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290화 (290/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90화>

“벨드를 이용하자니요. 저 마계의 해충을 뭘 믿고…….”

“인간계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건 벨드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저자를 이용하려면 우리가 가진 권능을 일부 넘겨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마력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공급이 계속되어야 할 텐데.”

“그럼 저 오만방자한 인간이 우리 주신을 상대로 배신한 행위를 그대로 두고 보겠다는 뜻입니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맞습니다.”

“하지만……!”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나는 벨드를 활용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건 위험하다.

혹은 불필요하다.

두 가지 의견이 양분되기 시작했으나 그 의견은 곧 벨드의 예상대로 하나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비록 천계의 주신들은 ‘중립’이 무거운 편이나, 단결력과 특히 ‘심판’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한 족속들이었다.

그러니만큼 그들이 이번 일을 마계의 왕인 벨드 자신에게 맡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벨드의 예상은 완벽히 적중했다.

“탐탁지는 않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쯧, 어쩔 수 없지.”

주신들이 중얼거리며, 끝내 금발 머리 주신의 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벨드를 통해 마계가 가진 ‘자유성’을 이용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형편이었다.

벨드는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움츠린 채로, 조용히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침묵했다.

주신들은 결정을 내렸지만, 벨드를 보는 눈빛은 살갑지 않았다.

벨드는 겉으로는 진중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강민성에게 모든 업적 포인트를 쏟아붓고 그가 배신했을 때, 이제 더 이상 마계에서 자신의 입지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주신들의 욕심이 기사회생이 되었다.

벨드는 고개를 숙인 채, 타오르는 열망을 소리 없이 즐겼다.

* * *

민성은 마당 벤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겼다.

시원한 맛에 카페인이 퍼지는 느낌은 언제나 즐겁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저녁을 뭘 먹을지 고민했다.

메뉴를 결정하는 것도 일이다.

그날 기분, 분위기에 따라 뭘 먹는지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메뉴를 결정하는 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은 어쩐지 이호성에게만 메뉴 결정을 맡기기는 불안한 날이었다.

예컨대 오늘은 해산물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았고, 중식도 별로 먹고 싶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고, 한식도 딱히.

이렇게 되니 대체로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이미지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뭐를 먹으면 맛있을까?

뭐가 맛있을까?

민성이 하늘을 보며 고민에 잠겨 있던 중, 이호성이 나타났다.

“저도 잠시 앉아도 될까요?”

이호성이 물었고.

민성이 이호성을 흘긋 보았다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벤치는 크고 넓었기 때문에 공간은 넉넉했다.

이호성은 인사를 올린 후, 민성의 옆에 앉았다.

“헌터님.”

“왜.”

“레폰 있지 않습니까. 레드 드래곤.”

“걔가 왜.”

“처음 봤을 때부터 드래곤이라는 걸 알아보셨습니까?”

이호성이 얼굴을 돌려 민성을 보며 물었다.

“몰랐어.”

민성은 그렇게 말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쭉 빨아 마셨다.

“그런데 어떻게 부하로 삼을 생각을 하셨어요?”

민성이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으니까. 베아트리체에서 내려온 최상위 랭커 플레이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고, 그런 놈이라면 앞으로 꽤 쓸 만할 것 같으니까.”

이호성은 먼 곳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휴우, 드래곤이라니……. 하하. 뭔가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요. 드래곤이라는 게 실존할 줄이야.”

“그보다 오늘 저녁 말인데.”

“네, 헌터님. 드시고 싶은 게 있으세요?”

“바지락 많이 넣은 진한 된장찌개로.”

“알겠습니다.”

햇살 좋은 오후.

민성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아메리카노를 즐겼다.

베아트리체에서 돌아온 이후, 이어지는 평화로운 하루를 느긋하게 만끽했다.

* * *

“크크크크크…… 크흐하하하하!”

마계로 돌아온 벨드는 척박한 땅 위에서 광소를 터트렸다.

시간이 흘러도 터져 나오는 웃음은 멈추지를 않았다.

“흘러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구나.”

벨드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훑어보았다.

온몸이 유광의 검은빛으로 넘실거린다.

베아트리체에서 강민성에게 업적 포인트를 투자한 주신들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았다.

권능을 주입당하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고통 따위는 얼마든지 웃으며 감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엄청난 힘을 손에 넣게 되었다.

비록 이 힘으로 주신들의 요구에 따라 인간계를 공략해야 하지만, 지금 자신이 가진 힘은 사실상 일개 주신의 힘보다도 뛰어나다.

하지만 마계에 고립되어 있는 만큼 그들을 건드릴 수는 없다.

일개 주신보다는 강해졌다고 해도 그들을 건드리려면 천상계 주신 전체를 상대해야 하니 개인의 힘만으로는 별달리 의미가 없다.

거기다 인간계를 공략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권능이 가진 힘은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후 인간계를 완전히 정복하게 되면 벨드 자신은 마계와 인간계 모두를 장악하게 되는 셈이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이 천상계에 끼치는 영향력과 입지는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권력의 힘을 가지게 되는 셈이고, 그 힘을 갖게 되면 더 이상 주신들은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신들에게 압박을 넣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멍청한 주신들 같으니. 크크크……! 당장의 복수에 눈이 멀어 이 마왕 벨드에게 엄청난 기회를 선사하는구나.”

벨드는 그동안 천계에게 당한 굴욕적인 역사를 차후, 반드시 되갚아 줄 생각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 벨드가 모든 것을 씹어 삼켜 줄 것이니. 크흐흐하하하하!”

벨드가 광소를 터트리며 자신이 가진 마기를 쏟아 냈다.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가진 이 거대한 힘을 즐기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것보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벨드가 마기를 쏟아 내기 시작하자 그의 손에서 검은 힘이 무럭무럭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검은 힘은 허공에 하나의 검은 원형 구체를 만들어 나갔고, 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커져 나갔다.

그 검은 원형의 구체가 불어남에 따라 그 주변에 소용돌이치는 마기의 막대한 힘은 점점 더 거칠고 화려하게 회오리쳤다.

그것을 보고 있는 벨드의 눈은 점점 폭발하는 광기로 물들었다.

모든 것을 삼켜 내리라.

쿠구구구구그그-!

검은 구체는 서서히 위로 올라가며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변해 마계의 하늘을 온통 덮을 듯이 커져 나갔다.

이내 벨드의 시야에 하늘이 자신의 권능이 가진 힘으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

남아있는 모든 권능의 힘을 이용해 인간계를 향해 그 영역의 힘을 퍼트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계의 검은 하늘이 이내 붉게 변하며,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쿠르릉-!

우르르- 쾅, 콰아아앙!

이호성은 저녁을 준비하다가 걸음을 옮겨 창밖을 내다보았다.

워낙 천둥소리가 심하게 나서 민성이 방 안에서 궁니르S라도 꺼내 들었나 싶었지만, 하늘에서 나는 소리였다.

하늘은 연거푸 벼락으로 번쩍였고, 이내 구멍 난 것처럼 비를 쏟아 냈다.

“무슨 비가 이렇게 많이 와?”

날씨를 보다가 이호성은 아차 하며 다시 음식 준비에 집중했다.

요리는 잠깐의 방심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

작은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요리다.

간이 조금만 안 맞아도 맛의 차이는 엄청나게 변해 버리고 만다.

이호성은 숟가락으로 된장찌개의 간을 본 후에, 안도했다.

늦지 않았다.

완벽한 간이다.

가스레인지를 끄고, 곧바로 조리된 반찬들을 식탁으로 옮겼다.

식기 전에 이 요리를 선사해야만 한다.

반찬들을 식탁으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메인인 된장찌개를 식탁으로 옮긴 후, 이호성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민성에게 뛰어갔다.

“헌터님. 준비됐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민성이 주방 식탁으로 가는 사이, 이호성은 먼저 주방으로 뛰어가 레드 드래곤인 레폰이 냄새를 맡고 달려올 것을 대비해 레폰이 먹을 음식을 곧바로 준비하기에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크왕.”

멀지 않은 곳에서 레폰이 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민성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레폰의 것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뒤늦게 준비하면 또다시 레폰이 폭동을 일으킬 소지가 높았음으로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이호성은 레폰이 먹을 것이 담겨 있는 냄비를 들고, 주방 입구 쪽을 틀어막으며 대기했다.

잠시 후, 레폰이 퍼드득! 하고 정면으로 날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이호성은 발아래에 냄비를 탁 내려놓았다.

레폰이 급격히 속도를 늦추며 하강하여 냄비 앞에 뚝 떨어졌다.

“크왕.”

레폰이 냄비 안으로 주둥이를 넣어 먹기 시작했다.

레폰을 주려고 준비한 것은 돼지고기다.

양념이 되어 있지 않은 생 돼지고기지만, 레폰은 맛있는 듯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커다란 돼지고기 덩어리를 먹어 치웠다.

그러곤 배가 불렀는지 온순해진 상태로 주방에 관심을 거두고 돌아갔다.

“후우.”

이호성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혹여나 돼지고기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며 브레스라도 뿜으면 어떡하나 긴장했었는데, 다행이었다.

레폰의 식성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지금이야 돼지고기에 만족을 해도 실증이라도 낸다면, 거기다 민성이 집에 없는 상황에 레폰과 대치하게 된 다면?

꿀-꺽.

그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레폰이 거실 중앙에서 몸을 말고 잠드는 것을 보고, 이호성은 겨우 한숨 돌렸다.

뒤를 돌아보자 민성이 식사를 위해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 * *

바지락 향이 매우 향긋하다.

구수함이 배어들어 있는 바지락조개와 된장찌개의 두부, 그리고 된장찌개의 파와 청량고추와 무 건더기를 밥에 삭삭 비벼서 한입 먹으면 그 맛이 가히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꿀맛이다.

그리고 쌀밥을 떠서 먹고 국물을 떠먹은 다음, 쌀밥을 한술 더 뜨고, 준비된 반찬 중 빨간 양념의 더덕을 오득오득 씹으면 가히 충격적인 매력을 가진 맛에 취한다.

폭력적일 정도로 맛있다.

한식의 끝은 화려함이 아닌, 이런 일상적인 된장찌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맛있어.

민성이 젓가락으로 계란을 입은 분홍빛 소시지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콰르르르르르릉!

집 밖에서 엄청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성은 소시지를 씹으며 창밖을 응시했다.

익숙한 뭔가가 민성에게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