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66화>
“그 쫓기던 소녀의 집이 저기?”
이호성이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바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헌터님한테 사과도 드려야 하고, 제대로 못 드셨으면 음식을 새로 해야 할 테니.”
이호성은 걸음을 옮기면서 템창을 열어 포션을 하나 더 꺼냈다.
대체 얼마나 심각하게 맞은 건지, 움직일 때마다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다.
포션을 꼴깍꼴깍 마시면서 폐허와도 같은 집 입구 앞에 도착했다.
똑똑-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어 보았다.
끼이익!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바가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겉과 달리, 집 안은 그나마 괜찮았다.
방구석 어딘가에 거미줄이 쳐져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지만, 허름하긴 해도 청소는 말끔하게 되어 있었다.
민성은 나무 식탁 앞에 앉아, 빵을 먹고 있는 민성을 보고 머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헌터님.”
일단 사과부터 했다.
사고를 쳤으니,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빵으로는 해결이 안 돼. 바로 식사 준비해라.”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민성은 자신이 함부로 대들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식사를 준비하라는 말뿐이다.
그런 만큼 이호성으로서는 한결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꽤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듯했다.
요리를 준비하려던 이호성은 한쪽 모퉁이에 무릎을 감싸고 앉아 있는 꼬마 소녀를 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던 소녀였다.
경계와 두려움, 그리고 궁핍함이 스며든 눈빛은 그간 소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위로를 하기에 음식만한 것이 없지.
“맛있는 걸 만들어 주마.”
이호성은 소녀에게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한 뒤, 민성에게 목례를 하고는 본격적인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 * *
몸이 욱신거렸지만 요리를 하는 데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메뉴 선택은 비교적 간단했다.
꼬마 소녀에게도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마음에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메뉴를 골랐기 때문이다.
이호성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이 메뉴가 꼬마 소녀는 물론이고 민성의 입장에서도 환상적인 한 끼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호성은 두 개의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은 후, 꼬마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몸을 더 구겨 넣으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이호성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무릎을 굽혀 앉아 소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배고프지 않니?”
이호성이 물었다.
소녀는 마치 다리를 다쳤지만, 경계를 잃지 않는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이 깃들어 있었다.
“밥 먹자. 이리 와서 밥 먹어.”
이호성이 천천히 일어나 의자 하나를 빼 주었다.
미소를 지으며 먹어 보라고 눈짓했고, 소녀는 식탁 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는 음식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아. 와서 먹어 봐. 엄청 맛있을 거야.”
소녀는 연거푸 침을 삼키며 고민하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이호성은 재촉하지 않고 소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민성도 팔짱을 낀 채, 그런 소녀를 지켜보았다.
소녀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는지, 아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식탁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여전히 경계가 사라지지 않는 눈으로 민성과 이호성을 번갈아 보며 식탁 앞에 앉았다.
그러다 가까이서 메뉴를 보고 난 후, 소녀는 넋을 잃은 얼굴로 음식을 쳐다보았다.
이호성이 준비한 메뉴는 ‘돈가스’였다.
소녀의 또래라면 환장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음식.
두툼한 고기와 그를 감싼 황금빛 튀김의 비주얼과 달짝지근한 소스의 냄새는 소녀를 완전히 매혹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이호성이 빙긋 웃으며 포크를 소녀의 앞에 놓아 주었다.
소녀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돈가스를 보며 포크를 들었다.
돈가스는 소녀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잘 잘라져 있었다.
* * *
소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돈가스를 포크로 콕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하게, 그리고 탄력 있게 씹히는 식감.
뒤이어 돈가스의 육향이 콧속을 가득 메우고, 달짝지근한 돈가스의 소스 맛이 입 안에 퍼지는 건 그야말로 소녀에게 있어 환상적인 맛 그 자체였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무려 고기였다.
죽을 때까지 못 먹어 볼 줄 알았던 음식.
그 음식이 무려 돈가스라는 엄청난 요리였다니.
소녀로서는 입안에 들어찬 돈가스를 씹을 때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의 행복의 극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장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돈가스를 마구마구 입안으로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소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작은 입으로 한입, 한입 소중하게 돈가스를 먹었다.
* * *
민성은 소녀를 지켜보다가 자기도 돈가스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돈가스의 맛은 고기의 신선도와, 튀김의 상태, 그리고 소스 이 세 가지에서 결정이 나는데, 이호성이 요리한 돈가스는 이 세 가지가 완벽했다.
완벽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돈가스였다.
거기에 더불어 입가심으로 먹는 양배추 채와 드레싱은 기가 막히게 상큼했다.
하얀 쌀밥과 함께 먹으니 포만감이 빠르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채워졌다.
“너무, 너무…… 맛있어요.”
소녀가 돈가스를 먹다 말고 고개를 푹 숙이며 울먹였다.
민성은 그런 소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먹어라.”
소녀는 눈물로 가득한 눈가를 닦으며 식사를 이어 갔다.
민성 역시 조용히, 맛있는 돈가스를 먹어 나갔다.
* * *
민성과 소녀가 식사를 하고 있는 사이 이호성은 벽 귀퉁이에 기댄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가 않았다.
크로스 영지의 플레이어들과 싸웠던 기억.
그리고 민성과의 전투가 생생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그 기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이 정도로 강해졌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물론 내대륙의 진짜 강자들이나, 강민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지만 그건 이미 신의 영역이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 정도 전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스스로의 발전에 대한 행복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호성은 베아트리체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만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더 강해질 것을 기대하며 이호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호성.”
민성이 불렀다.
“네, 헌터님!”
이호성은 고개를 팩 돌리며 민성에게로 쪼르르 뛰어갔다.
“아이스크림.”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쏠을 불러, 아이스크림을 받은 다음 그릇에 세팅하여 민성과 소녀에게 주었다.
빈 돈가스 그릇에서 시선을 못 떼던 소녀는 새로이 눈앞에 등장한 아이스크림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이호성은 그런 소녀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 * *
어둑한 구름이 비를 뿌리는 가운데.
콰콰콰콰- 콰앙!
전장에서 격렬한 폭음이 사방에서 비산했다.
최선두에 서 있는 2미터30에 달하는 키를 가진 사내.
아니, 플레이어이자 영지의 주인 크로크는 어금니를 깨물며 오러를 담은 주먹을 내질렀다.
피이이잉!
얇은 소리와 함께 크로크의 주먹에서 강대한 기운이 뻗어져 나갔다.
쿠크크- 콰콰콰콰콰!
100명이 넘는 인원의 플레이어가, 크로크의 주먹에서 발출된 권기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크로크는 온몸에서 하얀 기류를 피워 올리며, 성을 향해 걸어갔다.
현재 크로크는 인접한 곳에 위치한 성의 주인인 아이히만을 죽이기 위해 전쟁 중이었다.
최선두에서 홀로 아이히만이 가진 병력의 절반을 쓸어버린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크의 체력과 마력은 여전히 흘러넘치고 있었다.
“같잖은 피라미들을 뭐 하러 내보내느냐!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아이히만!”
거구의 크로크가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로크가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을 때.
퍼어어어어어엉!
성문이 통째로 구멍이 나면서 그 자리에는 시체가 나뒹굴었다.
크로크는 구멍이 뚫린 성문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부하 플레이어들이 뒤따랐다.
크로크는 부하들을 성난 눈으로 돌아보았다.
“네놈들은 그저 전리품을 취할 짐꾼에 불과하다. 어설프게 나서서 죽는다면, 그 영혼을 내가 직접 씹어 삼킬 것이다.”
크로크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고, 크로크를 따라온 플레이어들은 그의 눈빛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크로크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피융! 피융! 피융!
하늘에서 마법의 힘이 담긴 화살이 마치 소나기처럼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며 날아들었다.
크로크는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구기며 바닥에 쿵! 하고 발을 굴렸다.
바닥이 지진처럼 일렁임과 동시에 크로크로부터 거대한 막이 생성되었다.
그 막은 단순히 쏟아지는 화살 비를 막아 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점점 영역을 넓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쩌저저적!
쿠구구구구궁!
성에 금이 가고 파편이 떨어지면서 이내 성이 3분의 1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크로크는 전력을 개방했다면, 성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만한 힘을 잠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리품을 취해야 하는 바, 약탈지를 무너트릴 수는 없었기에 일부의 능력만을 내비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만으로도 근처에 있던 궁수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죽거나 다쳤다.
입김 한 번이면 플레이어들이 죽어 나갈 정도로, 크로크가 가진 힘은 일개 일반 플레이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했다.
“아이히만, 이 쥐새끼. 어디로 숨은 것이냐?”
크로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으르렁거리듯 말한 그 순간, 성안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 역시 크로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큰 키와 덩치를 가진 이였다.
망토를 두르고 은빛의 갑옷을 입은 그는 폭렬적인 느낌의 크로크와는 대조적으로 성스러운 느낌의 검을 든 우직한 인상의 사내였다.
“기어코, 네가 평화 협정을 깨고 말았구나. 크로크!”
공격당하고 있는 이 영지의 주인, 아이히만이 분노를 담은 시선으로 크로크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크로크는 아이히만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평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던가?”
크로크가 아이히만을 보며 눈을 크게 뜨고 킬킬거리듯 웃었다.
그런 크로크의 눈이 마치 파충류처럼 변해 갔다.
전투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