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74화>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현장이다.
팔다리를 잃어버린 시체들이 대다수였고, 하나같이 누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면서, 굳은 얼굴로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았다.
강민성은 이 베아트리체가 주신들이 만든 세계라 했다.
도대체 주신들이라는 작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잔인한 일들을 벌이는 것일까?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가 없는 일들이었다.
이호성은 “씨X.” 하고 짧게 욕설을 날리며 담배꽁초를 던졌다.
발로 불씨를 비벼 끈 뒤, 여전히 축 늘어진 채 졸고 있는 바가지를 흔들었다.
그러자 바가지는 “으으음.” 하고 잠꼬대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도착했어?”
바가지가 이호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호성은 바가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길게 한숨 쉬었다.
“좋은 일 좀 하자. 언데드로 만들지 말고. 곱게 묻어 주자고.”
이호성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며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근데 갑자기 이런 건 왜 하는 거야?”
바가지가 물었다.
“이런 거라니?”
“시체를 묻어 주는 거 말이야.”
“안타깝잖아. 우리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호성은 시체들을 훑어보며 눈살을 구겼다.
“차라리,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를 텐데.”
“그럼 마리는 죽었겠지.”
바가지가 그렇게 말했다.
이호성은 먼눈으로 허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겠지.”
이호성은 하늘을 향해 긴 숨을 훅 뱉은 후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바가지가 그런 이호성을 따라 다녔다.
바가지가 흑마법으로 구덩이를 팠고, 이호성은 시체를 운반했다.
그러고 나면 바가지가 마법으로 구덩이를 매웠다.
이호성과 바가지는 말없이,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우리 똥개 착하네. 이런 좋은 일도 다 하고.”
절반 정도가 진행되었을 무렵, 바가지는 이호성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러자 시신을 옮긴 이호성이 허리를 펴며 쓴웃음을 지었다.
“……착하다고? 내가?”
바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거지. 이렇게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호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왜?”
“나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호성이 먼눈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옛날에?”
바가지의 물음에 이호성은 핏 하고 웃었다.
“뭐 그렇게 옛날도 아니고. 헌터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어쩌면 여전히 지금도 난 쓰레기 같은 놈일지도.”
바가지는 칵칵 웃었다.
“아니야. 똥개 착해.”
이호성은 해맑게 웃고 있는 바가지를 보며 웃었다.
“고맙다.”
“응. 얼른 또 해, 똥개.”
“너 자꾸 똥개라고 부를래?”
“그럼 뭐라 그래. 똥개를 똥개라고 부르지.”
“됐다. 말을 말자.”
이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시신을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다 우뚝 멈춰 섰다.
뭔가가 감지됐기 때문이었다.
누구지……?
설마 생존자?
이호성은 즉각 스킬을 사용했다.
서포터로서, 탐색 능력만큼은 꽤 훌륭하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분명 잡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2시 방향 쪽.
마을 건물에 분명 뭔가가 있다.
사람이든 몬스터든 짐승이든 뭔가가.
이호성이 손을 휘두르자, 스킬에 의해 3개의 검은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검은 그림자는 발견하는 즉시 상대를 둔화시키고 불꽃을 쏘아 올려 위치를 알려 줄 것이다.
신호가 확인되면 즉각 따라붙기 위해 움직이려던 찰나.
[그림자 추격술이 실패했습니다.]
“……뭐라고?”
이호성은 놀란 눈으로 그 시스템 메시지창을 보았다.
그림자 추격술은 이호성 자신이 가진 스킬 능력 중 꽤 훌륭한 능력 중 하나였다.
그림자인 만큼 기본적으로 은밀하게 추적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추격술을 저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상대는 플레이어.
그리고 그림자 추격술까지 무효화시켰다면 보통의 실력자는 아닌 것 같았다.
이호성은 기척이 느껴졌던 방향을 가만히 응시했다.
크로크는 죽었다.
……그의 하수인인가?
이호성은 우선 현장을 마무리하고, 민성에게 돌아가면 이 일에 대해 보고를 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팔괘’를 사용함으로써 잠시 멈춰 있던 아이리스 나무가 다시 지구의 양분을 흡수하기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 이후, 집 안에 있기가 갑갑해진 민성은 밖으로 나와 바깥에서 고대의 문서를 펼쳤다.
리스트가 들어 있는 비밀문서를 얻은 만큼 뭔가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는 건 아닌지 기대했지만 헛수고였다.
고대의 문서는 퀘스트라기보다는 일종의 방향을 잡아주는 표지판과 같은 것에 불과했다.
민성은 고대의 문서를 템창에 넣고 리스트가 있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12명의 이름.
만약 하나하나 처리를 해야 한다면 너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민성은 가능하다면, 한 번에 12명의 플레이어 전체를 상대하고 싶었다.
베아트리체를 경험한 바, 성좌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12명 전부가 덤빈다고 해도, 충분히 승산은 있다.
문제는 항상 시간이다.
12개의 대도시를 품고 있는 지역으로 가게 된다면, 조건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오랜 시간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민성은 놈들을 단번에 끌어내, 일시에 학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급하다고 해서 무작정 일을 벌일 수는 없다.
그건 외려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돌아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
‘반드시 방법을 강구해 내야 한다.’
민성의 눈이 차갑게 번쩍였다.
* * *
어둡고 넓은 공간의 중심에는 대리석처럼 보이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상석은 없었다.
그 공간 안으로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총 12명의 남녀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착석하고 난 후, 적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성좌’라 불리는 12명의 플레이어이자 랭커였다.
무거운 공기가 실내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로브를 뒤집어써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여기 모인 이유는 다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내에 모여든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가 말을 계속 이었다.
“이야기의 논점을 위해, 덧붙이자면 최근 베아트리체에 유입되어 랭킹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플레이어가 하나 있습니다. 처음 랭킹권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죠.”
사내가 템창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자그마한 장난감 같은 큐브였다.
그것을 내려놓자, 큐브는 스스로 움직여 색을 맞추기 시작하더니 이내 테이블 위로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
12성좌의 시선이 일제히 그 영상으로 모여 들었다.
영상은 민성이 크로크와 전투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성좌들의 표정이 결코 편치 않았다.
로브 사내가 영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이 뉴 랭커가 크로크를 잡은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플레이어가 크로크를 잡은 방식이죠.”
성좌들의 표정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었다.
“여기 모인 많은 분들이 크로크를 적수로 여기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크로크를 이 정도로 쉽게 잡을 수 있는 분들 역시 흔치 않죠. 심지어 키엘이라는 마력 증폭 아이템까지 가지고 있는 그를 말입니다.”
“그래서 계획이 있는 것입니까?”
12성좌 중 다른 한 명이 물었다.
로브 사내는 긴 숨을 뱉었다.
“우선 묻고 싶습니다.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가 그와 붙게 된다면?”
“우리 쪽으로 흡수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그는 랭킹 1위를 향한 목적의식이 아주 강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그래도 한 명에 불과한데…….”
“그러니 여기서 협의를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할 겁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피하는 쪽으로 결정을 한다면 그에 대한 좋은 길이 있습니까?”
“생각해 놓은 계획은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먼저 결정을 내리는 일입니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각오를 굳혀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모두 신중한 표정이 되었다.
“우선 영상을 보면서 전력을 파악하는 게 우선일 겁니다. 피해 없이 제거가 가능하다면 우리가 직접 움직이는 게 최고의 결과일 겁니다.”
신규 랭커로 올라선, 민성에 대한 12성좌의 본격적인 분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30분 만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전력 파악이 더 필요하다는 것.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먹잇감을 던져야 했는데, 12성좌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 있었다.
“그럼 결정이 났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일단 간을 한 번 봅시다.”
12성좌의 1차 회의는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 * *
이호성이 돌아오자마자 누군가 현장을 지켜봤고, 자신의 스킬을 무효화시켰다는 것을 보고했다.
어차피, 이호성이 확인하지도 못했고 별달리 추정할 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민성은 일단 머릿속으로만 체크해 놓고, 12성좌가 있는 지역으로 출발했다.
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해도 시간을 꽤 잡아먹을 것 같았다.
하지만 휴식은 충분했고, 체력은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틀 정도만 조금 속도를 내서 달리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게 예정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 후, 약 2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이호성이 다소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판단된 시점.
민성은 사막의 중심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를 휴식하고, 다시 출발을 준비할 무렵 반대편에서 달빛을 등진 채, 뭔가가 다가오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호성이 경계하는 얼굴로 전방을 주시하며 얼굴을 구겼다.
“……뭐가 저렇게 많아?”
이호성의 말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민성의 일행에게 오고 있는 무리는 엄청난 숫자였다.
족히 그 숫자가 일천은 될 것 같았고, 모두 은빛의 갑옷에 은빛의 투구를 쓴 검을 든 병력이었다.
“아무래도 저희를 타깃으로 오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몸이 좀 간지러웠는데. 잘 됐네.”
민성이 무장한 군대를 보며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바가지를 꺼내 이호성에게 넘겼다.
이호성이 품 안에 바가지를 넘겨받았을 때.
“여기서 대기해라.”
민성은 약 일천에 달하는 병력을 응시하며, 템창에서 궁니르S를 꺼냈다.
그 징그러울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군사를 향해 걸어가며 민성은 궁니르S의 창대를 꽉 잡았다.
콰르르릉-!
어두운 사막을, 궁니르S가 새하얗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