리고 그만 좀 찡찡거리세요. 영 적응이 안 되니까.”
민성이 먼 곳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민성이 꼬지를 들어 모닥불에 익히며 입을 열었다.
“살려 달라고 울지나 마라.”
민성이 그렇게 말하곤 잘 익은 달달한 꼬지를 씹어 먹었다.
이호성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키득 웃었다.
“이번 일 끝나면 연애에 눈 좀 뜨세요. 늘 보기 안타깝습니다.”
민성이 빠직 혈관이 돋은 채로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이호성은 큭큭 웃으며 담배를 피웠다.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하늘 위로, 이호성의 담배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갔다.
폭풍 전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