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84화>
“도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거의 모든 포인트를 투자했는데…….”
한 주신이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고, 이에 대해 이어지는 우는 소리는 다른 주신들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어른스러운 주신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이 자리에 모인 만큼,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그런 굳어진 얼굴을 한 주신들 중 한 주신이 한심하다는 듯 우는 표정을 짓고 있는 주신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다고 강민성이 베아트리체로 돌아갈 것도 아니니 그만 징징대고 대책을…….”
“누가 징징댄다는 겁니까! 얼굴은 화난 인간처럼 새빨개가지고 고고한 척은.”
“뭐야? 말 다 했어?!”
“다 못 했다!”
두 주신의 말싸움은 파벌 대 파벌의 싸움으로 번졌다.
네가 못했네 내가 잘했네 하고 주신들이 의미 없는 싸움을 해대는 사이, 벨드는 마치 아웃사이더처럼 끄트머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숨죽이고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화살이 벨드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저 마계의 모지리 때문이야.”
“맞아. 저 정신 나간 마왕 놈이 과감하게 투자하길래 뭐가 있나 싶었더니만.”
주신들이 살벌한 시선으로 벨드를 동시에 쏘아보기 시작했다.
주신들의 공격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벨드는 구겨진 얼굴로 어깨와 등을 굽히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마계라는 세계는 애당초 주신들과 섞일 수 없는 불순물과도 같은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러니 마계의 주인인 마왕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혐오와 경멸감밖에 받지 못했으며, 또한 천상계의 주신들에 비해 벨드는 힘이 없었다.
가뜩이나 약한데 주신들의 표적이 되어 버렸으니 큰일이다.
주신들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벨드 자신이 소멸이 되는 건 시간문제나 다름없다.
그러니 숨죽이고 그저 욕받이가 될 수밖에 없는 벨드였다.
입을 꼭 다물고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저놈을 잡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번 일을 해결할 수도 없고.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인간 놈에게 대가를 치르게끔 만들어야죠!”
주신 하나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신들이 동의했다.
그들이 여기에 모인 이유는 다름아닌 복수.
자신들의 거액의 투자금을 날리게 만든 강민성에 대한 복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만큼 본격적인 ‘복수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인간계에 내려 보낼 플레이어로 누가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의견은 분분했으나, 점점 그 의견은 하나로 좁혀졌다.
무작정 베아트리체에서 가장 강한 랭커 플레이어를 쓸 수는 없었다.
설득하기도 힘들고, 자칫했다가는 싸움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절한 플레이어를 선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판단 아래에 나온 베아트리체의 한 플레이어.
주신들은 그에게 이번 일을 맡겨 보기로 결정했다.
* * *
이호성은 민성의 집 마당에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낸 이후, 던전은 사라졌고 평화로운 세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앞으로 먹고살려면 식당을 개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간단하게 생각하면 헌터님을 계속 모시거나 그냥 식당을 오픈하면 되는 거지만, 자신은 헌터였다.
아무리 더 이상 몬스터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진 세상이 되었다고는 해도 헌터는 헌터.
헌터가 식당을 개업한다라…….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상상해 보았다.
식당을 열어 장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웃음이 나기도 했고, 꽤 괜찮은 일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호성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요리사가 되기로.
식당을 운영해 보기로.
마음을 굳히자 홀가분하기도 했고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않으려나?
몬스터가 없는 세상이니, 그런 세상에서 헌터랍시고 다녀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호성은 피식 웃으며 담배를 끄고 집 안으로 돌아와 홍차를 탄 후에, 거실 소파에 앉았다.
고요하고 평온한 정적이다.
마당의 햇살이 보이고, 짹짹- 새소리가 들린다.
인간계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게 뒤늦게 실감이 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베아트리체에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게 될 줄이야.
이호성은 빙글 웃으며 따뜻한 홍차를 마셨다.
이대로 끝이겠지?
“뭘 그렇게 변태같이 웃고 있어.”
바가지가 엉금엉금 소파 위로 기어 올라오며 말했다.
이호성은 홍차를 마시며 쭉 째진 눈으로 바가지를 노려보았다.
“흥. 바가지. 넌 그동안 이 이호성 님보다 활약을 못한 것은 물론, 베아트리체 안에서 존재감이 없었으니 이런 감상을 이해할 리 없을 거다.”
“짐 덩어리 주제에 무슨 소리야. 똥개가 없었으면 더 빨리 지구로 돌아왔을지도 모를걸?”
이호성은 반박을 하려다가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런 이호성의 표정을 보고 바가지가 소파 위에서 발랑 누워 칵칵 웃으며 뒹굴거렸다.
“야, 바가지.”
“응?”
바가지가 소파 위에서 얼굴을 파묻고 엎어진 채로 대답했다.
“이제 몬스터 같은 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겠지? 사소한 범죄 정도만 일어나겠지?”
“몰라.”
“던전은 사라졌고, 몬스터도 없으니 위험한 상황이 없으니까. 이제 헌터는 더 이상 헌터가 아니게 되는 건가?”
이호성은 자신의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똥개, 남 걱정 하지 말고 주인님이나 잘 모셔.”
이호성은 픽 웃었다.
“그래.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자꾸 폼 잡지 마. 징그러우니까. 왜 이래, 진짜. 밥맛 떨어지게.”
이호성이 입술을 뒤집으며 바가지를 노려보았다.
“이게 진짜. 밥도 못 먹는 게 무슨 밥맛 떨어지게는 밥맛 떨어지게야.”
이호성이 바가지의 옆구리를 간지럽히자 바가지는 자지러지듯 칵칵 웃으며 다시 뒹굴거렸다.
그때-
쿠우우우우우웅!
무거운 소리와 함께 바닥이 지진처럼 흔들리고 울려서 이호성과 바가지의 행동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멈췄다.
여진은 길지 않았다.
금세 사라졌지만, 그 충격음과 대지의 울림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단순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질적이었다.
이호성과 바가지의 눈이 마주쳤다.
“…….”
“…….”
“뭐지?”
이호성이 바가지를 보며 물었고.
“그러게?”
바가지 역시 되물었다.
이호성은 잠시 멍하니 마당 쪽을 보았다가 다시 바가지를 보았다.
“알아보러 가 보자.”
“좋아.”
이호성이 벌떡 일어서서 뛰어 나갔고, 바가지도 곧장 소파에서 풀쩍 뛰어내려 이호성을 따라 그림자 보드를 타고 뒤따랐다.
이호성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가지가 이호성의 허리에 매달렸고, 이호성은 그 즉시, 지면을 차고 뛰었다.
쿠웅!
바닥이 패이며, 이호성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솟구쳐 올라갔다.
* * *
베아트리체 랭킹 10위 ‘레폰’은 마른 체구에 긴 생머리를 가진 곱상한 외모의 사내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주변으로 주신들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지구라는 별에 가서 강민성이라는 플레이어를 죽이면, 랭킹 도전권에 대한 제약을 풀어 주겠다?”
레폰의 물음에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주신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다.”
“꽤 훌륭한 조건이긴 한데, 왜 굳이 그런 일을 내게 시키는 거죠?”
“우린 인간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니까.”
“흐음. 그렇군요.”
레폰은 잠시 고민했고, 주신들은 긴장한 채 레폰을 응시했다.
“좋기는 한데, 그래도 조건이 좀 야박하네요. 한 가지 더 조건을 붙여 준다면 수락하겠습니다.”
“말해봐.”
“업적 포인트 2천.”
“그 정도야…….”
“주신 한 분당 2천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주신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람을 잘못 찾아왔군. 자네만 후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주신들이 떠나려고 하자 이제껏 여유롭던 레폰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렸다.
“하겠습니다! 대신 총 업적 포인트 5만이라도…….”
레폰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고, 주신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합의 후, 주신들이 강민성에 대한 정보가 담긴 두루마리를 넘겨주었고, 이어 지구로 가는 게이트를 열어 주고 떠났다.
주신들이 사라진 이후, 홀로 게이트 앞에 남게 된 ‘레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 진짜 왜 이렇게 거래를 못 하는 거야? 남들은 잘만 하는 것 같던데. 에휴.”
레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이에 따라 좋은 머릿결이 찰랑거리며 흔들거렸다.
레폰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추슬렀다.
목표 타깃은 강민성이며, 제거하는 것이 임무.
심플한 임무인 만큼 빠른 시간 안에 끝내야겠다고 레폰은 생각하며 푸른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졌다.
파지직!
순식간에 레폰의 몸이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거대한 초록빛 파편이 땅을 반쯤 뚫고, 들어가 있다.
산의 초입 부근이었고, 그 땅 주변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을 만들었는데 그 균열에서도 초록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교적 연한 빛이었던 그 것은 이내 점점 진한 초록빛을 뿜기 시작하더니 빛이 모여들면서.
콰지지지지지직!
하나의 포탈 게이트를 생성해 냈다.
그 포탈 게이트를 통해, 베아트리체 랭킹 10위 달하는 플레이어 레폰이 훅! 하고 튀어 나왔다.
지구의 땅을 밟게 된 레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시야를 확인했다.
높지 않은 산들이 보였고, 건물들이 빼곡한 도시가 보였다.
“여기가 지구라는 곳이군.”
레폰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그는 뭔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숫자는 둘.
‘인간?’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잠시 후 레폰의 앞으로 이호성과 바가지가 나타났다.
이호성과 바가지는 레폰과 마주치자마자 급히 멈춰 섰다.
레폰은 푸른 눈으로 이호성과 바가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인간과 작은 해골이라. 충격에 의한 반응으로 이곳을 찾은 걸 보면 ‘플레이어’구나. 그렇지?”
베아트리체의 언어를 구사하는 레폰을 보며 이호성과 바가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레폰은 템창에서 주신들이 준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거기엔 강민성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 있었고, 그 내용을 확인한 레폰은 길게 미소 지었다.
이 정보에 의하면, 놀랍게도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인간 하나와 저 작은 해골은, 자신의 목표 타깃인 강민성과 한 패거리였다.
레폰은 템창에 두루마리를 다시 넣고, 이호성과 바가지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푸른 눈을 기묘하게 빛냈다.
“강민성이라는 플레이어. 지금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