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60화>
레프만은 씩씩거리며,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생체에너지를 탈취한 놈을 찾기 위해 벌건 눈으로 이 잡듯이 화산을 뒤졌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놈이 아직 화산을 벗어나지 못했을 확률이 컸다.
자신의 하수인들 전 병력이 놈들을 찾기 위해 뛰어나간 마당이니 아직 기회가 영 없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체 에너지를 훔쳐 갔어도, 놈을 씹어 삼키면 된다.
놈의 생체 에너지를 80퍼센트 정도는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서 그동안 모아 온 자신의 생체 에너지를 복구해 와야 했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화산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가운데, 하나의 낯선 기척을 발견하고 레프만은 속도를 줄이며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제 막 찾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빨리 잡힐 줄이야.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생체 에너지를 탈취당한 것으로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라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화산의 지배자 레프만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니고 있는 인간 한 놈을 발견했다.
손에 금빛이 일렁이는 꽤 멋들어진 창 무기를 들고 있는 놈이었고, 무기를 들고 있는 걸로 봐서는 플레이어였다.
놈을 발견하자마자 레프만은 꽤 강한 압박감 같은 게 느껴졌다.
정말 생체 에너지를 그대로 소화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는 건가?
레프만은 이를 으드득 갈며 곳곳에 용암이 출렁이는 지대의 중심에 서 있는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 * *
이호성은 몬스터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기척을 숨기면서 민성을 찾기 위해 가능한 최대한의 속도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화산이 워낙 넓기도 했고, 곳곳에서 수색 중인 몬스터들이 워낙 많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민성을 찾기 위해 스킬 능력을 쓰기도 어려운 것이 자칫하다가는 화산의 몬스터이자 레프만의 하수인들에게 자신의 위치가 발각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또 기해야만 했다.
섣부른 행동은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색대가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눈을 피해 민성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하고 키운 스킬 능력은 대부분 추적에 활용도가 높은 스킬들이었다.
은신에는 한계가 있다.
‘고작해야 그림자술이 전부. 그것만으로 이들의 눈을 피해 헌터님을 찾기가…….’
숨어서 생각을 이어 가던 가운데, 이호성은 번뜩 하고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림자술은 진화했다.
본래 아주 작은 틈을 통과하기 위해선,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집중력과 마력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이상한 붉은 구체로부터 고통받고 다시 눈을 뜬 이후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써도써도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엄청난 마력의 양이 전신에서 흘러넘친다는 사실.
미세한 틈은 땅에도 있다.
그 틈으로 이동을 하면, 아무리 눈이 밝고, 기척에 밝은 이라고 해도 위치를 추정하고 쫓기가 어려울 것이 틀림없었다.
이호성은 그 생각으로 즉각 그림자술을 통해 집중력을 높이고 마력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오러의 힘이 스킬 능력에 의해 빛을 발하였다.
이호성은 이제 검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은신에 가까운 스킬을 펼쳐 낼 수 있었다.
이호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은신 능력을 발휘하며 민성을 찾기 위해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놀랍게도 엄청난 마력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력의 양은 스킬을 쓰는 것을 충분히 받쳐 주고 있었다.
이호성은 마치 취한 듯이 그 스킬 능력을 유감없이 펼쳐 내며 민성을 찾기 시작했다.
* * *
민성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화산의 지배자 레프만을 보고 머리를 삐딱하게 한쪽으로 꺾었다.
“너지? 여기 주인.”
민성이 물었다.
레프만은 민성의 눈빛을 보고 거칠어진 감정을 침착하게 가다듬었다.
놈의 눈빛을 보는 순간, 본성보다 이성이 먼저 머릿속을 장악하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포스라면 아마 신규 랭커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을 거라고 레프만은 생각했다.
“……네놈이구나. 나의 생체 에너지를 훔쳐 간 놈이.”
“생체 에너지?”
민성은 미간을 가볍게 구부리며 되물었다.
“이 가증스러운 놈…….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내가 그걸 얼마나 힘들게 모아 왔는데.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누구 앞길을 막으려고.”
레프만의 분노가 차오르자 땅이 지진처럼 흔들리고 자연적으로 표출되는 마력에 의해 거대한 압박이 민성을 휘어 감았다.
하지만 민성은 그런 레프만의 공격적인 투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외려 그의 얼굴에는 순수한 짜증이 어려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좀 죽어 줘야겠다.”
민성이 느슨하게 말했다.
여유 있는 목소리였고,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압적인 태도였다.
“크흐흐흐.”
레프만은 눈살을 일그러트리며 입으로 웃었다.
그의 온몸은 근육이 팽창되어 곧 혈관이 터질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생체 에너지를 흡수했다고 네놈 따위가 감히 이 레프만 화산의 지배자인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타아아아아앙!
레프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성이 지면을 차고 뛰었다.
시야로 뒤쫓기도 전에 민성이 창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레프만의 오른쪽 뿔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는 레프만의 빨간 눈을 직시하며 창 궁니르S를 내려찍었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뇌전을 뿌리며 날아드는 창을 어깨를 틀면서 피한 후, 커다란 입으로 민성의 궁니르S를 콰득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레프만의 손에 용암이 들끓는 검이 쥐어졌다.
레프만의 눈이 웃는 것처럼 변하더니, 이내 용암검을 휘둘렀다.
후루루루!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만 같은 열기를 머금은 용암검이 용암을 튀기며 민성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민성은 손에서 궁니르S를 놓으며 뒤로 피했으나, 용암검에서 가공할 만한 힘이 실린 오러의 힘이 민성을 추격했다.
민성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 오러를 보며 그대로 손바닥으로 쳐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지며 레프만의 오러와 민성의 마기가 충돌함으로써 생긴 파장의 효과로 시야를 가렸다.
민성과 레프만 사이로, 흙먼지와 붉은 용암이 뒤섞였다.
하지만 이 정도 경지에 오르면 눈보다 육신이 빠른 법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민성이 튀어 오르는 용암과 흙먼지를 뚫고서 레프만에게 접근했다.
레프만이 왼손에는 자신의 궁니르S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용암검을 들고 있었다.
민성의 개의치 않고 또다시 레프만의 오른쪽 뿔을 왼손으로 덥석 잡았다.
2번 연속으로 뿔이 잡힌 레프만은 성난 눈으로 민성을 노려보며 악이 들어찬 용암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번엔 레프만이 용암검을 찌르는 것보다 민성의 주먹이 더 빨랐다.
콰아아아아아앙!
자동차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나며 레프만의 커다란 머리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충격에 의해 레프만의 한쪽 다리가 위로 떠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축을 잡아 재공격을 가하려는 레프만의 얼굴에 민성의 주먹이 연타로 날아왔다.
“큭! 큿……! 크읏!
레프만은 얼굴을 얻어맞으며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워낙 힘과 타격점이 완벽한데다가 믿을 수 없으리만큼 빨랐다.
때문에 레프만은 앞을 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용암검을 휘둘렀다.
민성이 상체를 숙였고, 용암검의 오러가 민성을 맞추지 못하고 그 너머에 있는 애꿎은 허공만을 가르며 날아갔다.
멀리서 레프만이 발출한 오러가 산을 잘라 내는 충격음이 터지던 때, 그와 동시에 레프만의 옆구리에 민성의 주먹이 꽂혀 들어갔다.
쿠우우우우웅-!
“쿨럭!”
레프만이 한 움쿰의 피를 뱉으며 휘청 렸다.
민성이 손을 내뻗어 레프만의 목을 움켜잡았다.
콰드득!
민성의 눈을 마주 보게 된 레프만이 눈을 부릅떴다.
레프만이 민성의 주먹에 상상조차 되지 않는 엄청난 마기가 실려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일순 주먹을 당긴 민성의 모습이 레프만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
제대로 힘이 실린 민성의 주먹이 레프만의 안면에 또 다시 직격탄으로 맞아 들어갔다.
그의 안면이 함몰되며, 민성의 궁니르S와 자신의 용암검을 떨어트리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볼링공처럼 굴러가 엎어진 채로 미동이 없었다.
민성은 그런 레프만을 보며 어깨를 잡고 스트레칭을 하듯 한 바퀴 돌렸다.
“엄살 그만 피우고 일어나지?”
민성이 레프만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레프만은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천천히 일어났다.
민성의 주먹에 의해 그의 얼굴에 상처가 남아 있긴 했지만,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또한 그의 눈빛은 마치 죽어 있는 듯 했다.
마치 실망한 것 같은 감정과 비슷한 것이 들어있다.
“이상하군……. 생체 에너지를 흡수했더라면 이런 느낌의 공격은 아닐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생체 에너지를 훔쳐 먹은 놈 수준이라고 하기엔 상상 그 이상이란 말이지.”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빨간 놈.”
민성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궁니르S가 민성의 손으로 훌쩍 날아왔다.
레프만을 그것을 보고 별달리 놀라지 않았다.
그 정도 능력은 내대륙에서 충분히 봐 왔던 것들이니까.
다만 레프만의 마음에 걸리는 건 그런 잔기술 따위가 아니었다.
놈이 주먹을 쓰기 직전에 보여 주었던 투기.
그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투기가 잠재되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놈은 단순히 생체 에너지나 훔쳐 먹을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안 오면 이쪽에서 간다. 시간 낭비는 질색이라.”
민성이 궁니르S를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쿠크그그그-!
콰콰콰!
천둥소리가 터지면서 민성이 발출한 커다란 마기가 바닥을 가르며 레프만에게로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레프만이 그 짧은 찰나에 힘을 끌어올렸다.
레프만의 몸 주변으로 동그란 붉은 막이 씌어졌다.
민성의 마기가 레프만이 자신의 주변에 쳐 낸 그 막과 충돌했다.
땅이 길게 갈라지고 그 충돌의 파장이 사방으로 하얗게 번졌다.
민성의 공격을 그렇게 막아 낸 레프만이 새로운 용암검을 템창에서 꺼내며 출력이 올라간 오러를 민성에게 날려 보냈다.
새빨간 용암이 출렁거리는 붉은색이었으며, 피할 공간이 없을 만큼 넓은 면적을 가진 오러였다.
그것은 지금껏 민성이 경험한 적 없었던 출력의 오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