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87화>
균열을 만들어 낸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은 레폰이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들어 민성을 응시했다.
이어 그는 검을 바닥에 찍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굉장한데?”
레폰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베아트리체에서 최상위 랭킹권에 있는 나를 수하로 두려고 했을 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이 정도 능력이라면 진짜 긴장해야 되는 거잖아?”
레폰이 진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진짜 긴장해야겠어. 이러다 질 것 같단 말이지.”
민성은 말장난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어서 전력을 드러내라는 듯 레폰을 직시했다.
레폰이 입매를 아주 살짝 비틀며 눈에 살심을 담았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꽈드드드득!
레폰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몸에서 마치 검과 같은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으며, 피부는 붉은색으로 변해 갔다.
민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변신을 하고 있는 레폰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았다.
이내 붉은 피부에 붉은 비늘이 돋아난 것처럼 외형이 변한 레폰이 공격을 시작했다.
레폰이 입을 쩍 벌렸고, 거기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마력이 깃들어 있는 불덩어리가 일직선으로 튀어나왔다.
민성은 얼굴을 굳히며, 레폰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불덩어리를 향해 궁니르S를 찔렀다.
민성의 마기와 레폰이 입으로 뿜은 불덩어리가 충돌했다.
화염이 번지면서 사방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그 거대한 불길에는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불과는 차원이 달랐다.
보호 마법은 마치 그 불길에 의해 봄눈 녹듯 녹아 파괴됐고, 이내 대련장 내부가 녹아내리듯 변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민성은 불길을 뚫어 내고서 레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레폰의 눈에 붉은빛이 감도는 순간, 민성의 발아래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피이이이이잉!
귀를 울리는 얇은 소리.
그리고 그 음향을 내는 찰나의 순간을 지나, 마법진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이 역시, 강대한 마나가 깃들어 있는 불기둥이었기 때문에 적중당할 경우 결코 작은 피해로 끝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민성의 몸이 잔상을 남기며 흔들렸다.
그 공간에서 민성이 사라진 이후, 불기둥이 솟아올라 이미 보호막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대련장의 천장을 뚫고 솟구쳐 올라갔다.
레폰의 마법 공격이 실패하고, 민성이 다시 공격의 주도권을 잡는가 했으나, 레폰은 이미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막대한 힘이 서린 7개의 검이 기다렸다는 듯 폭풍처럼 민성을 향해 휘몰아쳐 왔다.
전력을 서서히 상위로 끌어 올린 것인지 힘과 속도가 훨씬 더 크게 붙었다.
회피하면서 궁니르S로 쳐 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결국 레폰의 검은 민성의 몸에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7개의 칼날이 민성의 피부를 찢어 냈다.
화끈한 통증이 치솟았을 테지만, 민성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레폰이 연쇄 공격을 쏟아부으면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민성의 몸 곳곳이 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베아트리체에서 내려온 플레이어라고요?”
김지유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고,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김지유가 마른침을 삼키며 대련장을 보았다.
낯선 얼굴이라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했더니, 베아트리체 플레이어일 줄이야.
김지유는 다소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을까요?”
그녀가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뭐, 헌터님이시니까. 언제나 쉽게 해결하셨잖아요. 뭐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싶…….”
이호성이 말을 잇던 중간, 굉음과 함께 천장이 뚫리면서 붉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그 것을 보는 이호성과 김지유의 눈이 자동적으로 커졌다.
대련장은 막강한 보호막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그런 대련장의 천장이 뚫렸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김지유는 이호성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이호성은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수긍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지유는 현재 대련장 안에서 두 남자가 얼마나 굉장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실내의 상황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인근 지역의 시민들을 대피시킬 준비를 해야겠어요.”
김지유가 말했다.
“그럼 저는…….”
“현장에서 대기하고 계시다가, 상황이 악화될 것 같으면 바로 연락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지유가 서둘러 바이크를 타고 떠났다.
이호성은 그녀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 대련장 건물을 돌아보며 담배를 끄며 혀를 찼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 싶더니, 이번에 베아트리체에서 내려온 플레이어는 생각했던 것보다 꽤 실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하급신도 쓰러트린 강민성이다.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호성은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 * *
그는 처음에 자신에게 유효 타격을 입혔을 때 승부를 봐야 했다.
하지만 상대는 쐐기를 박지 않고 여유를 부렸다.
그로 인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
베아트리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인 자신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을 저승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급신으로부터 물건을 구해 와서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 정도 전력 차이도 생각하지 않고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레폰은 눈을 번뜩이며 파상공세 끝에 강력한 한 방을 먹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주 스킬 중 하나를 사용했다.
7개로 나뉘어져 있던 검이 마치 춤을 추듯 휘둘러졌고, 그로 인해 공기를 찢어내는 소리와 함께 민성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불꽃을 머금은 오러가 몰아쳤다.
피할 틈이 없을 정도로, 오러는 마치 그물망처럼 민성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치명타가 들어갈 것이다.
레폰이 기대감을 담은 시선으로 민성을 쏘아 보았다.
그 순간-.
민성이 눈을 번뜩이며 이를 악물고 궁니르S를 지면 바닥에 박아 넣었다.
쿠웅!
쿠-그크크콰콰콰콰콰콰!
민성이 꽂아 넣은 궁니르S의 지면 바닥으로부터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마기가 물 폭탄처럼 솟아올랐다.
레폰이 스킬을 통해 휘몰아친 불꽃의 오러 다발을, 민성의 마기가 마치 고래가 삼키듯이 그대로 덮쳤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 마기는 마치 파도처럼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 마기의 파도로부터 레폰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범위 자체가 레폰이 만든 오러의 규격과는 차원을 달리했으며,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그 마기로부터 공간을 찾아 피할 수가 없었다.
레폰은 그 마기에 휩싸였으며, 대련장은 마치 과자가 부서지듯 사방으로 깨져 나가며 풍비박산이 났다.
건물이 통째로 사방으로 날아가 버린 가운데, 레폰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울컥 피를 뿜었다.
민성이 레폰을 향해 걸어갔고, 건물 밖에 있던 이호성은 얼어붙은 채, 놀란 눈으로 민성과 쓰러진 레폰을 번갈아 보았다.
민성은 쓰러져 있는 레폰을 보며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레폰은 그런 민성의 시선을 받으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다 잡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방심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진 놈이었다.
대체 한계치가 어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괴물.
그게 바로 자신이 마주한 대상이었다.
레폰은 비틀거리며 서서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는 민성을 보며 숨을 길게 뱉었다.
몸 곳곳에서 출혈이 보이긴 하지만, 깊지 않은 상처다.
타격을 줬다고는 볼 수 없는, 기껏 스친 상처에 지나지 않는다.
레폰은 주변을 훑었다.
대련장이 날아간 것 말고는 딱히 반경에 피해가 가지는 않았다.
설마…….
이 근방의 지역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힘을 컨트롤했다는 건가?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징그러운 능력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 정도로 포기할 것이라면, 애초에 검을 잡지도 않았다.
남은 전력 전부를 쏟아부어 승부를 본다.
시간을 끄는 건 패색이 짙어지기만 할 뿐.
레폰은 오러를 끌어 올리며 모든 것을 쏟아 낼 각오로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느려.”
……뭐?
순간, 잘못 들었는지 알았다.
느리다고?
내가?
짧은 찰나에 파고드는 그 사색을 버리고 레폰은 다시 집중하여, 최대치의 마력을 활용하여 공격을 시도했다.
자신의 검이 7개로 쪼개지며 공격이 이어졌지만 민성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해 내며 자신을 직시했다.
그리고 느껴졌다.
놈은 자신을 가늠하고 있다는 것을.
그게 말이 돼?
베아트리체 최상위 랭커인 자신을?!
“본체를 드러내라.”
민성이 창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마기를 뿜어, 하나의 장력으로 공간을 만든 다음, 궁니르S를 찔렀다.
레폰이 급히 허리를 틀었지만, 그 금빛의 창은 레폰의 옆구리를 찢어 냈다.
만약 반응이 늦었다면 복부가 관통당했을 터였다.
레폰은 옆구리를 붙잡고 뒷걸음질 치며, 민성을 쏘아 보았다.
그는 공격에 의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살심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과 그렇지 않게 공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차이가 존재한다.
즉 지금의 상태로는 그와 자신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본체를 숨기고 있다는 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레폰이 민성을 보며 물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
레폰은 경이롭다는 듯 민성을 보며 웃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군.”
레폰은 지친 웃음을 흘리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던졌다.
검이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자신이 버린 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레폰은 시선을 들어 민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본체를 개방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어째서 날 제거하려 들지 않았던 거지? 설마 정말 날 수하로 거두기 위해서? 그러기엔 리스크가 크다는 걸 당신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만 떠들고 본체를 보여라. 굴복시켜 줄 테니.”
콰르릉!
민성의 창 궁니르S가 천둥소리를 터트렸다.
레폰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시선을 위로 들었다.
검은 하늘을 보며 긴 숨을 뱉었다.
“설마하니 여기서 내 본체를 드러내게 될 줄이야. 하긴…… 주신들이 괜히 날 여기로 보낸 게 아니겠지.”
레폰은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으로 민성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 시점을 기점으로, 레폰의 몸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사라졌으며, 그의 피부를 뒤덮고 있던 비늘은 더 두꺼워지고 커졌으며, 등에서는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계속되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거대하게 증대되어 가는 몸체.
그 기이한 과정은 이내 가속도가 붙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내 완전체를 이룬 순간, 민성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호성은 곧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레폰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