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78화>
* * *
오늘의 식사 메뉴가 등장했다.
이호성이 말했던 대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식사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부정을 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성은 그런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어쨌거나 좋은 한 끼가 될 것 같았고, 어서 빨리 지구로 돌아가서 평범한 식당에서 평범한 식사를 이어 가고 싶었다.
이런 지긋지긋한 싸움 따위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든든하게 먹고, 해치우는 거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고추장 삼겹살 구이다.
빨간 삼겹살이 보기 좋게 그릇에 담겨 있고, 그 옆으로는 야채와 쌈무가 있으며 김치찌개가 있다.
반찬이 많지는 않지만 늘 이호성이 준비하는 메뉴는 전체적으로 꽉 찬 느낌이 있다.
조화로우며 풍성하다.
매콤한 냄새가 나는걸?
민성은 집중력이 올라간 시선으로 메뉴를 보며, 물티슈로 손을 싹싹 깨끗하게 닦은 다음, 젓가락을 들고 삼겹살을 집음과 동시에 왼손으로는 상추를 집었다.
상추 위에 쌀밥을 올리고 두툼한 고추장 삼겹살을 올린 다음, 마늘과 쌈장을 아주 조금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쌈을 싸서 입안으로 직행.
입을 아 벌리고, 쌈을 볼이 튀어나오도록 우물우물 씹었다.
상큼한 상추의 맛과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 그리고 아작아작 씹히는 마늘의 맛이 어우러지자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다.
아마 이 고추장 삼겹살 구이는 식어도 맛있을 거라고 민성은 확신했다.
꿀-꺽!
상추 하나를 기분 좋게 음미하며 삼킨 다음, 민성은 곧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파란색으로 물든 쌈무에 마늘과 고추장 삼겹살을 예쁘게 말아서 입안으로 쏙 가져갔다.
아삭하게 씹히는 쌈무의 단맛과, 매콤한 고추장 삼겹살의 맛이 섞이면서 코를 찌르는 마늘의 향까지 더해지니 그 맛이 상추와는 다른 매력이 넘쳐흘렀다.
정말 맛있다.
두 번째 것도 다 삼킨 민성은 이번엔 그냥 먹어 보기로 했다.
쌀밥에 두툼한 고추장 삼겹살만 얹어 놓았다.
이렇게 먹으면 고추장 삼겹살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대감을 품고 한 입 먹어보자 고추장 양념의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향긋하게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달달하고 두툼한 고추장 삼겹살.
존재 자체로 그냥 끝이라는 글자를 떠올리게끔 만드는, 저녁 식사로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한 끼였다.
민성은 골치 아픈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 다시 상추쌈에 고기를 싸 먹었다.
* * *
12성좌 모두 호른 도시에 도착했다.
민성을 만나 출발하기 전, 그들은 호른 성의 회의장에 모였다.
그리고 이번 일의 주도자인 하모닉은 그들에게 민성의 성격에 대해 미리 언질을 주었다.
“굉장히 공격적인 성향이 높은 성격의 플레이어이긴 하나, 확실히 세상 물정에는 다소 어두운 점이 있는 듯합니다.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정치적 활용 능력은 거의 제로. 고립되어 있는 성격이니, 자극하지 않고 어느 정도 맞춰 주기만 하면 쉽게 일을 풀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모닉이 회의장에 모여 앉은 12성좌를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의 계획은 그를 하급신에게 안내하는 것. 그것뿐인 것입니까?”
호른 성의 주인인 호른이 또랑또랑한 눈으로 하모닉을 보며 물었다.
뭔가 다른 뜻은 없냐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그것만으로 일을 진행하지는 않겠죠.”
“……?!”
하모닉이 12성좌들에게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을 보고 12성좌들은 직감했다.
하모닉이 다른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제 생각에 여러분들이 동의를 해 줘야 가능한 일입니다.”
호른이 기다리기 싫다는 듯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어서 그 계획을 말해 보세요.”
하모닉은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는 12성좌들을 보며 눈을 스산하게 빛냈다.
“그가 하급신과 싸우고 있을 때, 뒤를 노릴 겁니다. 그를 죽여야죠. 그래야 우리가 금기를 깬 대가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모닉의 얘기를 듣고 12성좌 중 민머리의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그 하급신이 알게 된다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
“변명을 준비해야죠. 그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변명. 우리가 오늘 회의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급신을 설득할 수 있는 변명 말입니다.”
“흠…….”
12성좌들이 모두 고심하는 표정으로 먼 곳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그 표정 안에는 과연 이 계획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심이 서려 있기도 했다.
때문에 하모닉은 그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모두들 신규 플레이어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들 두 눈으로 봤으니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피를 보지 않고 그를 제거할 방법이 있을까요?”
“…….”
“의심을 지우셔야 합니다.”
하모닉이 쇄기를 박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의견에 완전히 동조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하급신을 건드리는 금기를 깨는 것보다는 그냥 우리 지역을 통과시키는 것이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한 성좌가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하모닉이 단단하게 결집된 시선으로 그들을 보며 말했다.
“두 가지 문제라니. 어떤 것 말입니까?”
가까이에 있는 성좌가 하모닉을 향해 물었다.
“첫 번째는 그를 그냥 우리 영지를 통과시킨다면, 상위 플레이어들의 눈에 우리가 표적이 될 가능성이 다분히 높아집니다.”
“끄응…….”
하모닉의 말은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 성좌들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그냥 통과시키려고 했다가, 만약 명성 수치를 위해 우리 영지에 발을 들인 지금의 신규 플레이어가 우리를 타깃으로 노린다면?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
회의장이 적막에 잠겼다.
하모닉의 말은 모두, 피할 수 없는 리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전략적 선택은 하급신에게 호른 도시에 들어온 신규 플레이어를 던지는 것이 가장 적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계에 물리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있다.
때문에 신에게 공격성을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그 이하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 하모닉의 전략적 판단이었고, 이는 12성좌들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계획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더 이상 길어지지 않았다.
하모닉의 계획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12성좌들이 마치 맞춘 것처럼 일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모닉의 제안이 받아 들여졌다.
“그럼 지금부터, 하급신을 달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한번 얘기를 나눠 보죠.”
합의가 이뤄지고, 거사를 앞둔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다음 날 오전.
이호성은 민성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잠을 잔 게 용할 정도다.
잠깐 눈을 붙였지만 눈은 금세 떠져서 거의 날 밤을 샌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2성좌의 안내를 받아 하급신에게서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낼 무기를 구하러 가는 것이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담배를 피우며 창밖을 보는 이호성의 표정은 심란했고, 머릿속으로는 오만 생각이 다 파고들고 있었다.
그렇게 끔찍한 시간을 보낸 끝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하녀 복장의 여자가 나타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이호성은 담배를 끄면서 무겁게 묵은 숨을 뱉어 내며 걸음을 옮겼다.
신과 싸우러 가야 할 때였다.
민성을 깨우기 위해 바가지와 쏠을 데리고 그의 방으로 갔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민성은 따뜻한 차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신과 싸워야 할 마당에, 여느 때와 다름없는 분위기라니.
새삼 민성이 멀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보통 이 정도로 함께했으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낯선 남자가 바로 강민성이었다.
그 정도로 그는, 쉽게 읽어 낼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호성은 12성좌가 결코 비겁하거나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한 만큼 그들은 생존력이 강하다.
그렇기에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고, 내대륙에서 강자로써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집단이 가진 힘은 결속력이 강한 만큼 대책을 세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보다 중요한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하는 현명한 집단은 질기며 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호성은 걱정이 됐다.
아무리 민성이 강하다고 해도, 하급신에게서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낼 무기를 가져오는 건, 강한 놈들이 모여 있는 12성좌라는 집단이 제안한 것이 아닌가?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랭킹전을 건너뛰고 끝을 찍을 수 있을만한 지 름길이라면, 빠른 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사실 역시 민성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선택했다는 건, 분명 민성에게도 이유가 있을 터.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끝을 봐야만 알 수 있을 있을 거라고 이호성은 생각했다.
“12성좌가 모두 집결했고, 헌터님이 나오시면 바로 출발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호성은 전해 받는 말 그대로, 민성에게 전달했다.
민성은 마시고 있던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바가지가 탁탁 뛰어가 민성의 바지를 타고 올라가서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자.”
민성이 출발을 알리며 움직였다.
이호성은 심호흡을 하며 민성을 따라나섰다.
* * *
성 건물 밖으로 나오자 12성좌가 서 있었다.
그들이 성좌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분명 저들 하나하나가 이곳 호른 영지에 오기 전에 싸웠던 ‘크로크’보다 강한 자들일 것이다.
그런 자들이 총 12명.
이호성은 긴장감에 숨을 삼켰지만, 민성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평범했다.
민성은 그들이 서 있는 곳 앞으로 걸어갔다.
12성좌가 민성을 훑었다.
딱히 예의를 갖춘 인사는 없었고, 그렇다고 공격적인 눈빛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저 동행에 대한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천상계로 가는 포탈을 열 것입니다. 저희는 하급신에게 안내를 할 뿐. 그 외에는 관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모닉이 말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천상계로 가는 포탈을 열겠습니다.”
하모닉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12성좌들이 각자 템창을 열어 천상계로 가는 포탈을 생성하는 재료 아이템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