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96화>
* * *
“와……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네요.”
이호성이 텐트 근처에 만든 대형 컨테이너 안에 모이는 마석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석이 산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전 세계 헌터들이 마치 금 모으기 운동처럼 마석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마석이 쌓여 가고 있는 것이다.
이호성은 그런 마석이 산을 이루듯 쌓여 가는 걸 보다가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바가지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마석을 쉴 새 없이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고 있었다.
“맛있냐?”
이호성의 물음에 바가지는 마석을 먹다 말고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칵칵 웃었다.
“헌터님, 얘 이거 이렇게 계속 먹어도 되는 거예요?”
“괜찮아. 어차피 바가지도 마석을 먹으면 성장할 거고, 이 녀석이 먹는 걸 보면 저 녀석도 마석을 먹을지 모르지.”
민성의 말에 이호성의 시선이 바가지를 구경하고 있는 레폰에게로 돌아갔다.
레폰은 바가지와 마석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드래곤이 마석을 먹으려고 할지 모르겠네요.”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은 시도해 보는 거다. 그리고 만약 바가지와 레폰이 서로 친화력이 생긴다면, 바가지가 레폰의 마법 저항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보단 바가지가 가능성이 더 높겠군요.”
“마법 저항을 푼다고 해도 바가지의 능력과 레폰의 능력은 차원이 달라. 거의 가능성이 없을 거다. 결국 저 녀석이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하는 거겠지.”
이호성이 쉽지 않겠다는 듯 짧게 한숨 쉬었다.
“그나저나 게이트에서 소마인이 나온 이후로는 조용하네요.”
“선전 포고.”
“선전 포고요?”
“마계의 주인인 벨드가 내게 베아트리체에서 업적 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리고 주신들 역시.”
“하지만 헌터님은 다시 지구로 돌아오셨죠.”
“그래. 그러니, 약이 바짝 오른 주신들이 마계의 주인인 벨드를 이용해 인간계를 타격할 것을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어.”
“주신들이요?”
“벨드 혼자서는 나를 감당할 수 없을뿐더러, 소마인이 이 정도로 강할 수가 없어. 분명 주신을 등에 업은 게 틀림없다.”
“치사한 자식들……. 명색의 신이라는 것들이.”
이호성이 불만 가능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러다 그는 민성을 보았는데, 쌓여 가는 마석을 보는 민성의 얼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이 좀처럼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서려 있는 듯했다.
민성에게 보기 드문 표정들이 최근 들어 자주 보였다.
이호성은 헌터로서, 인류의 위기 앞에 반드시 스스로의 몫을 해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이호성의 답답함은 가시질 않았다.
민성의 얼굴이 자꾸만 굳어지는 건 괜히 그런 것이 아니었다.
레폰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모든 시도를 다 해 봤지만 일말의 진전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호성이 머리를 북북 긁으며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골머리를 싸고 있던 중이었다.
레드 드래곤 레폰이 마석을 먹고 있는 바가지에게 다가가는 걸 보고 이호성은 음? 하고 고개를 바짝 들었다.
레폰이 바가지에게 다가가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가지는 경계감 없이 마석을 쉴 새 없이 먹어 대고 있었다.
그런 바가지를 구경하던 레폰은 본인 역시 마석 하나를 탁 집어 먹기 시작했다.
아그작아그작!
마석을 먹어 본 레폰이 눈을 번쩍 떴다.
꽤 맛있는 모양이었다.
레폰은 바가지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작정하고 마석을 먹기 시작했다.
레드 드래곤이 바가지처럼 마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이호성으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으나 민성은 별달리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애당초 마석을 가져오라고 한 건 민성의 지시였으니까.
“헌터님, 레폰이 마석을 먹을 거라는 걸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의 마석을 모을 생각을 하셨어요? 혹시나 마석을 레폰이 먹거나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었잖아요.”
“못 먹었으면 바가지가 먹어도 되는 거고, 어떻게든 저 녀석이 활용을 했겠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쓰이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그런 연유로 그렇게나 좋아하는 마석을 원없이 먹을 수 있게 됐으니 바가지는 아주 살판이 났다.
이호성은 레폰이 바가지와 사이좋게 마석을 먹고 있는 걸 보며 피식 웃었다.
적어도 아주 잠시간은 마계의 게이트에 대한 생각이 잠깐은 사라지는 듯했다.
“휴우.”
언어를 가르쳐야 하는 것에 대한 막막함으로 다시 가슴이 갑갑해져 올 때, 갑자기 이호성은 등 뒤로 소름이 우수수 돋는 걸 느꼈다.
이내 그 소름은 전신의 오한으로 번지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신체의 반응에 이호성이 민성을 보았고, 민성은 이미 게이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호성이 시선 역시 뒤늦게 게이트 쪽으로 이동했다.
마인이 게이트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 * *
“한 마리씩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군.”
민성이 템창에서 궁니르S를 꺼냈다.
마계로 갈 수만 있다면 들어가서 단숨에 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마계라는 곳은 섣불리 들어갈 수는 없다.
마계는 결코 전투에 있어 유리한 지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계는 거의 무한하다시피 넓었고, 그 넓은 곳에서 제대로 된 영양 보충을 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은 사실 전투라기보다는 지독한 고문에 가까웠다.
때문에 차라리 여기 인간계인 지구에서 싸우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민성은 마인들이 그런 자신의 지구를 건드리는 걸 용납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콰르릉!
민성의 손에 들린 궁니르S가 천둥소리를 포효했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마인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마인이 어깨와 등을 굽힌 자세로 민성을 빨간 눈으로 노려보았다.
마인이 달려들기 전에 민성이 먼저 유령 같은 눈으로 놈을 시선에 담으며 뛰어들었다.
마인이 검은 손을 휘둘렀다.
세 줄기의 검은 기류가 위협적으로 날아왔으나 민성은 침착히 궁니르S로 그것을 쳐 내고 더 가까이 접근했다.
민성이 창을 휘두르고 마인이 손을 쓸 때마다 마치 벼락이 치듯이 번쩍거리는 빛이 사방으로 번쩍였다.
전투를 이어 가면서 민성은 짜증이 치밀었다.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던 일개 마인의 전투 능력이 예상했던 대로 확실히 비상식적으로 성장했다.
이 정도의 전투 능력을 가진 마인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상황은 분명 심각해질 것이 틀림없었다.
민성은 거대한 마계의 변화 앞에서 긴장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나 느껴 봤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
간단하게 생각하고 우선 움직이는 것만이 최선일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럴 때라고 민성은 생각했다.
쇄애애애애액-!
궁니르S가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생명력을 보여 주는 듯한 폭발적인 힘을 터트리며 마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가볍게 머리를 틀어 공격을 피해 낸 마인의 손이 마치 늘어나듯 하며 민성의 몸통을 향해 파고들었다.
민성은 창을 쥐지 않은 왼쪽 팔꿈치로 들어오는 마인의 손등을 쳐 낸 뒤, 궁니르S를 역수로 잡아 어깨를 내려찍었다.
“끼아아아악!”
마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마치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민성이 찔렀던 창을 빼냈을 때, 마인은 쓰러지지 않고 외려 더 폭발적인 속도로 공격해 왔다.
민성은 마인의 공격을 피하면서 이를 으득 갈았다.
한 마리의 마인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서 어쩐단 말인가?
민성은 마인을 향해 집중하며 궁니르S를 손을 놓았다.
이기어검술을 통해 날아간 궁니르S가 마인의 가슴을 퍽! 하고 관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인은 마치 좀비처럼 쓰러지지 않고 민성을 향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왔다.
입을 크게 벌리며 무수한 이빨로 물어뜯기 위해 다가왔다.
민성은 주먹을 말아 쥐고 마인을 향해 마기를 잔뜩 담아 내질렀다.
퍼어어어어어엉-!
마인이 마치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살덩어리와 내장이 흩어져 나갔다.
후두두두둑!
민성은 마인의 사체 덩어리가 흩어져 내리는 걸 보고 짧게 혀를 찼다.
한 마리를 잡는 데 쓰는 마기의 양이 너무 많았다.
이런 식으로는 본격적으로 마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면 지난번과 같은 그림이 펼쳐질 리 없었다.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 * *
벨드는 검은 학살자라 불렸던 민성이 한 마리의 마인을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인하고서 인간계를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완전히 확신했다.
자신의 마인 병력을 막아 낼 수 있는 건 인간계에서 검은 학살자뿐이다.
그런데 이제 곧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마인 군대가 쏟아질 것이다.
크흐흐……!
검은 학살자랍시고 으스대던 인간 놈이 앞으로 허덕이는 게 아주 볼 만하겠군.
벨드는 광기에 물든 눈으로 인간계를 내려다보다가 주신 쪽으로 생각을 옮겼다.
분명 인간계를 장악하고 나면, 천상계의 주신 쪽에서는 분명 자신이 가진 힘을 무너트리기 위해 움직일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응일까?
계속해서 고민해 왔던 문제였지만, 쉽사리 그 문제에 대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고 있던 중이었다.
어차피 인간계를 점령하는 건 기정사실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
시간을 갖고 반드시 해답을 찾아낸다.
마계에서 벨드의 눈이 음험하게 번쩍였다.
* * *
마석을 끊임없이 먹으며 마치 영화 보듯 마인과 전투를 하는 민성을 지켜보던 바가지는 민성이 마인을 잡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레드 드래곤인 레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레폰은 마석을 아그작아그작 씹으며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엄청난 양의 마석을 먹어 치운 바가지였고, 자신의 주인인 민성에게 레폰에게 대화를 시도하라는 것을 명령 받은 상태였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친화력이 생긴 것 같아 바가지는 레폰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어둠이 근간이 되는 흑마법을 통해서였다.
바가지의 안광이 검은 혼불처럼 활활 타올랐고, 이내 흑마법의 힘이 레드 드래곤인 레폰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레폰은 이미 바가지를 가족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공격성이 없는 그 마법의 힘을 거부하지 않았다.
교감을 위한 레폰의 마법력과 바가지의 흑마법이 서로 섞여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연결 고리가 완성되는 순간, 바가지의 흑마법의 힘이 레폰과 일체화를 이루었다.
바가지가 가지고 있는 언어 능력이 레폰에게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레폰이 붉은 비늘이 검은빛을 띠면서 마법에 의한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이호성은 크게 뜬 눈으로 레폰과 바가지를 넋을 잃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마석이란 기본적으로 마법의 힘을 증폭시켜 주는 물질이다.
그런 물질을 통해 결국 교감이 통했다.
바가지의 흑마법을 통해 언어 능력을 깨우친 레폰이 하늘을 향해 눈을 번쩍이며 브레스를 뿜었다.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한 불기둥이 빗물이 쏟아지고 있는 검은 하늘의 먹구름을 향해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