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73화>
* * *
이호성은 지루해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치 머릿속에, 그리고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온통 새하얀 공간의 중심에 있으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아 무섭기도 했고, 짜증이 나기도 했으며, 고통스럽기도 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걸까?
이쯤 되자 차라리 지옥이든 마계든 어디든 좋으니 일단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중 새하얀 공간에 점점 검은 점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새하얀 방은 이내 완전히 검게 변하면서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지옥이든 마계든 어디론가 넘어가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무서워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디든 가고 싶어진 이호성이었지만, 막상 어둠이 오자 그 하얀 방이 벌써 그리워질 정도였다.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고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작은 빛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 빛은 점점 더 커졌으며, 이내 엄청난 빛이 이호성의 눈을 멀게 할 듯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내.
화아악!
의식이 새하얀 빛에 집어삼켜져, 어디론가 빨려들어 가는 것만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이호성은 번뜩! 하고 눈을 떴다.
“헉……! 허어억! 허억!”
이호성은 미친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커다랗게 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땅이 뒤집어져 있는 채로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민성이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허억, 허어억! 헌터님, 헉!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콜록, 콜록!”
이호성은 기침을 하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채로 비틀 거리며 일어섰다.
겨우 숨을 고른 이호성은 몇 십 번이나 눈을 깜박였다.
“저 왜 살아 있어요? 이거 꿈인가?”
“꿈 아니고 현실이다.”
민성이 말했다.
바가지가 민성의 주머니 안에서 꾸물꾸물 나와 바닥에 탁 착지하고선 이호성을 올려다보며 칵칵 웃었다.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 어때?”
바가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이호성은 여전히 현실을 실감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은 분명 크로크에게 죽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난단 말인가?
“설마 바가지, 너 언데드로 날 되살린 거냐?”
이호성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호성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되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이호성은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고, 외려 그것이 그에게는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응. 내가 살렸어. 그러니까 넌 이제부터 내 언데드야.”
바가지가 말했다.
“말도 안 돼!”
이호성은 비명처럼 소리 지르며,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으면서 무릎을 철퍽 꿇었다.
좌절하고 있는 이호성을 보면서 바가지가 재밌다는 듯 고개를 젖히며 칵칵 웃었다.
“이 망할 바가지야! 죽었으면 그냥 내버려 두지, 언데드로 살리냐?! 이 망할 바가지!”
이호성이 바가지의 목을 조르며 흔들었다.
“내가 살린 거다.”
민성이 한심하다는 듯이 이호성을 보며 말했다.
“……예?”
언데드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눈물이 맺힌 채로 바가지의 목을 붙잡고 흔들던 이호성은 이내 맹구 같은 표정이 되어 민성을 보았다.
“헌터님이 어떻게요?”
“부활 권능을 가지고 있거든.”
“부활 권능? 진짜예요?”
민성의 눈빛을 보고 이호성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 대박이네……. 그건 그냥 신이잖아요. 헌터님, 신 됐네요?”
“입 닫고 일어나.”
“어쨌든 감사합니다.”
이호성은 바가지의 목을 인형 들 듯이 붙든 채로 일어나 꾸벅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깜짝 놀랐잖아, 이 해골 바가지야!”
안심한 이호성이 또다시 바가지의 목을 붙잡고 흔들었지만, 바가지는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재밌다는 듯 계속 칵칵 웃어 댔다.
이호성은 바가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검은 하늘에 쏟아질 듯 가득 차 있는 별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진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구나.”
이호성은 온 정신과 몸이 가루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기분으로 하늘의 별을 보며 지친 채로,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디선가 놀고 있던 쏠이 쏜살같이 달려와, 이호성이 반갑다는 듯 얼굴을 비볐다.
* * *
‘마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크로크의 힘에 의해 마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었다.
그건 마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호성은 처음에만 해도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곧, 마을 사람들 모두 죽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거운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살릴 수 없는 거죠?”
막연한 기대를 품고서 한 말에, 민성은 권능은 조건부라는 걸 설명했다.
“하긴……. 다시 살려 낸다고 해도.”
이호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마을 사람 모두가 죽은 것을 그 작은 꼬마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쩌면 살아 있는 것이 지옥일지도 몰랐다.
* * *
이호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옆에 놓은 커피를 식혀 가는 사이, 민성은 템창에서 크로크가 넘긴 두루마리를 꺼내 그것을 펼쳤다.
바가지가 민성의 어깨에 앉아 함께 구경했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 안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2성좌인 만큼 총 12개의 이름이 리스트로 나타나 있다.
하나같이 이름이 길어서 외우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름 밑으로는 몇 가지 설명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는데, 그 설명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첫 번째로, 12성좌라는 건 결국 거창한 별칭일 뿐 개개인의 플레이어를 뜻했다.
두 번째는 그들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기서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아주 넓은 영토가 있었다.
그 지역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12성좌였다.
12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그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각 한 명씩 총 12개의 대도시를 맡고 있는 셈이었고, 그것은 시스템 지도를 통해 어림잡아 본 결과 상당한 규모였다.
“……귀찮겠군.”
민성이 두루마리를 보며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땅이 넓다는 건, 그만큼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성은 혀를 차면서 두루마리를 접고, 그것을 템창에 던져 넣었다.
“이호성.”
멍하니 사색에 잠겨 있던 이호성이 민성의 부름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네, 헌터님.”
이호성이 민성의 앞에 손을 모으고 섰다.
“밥 먹자.”
“오랜만에 한식 어떠십니까?”
“좋지.”
이호성이 빙긋 미소 지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 *
부활되기 전 하얀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 만약 민성에게 밥을 해 줘야 한다면 뭘 해 주는 게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할 게 없으니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건 그런 것밖에 없었다.
그중 한 가지 꽂히는 메뉴가 있었기 때문에 이호성은 곧장 요리에 들어갔다.
이호성은 재료를 꺼내 요리 준비를 시작하면서, 마리가 이 집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웃고, 또 울었던 얼굴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괴로웠다.
머릿속에서 지우고, 잊으려고 했지만 어린아이라 그런지 좀처럼 잘 잊히지가 않았다.
김치를 자르려는데 자꾸만 손이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이호성은 씁쓸함을 삼키며, 정신을 바짝 차린 후 요리에 집중했다.
* * *
“완성됐습니다.”
이호성이 민성의 앞에 메인 요리를 놓으며 말했다.
이번에 이호성이 만든 음식은 ‘돼지고기 묵은지찜’이었다.
푹 찐 커다란 고기와 잘 익어 보이는 묵은지가 조화를 이루며 냄비 안에서 자글자글 끓고 있다.
하얀 쌀밥과, 돼지고기 묵은지찜.
식탁 위에는 이 두 가지만 놓여 있었지만 민성이 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메뉴 역시 먹기 전부터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훌륭했다.
민성은 젓가락을 들어 긴 김치를 하나 집어 올렸다.
묵은지는 딱 먹기 좋게 세팅되어 있었다.
민성은 탁한 빛을 띠고 있는 묵은지를 쌀밥에 휘감아 그대로 입으로 쏙 가져갔다.
묵은지가 어금니에 의해 씹히는 감각이 아주 경쾌하며, 찜이라서 엄청나게 부드럽다.
묵은지의 향과 고기의 향이 함께 배여 있었고, 묵은지인 만큼 새콤한 맛이 쌀밥과 만나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건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순식간에 밥이 사라지니 자연히 먹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고기와, 순식간에 쌀밥을 삭제시켜 버리는 묵은지의 맛은 실로 중독적이었다.
이 묵은지찜은 마치 쾌검과도 같았다.
눈으로 좇기조차 힘들 정도로 빠른 쾌검처럼, 순식간에 입안을 비우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묵은지의 마법과도 같은 힘이었다.
고기도 물론 맛있었지만, 민성은 그보다는 오로지 묵은지에 집중했다.
고기는 다소 위에 부담을 주는 느낌이 있었지만, 묵은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밥 위에 김치를 올리고, 묵은지찜의 국물을 삭 뿌리면, 그 위로 파와 고춧가루가 사악 퍼지면서, 국물은 촉촉해지고 한없이 먹기 좋은 상태로 변모한다.
그럼 민성은 그것을 숟가락으로 삭 퍼서 그대로 입으로 흘려 보낸다.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주 부드럽게.
그렇게 꿀꺽-! 하고 먹는 돼지고기 묵은지찜은 환상적이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 버리게 만들었다.
“한 공기 더.”
민성의 요청에 이호성은 예상했다는 듯이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바로 가져다주었다.
* * *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뒤, 민성은 다소 부담스럽게 가득 차 있는 뱃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편안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설거지를 끝마친 이호성이 민성에게로 왔다.
“저, 헌터님.”
“왜 밥 안 먹어?”
“별로 생각이 없어서요. 그보다, 저 잠깐 나갔다가 와도 괜찮을까요?”
“뭘 그런 걸 허락을 맡아? 어디 가려고?”
“크로크에게 죽은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해야 할 것 같아서요. 거긴 마리도 있으니까.”
이호성은 혹여나 민성의 심기가 상할까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감사합니다. 바가지를 데려가도 될까요?”
민성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허락했다.
이호성은 민성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후, 졸린 상태에 있는 바가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집 밖으로 나섰다.
밤이 깊은 새벽.
이호성은 걸음을 옮기며 착잡한 표정으로 쓰디쓴 감정을 삼켰다.
졸고 있는 바가지를 끼고서,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축제를 벌였던 현장에 도착했다.
이호성은 여전히 수습되지 못한 시체들이 널려 있는,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만 같은 악몽 같은 현장을 보며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