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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67화 (26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67화>

아이히만이 크로크를 향해 검을 겨누며 얼굴을 굳혔다.

“비열한 놈. 결국 12성좌의 명령에 굴복한 것을 내 모르지 않는다. 부끄러울 줄 알아라, 크로크!”

아이히만의 외침에 크로크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들었다.

“12성좌, 12성좌. 아주 귀에 딱지가 앉겠다. 뭐 그리 대단한 놈들이라고 그 놈들을 내 머리 위에 두려 하느냐? 나는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 머리 위에 두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크로크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주제를 넘다 못해, 정신이 나가 버렸군. 내가 그 썩은 머리를 잘라 줄 것이다.”

아이히만의 성검에서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예열된 엔진처럼, 운동 준비를 마친 아이히만의 성검이 눈부신 힘을 펼쳐 냈다.

크로크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마력을 개방시켰다.

쿠르르르르르-!

대지가 진동했다.

맞붙기도 전에 크로크와 아이히만의 투기가 섞이는 것만으로 공기가 뒤틀리는 듯했다.

아주 잠깐의 침묵.

그리고 이내 서로가 공격을 시작하는 순간,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히만의 검에서는 성스러운 빛이 줄기줄기 흘러 나왔고, 건틀릿을 끼고 있는 크로크의 주먹에서는 오러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두 힘이 격돌하는 순간.

번쩍! 하고 빛이 가장 먼저 넓게 퍼졌고, 그 다음으로는 그 힘의 파장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이미 멀찍이 떨어져 있는 크로크의 부하들은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파장에 전력을 써서 방어막을 쳐야만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크로크와 아이히만이 맞부는 힘의 파장은 강력했다.

서로의 마력이 충돌로 흩어지면서, 이내 아이히만의 검과 크로크의 주먹이 교차했다.

카카캉!

고음의 쇳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든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열기.

그 가운데 크로크의 눈이 초록빛으로 번쩍였다.

그러자 크로크의 등 뒤에서 9마리의 뱀의 형상을 한 형체가 아가리를 벌이며 동시다발적으로 아이히만의 갑옷을 물어뜯었다.

퍼억! 퍼억! 퍽! 퍼석! 퍽! 퍼-억!

그 어떠한 것이든 막아 줄 것만 같았던, 단단한 은빛의 갑옷이 마치 두부 으깨지듯 간단하게 깨져 나갔다.

아이히만이 당황한 눈으로 크로크를 노려보며 일단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그의 움직임보다 이미 기회를 잡은 크로크의 주먹이 훨씬 더 빨랐다.

퍼-어어어엉!

크로크의 주먹이 그대로 아이히만의 심장 부근의 가슴을 강타했다.

아이히만의 잇새로 피가 튀어 나왔고, 얼굴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자연스럽게 아이히만의 몸은 뒤틀렸고, 중심을 잃은 이상 크로크의 이어지는 연속 공격은 허용당하기 좋은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크로크는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아이히만을 노려보며 그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나갔다.

마치 공룡이 공룡을 잡아먹는 것처럼.

* * *

소녀의 이름은 ‘마리’였다.

올해로 12살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만 해도, 도둑고양이처럼 경계심이 가득했었는데, 돈가스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후부터는 경계심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호성과 대화를 나누면서 소녀, 마리는 경계심 가득한 도둑고양이에서,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12살 소녀로 바뀌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맛있을 수 있는 거죠? 너무 맛있었다고요. 세상에 그런 음식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소녀는 분명 배가 불렀을 텐데도 불구하고 돈가스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 끊임없이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민성은 그런 소녀의 심정을 백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마계에서 굶주림을 경험한 끝에 천상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니까.

이호성과 음식 재료만 있다면, 사실 베아트리체 역시 민성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다만 베아트리체 안에서 식재료는 한정적이고 시간이 부족할 뿐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는 건 어떤 세상인가요?”

소녀가 물었고, 이호성은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호성의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소녀의 눈은 흥미로 가득했다.

그녀는 마치 동화 속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지구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 시간이 흐르고 있는 와중에, 이야기의 맥을 끊는 일이 생겨났다.

쿵! 쿵! 쿵!

누군가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밝았던 소녀의 표정은, 갑작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곧바로 얼어붙었다.

그녀는 다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걱정할 것 없어. 이 분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거든. 널 지켜줄 거야.”

이호성이 민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녀는 겁먹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제 마음대로 자신이 지켜줄 거라고 말한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이호성은 헛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일단 제가 한 번 나가 보겠습니다.”

이호성은 도망치듯이 출입문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네 명의 어른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초라한 행색의 노인.

두 명은 중년 남성.

마지막 한 명은 중년 여성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굳은 의지가 담겨 있는 표정이라 한눈에 봐도 담판을 지으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대화에도 절차라는 것이 있으니만큼, 이호성은 일단 침착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이호성이 물었다.

그러자 중년 남성 한 명이 화난 것 같은 얼굴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이 안에, 마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호성은 민성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가, 민성이 일단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턱짓했다.

이호성은 짧게 혀를 차며 네 명의 어른들을 훑어보았다.

크로크의 플레이어 같지는 않았다.

일단 복장도 그렇고, 그들이 가진 기운도 평범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베아트리체인들이, 꽤 시끄러운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텐데도 이곳을 찾아왔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우린 죽음을 각오하고 왔습니다. 그런 만큼 해야 할 말을 반드시 전해야 했습니다.”

이호성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신음을 흘렸다.

“으음. 그러니까 그 마녀라 불리는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뭐 그런 거요?”

“물론입니다. 이 집 안에 있을 그 아이는 마녀가 맞습니다. 의협심을 이유로 그 마녀를 지키려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말을 전해 오는 중년 남성의 눈에는 진심이 꽉꽉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호성이 보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딱히 윗선에서 시켜서 저 ‘마리’라는 아이를 죽이려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기억을 떠올려 보면 크로스 플레이어들 역시 소녀를 데려가려는 것으로 보였다.

좀처럼 아귀가 맞지 않는 듯했다.

이상했지만 일단 이호성은 시작된 대화부터 마무리 짓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제가 아직 듣지를 못했는데, 저 아이가 마녀라는 이유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이호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마을 주민들의 대답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냥 단순한 미신 정도인 줄 알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이유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 농도가 짙었다.

“저 아이가 직접 사람을 죽이는 걸 보았소.”

처음, 초로의 늙은 노인이 말했다.

뒤이어 중년 여성은.

“저도 봤어요.”

……라고 뒤이어 말했다.

“흥!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 난 뭘 봤는지 아시오?”

중년 사내가 상기된 표정으로 끔찍하다는 듯 몸서리를 치면서 말을 이었다.

“저 꼬마 마녀가 이상한 힘을 쓰고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역병이 퍼지기 시작했다고요. 그건 저 꼬마 마녀의 저주가 틀림없어요!”

중년 사내가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씩씩거렸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분노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이호성은 한숨을 쉬며 소녀를 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마리’를 이토록이나 증오하는 걸 보면, 그건 단순히 미신 같은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직접 자신이 본 게 아니니, 이호성으로서는 입장이 난처했다.

“그래서. 저 아이를 데려가 죽일 작정이란 말입니까?”

이호성이 묻자마자.

“마녀는 불에 태워야 하오.”

노인이 무정하게 말했다.

이호성은 네 명의 어른들을 보며 갑갑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경우, 결국 결정은 민성이 내려야 한다.

“어떻게 하죠?”

이호성이 백기를 들었다는 듯 쓰디쓴 표정으로 민성을 향해 물었다.

민성이 천천히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왔다.

4명의 어른들은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듯, 꼿꼿한 자세로 민성을 쏘아보았다.

민성은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민성이 웃자 마치 전사와 같던 표정의 어른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하지만 그들은 흐트러진 감정을 곧바로 다잡았다.

“저 꼬마 마녀가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가 설명하지 않았소? 마녀를 내주시오.”

노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민성의 두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멍청한 건지 용맹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네.”

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 말대로 만약 저 아이가 그런 힘이 있다면. 당신들에게 곱게 죽어 줄 거라고 생각하나?”

어른들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순진한 거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어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만약 당신들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당신들이 저 아이를 죽이려 드는 거라면…… 저 아이가 죽겠어, 당신들이 죽겠어? 아니지. 마을 전체가 죽을까?”

민성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꼬마 마녀라고는 했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다.

베아트리체인이지만 그녀는 사실상 평범한 베아트리체인으로 볼 수 없었다.

물론 네 명의 어른들이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목숨을 걸고 찾아왔다고?”

민성이 엷게 웃었다.

“당신들은 지금 마을 사람들 목숨 전체를 들고 도박을 하고 있는 거야. 그들이 동의를 했든 안 했든.”

민성이 웃음기를 지우고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훑었다.

“그리고. 정말 목숨을 건 각오가 섰는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네.”

민성이 템창에서 궁니르S를 꺼냈다.

콰르릉!

격려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이이익!”

4명의 어른들이 동시에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들은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그들의 눈에 민성은 꼬마 마녀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재앙의 강림이었다.

“쉽게 안 죽을 거야. 사람 생명, 생각보다 질기거든. 내가 조절을 잘하기도 하고.”

노인을 제외한 세 명의 어른들은 오줌을 지렸다.

초로의 노인은 공포에 떨면서도, 민성을 보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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