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63화>
* * *
“거기 안 서? 이 망할 꼬마 년아!”
“이 처 죽일 년이……!”
두 병사가 씩씩거리며 소녀를 쫓았다.
소녀는 이제 겨우 12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소녀를 잡지 못하고 숨을 가쁘게 쉬었다.
소녀가 뛰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병사들은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백한 얼굴의 소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민성의 일행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소녀는 곧장 민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쓰러졌다.
“……살려 주세요.”
어린 소녀는 목이 쉬었는지 쇳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민성은 어린 소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시선을 위로 들었다.
두 명의 병사가 옆구리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잡았네, 이 꼬마 년……!”
병사들이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어린 소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그들의 시선이 소녀가 붙잡고 있는 민성, 그리고 민성의 일행으로 번졌다.
“저년은 죽어 마땅한 것이니 괜히 끼어들지 말고 가던 길 가시오.”
병사 중 한 명이 말했다.
민성은 그들을 보다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작은 손으로 꽉 쥐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이호성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무슨 잘못을 얼마나 크게 했길래 저리 어린 아이를 해하려 드는 겁니까?”
이호성이 굳은 얼굴로 묻자 병사들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저 꼬마 년이 얼마나 나쁜 년인지 몰라서들 하는 말이요. 저것은 악마요! 악마!”
푸른 눈의 사내가 성난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느냐고 묻지 않습니까?”
이호성이 지지 않고 말하자 씩씩거리는 병사를, 옆에 있는 동료가 어깨를 잡으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가 대신 설명을 시작했다.
“마녀라는 걸 아시오?”
이호성이 눈썹을 찌푸렸다.
“마녀?”
“그렇소. 저 아이는 마녀요. 재앙을 몰고 오는 마녀.”
이호성은 아이를 보았다가 병사를 쏘아보았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요. 확증을 갖고 아이를 이리 잡으려 드는 겁니까?”
병사는 한숨 쉬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군. 더 이상의 설명은 시간만 잡아먹는 꼴이 될 것 같으니.”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눈에 살기를 담았다.
“이 일을 막겠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요.”
이호성이 민성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제가 상대할까요?”
민성이 약하게 웃었다.
“되겠어? 약골이잖아, 너.”
이호성이 가식적으로 웃음 지었다.
“그렇긴 한데 저 병사님들이 저보다 약골들로 보여서요.”
이호성은 그렇게 말하고 병사들을 보았다.
보통 이렇게 말을 하면, 자극을 받은 그들이 화난 상태로 뛰어들어야 정상인데, 그들의 표정은 마치 인정하고 있는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또한 지극히 긴장감이 가득한 것을 보니, 어쩌면 그들은 베아트리체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논 플레이어?”
이호성이 그렇게 떠보자.
병사들의 얼굴이 더 크게 굳어졌다.
이호성의 말로써 민성의 일행이 플레이어이며, 또한 범상치 않은 실력자라는 걸 직감한 듯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를 막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이호성은 병사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어째서죠?”
“이 영지의 주인, 크로스가 당신들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오.”
“아하.”
이호성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민성을 보았다.
“상관없으시죠?”
“물론.”
“제가 모시는 주인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호성이 손뼉을 짝 쳤다.
“반대로, 당신들. 죽기 싫으면 그만들 꺼지시지.”
이호성이 제법 무게를 담아 겁을 주었으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외려 무기를 고쳐 잡았다.
죽음을 각오한 얼굴들이었다.
“하아……. 답답하네.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까지 무모하게 나오는 겁니까?”
이호성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우리에겐 저 마녀를 잡아가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오.”
“그따위 책임, 난 모르겠고. 안 좋은 일을 이 아이에게 뒤집어씌우면서 도망이나 치는 댁 같은 어른들을 보고 있으니 열불이 올라 그냥은 못 있겠네. 죽이지는 않겠어.”
이호성이 손가락을 말면서 관절을 두두둑 풀었다.
그때 두 명의 병사가 동시에 이호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호성은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맥이 빠졌다.
힘이 생긴 만큼 어느 정도 플레이어와 시험을 해 보고 싶었는데, 논 플레이어라니.
약해도 너무 약했다.
힘 조절을 해야겠군.
이호성은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각각 뒷목을 한 대씩 쳐 주었다.
병사들은 동공이 흔들리며 이내 힘없이 철퍽 쓰러졌다.
이호성이 손을 탁탁 털면서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민성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채로, 눈을 감고 쓰러져 있었다.
기절하여 의식이 없는 듯했다.
이호성은 소녀에게 가까이 가서 무릎을 굽혀 상태를 확인한 후에,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어쩌죠? 이 소녀를 데리고 저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꽤 시끄러워질 것 같고, 그렇다고 여기 버려두고 가기도 그렇고.”
이호성이 안타까운 듯 소녀를 살피며 말했다.
“일단 데려간다.”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이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그의 성격상 의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정이 떨어졌으니, 이호성은 소녀를 안아 들었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었고,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몸은 앙상하게 말라서 가볍다 못해 깃털 같은 아이였다.
민성이 앞장섰고, 이호성은 소녀에게 포션을 써 줄까 하다가, 일단은 이대로 잠들어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 * *
크로크 영지로 들어서는 초입에 위치한 마을부터, 쭉 이어진 길은 한산했다.
조금 걷자 해가 지고 해가 사라진 완전한 밤이 되었다.
민성의 일행이 마을 안을 걷고 있는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이호성이 안고 있는 소녀를 보고 까무러치게 놀랐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도둑고양이처럼 금세 사라졌다.
숙소를 찾으려 했으나, 오래 걸리지 않아 모든 집이 불이 다 꺼졌다.
그것은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대답처럼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하나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최소 일개 소대의 숫자는 넘을, 두껍게 겹쳐 있는 발소리였다.
민성의 일행은 소리가 나는 곳을 응시했고, 이내 무장한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강철부츠를 신고 있어서인지 발소리는 꽤 위협적이었으며, 그 소리는 꽤 잘 훈련된 듯 착착 맞아떨어졌다.
“휘유. 꽤 많은데요?”
이호성이 한숨 섞인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어림잡아 30명은 될 법한 인원이었고, 모두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오러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헌터님이 나설 일이 없도록, 제가 한번 처리해 보겠습니다.”
민성은 이호성을 보며 진심이 담긴 웃음을 흘렸다.
“힘 좀 얻었다고 너무 흥분한 거 아니야?”
“그런 것도 있고요. 잔챙이들은 제가 헌터님을 대신해 한 명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요.”
이호성이 열의가 차오른 눈으로 다가오는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민성은 팔짱을 끼고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해 봐.”
민성의 승인이 떨어지는 즉시.
이호성은 민성을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바가지만 좀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많긴 많잖아요.”
민성은 주머니 안에서 자고 있는 바가지를 꺼내 던졌다.
공중을 휘리릭 돌며 잠에서 깨어난 바가지가 체조 선수처럼 팔을 벌리며 착지했다.
“으으음. 귀찮게 깨우고 난리야, 이 똥개야.”
“헌터님 승인 떨어졌으니까 투덜대지 말라고.”
이호성은 중대 병력의 플레이어들이 오는 것을 보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안고 있던 소녀를 쏠에게 넘긴 후, 그들에게 맞서 위풍당당하게 걸어갔다.
바가지가 이호성의 뒤를 쫄랑쫄랑 쫓아갔다.
“어? 자고 있는 새에 똥개 강해졌네?”
바가지가 몸에 비해 훨씬 큰 머리로 이호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이호성은 훗! 하고 젠체하며 웃었다.
“이제 알았냐? 예전의 똥개. 아니, 이호성 님이 아니란 말씀이다.”
“그래 봤자 넌 똥개야.”
“입 닫아. 온다.”
이호성은 멈춰 선 뒤에, 지척에 이른 중대 병력의 무장한 플레이어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중대급의 플레이어 인원이 이호성의 앞에 일제히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있는, 여자처럼 은발의 긴 생머리를 가진 사내가 머리를 묶어 올린 뒤, 이호성의 앞으로 홀로 걸어 나왔다.
광채가 날 정도로 잘생긴 미소년 스타일의 사내였으나 그가 가진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호성과 대치한 은발의 미소년 사내가 어깨너머로 보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를 확인하고서 다시 이호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호성과 은발의 사내가 시선이 마주치면서 스파크가 튀기듯 그 사이의 공간이 날카로워졌다.
“단순한 정의감으로 저 소녀를 보호하고자 하는 거라면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호성은 미간을 구겼다.
“마녀라는 추문이 붙는다는 건 들었는데, 확증된 증거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미신에 불과한 것 같은데. 이렇게 중대 병력까지 나설 일이라?”
은발 사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이 이호성과 그 뒤에 있는 민성과 쏠에게로 갔다가 다시 이호성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호성의 밑에 서 있는 바가지까지.
은발의 사내는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풋- 하고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마치 뱀처럼 감정이 없는 차가운 눈빛.
이호성은 그 눈빛을 받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외려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인데.”
이호성이 그 말을 내뱉자마자 은발 사내의 등 뒤에 도열해 있던 병력들의 살기가 일제히 찢을 듯이 튀어 나왔다.
이호성은 그 살기를 분명하게 느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버서커 덕분에 목숨이 두 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등 뒤에는 그 어떠한 존재보다 강인한 강민성이라는 무신(武神)이 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은발의 사내가 이호성의 두 눈을 직시하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호성은 사실, 속으로 조금 떨렸다.
민성의 말대로 힘 좀 생겼다고 너무 섣불리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자신의 주군인 강민성에게 맡길 걸 그랬나? 하고 뒤늦은 후회가 올라왔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수습은 자신의 몫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크로크 영지를 찾아 준 이방인과 과열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의 대결로 결론을 짓는 걸로. 어떻습니까?”
은발 사내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