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62화>
식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리되고 있는 음식의 냄새에 민성은 식욕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대체 무슨 음식이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이호성의 음식은 늘, 자신의 기대 이상을 채워 주었으니까.
식사에 있어서 기다림은 늘 즐거움 중 하나다.
민성은 파도처럼 일렁이던 감정을 통제하면서 이성을 찾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감정이나 본성보다, 이성이 먼저 신체를 통제하는 것은 마계에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습관이었다.
민성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과 혈액 순환을 맑게 만들었다.
삼천교에서 구한 서적을 통해 습득하게 된 혈의 흐름은 곧 마기의 흐름이었고 그것은 확실히 신비한 힘이 있었다.
정신과 육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며, 무한한 힘이 몸 안에서 회전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계에서부터 마기의 흐름은 늘 자신의 신체 안에서 강하게 휘돌고 있었지만 혈의 흐름을 알게 된 이후로 그것은 보다 분명해졌다.
또한 마기의 체내 순환 속도를 강제로 끌어 올릴 수가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순환이 중첩될수록 점점 큰 힘이 쌓여 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기가 혈의 흐름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점진적으로 그 힘이 쌓여 마기가 쌓여 나간다.
그것은 곧 출력의 증가가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하며, 새로운 단계로 넘어설 수 있음을 기대할 만한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민성은 최근 들어 피부로 느껴지는 그 증명에 의해 마기의 흐름에 대해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틈이 날 때마다 마기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집중을 마치고 나면 늘 몸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개운했다.
“헌터님,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그 소리에 민성이 눈을 떴다.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지만, 이렇게 한 번 집중을 할 때면 시간은 늘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곤 했다.
민성은 몸을 일으켜 이호성이 준비한 야외의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확인했다.
이호성이 준비한 이번 식사의 메뉴의 주 메인 식재료는 ‘오리’였다.
“오리고기?”
민성이 넓은 그릇에 세팅되어 있는 오리고기를 보며 의아한 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호성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한 보양식 중의 하나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실 겁니다.”
간단하게 먹자고 했는데 고기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기는 고기지만 일반 고기와는 다른, 오리고기다.
구운 오리 고기지만, 기름기를 쫙 뺐다.
그리고 보기 좋게 썰린 오리고기 옆으로는 양념이 되지 않은 부추가 소복하게 쌓여 있다.
민성은 젓가락을 들었고 오리고기와 부추를 같이 집어 입에 쏙 넣었다.
부추의 쌉싸름한 자연의 맛과 더불어 오리고기의 부드럽고 매끈한 맛이 합쳐지면서 마치 황토방에서 힐링 치료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가슴 안으로 파고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오리고기가 가진 약간의 부담스러움을 부추가 완벽하게 커버해 주면서 마치 음양의 조화만큼이나 완벽한 만족을 만들어 낸다.
오리고기가 가진 보양식의 힘과 부추가 가진 자연의 향은 먹는 순간 벌써부터 건강해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조합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다.
바로 쌈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선택지이자 새로운 맛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민성은 준비되어 있는 작은 상추 하나를 들어 거기에 오리고기와 빠질 수 없는 부추, 그리고 마늘과 쌈을 넣은 후, 동그랗게 말아 그대로 입안으로 쏙 넣었다.
우물우물-
싱그럽고 부드러운 상추 안에서 씹히는 오리고기와 부추는 입안을 빈틈없이, 꽉꽉 채워 주었다.
다 먹은 후, 부추만 먹어도 중독적으로 자꾸만 먹게 될 정도로 부추 자체 역시 너무 맛있었다.
간단한 한 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오리고기의 등장으로 나름 꽤 화려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또한 양 역시 적당했기에, 한 끼 식사로는 아주 일품이었다.
민성은 이호성에게 엄지손가락을 보여 준 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호성은 싱긋 미소 지으며 가벼운 목례로 그 인사를 대신했다.
* * *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민성이 앞장섰고, 이호성은 민성을 뒤따랐다.
처음 출발했을 때, 이호성이 등 뒤로 바짝 따라붙는 걸 보고 민성은 속도를 더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이 따라붙을 수 있는 걸 확인하게 되자 민성은 피식 웃고선 어디 여기까지도 따라올 수 있는지 보자라는 식으로 속도를 더 올렸다.
그러자 점점 거리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의 수준은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의 속도는 당연히 최대 속도가 아니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에 비례한 체력 조절이니, 만약 단기 거리를 폭발적으로 이동한다면 지금보다 약 2배의 속도를 낼 수가 있었다.
이호성은 가늠해 보았다.
만약 현재의 능력으로, 마석 폭탄 테러범 에이스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찍어 누를 수 있다.
물론 민성도 그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는 건 그냥 한눈에 봐도 느낄 수 있을 만한 부분.
하지만 민성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다.
불가침 영역인 민성을 제외하면, 현재 자신의 능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한 상태.
그러한 사실을 자각하게 되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이게 현실이라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바람을 찢어 내듯 달려가고 있는 지금, 이호성은 하늘을 날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상승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만족도를 줄 수 있는지 처음 경험한 만큼 그 신선한 충격은 천국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또 다른 기적이 나타났다.
최초로 주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금부터 업적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는 메시지 창을 확인했으며, 곧이어 처음으로 업적 포인트를 선물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베아트리체 안에서 플레이어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뜻!
이 믿을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현상으로 인해 이호성은 머릿속이 멍했고 집중력이 떨어진 만큼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러자 민성이 속도를 줄였고, 멍하게 달려가던 이호성은 민성의 손에 멱살을 틀어 잡혔다.
“……헉?!”
이호성이 깜짝 놀라며 민성을 보았다.
“체력이 빠진 것 같지는 않은데?”
민성이 무서운 눈으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좀 놀라서 그랬습니다.”
“왜?”
“그게…….”
이호성은 자신에게 일어난 현상을 말했다.
주신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업적 포인트를 선물 받았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걸 설명했다.
그러자 민성은 납득한 듯 잡았던 멱살을 풀었다.
“다시 간다.”
“집중하겠습니다.”
긴장한 얼굴로 민성이 출발하기를 기다리던 이호성은 민성이 가만히 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자 눈으로 물음표를 던졌다.
“먼저 출발해.”
민성이 말했다.
“제가 먼저요?”
“갑자기 힘 좀 얻었다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으니까. 내가 도와줘야지.”
이호성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출발.”
민성이 저승사자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와 동시에 이호성은 어금니를 깨물며 지면을 차고 뛰었다.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바짝 뒤쫓았다.
그리고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굳이 민성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의 눈치가 느껴졌다.
여유를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것은 언제나 긴장을 놓지 말라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이호성은 자연히 속력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여유는 사라졌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배어들었고, 맥박이 뛰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호흡은 거칠어졌으며, 눈앞이 노래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민성의 사인 안에서만 가능했다.
이호성은 힘을 원했고, 힘을 얻어 가고 있다.
어쩌면 민성이 멈추라고 해도, 멈출 생각은 없을지도 몰랐다.
* * *
“쉬었다가 간다.”
자만이었다.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제발 이제 그만 사인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시점을 훨씬 넘어서서, 거의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서야 민성은 멈추라는 사인을 줬다.
하지만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이호성은 어깨를 펴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민성은 역시 예상대로 조금도 호흡이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목적지가 보이네요.”
이호성은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전방에는 목적지로 보이는 영지가 있었다.
마을 건물들이 보였다.
저기가 바로 이번 목적지인 ‘크로크 영지’였다.
날씨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고, 곧 비가 올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영지를 향해 이동하고 시간이 좀 흘렀을 때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민성은 이호성을 향한 배려인지 느긋하게 걸어서 이동했다.
그사이 이호성은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템창에서 포션을 꺼내 마셨다.
포션을 마시자 회복 속도 또한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빠르게 체력이 회복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어지럽고, 당이 부족한 것처럼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빠진 체력이 빠르게 충전되는 걸 느꼈다.
그사이 민성은 템창에서 고대의 문서를 꺼냈다.
고대의 문서는 붉게 변해 있었다.
새로운 뭔가가 나타났다는 암시처럼 보였고, 그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고대의 문서 두 번째 페이지에 나타난 새로운 임무였다.
* * *
민성은 고대의 문서에 나타난 신규 임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임무 역시 다크엘프의 숲에서 고대의문서를 찾았을 때만큼이나 번거로운 것이었다.
임무는 숨겨진 비밀문서를 찾는 것이며, 거기에 대한 힌트는 비밀문서의 이름이 ‘골든 코드’라는 것 뿐이었다.
“골든 코드……. 그냥 이름만 딱 들어도 고대의 문서 만큼이나 뭔가 엄청 중요한 가치를 가진 정보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요?”
이호성이 기대감이 깃든 눈으로 말했다.
민성은 템창에 고대의 문서를 넣으며 짧게 혀를 찼다.
“하나같이 귀찮은 것들 투성이군.”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웃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보상은 크잖아요.”
민성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로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두 남자의 목소리였고, 이내 그 목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민성과 이호성은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아갔다.
갑옷을 입은 두 명의 병사들이 도망가고 있는 한 소녀를 뒤쫓고 있었고, 그 소녀와 병사들은 의도치 않게 민성과 이호성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