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59화>
이호성은 더 이상 그 데미지를 버텨 내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이호성은 버서커 단계로 진화했다.
하지만 버서커 단계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은 여전히 의식 불명이었다.
그 상태에서도 잔혹한 신체의 변화는 계속되었다.
뼈가 마치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살을 찢고 사방으로 나와 파편이 되어 바닥을 굴러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버서커가 된 탓에, 재생 능력이 그의 심장에 피가 공급되는 것을 지켜 주고 있었다.
꾸물꾸물-!
이호성의 눈과 코, 그리고 귀와 입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처음 이호성의 얼굴을 덮쳤던 붉은 구체의 성분으로 보이는, 핏물과는 조금은 다른 색상의 그것은, 이호성의 몸 밖으로 흘러나와 이내 그의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부서진 뼈와, 찢어진 살갗에 그 붉은 액체가 아주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러자 아주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거의 산산조각이 나 버렸던 뼛조각이 다시 재생 과정을 거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각난 뼈가 다시 붙으면서 형태를 이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찢어진 살 속으로 들어가, 본래의 제자리를 찾아 나갔다.
골격의 형태가 변하고 찢어진 살은 아물기 시작했으며 거칠거칠했던 피부는 마치 아기처럼 뽀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과정은 누군가 두 눈으로 본다면 절대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변화였다.
또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이호성의 몸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연기는 마치 악마의 형상과도 같은 모양새를 갖고 있었다.
* * *
“무슨…… 소리 들린 것 같지 않아?”
“무슨 소리……?”
“이상한 소리 말이야”
“글쎄.”
이호성이 위치한 거처 바깥쪽 근처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두 몬스터가 서로 거처를 흘깃 돌아보았다.
그들은 문이 잘 잠겨 있는지 확인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입의 흔적은 없어.”
“잘못 들었나 보군.”
두 몬스터는 다시 본연의 임무를 이어 가려 할 때, 비명 소리와 비슷한 것이 들렸다.
두 몬스터는 서로를 쳐다보았다가, 서둘러 보스를 찾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이호성은 아주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흐릿하던 시야가 점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자마자 이호성은 바짝 머리를 들었다가, 주변으로 눈알을 굴렸다.
그리곤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켜 세워 보았다.
끈적끈적한 느낌이 났다.
일어서서 밑을 보자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것을 보고 이호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기억이 떠올랐다.
이호성은 고개를 팩 돌려, 목재로 된 탁자를 보았다.
이호성은 멍한 눈으로 그곳을 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절대 꿈 따위라고 치부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생생했다.
또한 그것은 지금 자신의 발아래로 보이는 피의 흔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긴장감은 매초마다 가속되었다.
이호성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알몸이었다.
몸에는 아마 자신이 흘렸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피들이 묻어 있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분명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졌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채기 같은 상처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새로 태어난 것만 같은 반들반들한 피부였다.
또한 뒤늦게 인지했는데, 원래 보유했던 마력의 양은 늘 아쉽고 부족한 수준이었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마력이 흘러넘치는 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바닥을 펼쳐 마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집중을 살짝 해 보자, 자신의 능력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영역의 오러가 맺히는 것이 아닌가?
이호성은 오러를 지우며 눈을 깜빡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낮게 중얼거리며 앞머리를 쓸어 올리던 이호성은 문득 시선을 돌렸다.
목재 탁상 위, 허공에서 둥둥 떠올라 있던 그 붉은 액체.
그 액체가 자신의 얼굴을 덮쳤고, 이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호성은 아마 그것 때문에 자신이 일종의 각성(覺醒) 효과를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화산의 지배자 레프만은 히죽 웃음 지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체 에너지를 모으면 꿈에 그리던 힘을 손에 넣게 될 터였다.
그 힘을 얻고 나면 작당의 무리들을 치워 버리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레프만은 확신했다.
그는 곧 거대한 힘이 자신에게 차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감으로 절로 입가가 벌어졌다.
한 번에 많은 양의 생체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인내의 끝에는 달콤한 과실이 있을 것일 테니까.
기다림은 곧 큰 결과를 만들어 내는 법이다.
또한 응축된 고함량 생체 에너지를 한 번에 흡수하면 그 효능은 훨씬 더 높아진다.
기다릴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바로 생체 에너지였다.
곧 목표로 했던 수치의 생체 에너지를 꿀꺽 삼키게 될 것을 떠올려 보면 벌써부터 과식이라도 한 것처럼 배가 불렀다.
레프만은 자신의 머리에 난 뿔을 매만지며 달콤한 상상을 하다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곤 사색에서 깨어났다.
“음……?”
레프만이 시선을 돌리자 그 곳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서 있는 두 마리의 하수인이 있었다.
“무슨 일이냐?”
레프만이 빨간 눈으로 하수인들을 보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 그, 그것이…….”
“그것이…….”
두 하수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걸 보자 레프만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
“무얼 망설이고 있는 것이야. 어서 보고하지 않고.”
레프만이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말했다.
저승사자를 대면한 듯 두 하수인은 벌벌 떨었다.
“레프만 님의 거처 안에 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레프만의 눈이 커졌다.
“뭐가 있다니? 무슨 거처 말이냐?”
하수인이 죽음을 각오하고 입을 열었다.
“제 4B 구역…….”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용암 안에서 레프만이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당장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야!”
레프만이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하수인은 곧 녹아내릴 듯이 몸을 낮추었다.
“한데……. 치, 침임의 흔적이 없습니다. 분명 안에서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레프만은 용암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직접 확인한다. 만약 내 것에 작은 문제라도 생겼다가는…….”
레프만이 무시무시한 눈길로 하수인들을 쏘아 보았다.
“그 대가를 똑똑히 치르게 될 것이다.”
흉폭한 기운을 뿌리며 앞서가는 레프만을 뒤따라가면서 두 하수인들은 제발 아무런 일이 없기만 바랄 수밖에 없었다.
* * *
알몸으로 피가 범벅이 된 채, 정신없이 현 사태에 대한 충격에 물들어 있던 중, 이호성은 기척을 느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본래라면 이 정도 먼 거리에서, 존재감이나 살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서포터 특성 때문인지, 그 경계의 감각은 한층 날카로워져 있었다.
또한 지금 이 쪽으로 오고 있는 상대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까지도 알 수 있었다.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놈이 도착하기 전에 벗어나야 한다.
이호성은 서둘러 나가려다가 자신이 알몸인 것을 깨닫고 템창을 열었다.
생수를 꺼내 대충 핏물을 씻어 낸 뒤, 옷가지를 꺼내 입고, 곧장 그림자술을 펼쳤다.
그림자술을 사용하는 그 즉시 이호성은 자신의 그림자술 능력 또한 대폭 그 능력이 올라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바늘구멍만 한 틈만 있더라도, 그 공간을 통해 어떠한 곳이든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이호성은 고도로 확장된 자신의 능력을 체감하며, 순식간에 레프만의 거처를 벗어났다.
* * *
레프만은 그래도 설마, 누군가 자신의 거처를 침입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침입의 흔적이 없다고도 했고 그 생체 에너지는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 플레이어가, 생체 에너지를 가져갈 수 있는 확률은 천만분의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그 생체 에너지는 잘못 건드리면 쇼크로 인한 쇼크사를 피하기가 힘들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해야만 하는 과정.
랭커 플레이어라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끊임없이 생체 변화를 연구한 자신이 아니라면 수용할 수 없는 범위의 힘이었다.
단지 레프만은 누군지 몰라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공간에 뭔가가 나타났다는 것이 그저 거슬릴 뿐이었다.
만약 쥐새끼 한 마리가 나오더라도, 살아 있는 채로 오체 분시하라고 지시할 생각이었다.
레프만은 오래 걸리지 않아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공간 앞에 도착했다.
레프만의 하수인들은 물러서 있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공간인 만큼 레프만만을 위한 절대적인 공간이었던 탓이다.
때문에 경계를 설 때가 아니라 이처럼 레프만이 직접 나섰을 때, 문을 열었을 때는 그의 하수인이라 해도 근처도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레프만의 하수인들은 제발, 자신들의 실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가 소홀하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부디 아무 일 없기만을 기원했다.
물론 아무 일이 없어도, 화산의 지배자인 레프만을 신경 쓰이게 한 점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받아만 할 것이었다.
죽거나 소멸하는 것보다는 벌을 받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었다.
때문에 하수인들은 그저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헛것을 들은 것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하수인들의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어떤- 망할- 버러지 같은 자식이- 감히- 내 것에 손을 댄 것이야-!”
쩌렁쩌렁!
레프만의 분노가 천지를 울렸다.
화산에 있는 생명체라면 모두 느꼈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오러가 맺혀 있었던 만큼 하수인들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런 공포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레프만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그것은 곧 그가 목숨처럼 모아 왔던 생체 에너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수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했다.
거처에서 걸어 나온 레프만이 유령 같은 눈으로 하수인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하수인들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당장 내 것을 탈취한 놈을 찾아라. 찾지 못하면 네놈들을 살아 있는 지옥 속으로 밀어 넣어 줄 것이니!”
하수인들은 허겁지겁 패닉에 빠진 채로, 뛰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은 것이 아니라 그저 무작정 그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사그라트리기 위함이었다.