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89화>
설마…… 빵을 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드래곤이잖아.
민성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레폰이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빵을 향해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리가 돌진한다.
민성이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뻗어 레폰의 주둥이를 콱! 잡았다.
레폰이 당황한 듯 버둥거렸고 그사이 민성은 천천히 식탁 앞에서 일어나며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이호성. 빵에 관심 갖지 않도록, 이 녀석이 먹을 만한 걸 만들어라.”
민성이 스산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아,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재빨리 움직여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이호성이 레폰에게 뭘 먹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잡식인 거 같으니까 만들지 말고, 그냥 아무거나 가져와.”
민성이 채찍질하듯 말했다.
“예. 바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이호성이 허겁지겁 레폰이 먹을 음식을 찾기 위해 서둘렀다.
그사이 레폰은 타오르는 듯한 긴 동공으로 빵을 노려보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버둥거렸다.
민성은 그런 레폰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새끼 드래곤이 되면서 지능까지 낮아진 건가?
무슨 드래곤이 빵을 밝힌단 말인가?
민성이 그렇게 의문을 품었을 때 시스템이 상태를 알려왔다.
[‘레폰’은 초기화 단계를 거치며 1년간 ‘적응기’를 거칩니다.]
[지능은 낮으나 공격력이 매우 높음으로 주의를 요합니다.]
“푸르륵! 푸륵!”
레폰의 주둥이에서 곧 브레스가 뿜어져 나올 듯 불이 새어 나왔다.
주둥이를 잡고 있는 팔이 꽤 욱신거릴 정도로 레폰의 힘은 굉장했다.
민성이 이호성을 쏘아보았다.
한마디 하려던 때.
“일단 이것부터……!”
이호성이 빵을 한쪽으로 치우고 식탁 위에 샐러드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외려 레폰의 화를 돋우는 행위가 되고 말았다.
레폰이 날개를 더 거칠게 퍼덕였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쏘아져 나올 것만 같았으며 작지만 단단한 전신에서 격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 상황을 보고 위급함을 직감한 이호성은 즉각 냉동고를 열어 스테이크 고기 한 덩어리를 꺼내 식탁 위로 놓아 레폰 앞을 향해 쭉 던지듯이 밀었다.
스테이크가 레폰의 앞에 똑 떨어지듯 위치했다.
레폰이 스테이크를 향해 공격적으로 날갯짓을 하는 걸 보고 민성을 곧바로 손을 놓았다.
레폰은 제자리의 공중에서 날개를 몇 번 퍼덕이다가 식탁 위에 착지하여 뒤뚱거리며 몇 걸음 걸어가 스테이크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콰득! 콱! 우적!
꿀-꺽!
레폰은 순식간에 커다란 스테이크 한 덩어리를 해치우고서는 혀로 자신의 주둥이를 핥았다.
식사를 하고 나자 신기하게도 레폰의 공격성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온순한 상태가 되어 그대로 식탁 위에 똬리를 틀고 레폰은 다시 잠이 들었다.
짧은 찰나였지만, 이호성으로서는 많이 긴장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라 숨을 몰아쉬며 땀이 흥건한 채로 잠들어 있는 레폰을 지켜보았다.
“…….”
“조금만 늦었으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뻔했던 거 맞죠?”
민성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1년 동안은 적응기 때문에 낮은 지능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밥 잘 챙겨 줘.”
“맙소사……. 이젠 드래곤 밥까지 준비해야 하는 건가.”
이호성이 의자를 붙잡고 머리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좌절했다.
민성은 이호성이 그러든지 말든지 피자빵을 먹었다.
달콤한 케첩의 맛과 아삭한 야채의 맛, 그리고 빵과 소시지가 함께 씹히는 맛은 최고였다.
일반 피자와는 전혀 다른 맛.
레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민성은 조만간 제대로 된 피자를 먹어 봐야겠다 생각하며 피자빵을 맛있게 씹어 먹었다.
그사이, 죽을 뻔한 줄도 모르고 여전히 장시아는 레폰을 귀여워했으나 장웅은 제대로 겁을 먹었는지 꺼림칙한 시선으로 레폰을 보고 있었다.
“시아야, 위험하니 가까이 가는 건 좀…….”
장웅이 말리려 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무섭지만 너무 귀여워!”
장시아는 레폰을 보면서 양손을 깍지 끼고 몸을 배배 꼬았다.
이미 레폰에게 푹 빠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면 레폰의 밥까지 챙겨 줘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한 이호성.
레폰을 무서워하는 장웅 셰프.
그리고 빵을 먹는 데 열중하고 있는 민성과 어느덧 민성의 주머니에서 나와 레폰을 시기하고 있는 바가지와 그 옆의 쏠까지.
대가족을 이루게 된 식탁에서, 민성은 조용히 피자빵 다음으로 팥빵을 먹어 나갔다.
아주 작은 소동이 끝나고 맞이한……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우유.”
민성이 말했다.
하얗게 불태운 듯한 표정의 이호성은 조용히 우유를 채운 잔을 민성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민성은 자신이 딱 사 온 만큼의 빵을 깔끔하게 해치우고서, 이호성이 준비해 준 차가운 우유를 시원하게 꿀꺽꿀꺽 마셨다.
민성에게 있어 오늘의 빵은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최고의 맛이었다.
* * *
“이런 빌어먹을!”
“대체 왜 안 싸우는 거야?!”
“……저렇게 나약한 의지를 가졌을 줄이야.”
“명색의 드래곤이라는 것이 인간 따위에게……!”
주신들은 베아트리체의 랭커이자 레드 드래곤이라는 정체를 가진 레폰이 민성의 수하로 들어가게 되자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를 쉽사리 잠재우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주신들은 거의 미쳐 버릴 것 같은 지경이었다.
강민성이라는 플레이어를 잡기 위해, ‘레폰’과 조건을 거래하여 그를 인간계로 내려보냈던 그들이다.
그런데 외려 레드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강민성의 부하가 되면서, 그를 내려보낸 것이 강민성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외려 도와주는 격이 되고 말았다.
예상과 달리 일이 꼬여 버리게 되자 주신들은 강력한 다음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이대로 실패했다고 물러날 수는 없으니 다음으로 누구를 보낼지 결정해야 합니다!”
한 주신이 소리쳤고, 그 얘기에는 대부분의 주신들이 동의했다.
물론 그들 사이에서 마계의 주인인 벨드는 여전히 끼어들지 못하고 침묵만을 지켰다.
주신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분위기는 점점 더 격해졌다.
“남은 랭커들은 우리의 제안에 별달리 관심도 없는 플레이어들이며, 성격부터 설득까지 답이 안 나오는 인간들 아닙니까?”
“그럼 이대로 포기하자는 겁니까?”
주신들이 열이 바짝 오른 채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몇몇 주신들이 거칠어지는 분위기를 중재하기 위해 나섰고, 주신들이 모인 장소는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이 길게 흘렀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으나 대책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약은 바짝 올랐는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으니 주신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사실 레폰은 드래곤이자 베아트리체의 최상위 랭커였다.
때문에 레폰 정도라면 충분히 감히 자신들을 엿 먹인 강민성이라는 플레이어에게 알맞은 복수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건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서 주신들의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주신들 모두 지구로 내려가 합작하여 강민성을 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규칙상 인간계에 개입하는 건 주신의 지위로써 위배되는 행위인 만큼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처럼 제대로 된 물건 하나 잡았나 싶었더니…….”
수많은 주신들 중 금발 머리의 주신이 눈을 질끈 감으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주신들은 그 말에 모두 공감했다.
강민성이라는 인간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플레이어의 등장이었다.
혜성처럼 나타나 꺾일 줄 모르는 기세로 랭킹이 수직 상승할 때만 해도, 주신들은 강민성이라는 플레이어에게 투자하지 않은 주신들이 바보 멍청이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강민성은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투자라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약 강민성이 베아트리체에 끝까지 남아 랭킹전을 치렀다면, 랭킹 1위는 강민성의 것이라는 것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었다.
실질적 무력 랭킹이 손가락 안에 드는 레폰조차 제대로 된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한 수를 접은 걸 보면, 그들이 보기에도 민성은 이미 신의 영역을 넘어선 범위에 해당하는 인간이었다.
강민성은 애초에 인간이지만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주신들이 열병에 걸린 것처럼 끙끙 앓고 있는 가운데, 금발 머리의 주신이 벨드를 흘깃 보고는 눈을 번쩍 떴다.
뭔가가 떠오른 얼굴이었다.
금발 머리가 천천히 손을 들어 움츠리고 서 있는 벨드를 가리켰다.
“마계의 왕, 벨드.”
금발 머리가 그렇게 짤막하게 말했고, 주신들의 시선이 하나둘 벨드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벨드는 주신들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고서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가장 약세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응당 취해야 할 자세였다.
사실 현재의 일로 억울한 건 벨드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벨드의 속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 처음 강민성이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냈을 때만 해도 벨드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짐으로써 아재 모든 것이 끝장나는 거구나 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런데 세상이 무너져도 정신을 똑바로 차렸더니 정말로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계’가 가진 특수성에 있었다.
마계는 천계와 구분되지만, 교류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마계는 인간계에 물리적인 영향력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마계는 혼돈을 먹고 사는 세계.
또한 마계의 주인인 벨드는 대(大)주신의 아래에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인간계에 개입이 가능한 신에 속했다.
주신들에게 있어 그 점은 아주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활용 능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벨드를 이용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수단이자 최고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금발 머리 주신이 말했다.
벨드는 지금까지 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주신들이 자신을 이용해 강민성을 무너트리고자 하는 것.
그것만을 기다린 것이다.
천계와 마계가 구분되는 만큼 벨드는 굳이 눈치를 보면서 이 자리에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숨어 지내는 될 일인데, 사실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까지 굳이, 이 불편한 자리에 참석한 것은, 당연히 강민성의 배신에 대한 책임감 때문은 아니었다.
기회를 잡기 위함이었고, 그런 벨드의 전략적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천계의 주신들이 미끼를 제대로 문 것이다.
주신들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진 힘을 자신에게 물려주는 수밖에 없었고, 벨드에게는 그것이 다시없을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