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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95화 (29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95화>

“쉽지 않은 일이겠네요.”

김지유가 레폰을 보며 말했다.

“…….”

민성이 침묵했고, 김지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고, 반드시…… 저 정체불명의 게이트로부터 이 세계를 지켜 내야겠죠.”

김지유가 바깥쪽을 보다가 민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석은 걱정하지 마세요. 최단 시간 안에 준비시킬 테니까요.”

김지유는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민성은 마치 튀김 소리와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레폰을 응시했다.

앞으로 저 백치와 다를 것 없는 레폰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고민이 깊어 보이십니다.”

이호성이 근처에 앉으며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민성은 레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이토록 필요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 누군가라는 건 레폰을 가리킨다는 것 정도는 이호성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호성의 시선 역시 레폰에게 머물렀다.

“바가지가 마법 언어를 할 줄 알지 않나요?”

“등급 차이가 너무 커서 안 될 거다.”

“하긴, 그렇겠네요.”

이호성이 힘 빠진 표정으로 옅게 웃었다.

“이호성.”

“네, 헌터님.”

“만약 이번 일이 마무리가 된다면, 그리고 이게 정말 끝이라면.”

“……?”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면……. 쉬고 싶어요.”

“쉬고 싶다고?”

“물론 헌터님의 허락이 있으셔야겠지만요.”

“허락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그때가 되면.”

“오? 놓아주시는 겁니까?”

“매달릴 땐 언제고 그런 소리냐?”

이호성이 하하 웃었다.

“일단 여행을 좀 하고, 머리 좀 식힌 다음에 식당을 열 생각입니다. 자주 오시죠. 서비스 팍팍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민성이 표정이 없는 얼굴로 초점 없는 눈으로 말했다.

그 표정을 보고 이호성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무거워졌지만, 이내 그는 털어 내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헌터님은 말이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림이라는 게 없으셨던 분입니다.”

민성이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늘 빈틈이 없는, 그런 완벽한 전사였죠.”

“…….”

“그런 헌터님께서 늘 저를 데리고 다녀 주셨지만, 그런 역사적이고 위대한 분 앞에 사실 전 크게 한 일은 없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떠한 큰일을 말이죠.”

“…….”

이호성이 천천히 일어서서 레폰을 응시했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정말 큰일을 한 번 해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레폰에게 언어를 가르치겠단 말인가?”

이호성이 짧게 한숨 쉬었다.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반드시 해내야죠.”

민성은 고개를 숙이며 코웃음을 흘렸다.

이호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민성을 돌아보았다.

“믿어 주십시오. 해낼 겁니다.”

“비웃는 게 아니다.”

민성이 시선을 들어 이호성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난 단 한 번도 너를 믿지 않은 적이 없으니까.”

“네? 감동인데요?”

이호성이 당황스럽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성이 일어서서 이호성의 옆에서 그의 어깨를 손으로 탁 짚었다.

“그럼 이제 이 세계의 명운이 네게 달린 거군.”

이호성은 피식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 마무리 스파이크는 헌터님이 하시는 거죠.”

“믿는다.”

이호성이 레폰을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예.”

이호성은 짧은 대답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며 레폰을 향해 가느다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미소 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육중한 책임감에 의한 긴장의 무게가 서려 있었다.

* * *

김지유가 전 세계에 보유 중인 모든 마석을 한국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했다.

현 사태에 대한 1급 정보가 전 세계 각 헌터장들의 귀에 들어갔고, 마인을 상대해 본 전력이 있는 그들은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전량의 마석을 한국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마석이 워프 게이트를 통해, 그리고 차량을 통해 게이트 앞으로 운송되고 있는 사이 이호성은 레폰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레폰이 말귀를 알아먹어야만, 필요로 하는 마법을 지원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레드 드래곤 레폰의 마법 수치 능력이 워낙 높은 탓에 언어 기능이 가능한 그 어떠한 마법 도구도 레폰 앞에서는 먹통이었다.

때문에, 아기에게 말을 가르치듯 하나하나 원초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었으므로, 이호성은 게이트 부근으로 결계를 만드는 마법에 대한 것을 위주로만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좀처럼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초조해하지 마라. 시간은 내가 벌 수 있다.”

민성이 말했고, 그에 힘입은 이호성은 심기일전하여 다시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레폰은 전혀 관심 없는 표정으로 이호성을 볼 뿐이었지만, 이호성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의지에 불을 밝혔다.

* * *

마계의 주인 벨드는 척박한 마계의 땅 위에서 인간계를 내려다보며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강민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자 마치 100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것만 같은 시원함이 있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인간계를 씹어 먹는 건 시간문제였다.

주신들의 권능과 신력을 전해 받게 된 이상, 더 이상 인간계는 자신에게 상대가 될 수 없는 완전한 약체였다.

강민성이라는 규격 외의 인간이 다소 변수가 있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힘과 능력이라면 강민성 따위는 절대 자신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벨드는 확신했다.

앞으로 인간계에는 차마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들 참혹한 지옥이 펼쳐질 터였다.

벨드는 어서 그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를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기다려야 한다.

인간계를 먹는 건 말 그대로 시간문제다.

시간을 갖고 기다리기만 하면, 자신이 열어 버린 게이트에서 자신의 권능으로 잉태된 마인들이 쏟아질 것이다.

인간계에서 검은 학살자라는, 고작 인간에게 비참하게 도망쳤던 그 수치에 대해, 자신이 꿈꾸던 복수가 곧 펼쳐질 것이란 사실에 벨드는 광기에 물든 눈으로 광소를 흘렸다.

그때-

쩌저저적!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벨드는 놀란 눈으로 갑작스러운 침입에 반응하며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파밧! 하는 새하얀 빛을 뿌리며 주변으로 주신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벨드는 마계의 땅을 밟은 주신들을 탐탁지 않는 눈빛으로 보았다.

벨드는 주신들이 거슬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신들이 갑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지금은 인간계에 대한 실권은 물론,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만큼 그들 앞에서 더 이상 어깨를 굽히거나 기죽을 필요 따위는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벨드가 주신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주신들은 벨드의 태도를 보고 코웃음을 흘렸다.

“인간계 하나 처리하라고 맡겼더니 어깨에 힘이 아주 잔뜩 들어갔군.”

한 주신이 벨드를 혐오스러운 듯이 보며 말했다.

벨드는 그런 주신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요. 천상계의 주신들께서 제게 기대를 걸고 있으니 말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는 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자존심은 챙겨 가야 한다고 벨드는 생각했다.

때문에 벨드는 웃으면서 은근히 주신들의 공격적인 어투를 받아쳤다.

처음 시비를 건 주신이 벨드의 태도에 성질을 내려 했으나, 근처에 있던 주신들이 말렸다.

굳이 일을 맡긴 상황에 벨드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벨드를 건드렸던 주신은 두고 보자라는 눈빛으로 벨드를 쏘아보았으나 벨드는 그런 주신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신들이 어차피 이 정도의 힘을 챙긴 자신과 맞붙으려면 그들 역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섣불리 주신 하나가 개인적으로 마계를 쥐락펴락하는 시대는 끝난 셈이었다.

물론 일이 끝난 후 주신들이 자신을 소멸시키려 들 가능성 역시 농후하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인간계를 점령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그 또한 계획을 수립 중에 있었다.

시간과 기회는 주신이 아닌 실권을 가진 자신의 편이었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 궁금해서 왔다.”

한 주신이 말했다.

벨드는 인간계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 1차 인간계 공습 때 많은 마인들이 죽은 관계로 마인을 만드는 데 꽤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계의 날짜 기준으로 한 달 정도면 모든 준비는 끝날 것입니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나?”

주신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벨드를 보며 물었다.

벨드는 주신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간을 앞당기길 원하신다면 제가 신력과 권능을 좀 더 나누어 주시지요.”

벨드의 그 말에 몇몇 주신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성격을 드러냈다.

“저 비루한 마왕 놈이 감히 우리 주신을 뭘로 보고!”

“소멸 당하고 싶으냐!”

“인간계 하나 맡겼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네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호전적인 성격의 주신들이 벨드를 잡아먹을 듯이 신력을 끌어 올렸다.

벨드는 살짝 눈치를 보았다.

만약 여기서 일이 잘못 꼬여서 싸움이라도 난다면 불리한 건 벨드 자신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로 휘둘릴 수는 없다.

자신에게는 힘이 있고,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다.

“그럼 절 소멸시키든지요.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강짜를 부린다면 저로서도 방법이 없으니.”

벨드가 강하게 나오자 주신들은 결국 스스로의 분노를 삼킬 수밖에 없었고, 딱히 벨드의 말에 토를 달 수도 없었다.

“인간계 날짜로 한 달이라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니 기다려 보도록 하죠.”

침착한 성격의 주신의 말에, 다른 주신들은 감정을 삼켰으나, 벨드를 노려 보는 그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그들은 한 달 안에 모든 준비가 끝날 것이라는 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난 후, 다시 천상계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후, 벨드는 인간계를 내려다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앞으로 보름이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그러나 토사구팽에 대한 대비책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넉넉히 시간을 잡아 천상계의 주신들에게 한달이라고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인간계를 장악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화된 일이니 그다지 신경 쓸 게 못 되었지만, 벨드에게 있어 진짜 문제는 주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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