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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76화 (27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76화>

* * *

성 안으로 안내를 받게 된 민성의 일행은 방을 배정받았다.

방은 모두 두 개였고, 민성이 혼자, 이호성은 전처럼 바가지와 쏠을 데리고 한 방을 쓰기로 되었다.

먼저 민성의 방 앞에 도착했다.

민성은 문을 열어 방을 확인했다.

굉장히 넓고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호른 기사단의 아름다운 여성 플레이어, 에밀리아가 민성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우선 씻고 밥 먹고 잘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12성좌인지 뭔지 전부 내일까지 여기 호른 도시에 도착하라고 전해.”

민성의 말에 안내를 맡은 호른 기사단 전체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당연히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그건 호른 기사단장 에밀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민성은 그런 그녀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먼저 커다란 방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 후, 바가지와 쏠을 데리고 문 앞에 남게 된 이호성은 눈치를 살폈다.

자신들을 안내한 이 여자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이호성이 보기에도 완전히 예상 밖의 사태였다.

다짜고짜 12성좌를 모아 놓으라니.

그들의 입장으로서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게 당연하고 정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곧 감정을 추슬렀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그녀들이 이호성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

불편한 공기가 이호성의 피부를 푹푹 찔러 왔다.

* * *

이호성이 바가지와 쏠을 데리고 방을 안내받으러 가고 있는 사이, 민성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마기의 기운을 삼천교 교주의 무공서를 토대로 운기를 시작했다.

다소 바짝 말라 있던 마기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고, 체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기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시간은 훌쩍 흘러 있었다.

온몸에는 땀이 가득했다.

민성은 옷을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욕조에 뜨거운 물이 받아져 있었다.

씻고 나온 후, 옷을 갈아입었을 때 그 시간에 딱 맞게 노크 소리가 똑똑 울렸다.

“헌터님, 저 이호성입니다.”

문 밖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민성이 말했다.

문이 열리고 이호성이 들어왔다.

“바로 식사 준비 시작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물론.”

이호성이 창문을 열고 창가에서 테이블을 세팅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민성은 창밖을 보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잡았다.

12성좌의 반응.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풍경을 보는 민성의 눈에 새하얀 빛이 스쳐 지나갔다.

* * *

하늘이 뿌옇게 변해 가더니 이내 비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12성좌 중 늘 큰 사건에 대한 문제를 주도해 왔던 인물인 하모닉은 호른 도시의 성문 입구 앞에 도착했다.

경비병들이 12성좌임을 증명하는 배지를 달고 있는 하모닉을 보고서 바짝 굳은 채로 경례를 올려붙이며 길을 터 주었다.

하모닉은 성문을 통과한 후, 곧장 걸음을 옮겨 성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보고를 받은 호른 기사단의 플레이어들이 달려왔다.

호른 기사단 단장이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애들은 보내고 단장만 따라와.”

하모닉이 그렇게 말하고 앞장섰다.

단장을 제외한 플레이어들이 인사를 올리고, 물러갔다.

혼자 남은 단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하모닉의 뒤를 뒤따랐다.

그들은 가까운 집무실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모닉이 집무 책상에 앉고, 아름다운 외모의 단장은 하모닉 앞에서 예의를 갖춰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하모닉은 말없이 검지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잠깐의 침묵 끝에 하모닉이 입을 열었다.

“그가 호른 성에 들어왔다지?”

하모닉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별다른 얘기는 없던가?”

“무례한 요구를 해 왔습니다.”

하모닉의 눈썹이 살짝 꿈틀 거렸다.

“무례한 요구라면?”

“12성좌 모두를 내일 오전까지 집결시키라는 요구였습니다.”

하모닉은 고개를 젖히며 허허 웃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로구만.”

단장은 조용히 하모닉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하모닉이 단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오후쯤에 미팅을 잡아 봐.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든 절대 자극하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나가 봐.”

단장이 인사를 올리고 나갔다.

집무실에 남은 하모닉은 의자를 돌려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긴 숨을 뱉었다.

“대체 어디서 갑자기 저런 게 툭 튀어나온 거야.”

하모닉은 골치가 아픈 듯 눈살을 구기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조용한 집무실에 하모닉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피어 올라갔다.

* * *

“식사하시죠.”

이호성이 빙긋 미소 지으며 식탁을 가리켰다.

민성은 샤워를 하고 나자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메뉴를 확인하고서 이호성의 메뉴 선정에 또 다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제비였다.

얼마 전, 감자탕 안에 들어 있는 수제비를 정말 맛있게 먹었었는데, 오늘은 그 수제비가 메인으로 된 음식이 나왔다.

뽀얀 국물 위에, 바지락이 보이고 야채와 파. 그리고 고추가 송송 썰려 있는 것들이 색채감 있게 자리를 잡아 있다.

민성은 그것을 보며 숟가락을 천천히 들었다.

먼저 국물을 떠먹어 보았다.

꿀-꺽.

“후우.”

민성은 뜨거운 숨을 뱉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호성이 정말 능력 있는 요리사라는 것을.

“맛있다.”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빙긋 웃으며 물러났다.

민성은 본격적으로 수제비를 먹기 시작했다.

바지락 껍질에서 조개 몇 개를 분리한 다음 조개를 먹고 수제비를 잘근잘근 씹었다.

부드럽고 기분 좋은 식감이 쩍쩍 어금니로 인해 전해지고, 수제비의 국물은 한없이 깊은 맛이 되어 목을 넘어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빗물과 창문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걸 보면서, 하얀 김을 피워 올리는 수제비를 먹으면 일상에 있어서 식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통통한 수제비와 국물. 그리고 새빨간 배추김치를 먹으면 아삭한 맛이 시야를 환하게 밝혀 주는 것만 같았다.

민성은 아주 천천히, 여유 있게, 맛있는 수제비의 한 끼 식사를 즐겼다.

* * *

식사를 마치고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 이호성이 근처에서 민성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성이 상체를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자 이호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헌터님,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얘기해.”

“12성좌 중 한 명이 헌터님과 뵙기를 청했습니다.”

“오늘?”

“예. 저녁 시간에 시간이 괜찮은지를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민성은 고민을 잠깐 해 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민성에게 인사를 올린 후, 방을 나갔다.

침대에서 일어난 민성은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며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 * *

약속한 시간이 됐다.

이호성이 단장과 함께 민성의 방을 찾았다.

“가시죠, 헌터님.”

이호성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단장을 등 뒤에 두고 말했다.

민성은 롱 카디건 하나를 걸친 뒤,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턱짓했다.

단장이 가장 앞쪽에서 앞장서서 복도를 걸었고, 그 뒤로 민성과 이호성이 뒤따라 걸었다.

오래 걷지 않아 회의실로 쓸 만한 큰 방에 도착했다.

텅 비어 있는 걸 보고 민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장을 쏘아 보았다.

“하모닉 님은 지금 오고 계십니다. 곧 만나게 되실 겁니다.”

단장이 예의를 갖춰 말했다.

민성은 걸음을 옮겨 크고 긴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등을 대고 다리를 꼬았다.

“저는 그럼 하모닉 님과 함께 다시 오겠습니다.”

단장은 짧게 목례한 후에, 밖으로 나갔다.

이호성은 민성과 가까운 쪽에 손을 모으고 섰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고급스러운 문이 열리고, 12성좌 중 한 명인 하모닉이 나타났다.

그는 길고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젊은 외모로, 약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고, 금발 머리에 곱상한 외모라서, 지금껏 봐 왔던 플레이어와는 비교적 이미지가 상반적이다.

하모닉이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민성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민성이 상석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약속을 잡아 놓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12성좌라 하면, 내대륙에서 이름 꽤나 있는 수준의 플레이어라 만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눈앞의 하모닉은 그런 민성의 추측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모닉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민성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대한 민성의 반응은 차가웠다.

“뭐 하자는 거야?”

삽시간에 공기가 싸늘해졌다.

같은 일행인 이호성조차 숨 쉬기가 힘들 정도의 무거움이었다.

하모닉이 짓고 있던 미소는 아주 약하지만 어색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여유 있는 표정으로 고쳤다.

“뭐 하자는 거냐는 것에 대한 질문에 답을 드린다면,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민성이 꼬았던 다리를 풀고 천천히 양 팔꿈치를 책상 위로 얹은 후 세수를 하듯 얼굴을 아주 천천히 가볍게 문질렀다.

그리고 한기와 살기가 뒤섞인 눈빛으로 하모닉을 응시했다.

그 눈빛을 받고서 웃고 있던 하모닉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하모닉을 보며 민성이 엷게 웃었다.

“이봐.”

민성이 귀신이 말하는 것만 같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

하모닉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민성의 눈빛을 받았다.

“난 랭킹을 올리기 위해서 너희들을 죽이러 온 거야.”

“…….”

민성이 심해와도 같은 시선이 하모닉의 눈 안속으로 침투했다.

“그런데 무슨 대화를 하자는 거야?”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우리 12성좌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당신을 도와주는 걸로.”

민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의자에 등을 대고 느슨한 눈으로 하모닉을 보며 입을 열었다.

“도와주겠다? 뭘 어떻게? 랭킹을 그냥 내어 줄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있다는 말인가?”

하모닉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목표는 본래의 세계. 즉, 당신의 별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 위해서 랭킹을 올리는 것일 테고 말입니다. 그러니.”

하모닉이 번쩍이는 눈으로 민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랭킹전을 할 필요도 없이, 저희가 지름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이호성이 놀란 눈으로 하모닉을 보았다.

방금 하모닉의 입에서 나온 말은 랭킹전을 건너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며, 그것을 12성좌가 돕겠다는 이야기였다.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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