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82화>
* * *
테메우스의 손끝에서 주먹만 한 빛이 생기더니 그 빛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테메우스가 눈을 떴을 때, 민성이 찾고 있던 물건.
바로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낼 수 있는 아이템이 나타났다.
처음 호른 도시에서 하모닉이 못과 망치가 그 물건이라는 것을 알려 준 대로, 테메우스가 소환한 물건 역시 검은 망치와 검은 못이었다.
검은 못은 성인 남자의 팔 길이만큼이나 큰 대못이었고, 망치는 해머처럼 보이는 크고 두꺼운 것이었다.
“본래 쉽게 넘겨줄 만한 물건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써 믿을 수 없는 경지를 이룩한 그대에게 최소한의 경의를 담은 것이니. 그에 대한 대가는 스스로가 감내해야 할 것이다.”
민성은 테메우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지켜 줘서 고맙다. 주신이라는 작자들이 도박에만 빠져 있는 방탕자들만 모여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군.”
“신도 지루함을 느끼는 건 매한가지니…….”
테메우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대도 그러한가?”
민성이 물었다.
테메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무구를 만드는 하급신.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지, 하하. 그런데 인간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군. 아니 어쩌면…….”
테메우스는 깊은 눈으로 민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벌써 인간이 아닐지도.”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민성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테메우스는 핏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인간이지. 이제 그만 돌아가 그 저주받은 나무줄기를 잘라 내도록 해. 그 못과 망치라면 할 수 있을 테니.”
“그럴 생각이었다.”
민성은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엄청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이호성이 신호를 알아차리고 빠르게 뛰어갔다.
“지구로 돌아간다.”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은 깜짝 놀란 눈으로 민성과 테메우스가 내어준 아이템을 번갈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성공했군요. 정말 돌아가는 겁니까?”
“그래.”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게 되다니. 기적 같네요.”
이호성은 마치 예정에도 없던 일찍 전역하는 군인 같은 표정이었다.
이제 이 낯선 베아트리체를 떠나 고향의 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이호성이 감격에 젖어 있는 사이.
민성은 이미 대못과 망치를 템창에 챙기고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만지고 있었다.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치 게임처럼 로그아웃을 하듯 시스템 설정을 통해 몇 가지 과정만 거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호성도 서둘러 시스템을 터치했다.
메테우스는 그런 민성과 이호성을 지켜보았고.
지구로 돌아가기 직전.
민성은 메테우스를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메테우스도 눈짓으로 그 인사를 받았다.
민성이 ‘귀환’을 터치하는 순간, 벼락처럼 번쩍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호성도 뒤이어 귀환을 통해 사라졌다.
민성의 일행이 모두 떠난 후, 메테우스는 그들이 떠난 곳을 보며 혀를 찼다.
“큰일 났구먼.”
메테우스는 깊게 한숨 쉬며 복잡한 심정으로 돌아섰다.
“몰라. 알아서 지지고들 볶겠지. 그나저나 엄청 강하네? 인간 주제에 말이야. 메테우스, 많이 죽었어. 응?”
메테우스는 민성에게 당한 배를 문지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일이나 하자.”
메테우스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자신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 * *
검은 어둠 속에서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뜨는 순간 지구의 공기가 자신을 반겨 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건, 아이리스 나무였다.
귀환을 통해 지구로 돌아오자 민성 자신의 집 마당이었고, 거대하게 자라나고 있는 아이리스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민성이 아이리스 나무를 응시하고 있을 때, 뒤이어 이호성도 눈을 떴고 바가지와 쏠도 눈을 떴다.
“오……! 돌아왔다.”
이호성이 놀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렸고, 바가지와 쏠은 오랜만에 돌아온 민성의 집이 반가운지 즐거워하며 이곳저곳을 뛰어 다녔다.
그사이 민성은 아이리스 나무를 노려보며 템창에서 나무를 잘라 낼 대못과 두꺼운 망치를 꺼내 들었다.
민성은 망설임 없이 못을 아이리스 나무에 팍 찍었다.
메테우스가 만든 못이라 그런지 자신의 검으로는 흠집조차 안 나던 나무가, 못을 찍기만 했는데도 순식간에 나무 파편을 터트리며 음푹 패였다.
[금기다. 금기를 깨트리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당장 그만두어라!]
[베아트리체로 돌아가!]
[절대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서는 안 된다. 멈춰라.]
[그만두지 않으면 큰 재앙이 내릴 것이다!]
[지금 네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저지르고…….]
망치질을 하려던 민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쫑알쫑알 시끄럽게 구네.”
민성은 주신들을 향해 한 소리 한 후에 보란 듯이 대못을 향해 망치를 내려 박았다.
쿠-웅!
단 한 번의 망치질에 아이리스 나무에 엄청난 균열이 생겼다.
그다지 힘주어 때린 것도 아닌데, 파괴력이 굉장했다.
“와…….”
이호성이 입을 쩍 벌리며, 금이 쩌저적 퍼지고 있는 아이리스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 사이.
콰앙!
망치가 다시 한번 대못을 때렸다.
민성이 망치질을 할 때마다 아이리스 나무는 점점 더 큰 균열과 함께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민성은 마치 대장장이처럼, 망치질을 했다.
망치에 마기를 불어넣어 훨씬 더 빨리 부서질까 싶었으나 망치에는 마기의 힘이 들어가지 못했다.
마치 메테우스의 이 무기 없이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내지 못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굳이 마기를 실지 않아도, 단순히 이 메테우스의 물건만으로 아이리스 나무는 오래 지나지 않아 금방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민성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망치질을 계속했다.
민성의 머리 위에서 아이리스 나무의 파편이 쉴 틈 없이 떨어져 내렸고, 망치질을 계속할수록 균열은 안쪽까지 깊숙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이리스 나무를 건드리지 말고 베아트리체로 복귀하라고 시끄럽게 떠들 주신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없었다.
이미 못을 대고 망치질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막기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방해꾼도 없고, 귀찮게 하는 이도 없으니 민성은 망치질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서서히 끝이 보이고 있었다.
넋 놓고, 구경하고 있던 이호성은 화들짝 놀라며 민성을 향해 뛰어갔다.
“헌터님!”
망치질을 하던 민성이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왜?”
“근처의 주민들을, 아니, 나무가 넘어가는 방향에 위치한 사람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었다.
베아트리체에서 지구로 돌아왔고, 지구의 양분을 빨아먹고 있는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나머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김지유에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피신시키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재빨리 휴대폰을 찾아 김지유에게 연락을 보내는 사이, 민성은 아이리스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자랐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또한 나무에는 초록빛의 액체와도 같은 것이 흘러 다녔는데, 그 빛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아마도 메테우스의 물건으로 찍힌 탓에 죽어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민성이 시선을 돌려 거실 안에 있는 이호성을 보았고, 통화 중이던 이호성은 민성을 향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김지유와 연락이 닿았고, 지금 즉시 대피 명령을 내리고 있는 중인 듯했다.
민성은 다시 아이리스 나무를 보면서 짧은 한숨을 뱉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몸통이 부러지면서 이 엄청난 높이의 아이리스 나무가 한 쪽으로 넘어간다면 그건 재앙과도 같았다.
자신의 섣부른 판단으로, 어쩌면 엄청난 수의 맛집을 파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성은 머릿속과 가슴 그리고 뱃속에 마치 찬바람이 부는 듯 느껴질 정도로 아찔했다.
“총군주에게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가용 가능한 모든 인원을 통제 팀으로 풀었으니, 1시간 안쪽이면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민성은 아이리스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 안 부러지겠지?”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식은땀 한 줄기를 이마 위에서 흘렸다.
“그러기를 기도해야겠죠.”
한참 동안 아이리스 나무를 지켜보던 민성은 거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호성의 말대로 어쩔 수 없이 한 시간 정도가 흐르기 까지 아이리스 나무가 멀쩡하기를 기도해야 했다.
“시간도 남았는데 밥이나 먹자.”
민성이 거실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그를 뒤따라 거실로 들어온 이호성은.
“밥이요?” 하고 되물었다.
마치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이호성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일단 대피만 하면 문제가 없는 거니까. 넉넉히 잡아서 2시간이라 치면 식사 준비하고 밥 먹는 데까지는 문제없잖아?”
민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 2층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장웅과 장시아였다.
“오셨군요!”
장웅이 밝게 미소 지은 얼굴로 인사를 먼저 해 왔고, 뒤이어 장시아는 울먹이는 얼굴로 이호성에게 뛰어가 안겼다.
“안 돌아오는 줄 알고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장시아가 울면서 말했다.
이호성은 장시아가 눈물범벅인 상태로 자신을 꽉 안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할아버지인 장웅 앞이라 그런지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장웅은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민성을 향해 가며 허허 웃을 뿐이었다.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민성은 장웅을 향해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밥 잘 챙겨 먹고 돌아왔어.”
“음……?”
장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민성을 보았다가, 이호성을 보고서는 깨달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 레시피 말씀이시군요.”
“이호성의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 어쩌면 이제 비슷할지도 몰라.”
“오 그렇습니까? 이번 일을 마무리 짓게 되면, 호성 군과 요리 대결을 한번 해 보는 것도 재밌겠군요.”
“시식은 내가 하는 걸로.”
“물론이지요.”
“요리 대결은 요리 대결이고. 일단 배가 고프니까 뭣 좀 먹고 싶은데.”
“오랜만에 제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장웅이 소매를 걷으며 자신 있는 미소를 보내왔다.
“그럼 감사히.”
민성의 인사에 장웅은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요리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민성은 장시아에게 붙들려 있는 이호성을 잠깐 보았다가, 목을 꺾어 스트레칭을 하며 오랜만에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먹기 위해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시아는 여전히 울고 있는 상태여서 난감한 상태의 이호성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머리만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