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80화>
* * *
하모닉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성좌를 죽인 민성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으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그게 전부였다.
치명타가 너무 컸던 탓에 치료 속도가 더뎠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강민성이라는 뉴 플레이어를 하급신의 먹이로 집어 던지는 것으로 이번 일을 손쉽게 해결할 생각이었지만, 그런 생각은 자신만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애초에 저 신규 플레이어는 한 수 앞서서 12성좌를 모두 죽일 마음을 굳힌 게 틀림없었다.
갑작스럽게 태도가 변한 게 아니다.
미리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카운터 배리어라는 기술을 쓰는 타이밍까지도 어쩌면 모두 계산해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패배감이 전신을 휘어 감았다.
머릿속을 울리는 두통이 가슴까지 내려와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억울한 표정 짓지 마. 죽이고 싶어지니까.”
민성이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서 말했다.
하모닉은 창백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들고 있는 무기로 바닥을 팍 찍으며 힘겹게 일어섰다.
“죽여라.”
하모닉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 들였다.
더 이상의 발버둥을 치는 것은 추악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일이었다.
강민성이라는 뉴 플레이어를 너무 얕본 것이 자신의 생에 있어 가장 큰 실수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건 저 뉴 플레이어가 아니라 바로 12성좌 자신들이었다.
저런 흉악한 놈을 햇병아리로 취급한 자신의 안일한 방식이 뼈아팠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모든 게 끝났다.
“왜 머뭇거리는 거지?”
12성좌의 시체들 사이에 서 있는 민성을 보며 하모닉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민성이 하모닉에게 걸어가 바로 앞에 섰다.
하모닉은 지금이라도 당장 그에게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으나,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왜 죽이지 않고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그 것이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해결된다면, 먼저 공격을 해서라도 죽음을 일찍 맞이하고 싶었다.
하모닉은 살아 있는 게 고통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했던 이 플레이어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냉정했으며, 잔혹했다.
민성이 궁니르S를 휘둘러, 하모닉의 양 어깨의 신경을 끊어 냈다.
“크읏……!”
팔을 쓸 수 없게 된 하모닉이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민성을 보았을 때.
“하급신을 찾으면 죽여 줄 것이다. 앞장서라.”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하모닉은 멍한 표정으로 민성을 보았다.
죽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그의 눈에 새겨져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한탄스러움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렇게 잠깐 사색에 잠겨 있던 중 민성이 손을 내뻗어 하모닉의 목을 틀어잡았다.
콰득-!
“컥……!”
민성의 손에서 마기가 흘러 나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공포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모닉은 직감했다.
강민성은 뇌를 지배할 수 있는 환술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아, 앞장서겠습니다. 앞장서겠습니다!”
하모닉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엄청난 뭔가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공포감이었지만 다행히, 그는 자신의 목을 붙잡고 마기를 밀어 넣던 것을 멈춰 주었다.
“허억……! 헉! 헉!”
하모닉은 어깨를 들썩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움직여.”
민성이 말했다.
하모닉은 피가 섞인 침을 삼키며, 뒤틀린 얼굴로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 * *
이호성은 피를 흘리며 걸어가는 하모닉을 보면서 정말이지 여러모로 끔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호성 자신도 민성이 그런 돌발 행동을 할 거라는 건 전혀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깜짝 놀랐다.
게다가 하모닉을 제외한 11명의 성좌를 그렇게 빨리 죽여 버리다니.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겨지지 않았다.
강민성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하급이라고는 해도 신이랑 싸운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던 이호성이다.
그런데 이렇게 강민성의 무력을 절감하게 되자 외려 이제는 별달리 신과 싸우는 게 걱정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정말 신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필연적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호성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신을 쓰러트리는 인간이라니.
그게 정말 가능한 건가?
지금까지 강민성은 언제나 자신이 생각한 그 이상의 영역을 보여 주기는 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영역이 신의 지대까지 넓혀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전율이 일었다.
* * *
“여기가 하급신의 일터입니다.”
하모닉이 축 늘어진 채로 말했다.
민성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만드는 걸 좋아하는 하급신이라고 하더니 정말 대장장이들이 쓸 만한 일터처럼 보였다.
하급신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잔뜩 있었으며 그 물건들은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민성이 하급신의 일터를 구경하고 있던 중, 하모닉이 스킬을 사용해 민성의 목을 노렸다.
하모닉의 등 뒤에서 쏟아져 나온 오러의 다발이 쏟아졌다.
민성은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손을 휘둘러, 마기의 풍장으로 그것들을 걷어 내며, 들고 있던 궁니르S를 하모닉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퍽!
뼈가 부서졌다.
궁니르S를 빼내자 다리가 힘을 잃고 덜렁거렸다.
“크윽……!”
하모닉이 눈을 번쩍이며 다시 스킬을 사용하려 했다.
민성은 알고 있었다.
하모닉의 공격은 자신을 정말 해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빨리 죽고 싶은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란 걸.
“약속은 약속이니까.”
콰르릉!
민성의 궁니르S가 천둥소리를 쏟아 내며 하모닉의 심장에 박혀 들었다.
그 힘에 의해 두 다리가 뜨면서,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철-퍽!
바닥에 대(大)자로 누운 하모닉은 입밖으로 검은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 갔다.
민성은 궁니르S를 뽑아 들었다.
무기에 묻은 피를 털어 냈을 때, 민성은 천천히 2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방향에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을 향해 오는 그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았기에 민성은 분명 하급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타났다.
인간과 다를 것 없는 외양이었으나,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남자 같지도 않았고 여자 같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또한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검은 천으로 된 것 같은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바로 대장장이의 하급신 테메우스였다.
민성은 그를 빤히 응시했고, 테메우수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민성의 시선을 맞받았다.
“인간이 어찌하여 발을 들여서는 안 될 곳을 찾았느냐?”
테메우스가 위엄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단순히 말을 한 것뿐인데도, 꽝꽝 울리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났다.
이호성은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 어깨를 구부리며 민성과 테메우스 사이에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테메우스를 보는 민성의 눈빛에는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낼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게 좀 필요해.”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신을 상대로 반말이라니.
스스로를 신과 동급이라고 여기는 건가?
이렇든 저렇든 이유야 어떻든 신을 대하는 민성의 태도는 이호성으로서는 기절초풍할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호성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민성은 되레 신을 고까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신 테메우스는 민성을 보며 코웃음을 흘렸다.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당신이 하급신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고. 신이라는 작자들이 도박에 미쳐서 애꿎은 인간을 도박판에 세워 괴롭히는 변태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고.”
민성이 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난 아주 더럽게 짜증이 나서 이제 그만 좀 그 더러운 도박판에서 빠지고 싶은 거고. 그러니 대답이 됐나?”
테메우스는 놀란 것인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민성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커다랗게 웃기 시작했다.
배를 붙잡고 웃음을 터트린 테메우스는 킥킥거리며 겨우 웃음을 멈추고서는 민성을 보며 미소 지었다.
“정말 재밌는 녀석이구나, 너?”
“빨리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낼 수 있다는 무기를 가졌으면 하는데.”
“부탁하는 태도 같지는 않은걸?”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라는 걸 해 볼 생각이거든.”
테메우스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나한테?”
“못할 건 없지.”
테메우스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아……. 정말 오랜만에 골 때리는 녀석이 나타났네.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난 신이라고. 무려 신. 네 말대로 하급신에 불과하긴 하지만 말이야.”
콰르르릉!
테메우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성의 궁니르S가 거친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그것을 보고 테메우스가 조소를 지었다.
“평범한 인간과 신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민성이 테매우스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렇게 웃지 마. 기분 나쁘니까.”
“오랜만에 꽤 괜찮은 인간 남자를 본 기분이 드네. 단순히 공격적인 성격인 게 아니라. 너의 눈에는 아주 많은 걸 뛰어넘은 경험이 깃들어 있어. 죽이는 건 아까우니까. 대련 정도로 살려는 줄게.”
민성은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리며, 이를 바득 갈았다.
“……지긋지긋하네, 정말.”
콰앙!
민성이 바닥을 차고 뛰었다.
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민성은 어느덧 테메우스의 바로 옆에 위치했다.
살기를 머금은 궁니르S가 뇌전을 휘몰아치며 찔러 들어갔다.
테메우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냈다.
민성이 연이어 폭발적으로 연쇄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테메우스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민성의 속도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피해 냈다.
“이게 전부? 마계의 신, 벨드 그 쓰레기와 비슷한 수준이려나? 그런 거라면 실망인데.”
“나도 한번 체크해 봤을 뿐이야.”
민성이 그 말을 끝으로 마기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평온하던 테메우스의 표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릉!
엄청난 마기가 빈틈없이, 뇌전으로 변화하며 테메우스를 향해 칼날이 되어 폭풍처럼 몰아쳤다.
테메우스가 굳은 얼굴로 물러서며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의 투명한 보호막과 민성의 수많은 마기의 줄기와 부딪치면서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을 터트렸다.
이호성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오만상 찌푸렸다가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괜히 넋 놓고 구경하고 있다간 어느새 저승행 특급열차 티켓을 구매하게 될 것 같았다.
타아앙!
민성이 손끝에서 궁니르S를 놓았다.
이기어검술의 발동.
궁니르S가 테메우스의 보호막에 균열을 만들고 이내 꿰뚫으면서 그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