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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64화 (26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64화>

이호성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러죠.”

이호성이 수락하자 은발의 사내는 길고 얇은 검을 템창이 아닌 허리춤에서 꺼내 들었다.

외모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이미지를 꽤나 신경 쓰는 인물인 듯했다.

과연 실력은 어떨까?

이호성은 자신의 검을 들고서 그를 마주하며 긴장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상대의 검에 집중했다.

선공을 할 것이냐, 아니면 반대로 선수를 내어 줄 것이냐.

그 두 가지의 선택지 사이에서 이호성은 후자를 선택했다.

섣불리 공격부터 하면서 빈틈을 드러내기보다는 침착하게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하며 이쪽에서 먼저 빈틈을 찾아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호성이 먼저 선공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치자 은발의 사내는 한쪽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이호성을 향해 얇고 긴 검을 아름답게 휘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섯 다발의 강대한 검기가 날아왔다.

이호성은 눈을 크게 뜨며, 그림자술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스며든 이호성이 은발 사내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림자 위로 불쑥 본체가 튀어나오며 은발 사내의 등을 향해 자신의 검을 대각으로 내리그었다.

은발 사내가 빠르게 돌아서며 검을 세로로 세웠다.

이호성의 검과 은발 사내의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이어지는 근접 전투.

이호성의 검과 은발 사내의 검은 서로를 벨 듯 못 베며 아슬아슬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그렇게 전투를 하면서 이호성은 머릿속으로 ‘할 만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민성 앞에서 배짱을 부리긴 했지만 사실 그는 긴가민가했다.

어쩌면 한 수도 못 받아치고 죽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은발 사내는 고작해야 크로스 영지의 병력 중 일부의 우두머리일 뿐.

해 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자, 여유와 자신감이 검에 깃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호성의 검은 은발 사내의 검보다 점점 더 예리해지기 시작했다.

외려 전투를 할수록 오러의 출력량이 은발 사내보다 조금 더 앞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전투가 길어질수록 은발 사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이호성은 집중을 잃지만 않는다면,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승부를 짓는다.

이호성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은발 사내가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거리를 벌이려 들었다.

그것을 보고 이호성은 그대로 검기를 발출시켰다.

쇄애애애액!

공기를 찢어 내는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강력한 오러의 검기.

은발 사내는 어금니를 깨물며 피하려 들었으나, 검기는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퍼-걱!

갑옷의 어깨 부분이 부서지면서 작은 핏물이 허공에 튀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상처에 불과했고, 은발 사내에게 제동을 걸 만한 공격은 아니었다.

은발 사내는 이호성의 검기를 피하자마자 반격에 나섰다.

은발 사내의 검이 횡으로 일직선의 선을 그었다.

이호성은 상체를 숙이며 검기를 피한 다음, 빠르게 돌진하여 다시 거리를 좁혔다.

이호성이 검을 7차례 휘두르자 7개의 검기가 가까운 위치에서 날아들었다.

은발 사내가 마지막 7번째 검기를 쳐 냈을 때, 이호성의 검이 그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흣!”

은발 사내가 몸통을 반 바퀴 틀었고, 이호성의 검은 그의 심장이 아닌, 부서트렸던 갑옷의 어깨 부위 폴드런(Fauldron)을 찔렀다.

푸-욱!

은발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승기를 잡은 이호성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찔렀던 검을 회수하며 연쇄 공격을 쏟아부으려던 때.

위기를 직감한 가까운 위치의 중대 병력 일부가 끼어들었다.

병사들이 이호성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이호성은 예상치 못한 급습에 깜작 놀라며 물러섰지만,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었던 탓에 제대로 된 방비를 할 수 없었다.

결국 검기가 이호성의 팔과 다리, 그리고 옆구리를 베어 냈다.

“크윽……!”

이호성이 비틀 거리며 뒷걸음질 쳤고, 바닥에는 굵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뭐 하는 짓이냐!”

은발의 사내가 호통을 쳤다.

그러자 끼어들었던 병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은발의 사내는 검을 고쳐 잡으며 이호성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상관을 위한 마음이 지극해서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니.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는 마시죠.”

이호성은 굳은 얼굴로 은발 사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부하들이 나선 이상 당신의 패배로 결정된 것 같은데?”

이호성의 말에 은발의 사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는 소리. 우리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제대로 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은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애당초 정정당당한 대결을 할 생각 따위는 없는 거였다.

“곱상한 얼굴이라 꽤 터프할 줄 알았는데. 얼굴값을 제대로 하시는구만.”

이호성의 도발에 은발 사내는 전혀 걸려들지 않았다.

“그 몸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은발의 사내가 비릿하게 웃었다.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너무 추한데? 실력으로 누를 것처럼 폼 잡을 때는 언제고.”

이호성이 비웃음을 던지자 이번 도발에는 다소 감정이 상한 듯 은발 사내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문답무용.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은발 사내가 득달같이 달려 들어왔다.

이호성은 긴장했다.

크로스 영지의 떨거지들일 줄 알았는데 평균 전투력이 상당히 높다.

그로 인해 이호성이 입은 타격은 생각보다 컸다.

출혈량이 상당해서 몸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다.

이호성은 무거운 몸으로, 은발 사내가 쏟아 내는 총력을 막아 내야 했다.

얇고 긴 검신에서 흘러나오는 검기가 다발로 쏟아져 나오고, 그것을 쳐 내고 피했을 때 이어지는 근접 공격은 껄끄럽다 못해 징그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버티고 또 버텨 내야 했다.

최대한으로 버텨서 시간을 갖고 와야 한다.

이쪽은 목숨이 두 개니까.

버서커가 되면 전투 능력은 급격하게 상승한다.

대신 그만큼 의식은 사라지고 그때부터는 목숨에 대한 리스크가 상승한다.

하지만 민성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리스크는 안고 갈 수 있다.

문제는 큰소리치고 앞으로 나섰는데 민성에게 뭔가를 보여 준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

그런 만큼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버서커 상태로 변하기 전까지 의식이 있는 동안 최대한의 효율을 일으켜야만 했다.

하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정정당당한 척, 배려가 넘치는 척 가식을 떨었던 은발 사내는 이중적인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며 검을 휘둘러 댔다.

그리고 쏟아지는 그의 공격은, 이호성으로서는 점점 막아 내기가 역부족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에 상처를 내긴 했지만, 깊지 않았던 듯 그는 날 듯이 공격을 휘몰아쳤다.

점점 체력이 빠지고, 상처도 늘어가게 됨에 따라 시야마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곧 버서커 상태에 들어서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호성은 하나의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놈은 자신이 목숨이 두 개라는 걸 알지 못한다.

또한 비등한 실력이라면……?

충분히 ‘동귀어진(同歸於盡)’이 가능하다.

동귀어진이란 상대방과 같이 죽음으로써 대상의 목숨을 취하는 것.

버서커로 변할 수 있는 자신에게 동귀어진은 가히 최대의 비기가 될 수 있을 히든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잘난 표정으로 웃는 낯짝을 보니 저놈이 자신에게 당했을 때의 표정을 보고 싶어 속이 근질거렸다.

일대일 대전이라는 여유를 부린 걸, 평생 동안 후회토록 하게 해 주마.

아, 어차피 헌터님에게 죽을 놈이긴 했군.

어쨌든 은발 사내의 후회를 자신이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각오는 새겨졌다.

한두 번 죽은 것도 아니고, 전투 긴장감이 높은 상황이라 몸을 던지는 데 이호성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은발 사내가 직선으로 검을 찔렀을 때, 이호성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빠르게 지면을 박차며 전진했다.

은발 사내는 이호성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동공이 흔들렸다.

이내 이호성의 명치에 은발 사내의 검이 관통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호성은 핏물 섞인 어금니를 깨물며 눈을 늑대처럼 뜨면서 은발 사내의 심장에 최대 마력을 담은 검을 찔러 넣었다.

퍼-어어억!

이호성의 검이 갑옷을 뚫고 은발 사내의 심장을 찔렀다.

손끝으로 심장을 찔렀다는 감각이 그대로 전달되어 들어왔다.

“맛이 어때? 이 가식적인 놈아.”

은발 사내의 얼굴이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놈이!”

사실상, 은발 사내의 방심과 여유가 동귀어진이 통한 가장 큰 이유였다.

놈은 자신을 몰아붙이면서 승세를 완벽하게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로 인한 자만감이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다.

은발 사내의 잘생긴 얼굴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죽어 가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은발 사내의 등 뒤로, 대기 중이던 중대 병력이 급히 자신의 우두머리를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와라.”

이호성은 고통에 물든 얼굴로 말했다.

다섯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이호성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이호성은 반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은발 사내의 심장에 꽂았던 검을 뽑았을 뿐이다.

검에 진득하게 묻은 피가 보였고, 뜬 눈으로 쓰러지고 있는 은발 사내가 보였다.

그것을 끝으로, 병사들의 무기가 이호성의 몸을 찌르고 들어왔다.

푹! 푹! 푹! 푸우욱!

이호성은 고개를 뒤로 확 젖히며 철퍽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무기를 뽑아냈고, 이호성이 바닥에 엎어졌을 때 병사들은 황급히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은발 사내에게 포션을 쏟아붓고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미 심장에 치명상이 들어간 탓에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병사들이 노기를 띤 얼굴로 아직 살아남아 있는 민성을 노려보았을 때.

쿠드드드득-!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중대 병력의 시선이 이미 시체가 되어 버렸을 거라고 예상한 이호성에게로 향했다.

머리카락이 붉어지고, 근육이 팽창되며, 마치 좀비처럼 꿈틀거리며 일어서고 있는 이호성을 보며 그들은 충격에 빠진 감정을 눈에서 지우지 못했다.

이내 구부정하게 일어선 이호성이 피로 물든 것만 같은 붉은 눈을 뜨는 순간, 중대 병력들은 온몸에 소름이 끼쳐 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엄청난 투기가 버서커로 변한 이호성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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