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91화>
전혀 예고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변화였던 만큼 날씨에 대한 긴급 보도가 각 방송 매체에서 연이어 흘러나왔다.
민성은 크루아상 빵을 먹으며 거실 소파에서 TV를 통해 그런 날씨 변화에 대한 뉴스를 지켜보았다.
소파 뒤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이호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느낌이 좀 쎄한데요?”
이호성이 말했다.
민성은 빵을 다 먹고 손을 털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갔다 와.”
“……예?”
이호성이 깜작 놀라며 되물었다.
“한 번 돌아보고 오라고.”
“으으. 설마 베아트리체에서 또 뭔가가 내려온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 맞다. 완전 까먹고 있었네.”
민성이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그때 레폰을 처음 발견했을 때요. 그때 뭔가를 봤어요. 어쩌면 그것을 통해 내려온 게 아닐까 싶어서요.”
“총군주에게 연락해서 같이 확인해.”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곧장 외출을 준비했다.
* * *
이호성은 민성의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중앙 헌터기관의 총군주 김지유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이호성이 담배를 거의 필터까지 피웠을 때쯤 검은색 대형 세단 한 대가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이호성은 들고 있던 담배를 버렸고, 멈춰 선 검은 차에서 김지유가 내렸다.
“헌터님이 지금 가 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에 연락드렸습니다.”
이호성이 김지유와 악수하며 그렇게 말했다.
김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전 잠이 별로 없는 타입이니까요.”
김지유가 밝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분위기 좋게 인사를 나누고 김지유와 이호성은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정말요?! 베아트리체에서 플레이어가 내려왔고. 그게 레드 드래곤이었다고요?”
이호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
“와아, 굉장하네요.”
김지유 역시 호기심을 보이며, 또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레드 드래곤 ‘레폰’이 초기화를 통해 새끼 드래곤이 되었고, 민성의 빵을 탐냈다는 것, 식욕이 왕성하여 두렵다는 등 간단히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김지유는 그 얘기에 쿡쿡 웃음 지었다.
“그래도 든든하겠는걸요? 드래곤을 같은 편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뭐, 그렇긴 하죠.”
이호성은 대답을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드래곤까지 밥을 챙겨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하면 자신의 인생이 뭔가 처량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이제 슬슬 다 와 가지 않나요? 호성 씨가 추정한 목적지 부근이거든요.”
이호성은 창밖을 보며 미간을 구부렸다.
“아무래도 어두워서 내려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앞에서 차 세워 주세요.”
그녀가 운전자에게 말했고, 운전기사는 조금 더 가서 차를 세웠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김지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이호성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호성과 김지유는 그 빗물에 금세 흠뻑 젖었다.
그런 상태로 김지유가 주변을 훑어보다가, 이호성을 보고 살짝 놀란 눈빛이 되었다.
이호성의 손에서 검은빛이 흐르며 스킬이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검은 뭔가는 순식간에 툭 하고 튀어 나가 바닥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지유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이호성은 빙긋 웃었다.
“탐색 스킬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스킬이라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와. 대단한데요? 베아트리체에서 얻은 스킬인가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긴 한데. 사실 제가 스킬 구조를 서포터 쪽으로 전향해서요.”
“그렇군요. 하긴 민성 씨랑 다니니까. 그게 훨씬 더 효율적…….”
김지유가 말을 잇는 중간에.
피유우우우웅!
폭죽 소리를 내며 형광색의 불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가 파악 터지면서 뿌연 연기를 만들었다.
“찾았군요. 저쪽인가 봅니다.”
이호성이 앞장서며 말했다.
김지유는 의외라는 눈으로 이호성을 보며 함께 뛰어갔다.
* * *
김지유가 신호탄의 위치로 이호성과 함께 도착한 곳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것이 있었다.
거대한 초록빛의 파편이었다.
그것은 마치 고대의 유물처럼 보이기도 했고, 외계의 물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초록빛의 파편이 박혀 있는 땅 주변으로는 거미줄처럼 균열이 퍼져 있었고, 그 균열에서 역시 초록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죠?”
김지유가 다소 충격을 먹은 눈빛으로 그 풍경을 보며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이게 아이리스 나무와 비슷한 것 같아요.”
김지유가 놀란 눈으로 이호성을 확 돌아보았다.
“아이리스 나무요? 그럼…….”
“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아이리스 나무는 지구의 에너지를 흡수하지만 이건 아마 아닐 겁니다.”
이호성과 김지유는 영롱한 초록빛을 빛내는 거대한 파편을 응시했다.
그때-
하늘이 정말 무너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먹구름이 하늘 전체를 뒤덮었고, 천둥 벼락은 쉴 새 없이 내리쳤다.
장엄한 풍경이었고, 공포스러울 정도로 급변된 날씨였다.
“날씨가 이상해진 것 말고는 특별한 변화는 없는 것 같군요.”
이호성이 말했다.
김지유가 동조하는 얼굴로 신비한 초록빛의 파편을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일단은 감시반을 붙여서 변화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이야 날씨의 변화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절대 평범한 징조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김지유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베아트리체에서 드래곤까지 내려온 마당에, 더 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일단 이 파편.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최대한 안전한 작업으로 진행되어야 할 겁니다.”
“물론이죠.”
김지유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파편에 대한 조사 및 감시반과 주변 탐색조의 호출인 듯했다.
그사이 이호성은 인벤토리 창에서 우산 하나를 꺼낸 다음, 담배를 꺼내 피웠다.
장대비와 벼락을 쏟아내는 하늘.
그리고 초록빛의 거대 파편.
베아트리체에서 내려온 레드 드래곤 레폰.
대체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호성은 굳은 얼굴로 먼 곳을 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 * *
이호성은 민성의 집으로 복귀했다.
민성은 여전히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주제는 ‘음식의 기원’이었다.
“돌아왔습니다.”
이호성이 꾸벅 인사했고, 민성이 흘깃 돌아보았다.
“결과는?”
“딱히 날씨 말고는 이상 징후는 없었습니다. 총군주가 감시반과 조사반을 붙여서, 상황 발생 시 바로 연락 주기로 했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그럼.”
“저, 헌터님. 베아트리체에서 굳이 랭커이자 레드 드래곤인 레폰이 지구로 내려온 이유가 뭘까요?”
“주신들 때문이겠지.”
“주신이요?”
“우린 주신들의 도박판 위에서 놀아나던 말이었다. 그 말들이, 놀이장을 빠져나갔으니 그 도박판에서 내게 배팅한 것들이 약이 바짝 올랐겠지.”
“……그렇군요.”
“점점 더 귀찮아질 거야.”
“그러기 위해 레폰을 수하로 받아들인 것일 테고요.”
“…….”
“씻고 오겠습니다.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됐다. 수고했어.”
“네.”
이호성은 한 번 더 꾸벅 인사한 후에, 샤워를 위해 비에 쫄딱 젖은 몸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 * *
하늘에서 내리친 벼락이 나무를 쪼개고 불태웠다.
늦은 새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각, 파편이 발견된 곳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록빛의 파편 주변에 있던 타오르는 나무에서 붉은 기류의 마기가 서서히 허공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거대 파편의 바로 위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점점 더 거대화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밟았다.
조사반과 감시반이 넋을 잃은 얼굴로 그 현상을 쳐다보았다.
* * *
다음 날 아침.
민성은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
“들어와.”
민성이 말했고 방문이 열렸다.
이호성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헌터님,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무슨 일?”
민성이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이호성이 태블릿 하나를 민성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을 받은 민성은 태블릿 화면에 나타나 있는 극비 사항을 확인했다.
그것은 중앙 헌터기관이 발견한 것에 대한 영상이었다.
“처음 레폰이 나타난 건, 여기 보이는 이 초록빛의 거대 파편 앞이었습니다. 그건 베아트리체와 지구의 연결 고리가 바로 이 파편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호성이 이어 거대 초록 파편의 위에 나타난 타오르는 불과 같은 게이트를 가리켰다.
그 게이트는 마치 용의 눈을 닮은 게이트였다.
타오르는 원형의 게이트 안에는 세로로 된 검은 블랙홀과도 같은 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 새벽 발견된 것입니다. 이 던전 게이트로 추정되는 것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민성은 화면을 보며 인상을 확 찌푸렸다.
“쉴 틈 없이 귀찮게 구는군.”
민성이 신경질적으로 혀를 차며 미간을 구겼다.
“직접 가 봐야겠어.”
민성이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그럼 지금 바로 차량…….”
“아니. 아침은 먹고 가야지.”
민성의 진지한 표정에 이호성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풋 하고 웃었다.
“왜 웃어?”
민성이 쏘아보자 이호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언제나 헌터님은 흔들림이 없다는 게 대단해서요.”
“밥 먹는데 뭔 소리야. 빨리 준비해.”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여전히 웃음 지은 채로 주방으로 향했다.
“아! 드시고 싶은 것 없으시면 제가 알아서 준비할까요?”
“그렇게 해.”
“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호성이 주방으로 갔을 때.
“크왕.”
레드 드래곤인 레폰이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기분 좋은 듯 민성의 다리에 주둥이를 비볐고, 어느덧 레폰과 친해진 바가지가 레폰의 등 위로 올라타서 칵칵 웃었다.
민성은 그런 레폰과 바가지를 내려다보다가 마당에서 몸에 묻은 나뭇잎을 털어 내며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쏠을 보았다.
이 녀석들을 보고 있자 꽤 시간이 흘렀음이 느껴졌다.
처음엔 마계에서 현세로 돌아온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어느덧 적응을 했고 이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민성은 마당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굳혔다.
누가 어떠한 이유로 인간계에 이 정도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건지는 몰랐으나 상대가 설령 주신이라 할지라도 민성은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끝까지 맞서 싸울 생각이었다.
“헌터님, 식사하시죠.”
이호성이 주방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민성은 먼 곳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