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83화>
* * *
이호성은 팔짱을 끼고서 장웅이 음식을 만드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장웅은 무림 고수와도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이호성을 흘깃 보았다.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면서? 헌터님이 아주 극찬을 하시던데.”
이호성은 재료를 준비하고 있는 장웅의 주름진 손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전부 다 셰프님 레시피 덕분이었는데요, 뭘. 셰프님에 비하면 요리 실력이라고 할 것도 못 되는 거죠.”
“겸손하기까지?”
“그만 놀리세요. 그보다 칠리 새우 만드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이제 척하면 척이군?”
“셰프님.”
이호성이 그만 놀리라는 눈빛을 보내자 장웅이 허허 웃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메인은 새우. 호성 군이 말한 대로 칠리 새우와 버터 갈릭 새우일세.”
장웅이 빙긋 웃으며 말했고, 이호성은 역시라는 표정으로 장웅의 재료 손질을 지켜보았다.
장웅이 살아 있는 새우를 손질하는 모습은 가히 신기(神技) 그 자체였다.
새우의 대가리를 따고 순식간에 껍질을 제거하자, 거뭇한 색의 몸만 남은 새우가 마치 아직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을 정도의 신선도에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고, 장웅은 그런 이호성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자네도 이 정도는 하지 않나? 간단한 손질 정도 가지고 뭘 그리 놀라.”
“장웅 셰프님. 혹시…… 기만이 취미십니까?”
장웅이 껄껄 웃었다가,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하면서 더 이상 농담은 하지 않고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장웅 셰프는 중화요리에도 엄청난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애당초 거의 모든 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있었으니, 그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음식에 통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본래 뭐든지 관심이 생기면 그에 대한 전문성이 아주 조금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 고수의 실력은 새삼 엄청난 수준으로 느껴지게 되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요리에 대한 실력과 관심이 생긴 이호성은 장웅 셰프가 얼마나 대단한 요리사인지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그 수준을 실감할 수 있었다.
* * *
“헌터님, 식사하시죠.”
장웅이 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TV를 통해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게 된 민성은 TV를 끄고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웅이 자리를 빼 주었고, 민성은 식탁 앞에 착석했다.
장웅이 인사를 하고 주방을 나가려고 하다가 민성이 의자를 가리키자, 장웅은 의아한 눈으로 민성을 보며 그와 가까운 곳에 앉았다.
“중화요리로군.”
“그렇습니다. 트리플 슈림프 박스라는 이름이기도 한데. 헌터님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민성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맛있겠지.”
민성은 포크를 들었다.
장웅이 만든 슈림프 박스는 칠리 새우와 버터 갈릭 새우, 그리고 샐러드가 한 그릇 안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음식이었다.
간단한 한 끼로 딱 좋을 것 같은 이미지다.
민성은 포크로 먼저 버터 갈릭 새우를 콕 찍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안으로 가져가 씹었다.
오동통한 새우살이 톡톡 터지는 것 같은 식감이 느껴졌고, 버터와 마늘의 향이 담긴 달달한 소스가 정말 맛있었다.
“맥주 한 캔 드릴까요?”
장웅이 물었다.
“좋지.”
민성의 수락에 장웅이 바로 일어나서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가져왔다.
따-악! 하고 맥주 캔을 딴 다음, 민성은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탄산과 알코올이 확 들어오자 시원함과 더불어 기분 좋은 쾌감이 온몸에 확 퍼졌다.
민성은 곧바로 쌉쌀한 입안을 정리하기 위해 포크로 칠리 새우를 콕 찍어 먹었다.
달다. 이 달짝지근한 칠리소스는 언제나 맛있다.
거기에 메인이 새우이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음식이다.
‘칠리 새우는 진리다’라는 건 누구라도 공감할 것만 같을 정도로, 칠리 새우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칠리의 단맛과 새우의 조합은 취향을 제거할 만큼 완벽에 가깝다.
거기에 상큼한 샐러드까지.
특히 샐러드는 양념이 깔끔해서, 새우 양념의 단맛을 중화시켜 주는 힘이 있었다.
때문에 새우의 양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은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 치웠다.
물론 샐러드까지 깨끗하게 먹었다.
확실히 이호성과는 다른, 특별한 신선함과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진짜’는 다르구나.
“내 생에 최고의 새우 요리였다. 잘 먹었어.”
“감사합니다.”
민성은 장웅을 향해 극찬을 해 준 후, 티슈로 입을 닦으며 등을 의자에 대고 숨을 골랐다.
“물가가 엄청나게 치솟았던데.”
민성이 운을 떼자, 장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터님 마당에 생긴 나무가 지구의 양분을 엄청난 속도로 흡수한 탓에, 농업에 큰 지장이 생겼고. 당연히 물가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현재의 피해 상황은?”
“불안감에 의한 시장의 혼란일 뿐. 이제 저 나무가 사라졌으니, 다시 안정세로 돌아올 것입니다. 뉴스에서 떠드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민성은 한결 걱정을 덜은 표정으로 자신이 없는 사이 장웅과 세상이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얘기를 전해 들었다.
모든 것은 민성이 얼마나 빠른 시일 안에 아이리스 나무를 제거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극도의 혼란이 가중되어 가고 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아이리스 나무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장의 회복세는 빠를 것으로 보인다고 장웅이 말했다.
그때였다.
“헌터님.”
이호성이 주방 안으로 들어와 민성을 불렀다.
“총군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시민들 대피가 모두 끝났다고 합니다.”
“벌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장웅이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밥 먹는 시간에 장웅과의 대화 시간을 더한다고 해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대피가 끝났다는 게 의외였다.
“아마도 나무가 제거될 것 같다는 분위기로 인해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입장으로써는 나무를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게 좋을 테니까요.”
민성은 바로 일어서서, 마당으로 이동하며 템창을 열었다.
대못과 망치를 다시 꺼내 잡은 뒤, 민성은 아이리스 나무 앞에 섰다.
아이리스 나무는 보기에 따라 불쌍할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
균열 상태가 워낙 심해서 그냥 그대로 둬도 곧 썩어서 넘어갈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민성은 대못을 아이리스 나무에 콱 찍은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잘 봐라, 이 도박꾼들아.”
민성은 피식 웃은 다음, 망치질을 시작했다.
까앙! 까앙! 까앙! 까앙!
망치질이 계속됨에 따라.
우지지지직! 하고 거대한 아이리스 나무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민성은 망치질을 계속했고, 이내 아이리스 나무의 대못을 박은 부분의 허리가 부러져 나갔다.
콰지지지직!
거대한 나무가 일자로 넘어간다.
아이리스 나무가 쓰러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그것을 촬영하기 위해 하늘에서는 헬리콥터와 드론 수십 대가 떠 있었다.
아이리스 나무가 쓰러지면서 곧 건물들이 박살이 날 것이라는 사실에 민성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놀랍게도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파아아아아아앙-!
신비한 아이리스 나무는 은빛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그 파편은 마치 눈꽃처럼 화려하고 밝은 빛을 띠고 있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순간은 아주 짧았고, 아이리스 나무는 언제 민성의 집 마당에 존재했냐는 듯 그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또한 아이리스 나무는 사라졌지만 민성이 메테우스에게 받은 대못과 망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 만약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에도 이 물건은 어쩌면 사용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성은 나중에 이 물건을 유용하게 쓸 때를 대비해 템창에 넣어 놓은 뒤, 손을 탁탁 털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아이리스 나무를 제거했다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것은 비단 민성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심정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저녁은 뭐 먹지?’
민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당에서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뭐 먹을지 정하는 것이, 민성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 * *
베아트리체에서 민성의 잠재력을 보고 업적 포인트를 선물한 주신들이 주신 대회의장에 각각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모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거대한 조각상 앞에 불규칙하게 서 있었다.
서 있는 모습이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의 감정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민성을 죽이고 싶어 하는 분노의 감정이다.
그들은 민성의 잠재력을 보고 엄청난 포인트를 선물했다.
업적 포인트를 선물하여, 그 플레이어가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그로 인한 보상을 주신들 역시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권능.
강력한 권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주신들은 엄격하게 플레이어를 판단하여 업적 포인트를 선물하곤 했었다.
이번에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민성을 처음 선택했을 때만 해도 큰일을 해낼 것 같았고, 엄청난 권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꿈에 부풀어 있던 주신들이었다.
그런 주신들에게 민성은 찬물을 끼얹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큰 빅엿을 선사했다.
그런 만큼 주신들이 민성을 곱게 볼 리 만무했고, 그들의 분노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민성에게 업적 포인트를 선물한 주신들이 대부분 모인 가운데, 단 한 주신만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주신은 악마의 몸이라 일컬어지는 마신(魔身)을 부리는 마계의 주인, 마신들의 왕 벨드였다.
“대체 이 검은 새끼는 왜 안 오는 거야?!”
한 주신이 격한 소리로 외쳤다.
살벌함이 감도는 가운데, 검은 게이트가 열리면서, 거기서 마왕 벨드가 어깨를 움츠린 채로 나타났다.
마왕 벨드는 눈치를 보면서 살금살금 걸었다.
“빨리 안 오고 뭐 하는가!”
비교적 가까이에 서 있던 한 주신이 소리쳤다.
벨드는 움찔 어깨를 떨며,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 어중간한 위치에 섰다.
벨드까지 도착을 하고 나자 본겨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 초기 회의는 전체적으로 그냥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버린 강민성에 대한 뒷담화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 안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가장 낮은 급의 주신에 해당하며, 유일하게 검은 계열이라 할 수 있는 마계의 왕인 벨드는 그들 중간에 끼어서 함께 화도 내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