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271화 (271/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71화>

촌장은 저 멀리 웃고 있는 마리의 얼굴을 보며 무거운 눈빛이 되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할 나이였습니다.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버지를 죽인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죽은 것 역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까지 모두 감당해야 하는 건 이 어린아이에게는 가혹한 일이었겠죠.”

“그래도, 저렇게 씩씩하게 웃고 있는 걸 보면. 보통 아이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네요.”

이호성이 마리를 가리키며 웃었다.

촌장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겠죠.”

“아 참, 마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플레이어님을 칭찬했습니다.”

“응? 저를요?”

이호성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촌장을 보며 되물었다.

“네. 요리 실력이 엄청나다구요.”

“아무래도, 실력이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는 해서요.”

이호성이 테이블에 맥주를 내려놓고 담배를 물며 말을 이었다.

“저도 플레이어라 칼을 잡긴 잡는데, 식칼을 들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호성이 서글픈 표정으로 양쪽 입고리를 아래로 내리며 담배를 피웠다.

“전사가 아니라 요리사였던 거죠.”

“…….”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무거워졌다.

촌장은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축제는 점점 더 무르익어 갔다.

* * *

크로크는 자신의 영지를 침범해 어지럽히고 있다는 이방인을 제거하기 위해, 성을 나섰다.

그를 따르는 무리는 많지 않았다.

시중을 들 정도의 인원만을 간추렸기 때문이었다.

크로크는 말을 타고 여유 있게 가면서 자신이 죽였던 아이히만을 떠올렸다.

사실 자신의 영지에 들어온 이방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건 오직 12성좌뿐이었다.

고위 랭커로서 신의 영역과 가까운 플레이어들.

인간이지만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영역의 존재들.

크로크는 그런 12성좌의 플레이어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자신 역시 그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 왔다.

이제 서서히 그 결실을 맺어 나가야 할 때다.

더 이상 굴복하며 살 수는 없다.

넘어설 것이다.

크로크는 파랗게 일렁이는 눈으로 이상향을 꿈꾸며 걸었다.

그리고 이내 높은 지대 위에서 멈춰 서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를 먹으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고,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었으며, 마리는 마법을 이용해 화려한 불꽃놀이도 선보였다.

사람들을 즐거워하며 술을 즐겼다.

마치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처럼.

크로크는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뭐 하는 거냐, 저것들은?”

크로크가 말했다.

부하가 크로크의 등 뒤에 섰다.

“마법을 부리던 소녀 ‘마리’를 기억하십니까?”

부하가 말했다.

“알지. 그년이 왜?”

부하는 마리가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라고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자 미움의 대상이었던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방인이 온 이후로, 마리를 향한 사람들의 관점이 바뀌어,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여 저렇게 축제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크로크는 콧방귀를 뀌었다.

“천한 것들이…… 감히 내 병력을 죽인 이방인의 말을 들었단 말이냐?”

부하는 그저 고개를 깊게 조아렸다.

크로크는 살기가 오른 눈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건틀릿을 휘어 감은 쇠사슬이 촤르륵 하고 스산한 소리를 냈다.

“쓰레기를 청소해야 할 때로군.”

크로크는 축제를 벌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을 향해 눈을 크게 뜨며 주먹을 내질렀다.

크로크의 건틀릿에서 섬광과도 같은 광역의 빛이 터져 나왔다.

* * *

맥주를 마시고 있던 이호성은 일순 등골이 서늘했다.

마치 누군가 차량 헤드라이트를 켠 것처럼 하늘이 환해지면서 그늘을 만들었다.

이호성을 비롯해, 축제를 즐기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빛이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눈부신 빛.

마을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이호성은 그것이 오러의 힘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그는 황급히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 반사적으로 배리어를 형성했다.

“빌어먹…….”

하지만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오러의 힘이 땅을 뒤집어엎고, 마치 파도처럼 마을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충격에 의해 배리어가 깨졌고, 이호성은 피를 뿜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쿨럭……!”

바닥에 엎어진 이호성은 피를 연거푸 뿜으며 꿈틀거렸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입은 타격이 컸다.

힘겹게 체력 포션을 꺼내 마시며 겨우 바닥을 짚고 무릎을 꿇은 채로 그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축제가 한창이었던 곳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춤추며 악기를 연주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건 ‘마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호성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죽어 버린 사람들을 보고 있는 사이.

쿵! 하고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호성은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그곳엔 거대한 체구의 사내.

영지의 주인 크로크가 있었다.

그는 쇠사슬이 휘어 감겨 있는 건틀릿을 흔들며 웃었다.

“호오, 살아 있군? 이방인 중 한 명인가?”

크로크가 이호성을 보며 비웃었다.

이호성은 가라앉은 눈으로 크로크를 쏘아보았다.

“당신이 크로크 영주인가?”

크로크는 이호성에게 걸어가, 피로 물든 채 무릎을 꿇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겁이 없는 녀석이로구나. 배짱 하나 두둑한 건 알겠는데.”

크로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이호성을 보았다.

“혼자인가?”

크로크가 물었다.

이호성은 그를 올려다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굳이 마을 사람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

이호성이 크로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크로크는 그런 이호성을 보며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그리고 이내 발로 이호성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이호성은 허공을 풀쩍 날아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끄어억……!”

배를 붙잡고 웅크린 이호성이 벌건 얼굴로 걸쭉한 피를 입 밖으로 흘렸다.

크로크는 걸음을 옮겨 이호성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위로 휙 들어 올렸다.

이호성은 반쯤 풀린 눈으로 크로크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디 있나? 네 주인 말이다. 내 영역을 침범한 버러지는 어디 있어?”

크로크가 이호성을 보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큭, 크읏!”

“말해. 어디 있어?”

크로크가 늘어진 눈으로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이호성은 그런 크로크를 보며 큭큭 웃었다.

“걱정 마. 곧 만나게 될 거니까.”

크로크는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크로크가 주먹을 뒤로 당겼다.

쇠사슬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주먹을 뻗었다.

퍼어-엉!

이호성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면서 날아갔다.

크로크는 바닥을 구르는 이호성을 보지도 않고 주변을 훑었다.

땅이 뒤집어지고, 피바다가 된 주변을 보다가 자신의 건틀릿을 내려다보았다.

상대가 꽤 강해야 보다 강해진 힘을 제대로 느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상대가 너무 약하니 성능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던 크로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시선을 돌렸다.

“……음?”

가슴에 구멍이 뚫렸던 이호성이 버서커 상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뚫려 버렸던 몸이 재생 과정을 거치며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외양이 변하는 걸 보며 크로크는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며 웃었다.

“재밌는 놈인걸?”

이호성이 버서커 상태가 되어, 검을 들고서 크로크를 노려보았다.

“어디까지 되살아나는지 보자.”

크로크가 그렇게 비웃음과 동시에 이호성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로크는 여전히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이호성의 공격을 받아 냈다.

이호성이 검기를 쏟아 내고, 검을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지만, 크로크는 그런 이호성의 공격을 건틀릿으로 가볍게 막아 냈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크로크는 민첩했다.

쾌검을 쓰는 이호성의 공격을 양손에 장착한 건틀릿으로 간단하게 막으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호성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헬 파이어의 힘이 쉬지 않고 폭발했지만, 크로크는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 편안하게 이호성의 공격을 받아 내던 크로크가 가볍게 주먹을 썼다.

퍼어엉-!

크로크의 건틀릿이 이호성의 옆구리에 직격탄이 되어 들어갔다.

이호성의 동공이 흔들리며, 갈비뼈가 부러졌고 두 다리가 다시금 공중에 떴다.

크로크가 주먹을 뒤로 당겨 이호성의 머리를 향해 오러를 담은 힘을 내뻗었다.

퍼어어어엉!

이호성이 마치 팽이처럼 빠르게 돌다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일어나 봐.”

크로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일부러 힘을 아주 조금만 썼다.

가지고 놀기 위해서였다.

버서커가 된 탓에, 데미지가 있어도 쇼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갔음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은 칼로 바닥을 찍으며 일어섰다.

휘청휘청 몸이 흔들렸지만, 아직 이호성의 눈에는 살기와 공격 본능이 잔뜩 담겨져 있었다.

“네놈을 보고 있으니, 네놈 주인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구나.”

크로크가 진심으로 맥이 빠졌다는 듯이 말했다.

“크와아아아아!”

이호성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흥!”

크로크는 김이 샜다는 듯 이제 그만 끝낼 마음을 굳혔다.

크로크의 건틀릿에서 새하얀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려는 이호성을 향해, 크로크가 주먹을 내질렀다.

번쩍!

크로크의 건틀릿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이호성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크로크가 발출한 힘이 이호성을 집어삼켰다.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증발하듯 사라지면서 이호성은 허공을 날아 바닥을 굴렀다.

이호성은 처참한 형태로 바닥에 쓰러졌고, 더 이상 재생 회복이 불가하여 눈에서 생명의 빛이 희미해져 갔다.

크로크는 이호성에게 걸어가 그가 죽었는지 확인했다.

생명은 사라졌다.

완전한 죽음이었다.

크로크가 시체가 되어 버린 이호성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을 때, 발소리가 들렸다.

크로크는 미소를 지은 채로 발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았다.

민성이 양쪽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오고 있었다.

크로크는 민성을 보며 그가 이방인이며, 자신이 죽여 버린 시체의 주인임을 알아차렸다.

크로크는 민성을 보며 입이 길게 찢어지도록 웃었다.

“……이거 어쩌지? 타이밍이 늦어 버렸군.”

크로크가 발로 시체가 된 이호성을 발로 툭 차며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조금 서두르지 그랬어?”

민성은 죽은 이호성을 보며 감흥 없이 템창에서 궁니르S를 꺼냈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민성을 보는 크로크의 표정이 그 순간 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