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268화 (268/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68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죽일 거면 죽여라!”

노인이 바들바들 떨면서 소리쳤다.

“인생 다 산 당신이나 그렇지, 여기 다른 치들은 안 그런 모양인데?”

노인이 세 명의 어른들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엇이 그리 두렵단 말이오!”

노인이 소리쳤다.

중년 여성과 두 명의 중년 남성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저 떨기만 했다.

민성은 짧게 혀를 찼다.

겁을 주면 도망갈 거라 생각했는데, 노인의 영향력이 꽤 골치가 아팠다.

이렇게 되면 처리는 둘 중 하나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호성, 꼬마를 데려와라.”

민성이 명령을 내렸다.

이호성은 불안했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는 표정으로 꼬마 마녀라 불리는 소녀 ‘마리’의 손을 잡고 나왔다.

“이 어른들이 네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던데. 왜 죽였나?”

민성이 마리를 흘겨보며 물었다.

마리는 바들바들 떨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진실만 말해. 그뿐이다.”

마리는 눈을 크게 뜨며 민성을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리며 겨우 목소리를 냈다.

“저를 괴롭히려고 들었어요.”

“분명하게 얘기해라.”

“제 몸을 만지려고 했어요. 그리고…….”

“그만.”

“…….”

“마을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했다던데. 그건 네가 한 건가?”

마리가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표정이었다.

“이유는?”

“……제가 마녀이니까요.”

민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른들을 쏘아보았다.

“이번에 그쪽으로 질문. 지금도 병에 걸려 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나?”

“물론이다.”

노인만이 대답했다.

다른 세 명은 여전히 죽음을 앞둔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했다고 해도, 머리로 한 생각과 몸의 반응은 다른 법이었다.

민성은 세 명에게서는 시선을 거두고 노인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어이, 꼬마.”

민성이 마리를 불렀다.

마리가 초췌한 얼굴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을 낫게 할 수도 있어?”

민성이 물었다.

그리고 마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깜짝 놀란 눈으로 마리를 보았다.

“네 이년! 병을 고칠 수 있음에도 어찌 고치지 않고 방관할 수 있단 말이냐!”

노인이 마리를 향해 소리쳤다.

마리는 움찔 떨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콰르르르릉!

민성의 궁니르S가 울음을 토했다.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바짝 굳었다.

민성의 무기에서 나는 천둥소리는 포효의 힘이 있었기에, 대상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무리 죽음을 달관했다고 해도, 순간적인 반응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힘을 가진 이 꼬마를 당신들이 마녀라고 부르면, 이 꼬마는 마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구원자라고 부르면 어떨까? 도와 달라고 하면? 괴롭힐 수 없도록, 신성하게 보호하고, 마을을 지켜달라고 정성을 기울인다면?”

어른들이 뭔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마리를 보았다.

“그럼 저 꼬마는 마녀가 아니라 당신들에게 구원자가 됐겠지.”

4명의 어른들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이 꼬마를 죽이려 들면 너희들은 아마 죽을 것이다. 하지만 살려 달라고 한다면. 도와 달라고 한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이 아이를 신성시한다면.”

민성은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마을을 훑어보았다.

“어쩌면, 조금은 이 마을이 달라질지도.”

“…….”

“선택은 너희들이 하는 거다. 그만 귀찮으니 데려가.”

민성은 궁니르S를 템창에 던져 넣으며 몸을 돌렸다.

민성이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이호성은 중간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뒤늦게 민성을 뒤따랐다.

이호성은 본래 꼬마 마녀라 불리던 ‘마리’의 집 앞에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마리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이호성은 마리를 응시하다가 긴 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 * *

“……괜찮을까요? 그 아이 말입니다.”

이호성이 민성의 식탁 앞에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민성은 이호성이 준 보이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모르지.”

하고 관심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호성은 민성의 맞은편에 앉으며 한숨 쉬었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현명한 판단을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개의 선택지를 준 것. 그리고 그 아이를 그들의 결정에 맡긴 것도요.”

“평가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순수하게 감탄한 겁니다.”

이호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비밀 문서에 대한 정보를 찾아와.”

“네. 알겠습니다.”

“저번처럼 무리하지는 말고.”

민성이 식은 차를 마기로 다시 뜨겁게 데운 뒤, 호로록 마시면서 말했다.

이호성은 민성을 보며 빙긋 웃었다.

“예, 헌터님.”

* * *

꼬마 마녀라 불리던 소녀, 마리.

그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늘 궁핍하고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다.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은 늘 자신을 악몽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젠 지치기도 했고, 돈가스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엄청난 음식도 먹어 보았다.

음식의 즐거움을 누렸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마리는 축 처진 채로 어른들을 따라갔다.

어른들 중 사내 한 명이 아들을 불러 이번 일에 대해 상의했다.

그의 아들은 마을에서 촌장의 뒤를 이을 촌장으로 추대될 청년이었다.

함께 간 촌장이 죽었으니, 이제 사실상 청년은 촌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직접 움직여 하나둘, 사람들에게 광장으로 모여 줄 것을 요청했다.

병에 걸린 사람들도 데려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마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마리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고 일단 광장에 모이기로 결정했다.

잠시 후, 마을 광장에는 베아트리체인들로 가득해졌다.

마리의 힘에 의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어서 낫고 싶은 마음에 빨리 치료를 해 달라고 소리쳤다.

마리의 집을 찾아갔던 3명의 어른들 중, 촌장이 될 예정이었던 청년이 광장의 단상 위로 올라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오래 걸리지 않아 광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그제야 청년은 입을 열었다.

청년은 마리의 집을 찾아가 민성을 만났고, 민성이 한 얘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의 힘을 두려워하여 마녀라고 불렀고. 이 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녀가 된 것이라고.”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청년의 말에 차츰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이 표정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아이를 신성시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요. 만약 우리가 이 아이를 마녀라고 매도하지 않았다면. 이 아이를 신성하게 여기고 마을을 지켜 달라고 정성을 기울였다면, 어쩌면 이 아이는 마녀가 아니라 구원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청년은 마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재앙은, 저 소녀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항의하기 시작했다.

궤변이라고, 마리는 악마라고 소리쳤다.

“앞으로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대체 누가 우리를 지켜줄 수 있죠?”

청년은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끄럽게 소리치던 이들도 입을 다물었다.

“크로크가 우리를 지켜주는 거라고 생각합니까?”

“…….”

“우리는 크로크에게 터전을 빼앗겼으며, 여자와 재물, 그리고 영토를 빼앗겼습니다.”

“저 아이가 크로크를 대적할 수 있다는 거요?!”

한 남자가 소리쳐 물었다.

“물론 대적할 수야 없지요. 하지만 적어도 작은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 꼬마가 사람을 죽인 건?!”

“당신은 제가 당신을 죽이려 든다면 저항하지 않을 겁니까?”

“…….”

“이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아이를 보호하고, 존중하고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다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로 인해 보호받게 될 겁니다.”

청년의 말에 수긍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리더가 이끄는 군중 심리는 빠르게 확산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저 꼬마가 만약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지난 일로 앙금이 남아 있다면? 그럼 어쩔 거요?!”

청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얘기가 자꾸 도돌이표가 되는군요. 우리가 이 아이를 죽일 수 있습니까?”

“못할 게 어디 있소?!”

“이 아이가 죽는다면, 앞으로 병이 생겨도 치료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크로크가 우리를 치료해줄 거라고 생각합니까? 노리개가 될 미녀만 치료를 받게 될 텐데요.”

사내는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펼치지 못했다.

“무조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마녀사냥으로 이 아이를 핍박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핍박할 것이 아니라 존중해 주고 배려해 준다면, 마리는 우리를 위해 그 힘을 써 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청년은 이 일을 못 박기 위해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리가 이 아이를 여전히 마녀로 치부하고 죽이고자 든다면, 이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며.”

청년이 목소리를 점점 높였다.

“그것은 곧 우리 마을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죽이는 건 이 아이가 아니라 우리가 될 것입니다!”

청년은 본래 말이 없는 유형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의 현명함은 소리 없이 유명해져, 자연스럽게 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늘 조용했던 그가 이렇듯 큰 목소리를 냈다.

또한 설득력까지 갖추었으니 청년의 말에는 큰 힘이 담겨 있었고, 그 힘에 의해 사람들이 마녀라고 매도했던 마리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3일간의 시일을 드리겠습니다. 손목에 빨간 천을 두른다면, 이 소녀를 해하거나 마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하얀 천을 손목에 두른다면, 이 소녀를 존중하고 신성시 여기고 함께할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서 단상에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마리의 앞에 섰다.

마리는 동그랗게 놀란 눈으로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청년은 마리를 보며 미소 지음과 동시에 준비해 온 하얀 천을 꺼내 자신의 손목에 묶었다.

“그동안 힘이 없어 너를 도와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할 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나마 분명히 얘기해 둘게. 넌 잘못한 게 없어. 그리고 나는 네 편이다, 마리.”

청년이 말했다.

마리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청년이 마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리는 눈물을 참으며 청년이 건넨 손을 잡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